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4. 축제팀장 민수연

New-Mountain(새뫼) 2022. 8. 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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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축제팀장 민수연

 

  “기획관도 참 유별나네요. 볼 일 있으면 조용히 선배에게나 메시지를 보내던지 인터폰을 하지, 팀원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건, 참.”

  털썩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의 팀장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던진다. 목소리의 톤이 낮고 허스키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그리 화려한 옷차림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세련되었다.

  지역축제팀의 민수연 팀장. 원래 군청 소속이 아니다. 아니 아예 공무원이 아니다. 서울의 A기획사 소속인데, 호박 축제를 위해 촉탁직으로 부임해 왔다. 내가 민 팀장에 대해 아는 것은 거기까지다. 군청과 어떻게 계약을 맺었는지, 학교는 어디를 어디까지 나왔는지, 기혼인지 미혼인지도 모른다. 2시간 거리의 J시에서 서운군까지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는데, J시의 어디에 거주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처음에 문화관광과 과장이 민 팀장을 소개한 말이 있기는 했다. 2년 전에 P도의 K군에서 수박 축제를 할 때도 촉탁되어 축제를 성황리에 마치게 했다고, 그래서 군수님이 특별히 부탁하여 모셔왔다고, 능력과 경험이 출중한 분이라고. 하지만 팀장에게 직접 물은 바가 없고 들은 바도 없었으니, 결국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다. 더구나 주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없기로 소문난 나이다. 혹 다른 팀원들이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팀장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한다.

  지금 지역축제팀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일부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며 궁금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군수실에는 왜, 무슨 일로 다녀왔냐고.

  “미영 씨, 어제 그거 확인해 봤어요? 예산이 더 필요할 것 같던데.”

  팀장이 내게 쏠리는 네 개의 시선을 거두게 한다.

  문화관광과 한쪽에 지역축제팀 사무실이 있다. 원래는 문화자료실이었다. 이런저런 책자나 간행물들이 전시되어 있던 곳이었는데, 약간 개조해 팀 사무실로 만들었다. 팀장은 촉탁해 왔고, 팀원 다섯 명을 파견받아 사무실을 채웠다. 남자가 셋이고, 여자도 팀장까지 셋이다. 첫 모임에서 문화관광과장은 우리더러 드림팀이라고 치켜세웠지만, 팀장은 간단하게 우리 팀을 정의했다. 외인부대네요.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축제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인원을 모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원래 소속 부서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을 골라 보낸 것 같았다. 이를테면 민원실에서 온 다둥이 엄마 현경숙은 둘째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셋째의 출산휴가를 예정하고 있었다. 지역개발과에서 온 손상섭은 틈만 나면 군청 옆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다가 일과 시간에 들이닥친 도청 감사실에 적발되어 경고를 받았다. 전임 군수의 관용차를 운전하던 천승남은 새 군수의 취임에 맞춰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다가 축제팀에 합류하였다. 처음부터 문화관광과 소속이었던 송미영은 군청 뜰 등나무 그늘에서 군수에 대한 비난 같은 비판을 신랄하게 하다가 마침 근처에 있던 군수와 눈이 마주쳤단다. 그 이유 때문이지 바로 옆 사무실로 책상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전체 서운군의 총 돼지 수에서 매몰된 돼지의 수를 감하다가 지역축제팀으로 불려 왔다.

  저는 원래 공무원 조직도 모르고, 여기 계신 분들 직급도 잘 몰라요. 그래서 호칭도 제가 편할 대로 부를게요. 팀장의 첫인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팀장과 팀원이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자신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비공식적인 관계로 팀을 운영하겠다는 묘한 줄타기.

  이런 팀장을 두고 군청 공무원들은 수군거렸다. 익지 않았으면 호박이 수박이고, 줄이 없으면 수박이 호박일 텐데 호박과 수박을 구분할 수나 있겠나.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젊은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더군다나 촉탁직이 닳고 닳은 공무원들의 팀장을 제대로 하려나 몰라. 아마 군수와 서울 기획사 사이에서 따로 계약이 있었을 거라.

  자신에 대한 이런 시선을 무시하며 팀장은 먼저 팀원들과의 관계부터 정리해 나갔다.

현경숙 씨와 손상섭 씨와 송미영 씨보다는 내가 나이가 좀 많네요. 그래서 그냥 편하게 경숙 씨, 상섭 씨, 미영 씨라고 부를게요. 잠시 말을 멈춘 후에, 김영태 주무관님은. 근데 주무관이라는 표현이 참 낯서네요. 그냥 김 선배라 할게요. 학교 선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님이라는 호칭으로 보아 나는 팀장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 예전에는 공무원 6급은 주사, 7급은 주사보, 8급은 서기, 9급은 서기보였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모두 주무관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시켰다. 그래서 나는 김 주사보가 아니라 김 주무관이다.

  그리고 천승남 주무관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흰 머리카락만으로도 천승남은 팀 내에서 최고의 어른이었다.

  팀장이 호명한 순서가 나이가 적은 사람부터라는 것을 다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각자 할 일이 지정되었다. 문서는 현경숙, 예산은 송미영, 시설은 손상섭, 자재는 천승남, 나는 대외협력, 팀장은 총괄하면서 기획. 새로운 일이 생기면 팀장이 일을 분배하고.

  이렇게 팀이 처음 조직되었을 때는 모두 낯선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공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팀원들 대부분이 그렇게 거리가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서로에 대한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갈 수 있었다.

  “참, 축제 이름이 결정되었네요.”

  팀장이 컬러로 인쇄된 페이퍼를 던지듯이 나누어 준다. 가칭 ‘펌킨 클라우드 페스티벌’. 현경숙이 훅하고 웃는다. 결정한 게 아니라 결정된 거 아닌가요? 송미영이 치고 들어온다. 그게 무슨 차이에요? 손상섭이 멀뚱멀뚱한 얼굴로 받는다.

  “서운군(瑞雲郡)이잖아요.”

  팀장은 말투를 통해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송미영의 말대로 결정되었다. 아마도 5층 군수실 근처일 것이다.

  “천 주무관님, 자재가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가요? 너무 많지 않아요?”

  차라리 트럭 한 대 배차시켜 주고 자재를 직접 사 오라면 딱 맞춰 사 올 텐데. 운전만 하던 사람한테 컴퓨터에 있는 사진 보고 마우스질 하라니, 어렵네, 어려워. 물건은 보고 직접 흥정해서 사야지, 사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아나. 천승남의 말이 퉁명스럽다.

  여섯 명으로, 아니 팀장님 빼고 다섯 명이 축제 준비를 하기에는 벅차요. 팀장님도 보시면 아시잖아요. 현경숙이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아마 공익 요원이 한두 명 배치된다고 하네요.”

  걔들이 뭘 알아. 천승남의 투덜거림이 이어지려 하니까 팀장이 얼른 말을 막는다.

  “영태 씨, 바쁘시더라도 서운신문에 보낼 축제 관련 기사는 내일까지 보내셔야 해요. 호박 축제가 아니라 클라우드 펌킨 페스티벌이에요.”

  호칭이 김 선배에서 영태 씨로 바뀌었다. 펌킨 클라우드 페스티벌에서 클라우드 펌킨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팀장의 말이 바뀐 것은 나만 알아챈 것 같다. 바꾸어 써도 큰 지장이 없는 말인가. 그런데 지극히도 의도된 말로 들리는 것을 왜일까. 의도된 것이라면 무엇을 계산하고 한 말인가. 하긴 그것을 궁금해할 때가 아니다. 당장 내일 오전까지 지역 신문에 기사를 써서 보내라 한다.

  지역 신문사는 지역 신문기자들이 취재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낸다. 신문사로 날아온 글 중에서 마음에 들거나 기삿감으로 삼고 싶은 것만 골라 자기들 이름으로 실을 뿐이다. 그러니까 지역 신문에 기사를 싣기 위해서는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만일 군청의 일을 지역 신문에 알리려면, 그 일들은 공무원들의 몫이 된다.

  회의가 마무리된다. 갑자기 목이 근질근질해 옴을 느낀다. 뭔가 일을 마쳤을 때 담배 한 대를 피워무는 습관은 버리기 힘들다. 밥집에라도 갈까. 수첩을 탁 닫고 주섬주섬 일어선다.

  “아직 일과 시간이에요. 보는 눈도 많아요. 그리고 건강에도 안 좋다는데…….”

  팀장은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팀장과 나는 서로의 눈을 맞추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팀장이 항상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의자에서 일어서는 내 모습에서 담배를 피우러 가려는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하긴 의도를 숨길만큼 나는 의뭉스럽지 않다.

  그런데 왜 담배를 조금만 피우라고 하는 것일까. 내 건강을 걱정해서인가, 또는 팀장으로서 일과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근태를 지적하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다른 부서 직원들로부터 받는 눈총을 걱정하는 것인가. 무엇이든 잠시 머뭇거린다. 담배를 피우러 가지 말라는데, 무시하고 가기에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어리고 촉탁직이어도 상사이지 않은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오늘 퇴근 전까지는 기사 보여 주세요. 기획실에서 미리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적어도 근태를 지적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승진과 관계없는 촉탁직이니 조직 장악력을 평가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면 정말 내 건강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잠시 갈등한다. 피우지 말라고 안 피우고, 피워도 된다고 하니 피우려니 모양이 이상하다. 이런 소리에 좌지우지되어야 하는 내가 몇 살인지를 생각해 본다. 민 팀장은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나갈 수도 나가지 않을 수도 없게끔.

  이런 나를 천승남이 구제해준다. 같이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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