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집 아이들의 독서력은 높은 편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독서력이라는 말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글자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독서력이라 해 두자. 팔불출 각오하고, 우리 아이들이 그 능력이 조금 낫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왜 냐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편하게 말할 수 이유를 대라면 꼬박꼬박 신문을 읽었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혹은 거실에서 뒹굴거리면서, 때로는 화장실에서 힘을 쓰면서. 글자를 읽을 때부터의 지금까지 습관이 그러했다. 또 교과서나 문제집 이외의 글자들을 거의 읽지 않는 게 요즘의 평균적인 아이들이니, 그 애들보다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지들 친구들보다는 조금은 많겠지.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서 신문을 떼어 두기 바쁘다.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히기가 두렵다. 신문 표제들이 너무나도 가관이다. 세금떼어 먹는 것은 보통이고, 말도 안될 병명으로 군대 제끼기, 남의 글 베끼기 및 제 글 다시 옮겨 쓰기, 무기 팔아 중간에서 구전 먹기, 이제 그도 모라라 은밀한 별장에서 성파티? 황색 스포츠신문도 아니고, 우리나라 일간 조간지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들이다. 전부 나라의 큰 자리를 하겠다는 이들이 벌이는 작태이라. 원래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또 워낙 인터넷을 비롯한 화려한 매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또 그런 매체들을 통해 볼 것 안 볼것 다 보는 세상이니, 딱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신문에서 철없는 아이들이 그걸 들여다 보니 애비로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학교에서 떠들어대는 접장으로서 가슴이 끔찍해 지는 거라.
그렇다고
얌점히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늘 그자리에 있어야 익숙한 것이 있다. 아니면 뭔가 거북해진다. 그래서 관성처럼 신문은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것인데, 앞에 말한 것처럼 내용이 워낙 엽기적이고 도색적이니 그게 문제이다. 그래서 먼저 일어나서, 신문을 찾아 주욱 내용을 훑어보는 것인데, 신문사에서 하지 않을 검열이 애비의 몫이 되는 것이다. 깨끗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라면 약간의 경계, 망가지고 부서지는 세상이야기라면 조금 많이 경계, 혹 성적 부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또래 아이들의 얘기라도 나올라치면 그것은 아예 그대로 폐 휴지함으로 보내는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 좀비 만화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팔 다리가 잘리고 등에 머리가 붙은 좀비들이 피를 뚝뚝 흘리며 세상을 활보한다.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주말 특별판이다. 그걸 어린 아들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월요일 신문사로 전화를 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진보적이라는 신문사였다. "좀비 만화가 그 지면에 꼭 필요한가요? 주말 아침에 많이 역겹습니다. 아이들도 보고 있고요.", "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그런 그림들이 보통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신문은 그렇습니다. 특별한 게 실리는 거 아닌가요?" , 그런 말도 안되는 대화가 몇 마디 오고가다가 신문을 끊어버리겠노라 선언을 했고, 저 쪽에서는 독자의 의견을 고민해 보겠다고 답을 하였었다. 그리고 얼마후에 좀비 만화는 사라졌었다. 내 요구가 관철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아마도 연재가 끝났을 테지.
정말로
사람들이 좀비 만화를 좋아했을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구독수를 늘리기 위해 그런 엽기적인 그림을 팔았을까?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엽기적인 기사들을 좋아할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런 엽기적인 기사를 올리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내가 엽기라고 하는 것들을 흥미라도 치환해버리는 이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아이들이 보지 못하겠끔 슬쩍 뒤로 미뤄놓은 신문의 기사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괜한 오지랖인가? 기성 세대의?
그래도
아이들이 안 읽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가장 소박한 바람이다. 애 키우는 애비로 그 정도의 바람을 가질 수는 있지는 않나. 못된 기사가 실린 신문을 감추는 액션이라도 취하는게 애비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신문보다도 더 흉악한 기사의 제목이 네0버와 같은 포털의 대문에 떡하니 못질로 도배되어 있고, 그걸 검색하며 오며가며 다 읽고 있는 걸 안다. 그런데 이젠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은 신문을 트집잡고자 하는 일이 허망한 일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종이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세상을 읽고 독서력을 얻기 바라는 정말 아나로그 시대의 애비에게 신문은 신문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