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5. 밥집 할미

New-Mountain(새뫼) 2022. 8.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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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밥집 할미

 

  “혼자여?”

  혼자이다. 같이 나왔던 천승남은 잠깐 다른 일이 있다 하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아마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고 차 한잔 마시고 오후에나 나타날 것이다. 천승남은 같이 근무했던 옛 비서실 사람들과 밥도 술도 잘 먹는다. 하지만 나는 축산지원과를 떠나온 후 그렇지 못했다. 옛 동료들과 같이 먹은 밥이나 술을 따져 보니, 다섯 손가락이 채워지지 않는다.

  “아직 밥때는 멀었는디.”

  휴대전화를 열어본다. 열한 시가 안 되었다. 밥을 먹으려고 밥집에 온 것이 아니니까 밥이 익은 것과는 상관은 없다. 여기는 따로 상호도 없는 밥집이다. 원래 군청 건물 바로 앞에 있었다는데, 새로 군청을 신축하면서 군청 정문에서 비딱한 위치로 비껴가게 되었다고 한다. 밥값이 저렴하고, 시설은 더 저렴하고, 주인 할미의 서비스는 더 저렴하다. 지금 나이가 몇 살인지 몰라도, 내가 처음 군청으로 발령받았던 십여 년 전에도 이미 할미였다. 머리가 허연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머리숱은 해마다 줄어들어 갔다.

  군청 앞의 여러 식당 중에서 여기 밥집을 찾게 될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이다. 군청에서 가깝고,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며, 음식을 고르는 고민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달랑 된장찌개 김치찌개 두 가지가 전부인 메뉴는 저렴하지만, 맛은 저렴하지 않다. 소박하고 전통적인 시골 외할머니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윽한 손맛이 있었다. 분위기가 상황을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이 밥집에서는 여전히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된다.

  “담배 태우러 왔구먼.”

  털썩 사랑채에 앉으니 할미가 실망하는 눈치다. 사랑채는 밥집이 가진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밥집 앞 양지바른 곳의 노천 휴게실로 식후의 끽연이 허락되는 군청 근처의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여기저기서 주워다 놓은 각양각색의 의자들과 재떨이로 사용되는 커다란 통조림 깡통 몇 개가 갖추고 있는 집기의 전부이지만.

  사랑채에서는 서로에 대한 인생 상담이 이루어지고, 공식 인사 발령 이전에 민간 발령이 나기도 하며, 윗분들을 짓씹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고상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3월과 4월에는 지방 선거의 판세 분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 일들은 흡연과 함께 이루어졌다. 가히 흡연자들의 무릉도원이 사랑채로 명명되어 있었다.

  “요즘 뜸한 게 더 맛난 데 생겼나 베?”

  그러고 보니 밥집은 오랜만이다. 축산지원과에 있을 때는 그래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온 듯한데, 문화관광과로 옮긴 후부터는, 몇 번 오지 않은 듯싶다. 팀장이 음식 괜찮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딱 한 번 팀원과 함께 이곳에 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나둘 나가 버렸다. 분위기를 맞춰 주려 앉아 있던 민 팀장도 밥공기를 반이나마 남겼다.

  다음부터 점심 추천은 송미영과 현경숙의 몫이 되었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현경숙은 터미널 옆에 새로 생긴 스파게티집을 광고하였다. 메뉴를 묻는 송미영과 가격을 묻는 손상섭은 이미 현경숙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팀장도 추천을 받아들였고, 그들을 따라나설 것이다. 함께 나왔던 천승남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들어가 그들을 따라가거나, 밥집에 그냥 남거나 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 올해는 장가 안 가남?”

  할미가 옆에 앉는다. 어차피 밥 팔기는 글렀으니까, 무료한 시간을 보낼 말 상대로 보상을 받을 셈이다. 할미가 담배를 청한다. 어른 앞에서의 담배는 예의에서 어긋나지만, 할미 앞에서는 허용된다. 할미는 사랑채에 종종 나와 담배를 달라고 해서 마주 앉아 맞담배를 즐기곤 했다.

  그때 할미에게 호구조사를 당하고 인생 상담이 이루어졌다. 호구조사라는 게 시시콜콜 공무원식으로 묻는 게 아니라, 외모나 말투만 보고 듣고 자기가 묻고 싶은 것만 묻는다. 인생 상담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지청구를 듣는 게 대부분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고, 저기 충청도 어디라면, 그다음부터는 충청도 얘기만 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옆집 미용실 미용사가 친정에서 보낸 김장을 나누어 주었는데 충청도 식이라서 너무 밋밋해 겨우 먹었다는,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말들을 담배 안주로 쉬지 않고 쏟아 내었다. 축산지원과의 아무개에게는 어머니 나이와 생일을 묻기에 대답했단다. 할미는 해마다 한 살씩 더 붙여 나이를 챙겼고, 정작 본인은 까먹었던 어머니의 생일을 일주일 전에 기억해 주었다고 놀라워했다. 만일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면 적당한 욕이 섞인 야단을 감수해야 한다. 나이가 몇인데 그렇게 처마시고 다녀.

  “아침부터 걱정 있어?”

  내가 처음 이 집에 들렀을 때도 지금처럼 꾀죄죄했을 것이다. 대뜸 내 모습을 보고 혼자 살아, 하고 할미가 물었는데, 그 유도신문에 넘어가 버렸다. 결혼하고 얼마 후에 별거와 이혼이 이어졌기에 혼자여서 혼자라고 했는데, 그걸 미혼으로 알아들었다. 이후로 10년째 아직도 혼자냐고만 묻는다.

  그렇게 할미는 이 집처럼 업그레이드가 없다. 하긴 꾀죄죄한 모습 그대로 매년 나타나는 나도 업그레이드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너도 베트남 색시 얻으려고?”

  할미가 내 시선을 확인했는지, 툭 말을 던진다. 밥집 안을 왔다 갔다 하는 동남아 여성을 따라 내 시선이 왔다 갔다 했나 보다. 처음 보는 처자이다. 이제 서운군에서도 낯설지 않은 동남아 색시. 아니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주 외국인 여성이다. 공무원이니까 다문화라고 해야 하는데, 여전히 동남아가 입에 배었다.

  그게 그거이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네이밍은 공무원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편견이 없어야 하는 공무원은 정부의 공식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조카며누리여. 베트남에서 왔어. 아프구 힘들어서 와서 일 좀 하라고 불렀는데,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고생하며 살아온 할미의 얼굴과 조카며느리의 거뭇한 얼굴이 서로 닮았다. 고모 이거 어디 둬? 할미에게 말을 배웠을까. 오가며 던지는 말에서 높여야 할 줄을 모른다. 맞담배에 관대한 것처럼 할미는 조카며느리의 반말에도 관대하다.

  “저것도 불쌍혀. 낯선 나라로 시집왔는데, 서방이라는 작자는 배운 게 공사판이라. 돈 번다고 타향으로만 떠도니. 이번에는 경상도 어디라던데. 그래도 신혼인데 새색시 혼자 두고 일이 되나 몰러.”

  대부분 사랑채에서는 할미에게 인생 상담을 받는데, 오늘은 거꾸로다. 할미가 조카와 조카며느리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저거가 사랑 따라 왔것어? 돈 때문에 고향 떠나 부모 떠나 여기 왔는디, 저거 서방도 돈 번다고 고향 떠나 마누라 떠나 타향으로 떠다니니. 식구가 있는 데가 고향이 아니라 돈이 있는 데가 고향이여.”

  할미의 논리에 따른다면 여기 서운군이 내 고향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대학교까지 다녔던 J시나, 지금 홀어머니가 계신 I시도 아닌, 직장이 있는 여기가 고향인 셈이다.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현재의 공간이 지역적인 고향이고, 축산지원과 방역계가 아니라 문화관광과 지역축제팀이 업무의 고향이다.

  “하긴 이런 촌구석에 무슨 일감이 있것어. 집이라도 한 칸 장만하려면 부지런히 다녀야지. 고향이 무슨 배부른 소리여. 배부르게 하는 데가 고향이지.”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을 때 고향이지, 돌아갈 이유가 없다면 고향이 아니다. 내가 자랐던 J시는 이미 내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함께 자랐던 친구들도 이미 다 흩어졌고, 가재 잡고 토끼 잡던 산과 들은 먼 추억이 되어 지금은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 아래에 묻혀 버렸다. 아직 큰누이가 거기서 살고 있다는 것과, 어머니 명의의 집 한 채가 남아 있다는 것이 고향의 흔적일 뿐이다.

  “조카며누리래도 남은 남인데, 일을 시키면 차비라도 줘야 하는디…….”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없었지만, 할미의 담배 연기에서 할미의 의도를 읽는다. 요즘 손님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자주 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할미의 바람과는 달리 밥집을 찾는 군청 공무원들은 매일매일 줄어들고 있다. 나도 힘들게 공무원이 되었지만, 그래도 요즈음 공무원이 되는 이들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몇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도 심심치 않았다. 그런 엘리트들인데, 품위와 격조를 지켜야지, 이런 밥집을 고향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생선 한 마리 구워 줄 테니, 점심때 와.”

  조금 기다렸다가 아예 먹고 들어갈까. 그러기에는, 너무 이르다. 오늘은 아무래도 팀원들과 새로 오픈한 엘레강스한 스파게티집에 가서 우리 군의 트레이드 마크인 호박을 널리 피알하기 위한 클라우드 펌프킨을 준비하며 런치를 해야 할 것 같다. 픽 웃으며 이런 엉뚱한 네이밍을 떠올리다가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만일 내가 없다면 팀원들이 스파게티 국수 가락에 오늘 김영태가 오전 군수실을 방문한 까닭을 섞어 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뒷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군수실 일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101호에 간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다.

  여기 밥집은 다음에나 오자. 멀쩡한 재떨이를 두고 꽁초는 발밑에서 비벼진다.

  망할 것, 누구 치우라고, 꽁초 아무 데나 흘려. 서툰 한국말이 뒤에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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