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16. 교사 심우식

New-Mountain(새뫼) 2022. 9. 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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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교사 심우식

 

  “예, 제 장인어른입니다.”

  J시의 신개발지구 안에 들어앉은 한 초등학교 옆 카페에서 심 교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정 교수에게 신기정가를 들고 왔던, 가사 원소유자의 사위이다. 심 교사를 만나기까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제 서운문화에 실린 정일영 교수의 논문인 ‘새로 발견된 신기정가에 대하여’를 다시 차근차근 읽었었다. 그때 새로운 지명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논문 첫 페이지 아래의 각주에 신기정가의 소장자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2)서운군 천남면 다락리 고수용(78)씨 소장’. 천남면 다락리라.

  내게 가사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사를 썼던 정자, 또는 정자가 세워졌던 장소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간 정 교수의 논문을 꼼꼼하게 읽지 않았던 이유였다. 논문은 가사에 대한 글이었지, 정자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 그래서 논문의 큰 글씨만 읽었지 그 아래 조그만 글씨들은 읽지 않고 넘어갔었다. 아니, 그건 핑계이다. 논문을 읽을 줄 몰랐다. 그러다가 논문을 다시 읽다가 다락리를 발견한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천남면 다락리를 입력하니 다락리 마을회관이 떴다. 무작정 내비게이션에서 가리키는 대로 차를 몰았다. 다락리는 천남면의 남동쪽 끝 만월산 자락에 있었다. 대강 따져 보아도 호박벌과는 자동차로 30분 거리였다. 여기에 신기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여기에다 신기정을 세울 수는 없다. 신기정은 호박 축제와 연결될 수 있는 장소에 있어야 했다.

  다락리는 오늘 처음 가 보았다. 한자로는 ‘많을 다(多)’자에 ‘즐거울 락(樂)’자이지만, 즐거움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락방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도 자체가 높았다.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이고,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에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마을회관은 굳게 닫혀 있었고, 회관 앞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처음 눈에 보였던 모습이 깊게 각인되어서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자를 세워 여유와 풍류를 즐길 만한 마을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천남면 면사무소에 연락하여 다락리의 이장을 수소문하였고, 휴대전화 번호를 얻어 냈다. 번호대로 통화 단추를 눌러보니 출타 중이었다. 서운읍에서 온 나는 다락리에 와 있고, 다락리 이장은 서운읍에 가 있었다. 이장에게 전화로 대강의 사정을 말하고 고수용 씨를 찾았다.

  통화상으로 확인한 것은 고수용 씨는 작년에 작고했다는 것. 작고 후에 고수용 씨의 부인은 J시의 딸 집에 옮겨 가 산다는 것. 마을회관에서 길 건너 두 번째 집이 고수용 씨가 살던 집이라는 것. 고수용 씨 딸의 연락처를 혹시 알 수 있느냐 물었더니, 찾으면 문자로 보내준다고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기다리면서 고수용 씨의 집을 둘러보려 길을 건너갔다. 거기에는 허물어져 가는 집이 몇 채가 잇달아 있었다. 두 번째 집이라 했는데, 제대로 듣지 않아 왼쪽에서부터인지 오른쪽에서부터인지 어느 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집집을 기웃거리려니까 한 노인이 지나다가 나를 살폈다. 다락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어디서 오셨는가? 군청에서 왔습니다. 누구를 찾소? 혹 고수용 씨 댁이 어디인지 아세요? 수용이는 작년에 멀리 갔는데. 예, 알고 있습니다. 댁이나 한번 살펴보려고요. 수용이가 비룟값 갚지 않고 갔나? 아, 저는 농협이 아니라 군청에서 나왔습니다. 들고 갈 것도 없어. 수용이 마누라가 딸 집으로 가면서 다 버리고 갔으니까. 네, 그런데 집은 어디? 집이 무슨 소용이 있어, 사람이 살아야 집이지, 사람이 없으면 그건 집이 아닌 거여.

  노인의 말끝에서 내 오피스텔을 떠올렸다. 들어가면 빈 침대 위에서 둘둘 말린 이불이 나를 맞았다.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물을 묻혀본 지 오래되어 붉은 녹이 점점이 올라왔다. 한 번도 그곳을 내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월세로 살아서가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고, 잠시 잠을 자기 위해 들르는 곳이었기에.

  그때, 띠리릭 문자가 들어왔다. 고수용 씨 사위. 심우식. J시 D초등학교 교사. 전화번호 010-xxxx-xxxx. 그 번호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문자가 들어왔다. 지금 수업 중입니다, 문자를 남겨주세요. 문자를 보내기 위해 글자들을 모아 글을 만들어 가다가 포기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필요한 얘기를 다 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두 번인가 더 통화 버튼을 눌렀고, 겨우 연결이 되어, J시로 달려온 것이다.

  퇴근 시간을 기다려 마주한 심 교사는 신기정가에 관련한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고수용 씨를 J대학교에 태워다 준 사람도 자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첫 마디부터 다락리와 J시를 오고 간 반나절의 행차가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족보, 처가 쪽 집안의 족보가 아니에요.”

  족보 뒤에 가사가 붙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족보에 쓰인 이름 중의 한 사람이 가사의 작자일 것이고, 그 사람이 살았던 곳에 신기정이 있을 것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타당한 이치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장인이 어딘가에서 족보를 들고 오셨어요. 당신 집안의 족보라고는 하셨지만, 에이, 보면 금방 알지. 장인의 할아버지가 장인보다 100살이나 더 많았어요.”

  내게 중요한 것은 고씨 집안의 족보가 아니다. 고씨 집안의 족보의 진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심 교사는 족보 얘기만 계속한다.

  “사실 장인이 안되었어요. 제 처가 유일한 자식이거든요. 그것 때문에 장모는 평생 구박을 받았고요. 환갑이 넘으시니까 집안 뿌리를 찾고서야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갑자기 10년 전부터 족보를 만드시겠다고 여기저기 다니시더라고요.”

  심 교사는 내 얼굴에 나타나는 허탈함을 읽어내며 커피잔을 홀짝인다.

  “그러다가 5년 전인가 고씨 족보를 한 질 들고 오셨어요. 시내 헌책방인지 고물상인지에서 구하셨겠지요. 그런데 고씨 족보이기는 한데, 제주 고씨 족보더라고요. 처가는 남태 고씨거든요. 그렇다고, 장인어른 이거 가짜입니다, 말할 수는 없잖아요. 당신도 가짜임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족보 뒤에 있는 가사. 족보가 가짜라면 족보 뒤에 붙은 가사도 가짜인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 가사요? 그건 모르겠어요. 구해오신 족보에 원래 붙어 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 족보를 가져오셨을 때는 본 기억이 없거든요. 그런데 얼마 지나서, 심 서방 잠깐 와보게, 해서 처가에 갔더니, 그때 족보 뒤에 그 가사가 붙어 있더라고요. 근데 종이가 달라요. 족보는 깔끔하게 인쇄된 종이고, 가사는 누런 종이에 붓으로 쓰였고. 제가 봐도 아니던데. 나중에 교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러면 족보 뒤에 붙인 가사의 출처는 어디이고, 왜 가사가 족보 뒤에 붙어 있게 되었을까? 확인은 안 해 보았는가?

  “여쭈어는 봤죠. 그런데 대답을 안 하셔요. 그때 약간 치매 기운도 있으셨는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씀하셨어요. 교수님도 그걸 물어보셨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셨어요.”

  지금 말하고 있는 교수가 정일영 교수?

  “네. J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님요.”

  왜 정 교수에게 찾아갔나?

  “장인이 오려둔 신문을 내놓으시며 나도 이 교수한테 가봐야겠다. 그러면서 자꾸 고집을 피우셔서 가게 됐죠.”

  어떤 신문 기사?

  “그 교수님이 고서적과 고문서를 발굴한 기사였을 거예요. 그걸 들이밀며 나도 찾아가 보겠다 하시는데, 소용없다고 말씀드려도, 심 서방은 초등학교 선생이니 모르는 거다, 대학교 선생이 공부를 해도 더 많이 했으니 잘 알 거다, 이러시더라고요. 참.”

  심 교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덤덤한 말속에 안타까움인지 허탈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섞여 있다.

  “힘들게 찾아가서, 막무가내로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망신만 당했죠. 처음에는 얼마짜리냐고 묻다가, 나중에는 얼마에 살 거냐고 윽박지르셨어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래도 정 교수는 새로 발굴한 가사라고 하여 논문을 쓰지 않았는가?

  “시간이 나면 차분하게 살펴보겠다 하시고, 복사만 하시고 가사는 그냥 돌려주셨습니다.”

  심 교사는 남김없이 커피를 들이킨다.

  “장인은 돌아가셨고, 그 족보는 지금 집 베란다 어디엔가 있어요. 제가 심씨이지 고씨가 아니다 보니 읽어 볼 필요도 없고.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커피잔을 기울인다. 이미 빈 컵이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가사를 쓸 수 있는지는 제가 모르는데요. 처가 쪽에 그만큼 공부하신 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 교사는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아오더니 죽 들이킨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보며 말한다.

  “장인이 돌아가신 후에 장모에게 들은 말인데요. 처가 옆집에 옛날 책이 많았대요. 거기 살던 분의 조부가 천북면 어디에선가 서당을 하셨다나요. 그 집 주인이 아들을 따라 도시로 나갈 때, 장인이 그 집에서 책을 한 꾸러미 들고 오셨대요. 그 가사도 거기에 있던 것이 아닌지. 그냥 추측입니다만.”

  일어서려는 심 교사에게 가사의 행방을 물어본다. 신기정가는 나도 가지고 있지만, 복사본을 다시 복사한 것이다. 지금 원본은 지금 어디 있는가?

  “우리 집에서 보관하다가 한국가사연구원이라는 데 기증을 했습니다. 작년에 여름 휴가 다녀오다가 보니 도로 한쪽에 그런 곳이 있더라고요. 집에 두어야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돈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가사연구원에 전화했더니 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택배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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