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20. J대 교수 정일영

New-Mountain(새뫼) 2022. 9.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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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J대 교수 정일영

 

  “저녁 시간에 보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오늘 저녁에 서울 집에 올라가야 해서요.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겠더라고요.”

  서울에 처자식을 두고 내려왔을까, 아니면 혼자 남고 처자식을 올려보냈을까. 그게 그거인가. 주말 부부인지 기러기 아빠인지 알 수 없는 정 교수의 얼굴은 많이 늙었다. 학문 연구의 힘겨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일 것이라고 멋대로 추측해 본다. 어쩌면 정 교수도 자신보다 더 지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외로움을 내 얼굴에서 발견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득 J시로 들어오며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던 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비록 지방 도시라 하여도 서운군과는 풍경이 달랐다. 아파트들도 제법 높고, 번화한 상가도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섰다. 서운군의 하루 차량 통행량을 이곳 도로에서 모두 목격한 것 같다.

  정민이 던져두고 간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말라가는 것 같아. 서울과 비교하면 J시도 한적한 곳이지만 그래도 J도에서는 제일 큰 도시가 아닌가. J시에 집을 마련하고 서운군으로 출퇴근하는 방법은 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실제 민 팀장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민과 헤어진 이유 중에 정말 거주의 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우리 대학 다닐 때, 서로 교류가 없었지요?”

  술자리에서라도 만난 일이 있었을까. 둘이 함께 술을 마셔야 할 만큼 학번도 가깝지 않았고 가려는 길도 달랐다. 동문회에서 보았을까. 하지만 나는 동문회라는 데에 나가본 일이 없다. 한때 군청 내에서 J대학교 출신들이 조그만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선거와 관련되어 오해가 무서워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물론 그때도 나는 한 번인가 참석한 것이 전부였지만.

  “기억에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그래도 반갑네요. 이렇게 나이 먹으니까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네요.”

  말 놓으시라고 해도 정 교수는 말을 낮추지 않는다.

  “그래도 군에서 이런 일을 후배님에게 맡긴 걸 보면,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셨나 봅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불과 두 달이 되지 않는다. 내 일은 축산지원과 방역계에 있었다. 차근차근 서운호박제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호박제에서 내 역할을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신기정가가 나왔고, 신기정이 나왔으며, 신기정가의 가사비를 세우려는 얘기까지 하게 된다. 정 교수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호박과 정자라.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결합이네요. 이 둘을 처음 결합시켰던 이가 혹시 후배님?”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그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다. 결정된 대로 따라야 하는 공무원 조직표의 한 일원에 불과함을 설명한다. 내 말을 듣던 정 교수는 얼른 다른 쪽으로 화제를 옮긴다.

  “그러니까 가사비를 만들어서 정자 앞에 세운다는 거네요.”

  그렇다.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사의 길이가 만만치 않을 텐데.”

  세 개로 나누어 새길 계획이라고 알린다.

  “일이 크겠네요.”

  돌판이 아니라, 나무판이라고.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새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가사를 현대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순간 정 교수에게 보냈던 문자를 떠올린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가사의 현대어 번역까지 덧붙였던 모양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작업 비용과 작업의 난이도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아, 나는 고전의 대중화를 위한 작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거기에도 경제 논리가 중요하게 작용했네요.”

대답을 잘하지 못한 것 같아 얼굴이 후끈거린다.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에게, 돈이 부족하고 작업을 빨리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하기가 민망하다.

  정 교수는 서가에서 종이 뭉치 몇 개를 꺼내와 넘겨준다. 얇은 책도 몇 권 있고, 신문 기사와 팸플릿 등등의 인쇄물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모두 정 교수의 이름이 크고 작게 박혀 있다.

  “우리 도에서 우리 대학이 제일 크고, 또 우리 과에서 고전시가를 전임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나뿐이에요. 그러다 보니 시골에서 발견된 옛날 책들이나 문서에 고전시가가 들어 있으면 으레 나한테 연락이 옵니다. 한시가 대부분이고, 시조나 가사도 가끔 나오죠.”

  테이블 위에 가족사진이 하나 올라가 있다. 지금보다 한창 젊을 때의 정 교수와 부인과 두 딸. 아까 서울 집에 간다고 했나. 내일 내가 민서를 보러 가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둘 다 금요일 늦은 오후가 피곤하다.

  “젊을 때는 그런 일들이 신났어요.”

  그런 일들이라는 게 뭘까?

  “재미도 있었고. 다들 논문 쓸 거리가 없어서 허덕이는데, 그런 새 자료를 발굴해서 소개하면 쉽게 논문 한 편이 되거든요. 인문대 쪽에서는 따로 연구비 나올 데도 없는데.”

  잠시 말을 멎는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될 만큼 서로 가까운 사이인가를 잠시 가늠하는 낯빛을 읽는다.

  “그런 이유보다도 더 보람을 느꼈던 건, 알려지지 않았던 고전 작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말을 멎는다.

  “그런데 결국 돈이더라고요. 연구를 몇 년 하다 보니까 학문보다는 돈이 먼저 오락가락해요.”

  돈을 위한 연구? 물론 직접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 교수는 내 마음을 이미 읽는다.

  “물론 연구비가 나오기는 해도 그건 얼마 되지 않아요. 작품 연구자의 돈보다는 작품 소유자의 돈이 경제 논리가 되더군요.”

  내 앞에 있는 여러 책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든다. 100쪽쯤 되는 한시집.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는데, 표지가 고급스러운 양장이다.

  “처음 내 이름이 박힌 거예요. 산남군의 어느 노인네가 30편 정도 되는 한시를 들고 왔더라고요. 6대 조부의 글인데, 문집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말로 해석하고, 해설을 붙여 달라고 하더군요. 신나게 연구를 했어요. 한 반년 걸렸나. 그래서 출판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까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의 한시를 모아온 거였어요. 그때는 내 공부가 워낙 짧았을 때라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지. 나중에 당한 망신이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둑한 조명 때문인가.

  “그런데, 이 노인네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문집을 출판한다고 문중에서 받은 돈이 실제 출판 비용의 배가 넘더라고요. 나까지 같이 이상한 놈이 되어버렸죠.”

  책 위에 사진 두 장이 올려진다. 비석의 앞면과 뒷면을 찍었다.

  “이거는 재작년에 영풍군에서 만든 시조비예요. 영풍군의 한 서원에서 발견된 시조를 돌에다 새겨서 영풍역 앞에다가 세워두었는데…….”

  옆에 찍힌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어른 키의 세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비석 안에 빽빽하게 글자가 채워져 있다. 다른 사진은 뒷면인데, 시조비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군수 누구. 문화원장 누구. 문중 대표 누구. 그리고 자문을 한 정 교수 이름까지.

  “이것도 내가 감수했어요. 그런데 제막식을 할 때 가서 보니, 이 비석이 완전 엉망인 거라. 돌에다 새겼는데, 틀린 한자도 꽤 되고. 가장 기가 막혔던 건 비석 면이 부족하다고 몇 구를 아예 빼고 새겼던 거예요. 제막식하는 자리에서 다시 새겨 세우자고 했죠. 그랬더니 예산이 없고, 또 몇 구가 빠졌어도 알아볼 사람도 없을 거라고 그냥 웃고 넘기더라고요. 다 그런 식이에요. 차라리 내 이름을 빼 달라고 하긴 했는데, 어디 빠질 수 있겠어요. 돌인데. 제막식 끝나고 막걸릿잔을 돌릴 때 와 버렸지요.”

  신기정은 작년에 쓴 논문인데?

  “신기정가를 처음 본 거는 꽤 돼요. 5년 전인가. 서운군의 어느 노인분이 와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묻더라고요. 내가 골동품 장사도 아니고. 그래서 복사만 하고 돌려보냈어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흥미 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학회에서 이 가사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을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몇 분 있었던 것 같아요. 발표 전에 논문을 쓰기는 하였지만, 학회지에 따로 발표는 하지 않았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본다.

  “곧 기차 시간이네요. 우리 대학에서는 재임용되기 위해서는 1년에 최소 한 편은 논문을 써야 해요. 그런데 작년에 앓기도 하고, 집안에 문제도 있고 하여 제대로 연구를 못 했어요. 유일하게 쓴 게 신기정가에요. 하지만 학회지에 논문을 올리기 위해서는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디다. 그래서 심사가 따로 필요 없는 군 문화원에 보냈어요. 후배님한테나 밝히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테이블 위의 책자들을 모아 책상 위로 옮긴다. 나도 일어서서 거든다. 가방을 챙겨 함께 연구실을 나선다. 아직 가사를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대한 조언이나 의견을 듣지 못했다. 계단을 함께 내려오며 다시 묻는다.

  예전의 통화에서 고전 작품들을 오늘날 다시 불러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생각을 달리하는 연구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편하게 거절할 말을 찾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그때는 후배님을 잘 모를 때니까 그렇게 답할 수밖에는 없었겠죠.”

  그러면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엊그제 후배님의 문자를 보고, 나에게 그걸 부탁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먼 걸음을 하게 해 미안한데,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네요. 지금 이달 안에 마쳐야 하는 논문도 있고, 그것보다도 나 말고도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분이 있을 것 같군요.”

  정 교수가 나를 바라본다.

  “그걸 말하려고 수고스러운 걸음을 하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정 교수의 눈빛이 침착하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잊었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참, 택시를 불렀어야 했는데, 그냥 내려왔네.”

  휴대전화를 꺼내는 정 교수의 손을 잡는다. 잠깐만요.

  천승남에게 전화를 한다. 지금 어디 있어요? 5분 거리라고요. 네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제 차가 역 쪽으로 갑니다. 차가 많이 지저분하긴 한데, 괜찮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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