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보고읽은 뒤에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어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New-Mountain(새뫼) 2014. 3. 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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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다 보면 문득문득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글귀들을 읽으며 나를 돌아본다.

그런데 돌아봄은 조금 유치해야 한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술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ㄴ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텅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데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독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거야 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어떻게 마시고 있는가?


천하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 그런데 내가 삶에서 제일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떤 기준인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같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 그렇게 나는 나를 속일 줄 아는가? 아니면 속지도 않으면서 속는 체 하는 것인가?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년 양식을 계산해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잘 깨달았느냐? 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 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는 말라.

   -  하지만 지금 조금 부족하다고 정말 괜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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