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기쁘거나 슬프거나

아직 오지 않은 봄

New-Mountain(새뫼) 2013. 3.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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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는 말만으로도 힘겹다.

아무리 고속도로가 잘뚫였다고 해도, 강원도로 가는 길은 멀다. 아니 멀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전라도 어디, 경상도 어디라면 조금은 덜 할 것이다. 또 이제 2월 말이고 곧 3월이라고 해도, 강원도는 여전히 춥다. 춥다고 지레 짐작하게 되고 옷이라도 한번 더 껴입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 강원도이다. 스키장도 아니도 해수욕장도 아니어도 그냥 한번 달려보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 사는 분들께는 불경스럽게 들리겠지만, 뭐랄까 강원도에는 치열한 삶을 잊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강원도에 가고 싶은 것이다. 강원도라, 강원도.

그래서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보름 전에 작정을 하고 일주일 전에는 계획을 잡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 네 사람의 시간상의 교집합을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부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도 벌써 자기들의 시간을 갖게 커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재다가 까짓 하루면 어떠리. 새벽에 떠나 그날 밤으로 돌아오면 되지. 그러면 어디?

백담사에 가보고 싶었다. 동해 바닷가도 가보고 싶었다. 백담사 입구에 송어횟집도 좋다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그럭그럭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 자 떠나자. 고래잡으러 가 아니라, 세상 잊으려.

언제부터인가 운전대를 잡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저기 세상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면 되는 것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이런저런 나만의 생각을 찾아. 멍하니 앉아 있으도 좋을 시간이다.

송어횟집을 건너 백담사,

차로 들어갈 수는 없다. 셔틀버스를 타야 들어가지만 3월말까지는 버스가 없다. 걸어 왕복 세시간 거리라는데 한 번 걸어가보기로 했다. 마침 10도를 웃도는 정말 포근한 날씨였으리니, 그쯤은 너끈하게 다녀올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자꾸 머뭇거렸다.

우선 보이는 길은 녹았어도 그늘진 곳은 아직도 얼음 가득, 신고 있는 운동화로는 얼음밭을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이 첫째. 두 아이들이 계속 뒤처지며 가는 길을 막는다는 게 둘째. 아니 이런 것들은 다 핑계이고, 진짜 이유는 또 가야할 곳이 있는데, 오늘 중에 돌아가야 하는데 예서 모든 시간을 다 보낼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정말 이유가 되었다. 당장 내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세상을 잠시 잊고자 떠나온 길이었지만, 여전히 세상이 쳐 둔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핸드폰이 내 주머니에 있었고, 시계가 내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떠나온 길이지만 그것은 이미 돌아갈 것을 예정한 길이었다. 가끔 울리는 핸드폰 소리는 내가 아직도 세상에 매어 있음을 철저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서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문득 보게 된 백담계곡.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는 봄이 오는 풍경이다. 조금은 세속적이고 조금은 상투적인 풍경이지만, 충분히 감동할만 하다. 정말 봄인 것 같다. 봄. 그렇게 멍하니 봄을 바라보다가 조금은 감동한다. 감상적인 나이냐 이미 지나버렸어도, 지난 겨울 정말 육체적으로 움쳐려들게 하는 추위가 싫었었다. 지금은 봄이다.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현실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일정에 맞추어 미시령을 넘고 도착한 동해 바닷가.

기온은 여전히 따뜻한 봄날이었지만, 바닷바람은 너무나 차갑다. 드문드문 지나는 사람 속에 길 잃은 개 한 마리. 고운 모래들은 바람에 날려 내가 지나온 발자국들을 지우고 있다. 멍하니 모래사장을 넘어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여기는 정말 세상과 다른 곳일까.

 

 

하지만 멋있게 생간 바닷가 바위 틈에서 누군가가 태우다 간 쓰레기 더미. 그리고 춥다. 곧 추위를 피해 차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엇다. 세상과 단절되어 보이지만, 여전히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향해 출발한다. 딸에는 인터넷으로 새 담임을 확인하고, 세상의 달콤을 맛보이 위해 근처 커피집을 내비로 찍는다. 멀지 않다.

아니 막상 달려보니 꽤 멀다. 강원도이니까.

강원도의 커피와 휴게소의 늦은 저녁과

그렇게 돌아와 보니 밤 열한시이다. 아파트가 보이면서부터 주차장을 걱정했다. 하지만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 다행이다. 내일 아침 고생을 덜 해도 된다. 참 내일 할 일이 무엇이었더라. 이미 오늘 하루의 기억은 크게 남지 않았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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