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기쁘거나 슬프거나

오십 즈음에

New-Mountain(새뫼) 2013. 3. 31. 23:34
728x90

오십 즈음에...

김광석은 나이 서른이 서러워 서른 즈음에를 부르다가 사십이 되기전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나는. 이제 사십이 훨씬 지나 오십에 가까이 다가가는 나는 누구일까.

 

이제 봄이다. 여기는 인천이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보면 꽃을 사고 벼를 심는 곳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모처럼 하루 쉴 수 있는 날, 무작정 그곳으로 달렸다. 막 싹이 오르기 전의 벌판은 가을보다 더 서럽다. 갖추어지기를 기대했지만 빈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양쪽에 두고 논둑을 달렬다. 거기 부지런한 농부들은 씨앗을 뿌리기 위해 몸짓이 재다. 휴일 한가로움을 처치하려는 강태공들은 좁은 수로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리고 간간 화려한 운동복으로 치장한 이들은 자전거에 실려 나와 같은 길은 간다. 평화로운 봄날의 풍경. 하지만 봄이기에 새롭다거나 가슴 벅찬 울림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푸석한 먼지. 온도는 높아도 쌀쌀한 바람이 먼저 몰아치는 날씨. 푸르지만 파랗지는 못한 하늘. 여기서 내 중년을 발견한다.

 

중년. 낯설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어이다. 단순히 나이만으로 정의내려지는 중년은 아니다. 그럼 무엇인 중년이란 말인가. 옆에 앉은 아내와 애기했다. 우리는 사춘기인가봐. 말도 안되는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우리 나이는 사춘기적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시 중년인 아내도 동의했다. 웃 어른들부터의 거리감이라든지 아래 아이들로부터의 거리감. 그 중간에 사십에서 오십 즈음의 이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돈이 없다. 그나마 없는 돈도 나를 위한 돈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 돈. 그러나 벌어야지만 하는 돈. 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노후 준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건강이라든지 성이라는 것들도 역시 쉬이 무시할 수 없다. 그런 고민에 치이는 삶, 그게 중년이다. 

 

가끔은 사춘기처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오가는 차 안에서 소위 7080의 음악을 들으면서 울컥해지기도 한다. 지나다 화원의 꽃화분에 잠시 넋을 빼앗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은 십대의 사춘기와는 많이 다르다. 그럼 무엇인가. 서러움 혹은 설움, 또는 답답함, 아니면 두려움, 그것도 아니면 조금함인가. 10대와는 다르게 이런 복합적이고 묘한 감정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몸이 마음을 넘어서지도 못하고, 마음이 몸을 따라가지도 못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은 남았는데, 스스로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를 다룰 수 없음에도 나만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만큼 살았으니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참견은 타당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세상이 나한테 참견하는 것은 못견디면서도.

 

다시 차를 빙빙 돌려 결국 집 근처로 돌아오고 말았다. 2시간여 한강 위의 다리를 두번 건넜고, 음식점 몇 곳을 찾아 헤맸으며, 도서관에 가 있는 딸애와 문자를 한 번인가 주고받았다. 그렇게 휴일이 마무리 되었다.

오십 즈음에. 뭔가 글 한줄 남기려 했지만....

,

728x90

'홀로 또는 함께 > 기쁘거나 슬프거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도 집이 있었더라..  (0) 2014.03.26
여수 그리고 순천  (0) 2013.11.24
아직 오지 않은 봄  (0) 2013.03.01
문학기행 - 김유정과 박경리  (0) 201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