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어울리며 사랑하며

'왜' 라는 질문

New-Mountain(새뫼) 2014. 4. 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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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 보니 녀석이 단단히 뿔나 있다. 저녁까지 수학 몇 문제를 풀라 했더니, 풀다가 풀다가 소위 녀석의 말대로 '빡'쳐버렸던 거다. 하기도 싫은 데, 문제는 잘 풀리지도 않고, 더구나 한 손을 깁스했기에 자세도 불편하다. 왜 풀어야 하는 지,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 왜 이런 것을 강요하는지, 이런 감정이 눈덩이가 되어 점점 켜져 버린 거다. 그리고는 그래도 제 딴에 만만한 엄마, 아빠한테 서툴기만 한 언어로 쏟아내는 거다.

"왜? 왜냐고?"

사실 녀석의 말이 맞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에 익숙지 않다. 아니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모른다. 나아가 '왜'라는 질문 자체가 불온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냥 하라면 하는 것이지 왜 굳이 이유가 필요하냐? 언제부터 그러했을까? 그런데 모든 가르침이나 배움이 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 당위성을 찾고 필요성을 찾아야 배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우리는 '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어떻게'가 중요했고, '얼마나'가 더 중요했다. 최대한 많이 가르칠 것. 2학년 것을 1학년에서, 고등학교 것을 중학교 때, 그러다보니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앞서 가르치기도 힘든데, 많이 알려주기도 힘든데, 감히 언감생심 '왜'를 언급하는가?

하긴 교육학 책 어느 그트머리를 보면 '왜'라는 질문이 필요한지 분명 나와는 있을 거다. 거기서부터 가르침이나 배움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도 나와 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 거다.

하지만, 외면받는다. '왜'를 하다 보면 늦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안 하는데, 저 혼자 '왜'를 하겠다면 그것은 불온한 거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아이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그걸 '왜' 공부해야 하냐고. 하긴 그런 질문을 받을 만한 수업을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거다. 모두 대학입시와 관계된 것만 가르치므로, 배우는 이들도 그걸 안다. 아니 그러면 왜 대학 가기 위해 이걸 배워야 하는데.. 왜 대학에 가야 하는데.

 

면벽한 스님들은 화두 하나 잡고 몇 년간 매달리며 진리를 찾는다는데, '왜'라는 화두는 진리는, 고사하고 머리를 아프게 하고 스스로를 모순에 빠지게 할 뿐이다. 그래서 다들 '왜'를 꺼리는 것일 게다.

 

아직 사춘기인지 아닌지 모르는 녀석만이 겁 없이 달려드려는 것이고.

 

 

 

(추기) 다음날 물었다.

"'왜' 해야 하는지 알겠니?"

그랬더니 녀석이 그런다.

"모르지만 하는 게 낫겠어."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왜 마음을 바꾸었을까?"

그러자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한다.

"그런 걸 왜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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