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보고읽은 뒤에

링컨, 소박함의 위대함

New-Mountain(새뫼) 2013. 3. 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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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스틸버그 영화 '링컨'을 보았다. 많이 늦은 밤이었다. 영화관도 집에서 꽤나 멀었다. 유명 영화감독에 아카데미상 십여개를 휩쓸었다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도심에서 먼 영화관에서 그것도 심야 시간을 골라 의무적으로 감추듯이 상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흥행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보여주기 싫은 무엇이 있어서인가, 아니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 있어서인가


"같은 것은 모두 같다"

링컨은 노예해방의 원리를 유클리드의 첫번째 공리를 들어 설명한다. 수학이야 대학을 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이미 대학을 모두 마친 오십에 가까워지는 국어선생에게 이런 유클리드가 필요할 이유는 없다. 뿐이랴.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기를 쓰던 30여전에도 어느 수학 선생도 나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링컨을 통해 듣는 이런 단순한 논리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너무 많은 것은 고민하게 한다. 정말 같은 것을 같은 것으로 대하고 있는가, 무엇이 같은 것인지 알고나 있는가, 혹여 다른 것을 같다고 우기고, 같은 것을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가. 



"법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스티븐스는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의원들에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중얼거림은 외침이 되고, 외침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자기 신념이 된다. 노예를 말하라는 그들에게 스티븐스는 노예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평등하기 때문에 피 대신에 끈적한 점액질이 가득차 있는 당신같은 사람들과도 한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라고. 법이야 있지만, 저 사람들은 법 앞에서 이렇게 해도 되지만, 너희들은 절대로 이렇게 하면 안되다는 것을 TV로 생중계해주는 그런 우리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세상에 분노하기보다는 너희와 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느끼며 저 사람들처럼 되지 못하는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있지나 않은가




"평생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잘린 팔다리를 가득 실은 수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것을 본 링컨의 아들은 군 최고통수권자인 아버지에게 일갈한다. 입대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부끄럽게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잠시 링컨을 접어두고, 그 대사를 화두로 부끄러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어느 시인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할 만큼 고매한 수준의 고민은 아니다. 하지만 혹여 내 부끄러움 때문에, 내 부끄러움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하기 때문에 더 부끄러워지고나 있지 않은가. 이런 얕은 고민. 지금까지 자주했던. 앞으로도 적지 않이 하게 될....





"100년 안에 이런 영화가 나올수 있을까?"

토요일의 늦은 밤. 돌아오는 길은 텅 비었다.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아내가 던진 말이다.  또 말이 없다가 만약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다면 누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물었다. 내게 물은 말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게, 아니 세상에 물은 말일 것이다. 정말 가능할까.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추악하다고 쉽게 방점을 찍어버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저런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링컨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스틸버그의 상상력으로 저런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부럽다. 그렇게 만들 인물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모습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고 있는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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