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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버리지 못하는 환상 - 카페하우스의 문화사

New-Mountain(새뫼) 2014. 4.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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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커피를 처음 마셔본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하지만 거기 커피 맛은 없었다. 설탕이 듬뿍, 프림도 듬뿍. 그 달달한 맛만이 강하게 인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달달함이 오랫동안 커피의 맛이었다. 대학 시절, 자판기 100원짜리 커피는 문화였다. 거기서도 커피 맛은 없었다. 시덥지 않은 시골 대학생들이 모여 있던 자리, 커피는 시끄러운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드는 한 모금의 휴지(休止)였다. 지금도 커피는 그 역할을 한다. 입대하고 몇 개월이 지나 커피를 마셔보았다. 정말 취했다. 그리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역시 자판기 커피일 뿐이었지만, 그 안의 소량의 카페인이 무참하게도 내 잠을 방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잘 잔다. 정말 잘 잔다.

 

2. 카페를 마시는 커피

커피는 카페에서 마셔야 제격이란다. 그러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는가? 카페에 자릿세를 내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가? 사실 이 둘은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에 두 사람 앞에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무료하겠는가? 이럴 때 술잔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술은 가끔 이성을 잃게 한다. 시작할 때는 어느 정도 주변의 상황과 지갑의 사정과 모임의 성격이 짐작되지만, 끝날 무렵에는 모든 것이 어찌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더욱 고상하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자리에서는 술은 금물이다. 커피가 제격이다. 그리고 그 커피를 이런 저런 치장 아래 아름답고 우아한 음악이 들리는 카페에서 마시면 그런 분위기는 더욱 상승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나를 돋보여주게 하는데 커피 한 잔의 자릿세는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3. 커피와 효용 비용

사람의 입맛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믹스커피라도 감사했지만, 불행하게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행이었든 주변의 누가 권했든 간에, 이 땅의 원두문화가 내 입에도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이것저것 성가신 일이 많이 생겼다. 원두를 사기 위해 이집 저집, 하다못해 인터넷이라도 기웃거려야 했고, 더 나아가 이런저런 기계를 구입해야 했으며, 그 기계에 커피를 갈아야 했다. 잘 익은 커피 맛을 위한 온도를 느껴야 했다. 그것보다 정말 힘든 것은 조금씩 다른 맛을 구별하기 위해 다양한 커피 이름을 외워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입맛은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정말 둔한 입맛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커피의 차이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믹스커피로 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4. 카페하우스의 문화사

너무 이 책을 길게 붙들고 있다. 거의 한달 여쯤. 특별하게 어려운 책도 아니다. 재미있는 책도 아니다. 그러니까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1/3쯤 읽다가 1/2쯤 넘어가다가 문득 이 책의 주제를 파악했다. ‘서구에서 카페의 공시적 통시적 변화에 대한 병렬식 나열물론 중간중간 이런저런 얘기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다른 책에서도 알 수 있는 거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더치 커피 한 잔 만큼도 감동적이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만 의무감으로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놓아야겠다. 그리고 다락 책장 어디쯤에 꽂힐 것이다. 커피는 커피여야지 커피가 책이 되어서는 큰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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