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18. 남태전통건축 대표 원만호

New-Mountain(새뫼) 2022. 9. 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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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남태전통건축 대표 원만호

 

  신기정가에 나오는 신기정이 있었던 위치는 결국 특정되지 않았다. 신기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신기정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신기정은 세워져야 했다. 덧붙여 신기정가의 가사비까지. 신기정가라는 가사에서 출발하여, 신기정이라는 정자를 거쳐, 신기정가를 새겨 넣어야 하는 가사비에까지 이르렀다. 오롯이 내 몫으로 남은 일들이다.

  몇 번의 회의 끝에 결국 신기정은 축제가 열리는 호박벌에 세우기로 하였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정자까지 볼 수 있게 하자던 군수의 애초 희망이 실현된 결과이다. 정자가 세워질 위치를 정하고, 터를 닦는 일은 손상섭이 맡기로 했다. 딱히 할 일 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공익 요원에게 정자를 세울 만한 업체 검색을 맡긴 것이 그제였고, 몇 개 업체를 검색하여 뽑아온 것이 어제였다. 그래서 업체 중에 서운군에서 가장 가까운 남태군의 한 업체에 연락해 보았고, 오늘 찾은 것이다.

  정문을 대신하여 늠름하게 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와 손상섭을 맞는다. 통나무가 잔뜩 쌓인 마당 사이에서 드문드문 정자가 서 있다. 완성된 것도 있고, 완성되어 가는 것도 있으며, 기둥만 서 있어서 어떤 모습이 될지 예상할 수 없는 정자도 있다. 그런 나무들을 피해 마당 한 켠에 주차한다. 차 안에서는 그리 크게 들리지 않았던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다. 풀풀 날리는 톱밥이 하늘을 덮는다.

  원두막이 참 고급스럽네요. 손상섭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내가 속으로 정자라고 지칭했던 건물들이 서 있다. 정자가 아니라 원두막이었나. 생각해 보니 여기 오면서도 정자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정자인지 원두막인지 정체를 정의할 수 없는 건물을 지나쳐 패널로 만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남태전통건축 대표 원만호’라는 명함을 내미는 얼굴은 생각보다는 많이 젊다. 벽에 걸린 사업자 등록증도 대표의 얼굴만큼 젊다. 이 업체에서 전통적인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을까. 원 대표는 내 표정에 담긴 우려를 읽어낸다.

  “저희는 매년 전국을 순회하면서 정자나 누각, 원두막까지 다 사진으로 찍고 스케치해 옵니다.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컴퓨터 작업을 해 설계도를 만들고요. 그렇게 만들어 둔 설계도면이 수백 장이 넘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의문을 솔직하게 묻는다. 정자와 원두막은 다른 것인가?

  “글쎄요. 기능적으로는 휴식을 취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형태적으로도 네 벽이 없다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굳이 차이가 있다면?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접근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두막보다는 정자가 조금 외진 곳에 있겠죠. 보통 선택된 일부 사람들만 찾는 곳에 있고요. 또, 정자는 원두막보다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게 짓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형태에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좀 더 실용적인 건물이 원두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이용하는 계층이 다를 터이니 정자가 조금 더 고급스러운 건물이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누각이라면 몰라도 정자나 원두막 모두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짓습니다. 또 그게 자연스럽고요. 우리는 자연 건조한 국내산 소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러면 밖에 있는 건물들은 정자인가, 원두막인가?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정자라고 부르고 싶으면 정자가 되는 거고, 원두막이라 부르고 싶으면 원두막입니다. 아, 아까 정자와 원두막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빠뜨린 게 하나 있습니다. 정자에는 보통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신기정은 정자이겠네요. 손상섭이 끼어든다.

  “원하시는 정자가 신기정인가 봅니다. 복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지으시려는 것인지?”

  지금까지의 사정을 그대로 말한다. 원 대표는 잠자코 내 말을 듣는다.

  “사실, 복원이 좀 더 까다롭습니다. 기존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 재료에 맞는 재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니 복원은 아닌 것 같네요. 혹 신기정이라는 정자의 사진이나 그림, 아니면 설명한 글이라도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은 신기정이라는 이름밖에는 없다.

  “그러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중에 하나 고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원 대표는 컴퓨터 모니터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으며, 한장 한장 넘겨 가며 설명을 한다.

  “이게 가장 많이 나가는 것은 모델입니다. 전통적인 모습이면서, 모양도 아름답고, 튼튼합니다. 무엇보다도 조립식이어서 시공이 빠르고 쉽습니다. 지자체에서 만든 공원이나, 음식점이나 개인 주택의 정원에 많이 서 있는 모델입니다.”

  흔히 공원에서 많이 보게 되는 바닥이 낮은 원두막의 사진에서 화면이 멈춘다. 하지만 이런 건물을 신기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고 저렴하다.

  “이것은 기본 모델이고요, 여기에서 적당히 가공하고 응용하여 오래된 느낌이 나도록 만듭니다. 바닥을 높일 수도 있고, 나무도 옛날 나무처럼 보이게 처리합니다. 좀 더 보시겠습니까?”

  다시 화면이 넘기다가 이름을 들어본 듯한 정자에서 멈춘다. 또 돌아가다가 멈춘다. 이를 몇 번 반복한다.

  “이 정자들은 조합하면 새롭고도 개성적인 정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짜깁기로 정자를 만든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드는데, 그게 저희 업체가 가진 기술이고 노하우입니다.”

  말에서 자신감이 가득 묻어나온다. 그런데 세울 시간은 되는가? 축제까지는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정자를 세우는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기본 재료는 다 갖추어져 있고요. 그것들을 가공하고 운반하여 현장에서 세우는데 한 달 정도면 충분합니다. 참, 정자를 세울 장소에 트럭이나 크레인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손상섭이 끼어든다. 물론입니다. 8톤 트럭까지 가능합니다.

  “그러면 사흘 정도 더 앞당길 수 있겠습니다. 보통 정자들을 세우는 곳이 외진 곳이 많아서 시간이 더 걸리는데……. 참, 몇 채나 세우실 예정입니까?”

  당연히 한 채 아닌가?

  “지금 재고로 있는 기둥이 열다섯 주니까, 정자를 세 채까지도 만들 수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손상섭이, 잠깐만요, 하며 내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이끈다. 형님, 사실 축제장에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아요. 한 채보다는 세 채를 적절하게 배치하면 전체적인 모양이 나올 것 같은데, 팀장이나 과장에게 한 번 물어보시죠?

  손상섭의 말을 좇아 팀장에게 전화하고 기다린다. 팀장은 과장이나 군수실에 물을 것이다. 기다리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모니터에 뜨는 정자들을 관람한다. 몇백 년 된 정자에서, 방금 공원에 설치된 정자, 아직 설계도면으로만 되어 있는 정자까지. 30분도 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린다. 준비된 예산은 이 정도이다. 그 안에서 되겠는가? 그대로 원 대표에게 묻는다.

  “예. 가능합니다. 그렇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세 채로 짓더라고 정자들은 다 다른 모양으로 나올 겁니다. 다른 게 오히려 자연스럽겠죠. 같은 걸 세 채 늘어놓으면 연립주택을 세워 둔 것 같아 예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셋이 너무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파격 속에서도 서로 잘 어울릴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원 대표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 정도의 가격은 공개 입찰해야 한다. 그것이 절차이다. 그러면 다른 업체가 들어올 수 있다. 기술력이나 경험이 더 나은 업체가 낮은 금액을 쓸 수도 있다.

  “아, 다른 업체가 그 금액에 맞추기는 어려울 겁니다. 아니 입찰하지 않을 겁니다.”

  업체 간에 담합을 하는 것은 아닌가? 노골적으로 물어본다.

  “그건 아니고요. 이 바닥이 넓은 편이 아닙니다. 같은 일을 하는 업체들은 서로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다른 업체들은 서운군에서의 위치가 너무 멉니다. 열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해야 할 텐데. 거리가 멀면 운송비를 감당하기가 어렵고, 공기를 맞추기 힙듭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조치도 불가능하고요.”

  원 대표의 말을 믿기로 한다. 다른 업체를 찾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런데 남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가사비 제작도 여기에서 가능한가?

  “가사비요?”

  원 대표는 가사비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관동별곡 같은 가사를 돌에 새기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아, 시비나 노래비 같은 거 말씀하시나 봅니다. 저희는 나무만 다루는데……. 그래도 대강의 시세는 압니다. 돌에 새기는 건 글자 수대로 돈인데, 대략 몇 자나 됩니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관동별곡은 꽤 길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50에서 60행 정도니까 관동별곡보다는 짧다. 한 행이 대강 16자로 본다면 900에서 1000자 정도.

  “그래도 많네요. 그러면 시비가 세 개는 되어야겠습니다. 비용이 꽤 세게 나올 텐데요. 축제 개막이 한 달 후라고 했습니까?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때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가? 원 대표가 휴대전화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 통화를 시도한다. 통화하다가 나를 쳐다본다.

  “혹 시비에 한자나 고어가 많은지 물어봅니다.”

  전부 한자나 고어이다. 원 대표가 뭐라 말하고, 들은 내용을 전달한다.

  “한자나 고어는 가격이 두 배라고 하네요.”

  실업가 유지들이 협찬하기로 한 정자 건립 비용에 가사비까지 포함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군수와 그들이 서명한 업무협약서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공무원이 된 후에 처음으로 사업 예산을 걱정해 본다. 잠시 머뭇거리자 원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제가 참견할 부분은 아닌데요. 혹, 고어나 한자를 현대어로 다시 쓰면 어떨까요? 또 돌이 아니라 나무판에 글을 새기면은요. 그렇게 하면 사람이 일일이 새기지 않아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기계가 새길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시간도 줄어들겠죠.”

  그러면 예산이 추가로 얼마나 필요할까? 세 채로 늘어났던 정자를 두 채나 한 채로 다시 줄여야 하는가?

  “나무는 정자 세우고 남은 것을 활용하면 됩니다. 기계 돌릴 비용만 더 부담하시면 되는데,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다만?

  “예전에 우리가 지은 누각 앞에 따로 노래비를 세우는 것을 보았는데, 제막식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테이프를 커팅하고, 시루떡을 차려 놓고 샴페인을 터뜨리고. 또 노래비의 내용을 감수하였다는 사람에게도 사례비까지 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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