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3. 군수 석동열

New-Mountain(새뫼) 2022. 8. 10. 10:43
728x90

3. 군수 석동열

 

  “군수님, 문화관광과 김영태 주무관 올라왔습니다.”

  101호 안쪽에 군수만을 위한 공간이 열려 있다. 커다란 책상이 위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번쩍이는 응접세트가 권력을 과시한다. 한쪽 벽 책장 몇 개에는 이런저런 기관의 연감들만 꽂혀 있지만, 아직 빈 곳이 많아 군수의 임기가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101호의 대부분 공간은 비어 있다. 단 한 사람이 근무하는 공간으로는 너무 넓다고 생각한다. 평수에 대한 감각이 워낙 떨어져서 이곳의 넓이가 어떤 숫자로 계산될지 얼른 가늠할 수 없다.

  얼핏 따져 보면 예전에 근무하던 축산지원과 사무실의 두 배쯤이거나, 지금 근무하고 있는 문화관광과 사무실의 한 배 반쯤의 크기일까. 또는 군청과 버스터미널의 중간쯤에 있는, 서운읍에서 유일한 오피스텔 5층에 있는 내 숙소의 다섯 배쯤 될까. 그보다 더 클까. 그러다가 군내 농가들의 돼지 축사를 떠올린다. 그곳에서는 내 오피스텔만한 넓이에서 적어도 30여 마리의 돼지들이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그래도 돼지들은 그 안에서 영역을 구획하면서도 서로 공존하며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간은 얼마일까. 우리는 최소한의 공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최대한의 공간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공간과 삶의 질은 비례하는 것인가. 불관한 것인가.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이 큰 공간이 못마땅하다. 공간을 차지하지 못한 이의 치기는 질투가 된다.

  그래도 오늘 101호에는 한 사람만 앉아 있지 않다.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이 넓은 공간을 공평하게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군수는 가운데 앉아, 양옆으로 대여섯 사람들을 앉히고, 박민구와 나를 그들 앞에 세운다. 같은 공간에서도 위치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 좁은 축사 안에서도 가장 힘이 있는 돼지가 가장 쾌적한 장소를 차지하곤 했다. 군수실에서 불경스럽게 자꾸 돼지 축사를 떠올리는 것은 아직도 내 소속이 축산지원과이기 때문이다.

  “아, 김 주무관. 인사를 드리세요. 우리 군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입니다.”

  소위 지역 유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군수의 소개에 김영태입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일방적인 인사가 된다. 군수는 나에게 저들을 소개하지 않는다. 아마 내가 101호를 떠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여기에 앉은 대여섯 사람 중 내가 얼굴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전임 군수에게 지역 유지란 경찰서장, 소방서장, 농협 조합장 등등이었다. 하지만 새 군수는 이들은 물론이고, 실업가라는 사람들까지 유지에 포함시켰다. 예전 군수는 군 안에서 유지를 찾았으나, 새 군수는 군 경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군수는 그들에게 물심, 특히 물질의 도움을 받았다. 하긴, 그 차이 때문에 예전 군수는 낙선한 거고, 앉아 있는 이가 새 군수가 되었다고 하였다. 다들 이번 선거는 자금력에 바람이 덧붙여져 결정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축제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표정에 공손한 말투를 담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저절로 드러나는 말투나 표정은 그리 공손하지 않다. 새 군수는 예전 군수와는 많이 달랐다. 예전 군수는 말단 공무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군수에까지 오른 뼛속 깊은 관료였지만, 새 군수는 지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에서 시작한 전형적인 정치가이다. 하지만 예전 군수가 관료에서 정치가로 자신의 얼굴을 금방 바꾸었듯, 새 군수는 정치가에서 관료로 자신의 얼굴을 금방 바꾸었다. 그리고 이런 변신은 101호 군수실에서는 쉽게 가능했다.

  “아, 호박 축제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주무관입니다. 참, 축제 이름은 바꿀 겁니다. 세련된 걸 찾아보고 있어요. 호박 축제. 너무 촌스러워요.”

  군수는 유지들에게 웃음을 구한다. 군수의 웃음에 유지들도 따라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들은 그리 세련되지 않다. 세련되지 않은 것은 호박 축제라는 이름이 아니라 호박과 축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세련되지 않은 호박과 축제에서 자신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이고, 그렇게 돕는 것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따져 보고 있을 것이다.

  “이번 호박 축제가 성공하면 우리 서운군이 명품 호박 산지로 알려질 겁니다.”

서운군의 호박을 위한 축제인가, 호박의 서운군을 위한 축제인가. 그 둘을 나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실 호박 축제는 전임 군수 작품이다. 작년 연말에 전임 군수는 군청 공무원들을 J시의 한 호텔에 모아 연찬회를 겸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명목상의 주제는 지역경제살리기였지만, 다분히 다음 해 선거를 위한 행사였다. 거기에서 우리 군에서도 지역축제를 열자는 제안이 있었고, 전임 군수가 이를 받아들였다.

  “호박으로 축제를 한다고 하면 매스컴에서 신기해할 겁니다. 그것만으로 서운군은 유명해질 수 있어요.”

  축제의 테마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다소간의 설왕설래 끝에 호박으로 결정되었다. 서운군에서 자랑할 만한 것을 찾다 보니 호박만 한 것이 없었다. J도에서의 호박 생산량은 서운군이 가장 많고, 전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통계를 원예영농과에서 제시하였다. 그리고 호박이 축제의 주인공이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토론회 직전에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의 지리 문제였다. 여러 농작물의 주산지를 묻는 문제에서 서운군의 지도와 호박이 연결되어 있었다. 서운군의 지역 주간 신문인 서운신문에서는 그 내용을 보도했고, 군청에는 수능 문제를 크게 복사해서 군청 현관 입구에 붙여 놓았었다.

  “참, 호박 축제가 열리는 데가 마침 호박벌입니다.”

  서운군에 호박벌이라는 지명도 있어요? 앉아 있던 누군가가 묻는다.

  “어, 그게, 호박 축제가 열리는 세 곳의 지명을 합친 겁니다. 그게 어디였지?”

  군수가 박민구를 돌아본다. 기회를 얻은 박민구가 준비된 듯 브리핑을 시작한다. 호박 축제가 열리는 곳은 서운군 천북면과 천남면 일대로 서운군에서 드문 평지 지역이다. 여기에서 호박이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여름 호박 농사를 마친 바로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게 될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천북면의 미호리와 운박리, 천남면의 벌교리 일대이다. 이 세 마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우리는 호박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명칭은 전임 군수 때 결정된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다가 박민구가 아차 싶은지 말을 끊는다. 군수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하며 과장된 손뼉을 친다. 이에 군수의 목소리가 다시 온화해진다.

  “전임 군수 때 결정된 사업이긴 합니다만, 우리 서운군의 홍보와 경제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축제를 개최한다는 결정만 하였지, 선거 여파로 호박 축제는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군수가 다시 이 축제를 끌고 나온 것이었다. 군수가 바뀌었어도 서운군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여전히 호박밖에는 없었다. 새 군수는 문화관광과 안에 지역축제팀을 새로이 꾸렸고, 그 팀 안에 사람들을 채웠다. 그때 나도 축산지원과에서 문화관광과로 파견을 나오게 되었다.

  “앞으로 김 주무관이 중요한 일 하나를 맡을 겁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려고 인사드리는 겁니다. 아, 김 주무관님이 국문과 출신이지?”

  군수 입에서 국문과가 나왔다. 그러자 앉아 있는 유지들이, 아 국문과, 글을 잘 쓰시겠네,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다. 그렇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이기는 하다. 하지만 특별히 뜻을 두고 간 게 아니고 성적에 맞춰 대학 원서를 넣다 보니, 가게 된 과가 국문학과이다. 책꽂이에는 전공 교재가 아닌 공무원 수험서만 잔뜩 꽂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세 해 정도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두 해 정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두 해 더 공부하여 지방직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국문학과는 내가 대졸이라는 학력의 유일한 흔적일 뿐이다. 감추고 싶은 과거는 아니지만, 자랑하고 싶은 이력도 아니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이 문화의 시대에서 우리 군이 뒤처져서는 안 되죠. 아니 앞서 나가야 합니다.”

호박과 문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군수는 손을 불끈 쥐고 마치 선거 유세를 하듯 목소리를 높인다. 유지들이 끄덕거리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내게 시선을 옮긴다.

  “김 주무관이 우리 군을 위해 큰일을 할 겁니다. 그래서 격려차 이 자리에 오게 했습니다.”

  돼지 대신에 호박을 키우는 게 어떻게 문화를 살리는 큰일이 되는 것일까. 군수에게 더 이상의 말은 듣지 못한다. 박민구가 군수의 눈짓을 읽었는지 나를 군수실 밖으로 이끈다. 스킨인지 냄새가 확 풍겨온다. 그리 질이 좋은 것은 아닌 듯 썩 유쾌하지는 않다. 기획관이 된 박민구도 아직 세련과는 멀어 보인다.

  “지금은 저 어르신들 간담회가 있고, 점심도 드셔야 하는데, 내가 모셔야 해서요. 이따 오후에 잠깐 다시 올라와 보실래요.”

  굳이 다시 오라는 것은 무엇인가. 미루면서 직위와 권위로부터 파생된 권력을 자신의 공간에서 과시하려는 것인가.

 
728x90

'자작시와 자작소설 > 소설; 신기정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밥집 할미  (0) 2022.08.12
4. 축제팀장 민수연  (0) 2022.08.11
2. 기획관 박민구  (0) 2022.08.09
1. 프롤로그  (0)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