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13. 축제팀 송미영

New-Mountain(새뫼) 2022. 8.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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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축제팀 송미영

 

  “팀장님은 자꾸 콘텐츠를 말하는데, 호박 축제에서 콘텐츠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요?”

  송미영의 카랑한 목소리가 축제팀 사무실을 울린다. 말이 많다고 하여 투머치토커라는 애칭이 따라다니지만, 틀린 말을 하는 적은 없다.

  유명한 군청 뜰 등나무 그늘 사건만 해도 그렇다. 새 군수가 당선되고 전임 군수가 추진해 오던 사업이 무더기로 취소되거나 보류되자, 송미영은 예의 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군수가 바뀔 때마다 사업을 바꾸면, 어떤 공무원이 감당하냐고, 날아가는 예산이 자기가 섬기겠다던 군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 아니냐고. 마침 군수가 등나무 그늘로 들어온 것을 보고 주변에 있던 이들이 급하게 송미영을 제지하였지만, 민주적인 행정이 군수의 공약이었다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공무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겠다는 게 군수의 취임사였다. 이를 지키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등나무 그늘을 들르던 군수는, 그 사건 이후 등나무 근처에 얼씬하지 않았다. 덕분에 점심 후의 휴식이 편안해졌다고 군청 공무원들은 송미영을 치켜세웠다. 그 후 송미영은 지역축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문화관광과 소속이었으니 딱히 좌천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군수의 뒤끝이라고 수군대는 축도 있었다.

  “다른 지자체 축제를 알아보기는 했는데요. 대부분은 우리가 하는 것처럼 자기 지자체 특산물을 먹는 것이에요.”

  내룡리를 나와 내친김에 진하군의 외룡리까지 둘러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호박 축제팀의 회의가 한창이다. 손상섭도 앉아 있다. 회의의 앞 내용은 듣지 못해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팀장이 송미영에게 또는 팀원 모두에게 기존의 프로그램 외에 추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라고 한 모양이다.

  호박 주스, 호박전 부치기, 호박엿 치기, 호박 샐러드. 이것 말고 호박을 재료로 음식 만드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요리 전문가 찾아가서 수십 가지는 더 찾아볼 수 있어요.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널려 있다고요.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긴 지금까지 호박 축제는 먹거리 중심으로 추진해 왔다. 그건 호박의 특성상 근본적인 콘텐츠의 한계였다. 관람객에게 직접 호박 요리를 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굳이 요리 체험하려고 교통도 좋지 않은 호박벌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올 리 없었다. 먹는 것 이외에 호박 축제에서 관람객을 직접 참여시킬 만한 콘텐츠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관람객이 직접 호박을 수확하게 하는 프로그램도 제안되었으나 간단하게 거부되었다. 정작 호박벌 근처의 호박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또 호박 축제가 열리는 때는 호박 농사가 대부분 끝났을 때이다.

  “아니, 팀장님. 왜 저희에게 대안을 만들어내라고 하세요. 대안은 이 축제를 처음 시작했던 생각했던 전임 군수가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아니면 다른 사업 다 접고, 이 이상한 사업만 남겨둔 지금 군수가 하던지.”

  허, 말 된다. 천승남이 송미영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다.

  “아니면, 팀장님이 직접 대안을 제시하시던지요.”

  그게 말이 되나요? 이번에는 팀장의 얼굴이 붉어진다. 지역축제팀이 조직되고, 외부에서 팀장을 촉탁하여 왔을 때, 군청 직원들이 호기심으로 지켜보았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외부 사람인 팀장이 송미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팀장이 드세다는 소문이 돌자, 서로 임자 만났네, 하며 구경거리인 듯 우리 사무실을 기웃거리곤 했다. 그래도 그동안은 둘의 부딪침이 없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된 것이다. 멀리 문화관광부에서도 이쪽을 넘겨다 본다.

  저기요,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요. 현경숙이 만삭의 배를 감싸며 끼어든다.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출산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애 앞에서 다툼을 삼가 달라는 협박으로 들린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팀장과 송미영은 잠시 휴전에 돌입한다.

  한 호흡을 돌렸는지, 다시 송미영이 입을 연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반 옥타브가 낮다.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핼러윈도 생각해 보았는데요.”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팀장이 의견을 제시하기는 하였나 보다. 송미영이 팀원들에게 페이퍼를 나누어 준다. 핼러윈 축제, 라는 제목 아래, 단체, 시기, 주 입장객, 요금, 교통편 등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핼러윈 축제를 하는 데가 의외로 많더라고요. 지자체에서 하는 축제 말고도요. 대부분 프로그램도 좋고 큰 도시에서 접근성도 좋아요. 우리가 한다고 해도 기존 축제를 따라갈 수 없겠더라고요.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또…….”

  잠시 말을 멈춘다.

  “페이퍼에는 없는 말인데요. 지자체 축제에 가장 많이 다니는 연령대를 조사해 보았어요. 대부분 미취학 아이를 둔 부모들이나, 아니면 노년층이더라고요. 근데 도깨비 호박 탈이 왔다 갔다 하면 노인네들은 아마 기겁할걸요. 더군다나 핼러윈을 제대로 하려면 밤에 해야 하는데, 밤에는 엄마들은 아이를 재워야 하고, 아빠들은 운전해야 하니까, 이미 축제장에 남아 있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야간에 실시할 때 필요한 경비나 시설이나 인력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팀장이 페이퍼를 한동안 내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다녀오신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눈빛이 다소 충혈되어 있다. 내게 한 말이었지만, 결국 송미영에게 항복한 것이다. 그렇다고 항복을 받아낸 송미영의 표정도 유쾌하지는 않다.

  나 역시 유쾌하지는 않다. 싸움의 유탄이 내게 날아올 것 같다.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송미영이 대신 대답한다.

  “혹 알아요? 정자가 호박보다 더 근사한 콘텐츠가 될지.”

  유탄을 맞은 게 맞다. 다들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데, 나 혼자 늦게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내게 화살이 날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기에 손에 쥔 볼펜만 만지작거린다.

  정자, 정자 하니까 이상하다. 다른 말로 합시다. 정자 이름이 뭐랬지? 천승남이 능청을 부린다. 신기정 맞죠? 현경숙이 얼른 받는다. 여기에 매김하여 다시 천승남이 분위기를 정리한다. 그래, 정자로, 아니 신기정을 착실하게 준비하여 영태 씨가 신기정으로 히트 한번 크게 쳐 봅시다. 우리도 콘텐츠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제 회의 끝난 거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손상섭이 한마디를 덧붙여 불편한 자리를 마치려 한다. 주섬주섬 일어서려는데 송미영이 팀원들을 다시 주저앉힌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를 안 데려간 데가 없대요. 미술 전시회에 연주회에 식물원까지. 집에 가면 사진이 수두룩해요. 근데 부모님께는 죄송한데, 기억에 남는 데가 하나도 없어요. 그때 했던 경험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제가 큰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미영 씨 키가 작은 키가 아냐, 나보다 더 크잖아. 천승남이 껄껄하지만, 이런 농담에는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미술관 안에서 딸내미 손을 잡으면서 우리 가족이 그림처럼 살고 있다고 보여 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연주회에서 고운 음악을 들려주며 나에 대한 잔소리며 생활에 찌든 부부싸움 소리를 정화하려 하셨겠죠. 매년 식물원에서 쑥쑥 커 가는 나무들을 보며 커가는 딸내미를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이번에는 송미영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천승남도 아무 대꾸가 없다.

  “우리가 하는 축제도 그런 것 같아요. 서운군이 여기에 있다. 비록 특산물이라고는 호박뿐이지만 우리는 호박을 자부심으로 키우고 있다. 애들은 없고 노인네들만 늘어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고장이다. 그것만 보여 주면 되잖아요. 더는 큰 욕심 내지 말자고요.”

  허, 멋있는 말이다. 비로소 천승남이 입을 연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던 것 같네요. 미영 씨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게요. 팀장의 말이 가라앉아 있다.

  이제 다들 정말 일어섰는데, 여전히 앉아 있던 송미영이 다시 입을 연다.

  “어제 군수실에 올라갔어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일순 침묵이 돈다. 모든 시선이 송미영에게 머문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지나다가 복도에서 우연히 군수를 보았는데, 차 한 잔 준다고 하더라고요. 군수실로 끌려갔죠.”

  군수가 송 주무관님을 우리 팀으로 쫓아냈잖아. 쫓아낼 때는 언제고. 손상섭의 목소리가 크다. 눈치 없는 손상섭의 옆구리를 현경숙이 쿡 찌른다.

  “축제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돕겠다고.”

  이번에는 송미영이 자신의 시선을 팀원들에게 골고루 나눈다.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도 나지 않고, 그래서 축제 이름이나 바꾸자고 했죠. 펌킨 클라우드 페스티벌. 뜻이야 어떻든지 간에 우리도 발음이 되지 않는데, 군민들은 어떻겠느냐고요.”

  송미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어린다. 군수 앞에서도 저런 얼굴로 얘기했을까. 다들 그다음 말을 기다린다.

  “군수가 옆에 있던 박민구에게 축제 이름을 영어로 발음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천승남이 쿡쿡 웃는다. 걔 영어 꽝인데.

  “군수가 박민구 발음을 듣더니,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러더라고요.”

  손승남도 흐흐 웃는다. 열 일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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