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J대 교수 정일영
“누구시라고요? 아 서운군청.”
정일영 교수와의 통화 연결은 힘들었다. J대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 국어국문학과를 찾고, 거기서 다시 과사무실 전화번호를 찾았다. 전화가 연결되자 내 신분을 알리고, 간단하게 용건을 전하고, 조교인지에게 정일영 교수를 찾는다고 전했다. 통화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부재중이라는 소리를 들은 다음에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이틀 지나 문자가 날아왔다. 몇 시쯤 아래 번호로 연락하면 통화할 수 있을 거라고.
“엊그제 신기정가 때문에 전화하셨다고요?”
J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정일영. 굳이 따지면 J대학교 국문학과의 선배이다. 하지만 동문회 등에서 만나 친교를 맺는 선후배 관계란 나에게는 없다. 나는 기억의 저만치서 정 교수를 끄집어냈지만, 정 교수는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정 교수가 4학년 때 나는 신입생이었다. 정 교수는 모교에 남아 교수가 되었지만, 나는 군대와 공무원 준비 등등으로 학문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당신의 후배가 된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업무 때문에 만나는 군청 7급 공무원과 대학교수의 관계가, 옛 선후배 관계를 억지로 찾아 이어가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다. 그렇게 판단했다.
“서운문화? 아, 서운군 문화원에 올린 글을 보셨습니까?”
박민구가 준 자료는 가사의 복사본과 서운신문 신문 기사. 서운문화 한 권뿐이었다. 신기정, 또는 신기정가를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졌지만, 다른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혹시 대학도서관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까 하여, J대학교 도서관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졸업생에게는 자료 열람의 권한이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서울의 큰 도서관에 가 볼까도 생각을 해 보았지만, 시간도 여유도 열정도 준비되지 않았다.
결국, 의지할 만한 것은 정일영 교수의 서운문화의, ‘새로 발견된 신기정가에 대하여’,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정일영 교수가 내 대학 선배였음을 기억의 저편에서 호출한 것이다.
“서운문화에 쓴 글이 전부입니다. 그 후로 신기정가에 대해 더는 연구를 하지 않았어요. 혹시 다른 연구자가 했을지는 모르지만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일이 쉽지 않겠다. 정 교수나 다른 교수들이 신기정가에 대해 더는 논문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던 신기정가. 내 인터넷 검색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비록 지역 신문이지만 언론에도 보도된 것인데, 정 교수나 다른 교수들이 더 연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언제나 연구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대학교수들이었다. 한참 전의 일이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 교수들이 그랬다. 뭔가 논문거리라도 생기면 대학원생들뿐 아니라 학부생들까지 밀어 넣었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까. 어렵게 돌려 묻는다. 신기정가는 연구 가치가 부족한 작품인가?
“글쎄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딱히 나올 만한 게 없는 작품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정 교수는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답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신기정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저간의 사정을 길지 않게 설명한다. 그리고 연구 가치와는 상관없이 우리 군에서 축제를 위해 신기정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정해 본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는 없는가? 말하면서 이렇게 누군가에 사정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서운군뿐 아니라 내게도 신기정은 절실하게 되었다. 언제 뵙고 여쭙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억을 못 하시겠지만 저는 선배님의 후배 김영태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후배 관계를 밝혀 가면서 읍소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쉽게 말로 나오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글쎄요. 제가 이번 달은 일정이 바빠서 따로 시간 내기가 어렵겠습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을 확인한다. 휴, 내 한숨 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전달한다.
“지금은 시간이 되니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로나마 아는 대로 답해드리겠습니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공무원인 나보다도 더 형식적인 답변이다. 그래도 통화가 끊어지지 않게 최대한 노력한다. 먼저 신기정의 위치를 확인한다. 실천 옆이라는 답변을 기대하면서.
“잘 모르겠어요.”
첫 대답부터 너무 싱겁다. 혹시 실천 옆에 있지 않았는가를 다시 묻는다.
“그 작품만의 정체성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구체성도 떨어지고. 연구하려다 계속하지 않고 그만둔 것도 그것 때문이었던 같아요.”
동문서답이다. 위치를 묻는데, 정체성으로 답을 한다. 아니 제대로 답을 한 것인가. 위치가 분명하지 않아 정체성이 없는 것인가. 구체성이 부족하니까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인가. 또 정체성과 구체성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그 작품은 신기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정자 주변의 풍정을 노래한 가사가 아니라…….”
잠시 호흡을 고르는 듯, 아니면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 사이를 둔다.
“기존에 있던 여러 가사에서 몇몇 구절을 따서 가사를 만들고, 거기에다가 서운군이나 남태군에 있는 몇몇 지명을 끼워 넣은 것으로 판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판단이 맞을 겁니다.”
표절, 모방, 베끼기. 그런 것인가?
“글쎄, 요즘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표절이라는 개념이 있지는 않았겠죠. 그러니 다른 가사를 모방했다고 해서 학문적이나 윤리적으로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작자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죠? 아마.”
산중처사.
“네, 기억나네요. 산중처사. 원래 처사라는 말이 정확한 말도 아닌데……. 그것도 이상하긴 했어요. 작자 이름이 처사인 작품은 그 신기정가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신기정가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교수에게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신기정을 찾을 수 있는가, 신기정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가? 그게 당장은 궁금하다.
“산 이름이 뭐였죠?”
성수산이라고 했다가, 곧 불타산으로 정정한다,
“맞네요. 불타산. ‘부처 불(佛)’자가 들어가는 지명도 드물죠. 어쨌든 불타산 아래 어딘가가 배경인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신기정가, 신기정 할 때 신기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보셨어요. ‘새로울 신(新)’자에 ‘적을 기(記)’자, 새로 적는다. 이런 뜻이에요. 보통은 ‘터 기(基)’자를 써야 맞거든요.”
상대방은 오래전의 연구에서도 정확하고 구체적인 글자와 낱말들을 기억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다가왔던 신기정이 다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럼에도 내가 신기정을 찾아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록할 기(記)’자가 아니라, ‘터 기(基)’자로 바꾸어서라도.
“그리고 이건 제가 말씀드릴 부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한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굳이 고전 작품들을 오늘날에 다시 불러내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싶습니다. 아까 표절 말씀드렸죠. 지금은 용인되지 않아도 그때는 자연스러운 창작 방법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집필 환경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해하려면 여러모로 무리가 따릅니다. 더군다나.”
도와주기 힘들다는 의사는 이미 확인하였는데, 정 교수는 쐐기를 박으려 한다.
“사람들이 싫어 산속에 들어가서 지은 노래가 신기정가인데, 왜 그걸 다시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신기정가를 지은 분의 뜻에 맞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집필 환경이나 작가의 의도까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더 멀어져 간 신기정의 위치에 대해 갑갑해질 뿐이다. 다시 한번 휴 하는 내 한숨이 전화기 너머의 정 교수에게 전달된다.
“힘드실 겁니다. 제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신기정이 구체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허상이었다는 것을 일러 주었으니까.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누구의 삶처럼. 그래도 끝까지 후배임을 밝히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내 허상을 들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참, 김영태 씨라고 하셨던가요? 내 대학 후배 중에도 김영태란 사람이 있었는데, 혹? 뭐, 드문 이름은 아니니까요. 나중에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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