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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9. 북군

New-Mountain(새뫼) 2022. 10. 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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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北軍 (북군)

 

북군의 근거지는 곽산(郭山)으로, 부원수(副元帥) 김사용(金士用)은, 아장(亞將) 김희 련(金禧鍊)과, 김국범(金國範), 이성항(李成沆), 한처건(韓處坤)을 거느리고 십팔 일 점심나절에 곽산에 도착하였다. 모두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혹은 걸인의 행색을 하고, 혹은 붓 장사 행색을 하여 가지고, 하나씩 몰래 숨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곽산에 도착하자마자,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중대한 난문제에 봉착하였다. 그것은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이 별장(別將) 최봉관(崔鳳寬)을 잡아 족치다가, 의외의 큰 사건이 탄로되어, 곽산의 김창시(金昌始), 박성신(朴星信)이 모두 여기 참가하였다는 것을 알자, 곧 포교(捕校)를 곽산으로 파송하여, 창시의 아버지와 (창시가 없었음으로), 성신을 결박 지워 가지고, 막 떠나갔기 때문이다. 창시의 아버지야 직접 관계가 없음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지만 성신은 곽산서 가장 유력한 내응 동지고, 그의 형 박성간(朴聖幹)은 곽산서 제일가는 부자로, 곽산이 북군의 근거지가 된 것도 그의 재력에 기대하는 바가 컸었다.

사용은 이 정보를 받자, 곧 부하들을 다리고, 곽산서 선천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신 현(薪峴)이라는 고개로 달려가서 길옆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거기를 지나가는 포교의 일행을 습격하여, 포교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결박 지었든 창시의 아버지와 성신을 구해냈다. 이것이 북군으로서는 최초의 행동인데, 무난히 성공하였다.

사용은 부하들과, 구해낸 창시의 아버지와 성신을 데리고, 곽산 북쪽에 있는 연무장 (演武場)에 이르러 몸을 감추고, 성신의 형, 성간을 읍으로부터 불러내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 계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원래는 이십 일이 기병하는 날이지만, 이처럼 우리의 일이 탄로되어, 내응 동지들이 속속 체포된다면, 일 하나 해보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니, 그 이전에 일찍 서둘러서, 관청 놈들이 미처 손을 대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들고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들 생각하오?”

사용이 이처럼 묻자,

“우리도 기일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난처한 것은 대원수의 명령을 어기는 셈이 되겠으니, 그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성신은 사용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다 양해가 되어왔으니 염려 마오. 기일은 이십 일이되, 사세가 급할 때에는 이 기일에 구속되지 말고, 비상 수단을 써도 무관하다는 - 그런 명령을 받고 왔으니까, 우리는 지금 비상 수단을 쓰기로 합시다. 그러나 비상 수단을 쓸래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쓸 도리가 없으니, 곽산의 형편이 지금 바로 들고 일러날 수가 있겠소, 없겠소? — 문제는 오로지 여기에 있는 것 같소.”

“그것은 문제없습니다. 오늘밤에라도 곧 됩니다.”

성간이가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사실은, 포교들이 왔을 때에도 곧 들고 일어날까 하다가, 이십 일이 기일이라 꾹 참았었다고, 실정을 보고하였다.

이리하여 그날 밤으로 곧 기병하기로 결정하고, 하나씩, 둘씩 헤어져서 다시 곽산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때에 곽산군의 원은 이영식(李永植)이라는 자로, 제법 말도 달릴 줄 알고, 활도 잘 쏘아서 그 시절의 양반으로는 드물게 보는 위인이었다. 다만 술이 너무나 과하여, 하루도 술이 안 취하는 날이 없었고, 관청 송사도 대개는 어느 편이 술을 많이 먹이나, 그 분량에 따라 지고 이기는 것이 결정된다고 -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날 밤에도 영식은 술이 취해서 내아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징 치는 소리, 북 치는 소리, 와 - 하는 군중의 고함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동편으로 쫓아 나가기는 나갔으나, 그것을 막아낼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 누가 없느냐?”

하고, 큰 소리로 불러보았으나,

“예 - .”

하고, 긴 대답할 놈은, 한 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문이 확 열리고, 횃불을 내두르며 군중이 와 - 몰려들었다. 영식은

“이놈들!”

하고, 한번 호령을 하여 보았으나, 갑자기 정신이 번적 들며, 술이 한 번에 깨었다. 그리고 제 편을 들어, 저를 후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이 깨닫고, 무서운 생각이 냅다 치밀어서, 화닥닥 벽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군중은 거침없이 몰려 들어와서

“원놈을 잡아라!”

“주정뱅이를 놓치지 말아라!”

소리 소리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서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식의 아우가 마침 다니러 와서 옆의 방에 머물러 있다가, 군중의 고함 소리에 잠을 깨어 벌떡 일어나 분을 박차고 뛰어나오며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하게 구느냐?”

하고,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사세 여하를 불문하고 호령한다는 것이 양반 정신의 발로로, 영식의 아우는 이 양반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저놈을 잡아라!”

“저놈의 아가리를 째 놔라!”

군중은 이리로 좍 쏠리어, 냅다 잡아 낚으니,

“이놈들이 어디를 함부로!”

하고, 영식의 아우는 여전히 호령이다.

“저놈을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 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속에서 미처 자세히 알아볼 사이도 없이,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패서 죽여버렸다.

벽장 속에서 숨어 있던 영식은 너무나 일이 다급하여 화닥닥 다시 뛰어나오며

“그것은 애매한 사람이다!”

소리를 질렀다.

금방 원을 죽였는데 난데없는 데서 또 원의 소리가 들리니, 군중은 모두 의아하여 다시 동헌으로 몰려왔다. 몰려와서 횃불 밑에 자세히 보니, 진짜 원은 여기 살아있다. 군중은 좀 어리둥절하여 옆방 문 앞에서 죽어 엎어진 자를 끌어 다가가 보니, 웬 낯선 사나이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성신이 사용을 안내하여 들어왔다. 영식은 잔뜩 결박을 지워서 앞마당에 꿀렸다.

“저놈을 어떻게 할까요?”

성신이 눈짓으로 영식을 가르치며 물었다.

“항복을 하겠다는 것인지?”

사용은 꿇어앉은 원은 내려다보며, 성신에게 도로 물었다.

“이놈! 우리 혁명군에게 항복을 하겠느냐, 못하겠느냐?”

성신은 바로 말을 받아서, 내려다보고 호령하였다.

“예, 항복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영식은 이쪽이 놀랄만치 간단히 항복하였다. 항상 호령만 해 버릇한 양반도, 의외로 간단하게 호령에 복종하고 항복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항복한다니 우선 오늘 밤은 가둬두고, 내일 밝은 날 다시 처결하기로 합시다. 밤도 너무 깊었고 하니 - .”

사용이 이처럼 말하니

“아니, 저런 술타령만 하는 원은, 아주 이 자리에서 처단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놈마저 죽여버리는 것이 시원하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항복할 놈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의견이 나왔다.

“내일로 미루자는 것은, 무슨 관대한 처분을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오늘은 이미 밤도 깊었고, 인심이 너무 동요되어도 재미없으니, 잘 가뒀다가 내일 처단하자는 말 이오.”

사용은 이처럼 결론을 짓고, 영식을 끌어다가 가두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용의 실수였다. 무교(武校) 장재흥(張再興)이라는 자가 옥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 자도 매우 술을 좋아하는 자였다. 영식은, 이 추운 밤중에 수고한다고 재흥을 위로하며, 내아의 술 둔 곳을 가르쳐주어, 그것이라도 꺼내다가 마시어, 몸을 좀 후끈후끈하게 하여 보라고 권하였다.

어리석은 재흥은 그도 그렇겠다고, 술을 꺼내다가 먹기 시작을 하였다. 술이 어지간히 돌게 되자, 영식은 내아의 마루 속에 돈을 삼천 냥 감추게 둔 데가 있는데, 자기만 내놓아주면, 그것을 파다가 고스란히 주겠다고 달랬다. 재흥은 술기에 그렇게 하라고 응낙하고, 옥문을 열고 묶은 것을 풀어주었더니, 영식은 다짜고짜로 옆에 있는 몽둥이로 후려쳐서, 단매에 재흥이를 죽이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 도망해 버렸다.

(이영식은 사이 길로 숨어서 정주를 거쳐 남행하여, 이십이 일에 안주 병영에 다다랐다. 그는 원래는 주정뱅이나 이 통에 가족을 전부 잃고, 더구나 아우 하나는 마저 죽은 현장을 직접 보니만치, 이후부터는 술도 딱 - 끊고, 복수하겠다는 - 오로지 이 한 마음으로, 관군(官軍)의 일 부대장이 되어, 가장 용감한 장수가 되었다. 그 전부터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였었음으로, 한번 이처럼 굳게 결심하고 나스니, 제일 용감하고 씩씩하였다. 쉽게 항복하는 자는 쉽게 배반하는 - 한 개의 실례다.)

한편 가산과 곽산의 중간에 있는 정주는 양편에서 불의의 돌발지변이 터져서 모두 순 식간에 함락하여 버리니, 정주의 운명도 이미 결정된 셈이다.

정주목사 이근주(李近冑)는 십구 일 아침에 곽산의 변보(變報)를 듣고, 점심나절 연거푸 가산의 변보를 듣게, 되니, 당황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 것인지,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아 좌불안석으로 있었다. 이때 마침 곽산 군수 이영식이가 소를 타고 숨을 헐떡거리며 찾아 들어와서,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있느냐고 물었다. 근주가 아무 대책도 없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니, 그러면 우선 성문을 꼭꼭 닫고 수성(守城)의 준비라 도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리곤 나는 앞길이 바빠서 곧 가노라고, 다시 소를 타고 가버렸다.

근주는 영식의 말대로 수성의 준비를 하려고 좌수(座首) 김이대(金履大)와 중군(中軍) 이정환(李廷桓)을 불렀다가 무르니, 둘이 다 내응 동지라, 수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누이 주장하였다. 가산, 곽산이 모두 함락한 이상 정주는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고 빨리 항복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항복을 주저하고, 그들의 명령을 거역하면, 가산군수 정시처럼 한 칼에 목이 달아날 것이니, 애당초 섣불리 서둘지 말자는 것이다.

근주는 이 말을 듣고 더욱 겁이 나서 앉았다 졌다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밖은 더욱 요란하였다. 정주의 제일 유력한 내응 동지 최 이윤(崔爾崙)이 대낮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옥문을 깨트리어, 음모의 혐의로 며칠 전에 갇힌 동지들을 꺼내 가고, 가산에서 온 격서가 장터에 좍 - 퍼져서 파란 가는 사람들로 읍안이 물 끓듯 야단들이다.

그리고 관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무장한 군졸을 따라 수많은 군중이 와 - 하고 동헌으로 밀려 들어왔다. 근주는 황급하여 뒷문으로 튀어서 마구간의 말을 꺼내 타고, 안주를 향하여 그대로 도망하여 버렸다.

이십이 일에 가산서 북행하든 홍총각, 이제초의 부대와, 곽산서 남행하든 김사용의 북 군이 정주에 한꺼번에 도착하였다. 동헌에 좌정하고, 홍총각은 대본영(大本營)의 영을 전하여 최이윤으로 수성장(守成將)을 삼고(후에 김이대로 변하였다), 소를 잡고 술을 걸러 군졸을 위로하고, 창고를 열어 쌀과 필목을 일반 시민에게 분배하였다.

물론 이러한 일은 골이 하나 함락하면 어디서고 으레이 있는 일이었다. 이 일은 최이 윤에게 맡겨버리고, 홍총각은 사용, 제초, 희련과 더불어 넷이서만 비밀회의를 열어서, 작전의 일부 변경을 이야기하였다.

원래는 홍총각과 제초는 정주서 사용을 만나서 북군의 선봉으로 편입되어, 그대로 북행하기로 되어있는데, 홍총각의 강경한 주장으로 이 일부분을 수정하여 제초만 북군의 선봉으로 되고, 홍총각은 백여 명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몰래 남행하여 단숨에 안주를 친다는 것이다. 홍총각 생각으로는 가산 서 바로 남행하여 안주를 치고 싶었으나, 그것은 군칙, 창시, 희저 등이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 우선 정주까지라도 북행하여 그들의 눈을 속여 놓고 비밀리에 정주서 곧 남행하여 안주를 쳐 성공한 후에, 비로소 일반에게 발표하자는 것이다.

“이제 곧 출발해서 단숨에 안주를 앗아 버릴 터이니, 북쪽을 단단히 부탁합니다. 만약 이 일에 실패하면 나는 목을 베어 바치기로 대원수한테 맹세하였으니, 안주의 함락은 나의 생명입니다. 자 그러면 북군에서는 어떻게든지 해서 의주(義州)까지 함락시키어 주시오. 부탁합니다.”

하고, 홍총각은 총총히 일어서서, 안주를 향하여 쏜살같이 말을 달리었다. 이미 홍총각의 백여 명의 정예부대는 가산서 정주로 향하는 도중에서 사잇길로 몰래 남행하여, 청천강(淸川江)을 격하여 안주를 건너다보는 송림(松林)이라는 곳에서 홍총각의 오기를 일각이 여삼추(一刻 如三秋)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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