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소설과 산문

이명선의 '홍경래전' - 10. 운명의 순간

New-Mountain(새뫼) 2022. 10. 30. 14:18
728x90

10. 運命(운명)의 瞬問(순간)

 

십구 일 저녁에 가산을 출발하여 동행한 경래의 대부대는, 이십 일 새벽에 목적지 박 천(博川)읍을 정면으로 들이쳐서 단번에 함락시켰다.

박천군수 임성고(任聖皐)는 약졸(弱卒) 수십 명을 거느리고 도망하다가 중도에서 뿔뿔이 헤어쳐버리고, 성고는 서운사(棲雲寺)라는 절에 숨었다. 그러나 그의 노모(老母)가 경래의 군졸에게 잡히어 옥중에서 신음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고는 할 수 없이 절에 서 내려와서 경래의 진에 이르러, 나를 대신 죽여달라고 자원하였다. 죽여주시오 하니, 이것은 항복 이상이다.

군칙, 창시는 성고의 효성이 지극한 것을 칭찬하며, 죽이기는커녕 특히 후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효는 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니, 이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고, 이러한 효자를 학대하는 것은 우리 혁명군이 이번에 기병한 취지와도 어그러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평소에 예의만 찾고 형식만 내세우는 썩은 선비들과 양반들을 욕하 여 왔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도 그러한 예의와 형식에 잔뜩 젖어있는 것이었다.

성고는 효자의 가면을 쓰고 옥중에 갇히어 있으면서, 문지기들이 안심하고 있는 것을 기화로 하여, 심복의 통인을 하나 연락하여, 박천읍이 불의의 변을 당하여 순식간에 함 낙한 연유를 자세히 써서, 안주 병영으로 급히 전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태평의 꿈속에 서 꾸벅꾸벅 졸고 있든 안주읍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으며, 따라서 또 앞으로의 작전에 얼마나 불행한 조건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은 후에 차차 명백하여진다.

그러나 이것이야 여하튼 이십 일 저녁나절 대변영에 큰 변이 폭발하였다.

경래가 동헌 상좌에 앉아, 한일항(韓日恒)을 주관장으로 정하고, 창고를 열어, 일반 시민들에게 쌀을 분배케 한 후, 동으로 영변(寧變)과 북으로 태천(泰川)을 어떻게 습격할 것인가 - 의논을 시작하려 할 때에, 김대린(金大麟)이

“지금 우리는 영변이니, 태천이니 하는 소읍을 가지고 논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안주를 치지 않고 언제 치려고 합니까?”

하고, 강경하게 안주 공격을 주장하였다. 가산에서도 이미 논의되었었으나, 대다수의 절대 반대로 완전히 묵살 당하였던 난문제다.

“우리의 지령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안주, 평양을 거처 서울로 쳐 올라가서 썩어 문드 러진 서울 양반 놈들을 죄다 무찌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기병한 지 이미 수삼 일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청북(淸北) (청천강淸川江 이북) 산골 속에서만 왔다 갔다 하며, 좋은 시기를 죄다 놓쳐버리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대사를 성취하겠습니까?

더구나 이십 일 기병 예정을 십팔 일로 당긴 것은, 각처에서 우리의 계획이 탄로되어, 저편에서 공세로 나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공세를 취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적이 미처 칼을 갈고 신들 메를 매기 전에 그의 모가지를 정통으로 찔러서 한 번에 승부를 결정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안주는 적의 모가집니다. 이 모가지를 내버려두고 궁뎅이를 아무리 주먹으로 때려본대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루를 지체하면 그만치 적은 우리의 몇 수십 갑절 강하게 됩니다. 결전(決戰)을 하루하루 늦추면 그만치 전국은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니, 우리는 지금 곧 결전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전의 장소는 안주입니다. 지금 곧 안주를 공격하지 않고, 이 좋은 시기를 놓치면 서울은커녕, 평양도 못 가보고 패해버릴 것입니다. 대원수께서는 만사를 제 폐하고 즉시 안주를 공격하도록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경래가 입을 열기 전에, 옆에 앉은 군칙이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근본 이 작전은, 총참모와 참모가 대원수와 상의하여 결정한 것으로,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아무나 함부로 입을 벌리어 고집을 세울 문제가 아니오.

서울로 쳐 올라가는 데 있어 안주가 얼마나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오? 적인들 모르겠오? 그러기 때문에 안주는 병영 소재지(兵營所在地)로, 성곽이 견고하고, 출반군졸(出番軍卒)이 우물우물하지 않소? 더구나 바로 그 앞에는 청천강(淸川江)이라는 큰 강이 끼어있어, 공격하기는 어렵고, 막기는 쉬워서 평안도에서 제일가는 요지인 것이 아니오. 이러한 요지가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 유유낙낙하게 함락할 줄 아오? 경적(輕敵)은 병가의 소기(所忌)라 하오. 적을 업수이 여기다가는 후회막급이오. 당신은 적에게 준비할 여유를 주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적은 처음부터 상당한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것이오. 안주는 더군다나 그렇소.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는 조급하게 서둘 것이 아니라, 남군이 영변, 태천, 개천 등을 함락시키고, 북군이 정주, 곽산, 구성, 선천, 철산, 용천, 의주를 함락시키어, 뒤에 아무 근심도 없이 만들어 가지고, 남군과 북군의 전 병력을 기울이어 정정당당하게 안주를 치는 - 이 밖에 무슨 좋은 방법이 있단 말이오? 참모는 어떻게 생각하오?”

군칙은 자신만만하게 대린의 소론을 하나하나 논박하고서, 동의를 청하는 듯이 창시를 돌아보았다.

“전혀 동감이오. 총참모와 대원수가 십여 년을 두고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꾸미어낸 작전인데, 범연하겠오? - 그러니 그것은 그만두고 이제부터 영변 공격이나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이 생각하오.”

평소에는 창시가 앞에 나서서 논쟁하고 군칙은 뒤에서 관망하는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군칙이 처음부터 흥분해서 서두는 바람에, 창시는 더 길게 늘어놓을 말이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군칙은 다시 좌우를 돌아보았다.

“총참모의 말씀이 지당하오.”

모두 찬의를 표하였다.

가산 회의 때와 똑같은 순서, 똑같은 수단으로 대린의 주장은 완전히 묵살당하고 말았다. 다만 가산 회의 때보다도 더 분명하게, 더 결정적으로, 다시는 더 어떻게 말을 내지 못하도록 면박당한 것이다.

그러나 대린은 굴복지 않고, 다시 더 열열하게 주장하였다.

“백보를 양보하여 근본적 작전으로서 총참모 말씀이 옳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렇다면 안주병사(安州兵使) 이해우(李海愚)의 입장은 어떻게 됩니까? 신도 회의 때에 나를 보고 극력 노력하여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넣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만 끌어넣으면 안주는 단번에 함락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하여 그동안 가진 수단을 다 써서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넣어, 여기서 쳐들어가기만 하면 곧 내응하여 줄 것을 승낙하게까지 일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이제 와서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지체하게 된다면 그의 입장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비밀리에 결행하는 일일수록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신의 없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신의를 주장하지만 이해우라는 사람이 그렇게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란 말이오? 만 일에 그가 겉으로 내응하는 체하고, 실제에 있어서 이쪽을 배반한다면, 한 번에 이쪽은 전멸하고 말 것이 아니오?”

창시가 대린의 말을 중도에서 꺾으려 든다. 그러나 대린은 최후의 힘을 다하여 싸웠다.

“그것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직접 교섭한 일도 있고, 그동안 안주서 연락하고 있던 내응 동지 이인배(李仁培), 이무경(李茂京), 이 무실(李茂實) 등이 어젯밤에 여기 왔는데, 안주서는 별별 유언비어가 돌아 인심이 동요되고, 목사(牧使) 조종영(趙鍾永)이는 어서 서둘러서 방비하자고 야단을 침에도 불구하고, 병사는 그저 쓸데없는 풍설이라고 쓸어 묻어 넘기고, 모르는 체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인배를 보고 왜 빨리 쳐들어오지 않느냐고 무르며, 대본영에 연락할 수만 있거든, 곧 쳐들어오도록 전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지금 그를 의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습니다. 이제는 대원수의 일대용단(一大勇斷)을 바랄 뿐입니다.”

경래는 이때까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대린과 군칙이 서로 핏대를 세우며 격론을 하여도, 경래는 냉정한 태도로 묵묵히 앉아서 방관하였다. 경래는 원래 이런 회의에서 자청해서 부하들과 언쟁하는 일이 없으며, 먼저 부하들의 의견을 들어가지고, 결론만 딱 나리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뿐만도 아니었다. 경래에 계는 군칙도, 대린도, 여기 있는 아무도 모르는 극비밀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산서 홍총각을 타이르다 못하여, 기어이 그의 말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홍총각 단독으로 백여 명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불일 중에 안주를 공격할 것을 용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마지못하여 그저 묵허(黙許)하는 형식을 취하였으나, 이제 와서는 그때 그렇게 한 것이 참 잘하였다고…… 속으로 오히려 기뻐하였다.

“너머 흥분을 말고 냉정히 합시다. 서로 토론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일이란 토론만으로는 해결 안 될 것이오. 그러니 그 문제는 모두들 내게다 일임해 주. 내게는 확고부동한 성산(成算)이 있으니, 나를 믿어 주. 내가 전 책임을 지고 그 일에 당할 터이니, 너머 염려들 마오.”

그의 어조는 다시없이 침착하였으며, 듣는 사람들에게 무슨 신비한 기분까지 주었다.

“그러면 결국 대원수께서도 안주 공격을 찬성 못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대린은 이제는 최후의 유일한 희망까지도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 비통한 소리로 반문하였다.

“대원수께서 일임하라면 그만이지, 무슨 또 군소리요?”

군칙은 서슴지 않고 이것마저 물리쳤다.

대린이 동헌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인배, 무경 형제가 일제히,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대린은 머리를 옆으로 흔들어 다 틀렸다는 것을 표시하며, 분을 못 참아서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혼자 이때까지 고군분투해 보았으나, 완전히 거부당해 버렸오. 맹자 왈 공자 왈만 찾는 놈들과는 이런 일이 처음부터 이야기가 되지 않소. 대원수까지도 그저 나에게 일임하라는 것뿐이오.”

“그러면 우리들은 장차 어떻게 하여야 하겠오? 결국 남은 길이라고는…….”

인배는 낙심천만한 어조로 이처럼 말을 꺼내다가 딱 끊었다. 그리고 모두들 한데 몰리어 그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중이다.

경래는 별실에서 잠을 이루어, 온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 문밖에는 위병(衛兵) 둘이 모진 찬바람에 견디다 못하여 문간방에 들어앉아서 다 꺼져가는 화로의 모닥불을 끼고 있어,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다. 땅 위의 만물이 모두 숨을 죽이고 깊이 잠들고, 하늘의 별까지도 찬바람에 얼어붙은 듯이 꼼작 안는다.

이때에 담 모퉁이에서 별안간 사람 그림자가 넷이 나타나, 허리를 굽히고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살금살금 발을 밀어 디디어, 쏜살같이 별실로 들어갔다.

네 그림자는 모두 손에 칼을 빼 들고 어둠 속에서 경래를 노리고 몰려 들어갔다. “웬 놈이냐!”

경래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서는 것과, 네 그림자의 칼이 내려지는 것이, 거의 동시였다. 경래는 잠결이었으나, 원래 체구가 적고 몸이 날래어, 일시에 머리 위에 내려지는 칼들을 손으로 막으며, 벽을 끼고 몸을 피해 가지고, 재빠르게 네 그림자의 틈을 타서 비호같이 도망하였다. 네 그림자도 발을 돌리어 바로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이때에는 문간방의 위병들이 뛰어나와

“도적이여!”

“반역자여!”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오고, 그 근방 여기저기서 군졸들이 잠을 깨 가지고 몰려들어 왔음으로, 경래는 요행히 모면하고, 네 그림자는 금시에 수십 명 군졸들에게 포위 당하여 그 자리에서 모두 칼을 맞고 넘어졌다. 다소 저항도 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위병이 갖다가 밝힌 횃불 밑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넘어진 네 그림자의 정체가 비로소 분명하게 나타났다. 대린, 인배, 무경, 무실의 네 사람이다.

경래는 위기일발에서 모면은 하였으나, 칼을 막은 손은 세 군데나 베어져서 피가 뚝 뚝 듣고, 이마로부터 상투 있는 데로 걸쳐서 꽤 깊게 칼을 맞아, 피가 콸콸 쏟아져나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군칙, 창시, 희저 등의 수뇌부가 급보를 듣고 쫓아왔을 때에는, 경래는 너무나 출혈이 심하고 상처가 깊어서 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졌다. 생명에는 대개 이상이 없을 것 같았으나, 당분간 절대로 안정을 요할 것은 분명하였다.

“대린이라는 놈, 그놈이 그렇게 안주 공격을 주장하더니 속으로는 전혀 딴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 완연하지 않소. 이런 음흉한 놈의 말대로 안주 공격을 하였던들, 큰일 날 뻔하였오. 대원수께서 불의의 화를 당하시었으나, 우선 천만다행한 일이니, 우리는 이 자리에서 여기에 대하여 긴급하게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군칙은, 경래가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의 저 자신의 지위를 자각하여, 무거운 침묵을 깨트리고 이처럼 제의하였다.

“이번 일에는 총참모가 과연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소. 대린을 위시한 그 네 놈들이 우리한테는 내응 동지의 탈을 쓰고 나타났으나, 사실은 안주 병사 이해우의 심복이었던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 이해우야말로 이번 이 일의 괴수며, 북군과 합세하여 안주를 공격할 때에는 제일 먼저 이해우라는 놈의 목을 베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우선 급한 문제로, 대원수께서 완쾌하시기까지는 임시로 총참모께서 만사를 대행하여 처리하는 것이 좋을 줄 생각하오.”

이처럼 창시가 먼저 군칙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리자 모두 이에 호응하여 찬의를 표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기(士氣)에도 관계할 것이라, 경래의 부상은 일반에게는 절대로 비밀에 부칠 것, 경래가 일어나기까지는 되도록 작전은 기정 방침대로 진행시킬 것 등을 결의하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