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는 따뜻했다.
홑옷을 걸치고 나서려는 내게 타박을 주었던 아내의 군소리를
이유없이 따라야 했을 것이하는 후회가 밀려오던 아침이었다.
바람을 차가웠고, 옷섶에 매섭게 꽂히던 찬기운은 더 차가웠다.
새벽에 집을 나서본 것도 오랜만.. 검은 색 하늘과 그 하늘에 점 몇 개로 반짝이는 별빛도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잠시.
버스에 오르고, 밀린 잠을 자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버스는 여수에 다와 있었다.
남도다. 따뜻했다. 홑옷마저도 벗어도 될 만큼.
왜 그곳에 갔냐고?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 이기적이라도 하는 수 없다.
그곳에 내가 있다는 .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터다. 여수에 내가 있다.
거기 간 이유가 있기에 정작 바다로 나선 때는 해질 무렵일었지만
여전히 겨울 바닷바람은 견딜만했고, 그 바람에 파도가 울렁거려도 흰 포말보다는 코발트빛의 푸름이 더 밝았다.
소박하고 한편으로는 유치한 의미부여.
어둑한 오동도를 개밥바라기 아래 돌았다.
곁의 이가 이것들이 모두다 동백나무라고 일러주어도, 알 터가 없었다.
식물을 알지 못하기에, 설사 안다 하다라도 이미 어두워졌지 않은가? 슬슬 다리 아픈 꽤도 날 때이고.
그러다가 문득.
그래, 그런 것인가?
또 꽃이 피지 않은 동백나무가 내게 의미가 있을까?
오동도에서 여수 이미 어두어진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며 더 소박하고 유치한 생각을 했다.
그냥 오동도일뿐이고, 동백나무일뿐이며, 여수일뿐인데. 나이 오십줄에. 별 쓸데 없는 생각을..
그래도 여수가 좋았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았던 곳이 여수가 아니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순천만이다.
재작년인가 너무 엄청나게 추웠던 날, 이 순천만 주차장에 온 적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다가 겨울 바닷바람에 아이들이 기겁을 하고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하였고, 아이들을 핑계로 나 역시 게으름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친 것인데, 오늘을 지나칠 수가 없다.
가을이고, 평소 우르르 단체로 몰려와 왁자지껄하는 이들을 흘겨보았었지만, 오늘은 내가 단체 손님이 되었기에. 누군가 대표로 표를 끊어줄 것이고, 밀리듯이 갈대 숲으로 빠져 들어가면 된다. 평일임에도 각지 사투리가 들려오고 그 사투리들이 갈대의 서걱임을 눌러버린다. 누렇게 물든 갈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울긋불긋한 등산복들을 갈대들이 보는 것이 아닐런지.
갈대 숲 사이로 얌전하게 나무다리를 놓아 갈대 숲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시설이라는데, 덕분에 편하게 구경은 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뭔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길은 갈대숲을 이쪽저쪽으로 가르고 인간들의 구획 공간으로 평수를 나누었다.
길은 산으로 이어졌다. 산 능선을 따라 길게 길게 이어져 순천만을 내려보게 하였다. 더 높이서 보라는듯. 그래도 이것은 좀 낫다. 길보다는 갈대가, 사람들보다는 갈대숲이 그래도 더 많고 크다. 사실 내려보면 인간들은 점점이 얼마나 작은 존재일 것인가?
그래도 그 존재들이 갈.대.를 지.배.한.다. 갈대들은 지배 당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더 그렇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오고, 갈대숲을 가로지르며 다시 높은 산 위로 오르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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