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7. 축제팀장 민수연

New-Mountain(새뫼) 2022. 8. 16. 10:54
728x90

 

7. 축제팀장 민수연

 

  “기획관이 뭐라고 해요?”

  털썩 앉으며 책상 위에 서류철과 책을 던져둔다. 책상 위에 종이 뭉치가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팀장이 자기 말을 더한다. 순간 사무실 안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려옴을 느낀다. 팀장은 기획관이 뭐라고 해요, 라고 했지만, 기획관에게 뭐라고 했어요, 하는 소리로 들린다. 생각해 보니 기획관에게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달랑 다섯 명인데 거기서 사람 빼가면 남는 사람은 뭐가 돼요? 카랑카랑한 송미영의 목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을 울린다. 내가 오층에 있는 동안, 내가 불리어 간 이유에 대해 팀장과 팀원들이 열띠게 작금의 상황에 대한 말을 주고받았음이라.

  그리고 5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는 사이에 했던 잠깐의 고민. 그러니까 내가 정자 세우는 일을 맡게 되면 원래 지역축제팀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어찌 되는가. 이 일도 하고 그 일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누군가가 백업하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팀원들도 나누었을 것이다.

  하셔야 하는 일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죠? 현경숙이 조심스레 묻는다. 현경숙이 물었지만, 그 답을 모든 팀원이 듣고 싶어 한다. 힘드시겠다. 나를 걱정하는 말은 아니다. 자신들에게 더 묻어올 업무량을 따져 보려고 하는 말이다.

  제길, 그게 그거지. 아까 얘기한 대로만 하면 돼. 공무원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열심히 한다고 성과급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대강 한다고 연금 깎이는 것도 아니고.

  “천 주무관님.”

  팀장이 천승남의 말을 막는다. 다시 침묵. 그 자리를 현경숙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채운다. 컴퓨터를 켜고 바탕화면에 떠 있는 여러 문서와 폴더들을 체크해 본다. 그동안 지역축제팀에서 내가 해 오던 일들이 파편처럼 모니터 위에 점점이 떠 있다. 일없이 지켜보다가 폴더를 하나 더 만든다. 폴더 이름으로 ‘신기정’ 했다가 지우고, ‘신기정가’ 했다가 다시 지우고, ‘신기정 찾기’ 했다가 또 지우고, 결국 ‘망할 신기정’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 폴더 안에는 무엇을 채워야 할까, 채워지기는 할까.

  그때 딸각. 모니터 위로 메신저 창이 열린다. 팀장이다. 잠깐 커피 한잔할래요? 팀장이 앞서고 내가 뒤를 따른다. 팀원들의 시선이 우리를 따른다.

  군청 뜰에 있는 등나무 아래의 벤치의 구석 자리를 찾아 앉는다. 팀장이 민원실에서 자판기 커피들 두 잔 뽑아와 한 잔을 내게 건네고 옆자리에 앉는다. 맛없기로 소문난 텁텁한 커피인지라 나도 팀장도 마실 생각은 없다.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닌 거 아시죠? 그냥 말할게요.”

  하지만 머뭇거린다. 돌려 말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보려는 것이다. 그 사이 커피가 식어 간다. 아니 뽑아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식어버렸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팀장이 커피 뽑으러 민원실에 갔다가 온 시간이 꽤 되었다. 오면서 어떻게 돌려 말할지를 고민했을까.

  “엊저녁에 메일로 보내신 기사는 제가 조금 고쳐서 오늘 아침에 선배 이름으로 기획실과 신문사에 보냈어요. 허락 없이 글 고쳐서 미안해요.”

  어차피 신문사로 가면 저들 마음대로 고치고 깁고 빼고 더하고 하여, 처음 내가 쓴 글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신문에 실릴 것이다. 기사를 쓴 이도 서운군청 김영태가 아니라 서운신문 기자 아무개로 나갈 것이다.

  “기획실에서 선배에 맡기려는 일. 못한다고 안 하셨죠?”

못한다고 해야 맞는가. 한 번쯤은 안 한다고 버티어야 하는가. 그동안 업무지시로 내려 온 일들에 대해 못한다고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라 여겼다. 말단 공무원으로서 내 이름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천승남의 말처럼 자랑할만한 성과도 부끄러워할 만한 실책도 없다. 그냥 하는 일이고, 할 일일 뿐이다.

  “아까 선배가 문서 뭉치를 들고 내려오는 걸 보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했어요. 이왕 이렇게 되는 거, 어젯밤에 박민구랑 왜 그리 싸웠는지…….”

  메일로 보냈던 신문 기사를 팀장이 읽었던 시간이 어젯밤 여덟 시 몇 분이었다는 것이 생각난다. 그때까지 팀장은 퇴근하지 않고, 나를 두고 박민구와 싸웠다는 것이다. 내 거취를 두고, 내 업무를 두고. 아니 팀의 업무를 두고.

  “선배가 원하는 대로 한다고 했어요. 나는 당연히 선배가 안 한다고 할 줄 알았죠.”

아직 팀장은 나를 모른다. 못하기는 해도, 안 한다고는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내가 하던 일들과 새로 하라는 일이 병행될 수 있을까?

  “참, 선배도. 그게 걱정되는 사람이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덥석 다른 일을 들고 와요. 선배만 그런 거죠? 공무원들이 다 선배 같지는 않죠?”

  맛이 없었어도 내 커피잔은 이미 비워졌다. 그리고 종이컵이 구겨지고 있다. 구겨지는 종이컵처럼 나이 어린 팀장에게 야단맞고 있다.

  “선배 일은 선배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선배는 지역축제팀 팀원이고. 오늘 맡아온 일을 하시면서, 남는 시간에 선배가 원래 하시던 일을 하셔야 할 거예요. 아까 분위기 보셨지만 전부 다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기는 어려워요. 일이 급할 때는 나랑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도와는 줄 거예요. 참, 축제 팸플릿 작업은 서울에 있는 기획사에 맡겼어요. 그건 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어제 101호부터 오늘 여기 등나무 아래까지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존재를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존재가 부각되어 버린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개 이런 경우 서류 뭉치를 던지며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나. 화라도 내야 하나. 나는 뭐냐, 내가 뭐가 되는가. 한마디 말이라도 하고,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라. 차라리 축산과로 원대 복귀를 시켜라.

  하지만 서류뭉치는 던져지지 않았고,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니 자존심이 상해야 할 타이밍과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손안에서 구겨지는 커피잔에 커피가 조금 남아 있었는지 손가락 사이로 커피가 흐른다.

  “별로 화 안 내시네요. 예상은 했지만.”

  팀장은 역시 내 성격까지 관찰하고 있다. 팀장이 휴지를 건네준다. 손을 닦고 일어나려다 다시 앉는다. 그래도 하나는 물어보자. 내가 왜 지역축제팀으로 오게 되었는가?

  팀장이 잠시 머뭇거린다.

  “잘은 몰라요. 우리 팀원 중에 내가 요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팀장으로 오니까 다들 와 계시더라고요. 인사카드를 보여 준다고 하기에 관두라고 했어요. 팀원들 직급은 지금도 몰라요. 알 필요도 없고.”

  처음에 우리에게 외인부대라고 했던 것은?

  “나쁜 뜻은 아니었어요. 다들 능력이 있으시니까 군청에서 근무하셨겠죠. 같이 지내보니까 내 판단이 많이 틀리지 않았더라고요. 그리고.”

  팀장이 잠시 말을 멈춘다.

  “말씀드리는 게 낫겠어요. 선배는 문책성 파견이더라고요.”

  팀장의 커피잔에 남아 있던 커피가 풀 위로 쏟아진다. 커피가 튀어 올라 팀장의 흰 바지에 갈색 얼룩이 몇 개 만들어진다. 하지만 팀장은 나를 응시한다.

  “듣고 싶지 않았는데 박민구가 어제 그러더라고요. 작년 구제역 때 명정면에서 있었던 일의 책임을 물어 축산지원과에서 보낸 거라고.”

  작년 명정면 때로 기억을 보낸다. 작년 구제역 파동 때 우리 군의 돼지들은 모두 땅에 파묻혔다. 그때 축산지원과 직원들은 매일 밤늦게까지 서운군의 곳곳을 다니며 돼지들을 묻어야 했다. 구제역도 한풀 꺾일 무렵, 명정면의 한 마을에 찾아갔을 때 노부부가 키우던 새끼 돼지 두 마리가 있었다. 보상금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노부부들의 눈빛은 땅에 묻히기 싫어하던 돼지들의 눈빛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모른 체했다. 어차피 새끼 돼지 두 마리라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이 알려졌고, 축산지원과장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왜 혼자 유별을 떨어 가뜩이나 피곤한데 시끄럽게 만드냐고.

  “민원이 있었데요. 누구 집 돼지는 살려두고 누구 집 돼지는 죽이느냐고.”

  사무실에서의 천승남의 말이 소환된다. 대강한다고 연금이 깎이지는 않는다. 대강 근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명정면의 그 일이 돼지를 떠나게 하고, 호박을 잠시 만져보게 하다가 결국 신기정에 이르게 되었다. 종이컵과 휴지가 내 손 안에서 함께 우그러지고 있다.

  “5층에서 가져온 일이 선배에게 잘 맞는 일인지 모르겠네요. 어제 보낸 기사,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 읽으며, 선배가 국문과 나온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글을 쓰느라 고생은 하셨는데, 신문사가 좋아할 만은 글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조금 고쳤어요.”

  칭찬인가, 아닌가. 공무원이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쓸 때마다 어려움을 겪곤 했다. ○○할 것, ○○함, ○○됨. 등의 어투에서 항상 머뭇거렸었다. 팀장은 내가 쓴 글 하나를 읽고 그동안 겪었던 글쓰기의 어려움을 읽어내었다.

팀장이 먼저 일어선다. 가려다가 멈춰 나를 내려다본다.

  “선배, 결혼사진들 이미 다 버렸죠? 그 사진 어디에 내 얼굴도 있을 텐데……. 모르셨죠?”

  벙벙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민 팀장이 내 손에 있던 커피잔과 휴지를 받는다.

  “정민이가 내 친구잖아요. 그래서 주무관님을 선배라고 부르는 거예요. 정민이가 부르던 대로.”

  정민, 오정민. 옛 아내. 내 딸애의 엄마.

 

 
728x90

'자작시와 자작소설 > 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J대 교수 정일영  (0) 2022.08.24
8. 축제팀 손상섭  (0) 2022.08.17
6. 기획관 박민구  (0) 2022.08.14
5. 밥집 할미  (0)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