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보고읽은 뒤에

토지 2부를 마치고

New-Mountain(새뫼) 2013. 2. 2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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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처럼 읽는 독서

 

정말 의무였을 것이다. 읽기로 한 후에 겨우겨우 읽어낸 책이다. 오늘 겨우 2부 8권을 읽어냈다. 그외에 독서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오로지 토지뿐이다. 왜 그외에는 없는가 하면. 우선 눈이 많이 아프다. 흰 것은 여백이오, 검은 것은 글씨라고 했나.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를 구분하는 것도 버겁다. 그만큼 시력은 침침해졌다. 그 다음으로는 끈기라는 것이 예전하과 다르다. 우리 집 애들에게, 학교 애들에게 늘 하는 얘기도 이거다. 맨날 핸드폰에 적혀 있는 단문만을 읽지 않느냐. 그래서 조금이라도 긴 글은 아예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그 비난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명색 국어선생이라는 자가 긴 글이 두려워진 것이다. 여기 정말 치사하게도 변명 하나 더 든다면 바빴다는 것. 바쁘다고 책을 못 읽는 것은 아니다.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이게 긴 겨울 독서가 부족했던 이유다.

그래서 덮은 책이 고작 여덟권이다. 이 책을 쓰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정말 가소로운 결과다. 서희가 간도로 갔고,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그 긴 거리의 이동만을 확인했다. 등장인물들의 피터지는 여로에 내 게으름이 겨우 일치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요 몇년 독서란 것이 거의 없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신문쪼가기 몇 줄이다. 아니 그것이라도 읽은 것은 다행이다. 대부분은 네이버 헤드라인의 자극적인 기사가 전부다. 그것만으로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아니 적은 독서의 편안함 속에 숨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고민없음과 고민하지 하지 않기. 덧붙여 고민할 거리 만들지 않기. 그리고 그 귀결은 안 읽고 안 쓰기이다.   

이런 부끄러움 속에 토지 몇 권은 대단한 거다. 그만두기는 쉽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언제부턴지도 모를 시기 그만둔 독서였다. 그걸 시작하는 거다. 눈이 침침하니까 드는 생각이다. 더 침침하면 이예 포기해버릴까봐. 토지 읽기 결심으로 전환을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 몇 자 글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먼 예전처럼 이런 저런 생각을 적어두자는 거다. 가까운 예전처럼 생각을 모두 버리지 말자는 거다. 시간이 많지 않은 조바심이다. 질이야 예전만큼은 아니되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험난한 삶보다 더 험난한 독서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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