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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 제물포 풍경
김기림
기차
모닥불의 붉음을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눌 밑으로 빨려갑니다.
인천역
‘메이드 · 인 · 아메-리카’의
성냥개비나
사공의 ‘포케트’에 있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潮水
오후 두시……
머언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여서는
쉬파람을 불며 불며
검은 潮水의 떼를 몰아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고독
푸른 모래밭에 자빠져서
나는 물개와같이 완전히 외롭다.
이마를 어르만지는 찬 달빛의 은혜조차
오히려 화가 난다.
이방인
낯익은 강아지처럼
발등을 핥는 바다바람의 혀빠닥이
말할 수 없이 사롭건만
나는 이 항구에 한 벗도 한 친척도 불룩한 지갑도 호적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이방인이다.
밤 항구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싸파이어 에메랄드……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파선
달이 있고 항구에 불빛이 멀고
축대 허리에 물결 소리 점잖건만
나는 도무지 시인의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빠이론’과 같이 짖을 수도 없고
갈매기와 같이 슬퍼질 수는 더욱 없어
상한 바위틈에 파선과 같이 참담하다.
차라리 노점에서 임금(능금)을 사서
와락와락 껍질을 벗긴다.
대합실
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취’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헤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조광』,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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