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에필로그
신기정가
지은이 산중처사
어리석은 이 인생이 제 팔자 제 몰라서
망령된 어린 마음 부귀를 구하려니
어화 허사로다, 세상사 허사로다.
공명은 아니 오고 흰 머리 뿐이러니
지천명 되온 후에 내 팔자 내 알리라.
좁쌀밥이 다 익을 제 긴 잠에서 깨어나니
꺼림 없는 녹수청산 한가한 서운 골에
안개 노을 의지하고 사슴이 벗이 되어
우연히 정한 터가 이곳이 별천지라.
이름 좋고 경치 좋은데 한 칸 초가 짓고지고.
불타산 맑은 곳에 흰 구름을 높이 쓸어
절벽 위에 하늘 아래 네 면이 석벽이라.
하늘이 만들었으니 인력이 아니로다.
무릎이 옮겨지니 넓고 큰 집 바라겠나.
절묘한 산정에서 눈앞을 바라보니
자맥봉은 저기 있고 임수봉은 앞에 뵌다,
뒤에서는 연화봉서 맑은 바람 건듯 불어
봉봉마다 장한 기상 산 모습도 웅장하다.
이보다 갖춘 데 또 어디 있단 말고.
안빈일념 품고 있어 뜻한 대로 살려 하네.
하룻밤 비 온 후에 경치가 달라지니
구름 속에 뿌린 비는 그 아니 쌍룡인가.
초가 아래 맑은 물이 굽이굽이 흘렀으니
긴 비단 펼치는 듯 푸른 물이 흰 파도라.
푸르거든 희지 말지 길거든 넓지 말지
산 사이로 물 흐르니 물 깊이 어이 알리.
낚싯대 메고 내려가나 고기 수를 어이 알리.
두 귀 끝의 때를 씻고 회룡강에 띄운 잔이
산 아래 하천으로 밤낮으로 내려가나
익은 술이 없으려니 어느 벗이 날 찾으리.
두견새는 울며 가니 암화는 반만 피고
남은 꽃 다 진 후에 수풀이 깊어간다.
서리맞은 단풍나무 꽃보다 붉었으니
조물주가 대단하여 얼음 눈에 잠겼구나.
산 중에 달력 없이 네 계절을 모르더니
마음 밝혀 세상 보니 긴 세월도 순간이라.
불타산 회룡강이 계절마다 절로 나니
뿌연 듯 하얀 듯 모이는 듯 흩어지는 듯
천태만상이 잠깐 사이 달라진다.
산 아래는 남의 것인데 재물 욕심 그 무엇인가.
그 귀한 삼정승과 아니 바꿀 이 산 집에서
거친 칡 옷 입었으니 비단옷이 부러우며
산나물 보리밥에 겨우 배를 채웠으니
산해진미 아랑곳할까 향기롭기 그지없다.
네 계절을 다 지내니 이것이 내 흥이라.
아무 걱정 근심 없어 별 아래에 누웠으니
고금의 속세 생각 듣도 보도 못하리라.
아침 이슬 맺힌 곳에 매화는 피어 있고
저녁 노을 어린 곳에 백학이 춤 추노라.
나무 위에 별이 빛나니 어느 것이 내 처자인가.
청산 속 푸른 물에 넌짓넌짓 혼자 들어
돌창문에 비추이는 명월을 등불 삼아
어리석음 자아내서 신기정가 짓노라니
불타산 맑은 맛이 여기에 다 있구나.
허허허, 처사 생애 정녕히 이러하니
아이야, 사립문 닫아라 이 산 밖에 나가겠나.
옮긴이 서운군청 지역축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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