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옮겨온 고전

연암의 '영초고(嬰處稿) 서문'

New-Mountain(새뫼) 2021. 8.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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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연암독본1'  - 비슷한 것은 가짜다.

 

'그때의 지금인 오늘'

 

자패子佩가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의 시를 지음은, 옛사람을 배웠다면서 그 비슷한 구석은 보이지를 않는구나. 터럭만큼도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인들 방불하겠는가? 촌사람의 데데함에 편안해하고, 시속時俗의 잔단 것을 즐거워하니 지금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내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볼만하겠다. 옛날로 말미암아 지금 것을 보면 지금 것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보면서 반드시 스스로 예스럽다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하나의 지금으로 여겼을 뿐이리라. 그런 까닭에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하니,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이르는 것이요,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과 견주어 하는 말이다. 대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이요 저것은 저것일 뿐, 견주게 되면 저것은 아닌 것이니, 내가 그 저것이 됨을 보지 못하겠다. 종이가 이미 희고 보니 먹은 따라서 희어질 수가 없고, 초상화가 비록 닮기는 해도 그림은 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우사단雩祀壇 아래 도저동桃渚洞에 푸른 기와를 얹은 사당에는 얼굴이 윤나고 붉으며 수염이 달린 의젓한 관운장關雲長의 소상塑像이 있다. 사녀士女가 학질을 앓게 되면 그 좌상座狀 아래에 들여놓는데, 정신이 나가고 넋을 빼앗겨 한기를 몰아내는 빌미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꼬맹이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위엄스러운 소상을 모독하는데, 눈동자를 후벼 파도 끔벅거리지 않고, 콧구멍을 쑤셔 대도 재채기하지 않으니,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빚은 소상일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수박의 겉을 핥는 자나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자와는 더불어 맛을 이야기할 수가 없고, 이웃 사람의 담비 갖옷을 부러워하여 한여름에 빌려 입는 자와는 함께 계절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형상을 꾸미고 의관을 입혀놓더라도 어린아이의 진솔함을 속일 수는 없다.

대저 시절을 근심하고 풍속을 병으로 여기는 자에 굴원屈原같은 이가 없었지만, 초나라의 습속이 귀신을 숭상했으므로 그의 [구가九歌]에서는 귀신을 노래했다. 한漢나라가 진秦나라의 옛것을 살펴, 그 땅과 집에서 임금 노릇하고, 그 성읍을 도읍으로 삼으며, 그 백성을 백성으로 삼았으면서도 삼장三章의 간략함만은 그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이제 무관은 조선 사람이다. 산천의 풍기風氣는 땅이 중국과 다르고, 언어와 노래의 습속은 그 시대가 한漢나라나 당唐나라가 아니다. 만약 그런데도 중국의 법을 본받고, 한나라나 당나라의 체재를 답습한다면, 나는 그 법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담긴 뜻은 실로 낮아지고, 체재가 비슷하면 할수록 말은 더욱 거짓이 될 뿐임을 알겠다.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지만 또한 천승千乘 제후의 나라이고, 신라와 고려가 비록 보잘것없었지만 민간에는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그럴진대 그 방언을 글로 적고 그 민요를 노래한다면 절로 문장을 이루어 참된 마음이 발현될 것이다. 남의 것을 그대로 답습함을 일삼지 않고 서로 빌려 와 꾸지 않고, 지금 현재에 편안해하며 삼라만상에 나아감은 오직 무관의 시가 그러함이 된다.

아아! 『시경詩經』 3백 편은 새나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이 아닌 것이 없고, 뒷골목 남녀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진대 패邶 땅과 회檜 땅의 사이는 지역마다 풍속이 같지 않고 강수江水와 한수漢水의 위로는 백성의 풍속이 제가끔이다. 그런 까닭에 시를 채집하는 자가 여러 나라의 노래로 그 성정을 살펴보고 그 노래의 습속을 징험했던 것이다. 다시 어찌 무관의 시가 옛것이 아니라고 의심하겠는가?

만약 성인으로 하여금 중국에서 일어나 여러 나라의 노래를 살피게 한다면, 『영처고嬰處稿』를 살펴보아 삼한의 새나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요, 강원도 사내와 제주도 아낙의 성정을 살펴볼 수 있을 터이니, 비록 이를 조선의 노래라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영처고 서문嬰處稿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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