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다 보면 문득문득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글귀들을 읽으며 나를 돌아본다.
그런데 돌아봄은 조금 유치해야 한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술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ㄴ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텅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데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독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거야 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어떻게 마시고 있는가?
천하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 그런데 내가 삶에서 제일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떤 기준인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같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 그렇게 나는 나를 속일 줄 아는가? 아니면 속지도 않으면서 속는 체 하는 것인가?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년 양식을 계산해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잘 깨달았느냐? 누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 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는 말라.
- 하지만 지금 조금 부족하다고 정말 괜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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