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구운몽 한문본

권지삼 - 16. 소유가 물러나기를 상소하니 황제가 취미궁을 내리다

New-Mountain(새뫼) 2020. 12. 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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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소유가 물러나기를 상소하니 황제가 취미궁을 내리다

 

 

丞相自以盛滿可戒, 大名難居. 乃上疏乞退, 其疏曰 :

“丞相魏國公駙馬都尉, 臣楊少游謹頓首百拜, 上言于皇帝陛下.

臣窃伏以人臣之落地而願者, 不過曰將相也 曰公侯也. 官至將相公侯, 則無餘願矣.

父母之爲子而祝者, 不過曰功名也 曰富貴也, 身致功名富貴 則無餘望矣.

然則將相公侯之榮 功名富貴之樂, 豈非人心之所艶慕 時俗之所爭奪者乎?

승상자이성만가계 대명난거 내상소걸퇴 기소왈

승상위국공부마도위 신양소유근돈수백배 상언우황제폐하

신절복이인신지낙지이원자 불과왈장상야 왈공후야 관지장상공후 즉무여원의

부모지위자이축자 불과왈공명야 왈부귀야 신치공명부귀 즉무여망의

연칙장상공후지영 공명부귀지락 기비인심지소염모 시속지소쟁탈자호

 

승상은 스스로 성하면 쇠하고 가득차면 넘침을 경계하고, 큰 이름은 유지하기 어려움을 생각했다. 이에 상소하여 물러나기를 청하니, 상소에서 아뢰기를,

“승상위국공부마도위(丞相魏國公駙馬都尉) 신 양소유는 삼가 엎드려 백번이나 절하옵고, 황제 폐하께 말씀을 올리옵니다. 신이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원하는 것은, 장상(將相)이라 하고 공후(公侯)라 하는 데 지나지 않사옵니다. 벼슬이 장상 공후에 이르면 다른 소원은 없사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축원하는 것은, 공명이라 하고 부귀라 하는데 지나지 않사옵니다. 몸이 공명부귀에 이르면 남은 소망은 없사옵니다. 그러하니 장상 공후의 영광과 공명부귀의 즐거움은 인심이 가장 흠모하는 바이고, 세상 풍속에서 쟁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人所同艶 而不知履盛之戒, 衆所共爭 而未免滅頂之禍, 此廣受所以快勇退之計也,

田竇所以遭傾覆之災也. 將相公侯雖可榮, 而孰如知足乞骸之榮也?

功名富貴雖可榮 而孰如全身, 保家之樂哉?

臣才湔能薄 而躐取高位, 功淺望蔑 而久玷要路. 貴已極於人臣, 榮亦及於父母.

臣之始願 亦不敢萬一於此, 人豈以是而期臣哉?

인소동염 이부지리성지계 중소공쟁 이미면멸정지화 차광수소이쾌용퇴지계야

전두소이조경복지재야 장상공후수가영 이숙여지족걸해지영야

공명부귀수가영 이숙여전신 보가지낙재

신재전능박 이렵취고위 공천망멸 이구점요로 귀이극어인신 영역급어부모

신지시원 역불감만일어차 인기이시이기신재

 

사람들은 함께 흠모하여, 성하면 쇠하게 된다는 경계를 알지 못하고, 대중들이 함께 쟁탈하여 정상에 이르면, 기울어지는 화를 면하지 못하옵니다. 이에 널리 흔쾌하게 물러나는 계책을 받았어도, 이미 전두(田竇)는 기울고 전복하는 재난을 만났던 것이옵니다. 장상과 공후가 비록 영광스러울지라도, 뉘라서 족히 해골을 비는 영광을 알겠으며, 공명부귀가 비록 영광스러울지라도, 뉘라서 몸을 온전히 하고 집안을 보전하는 즐거움을 알겠사옵니까?

신은 재주가 적고 능력이 부족하여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공로가 적고 명망이 낮으나, 오래도록 중요한 자리에 머물렀사옵니다. 부귀는 이미 신하로서 극에 달했고, 공명 또한 부모님께 미쳤사옵니다. 신의 처음 소원은 이보다 만분의 일도 되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것을 신에게 기대하였겠사옵니까?

 

況猥以疎逖 聊結婌掖, 視過異於群臣 恩賚出於格外. 以藜莧之腸肚 而飫禁臠之味,

以蓬蒿之蹤跡 而處沁水之園. 上以貽聖朝之辱, 下而乖賤臣之分 臣豈敢自安於食息乎?

早欲歛迹避榮 杜門辭恩, 以僣越濫冒之罪, 自謝於天地神明. 而聖恩隆重 未效涓涘之報,

且臣筋力尙堪驅策之勞. 故臣不得不淟涊蹲居, 遲回不居, 擬效一分報酬之誠,

而卽退守丘園 以畢餘生矣.

황외이소적 료결숙액 시과이어군신 은뢰출어격외 이려현지장두 이어금련지미

이봉호지종적 이처심수지원 상이이성조지욕 하이괴천신지분 신기감자안어식식호

조욕감적피영 두문사은 이참월람모지죄 자사어천지신명 이성은융중 미효연사지보

차신근력상감구책지로 고신부득불전년준거 지회불거 의효일분보수지성

이즉퇴수구원 이필여생의

 

하물며 외람되이 부족함에도 부마가 되어, 돌보심이 여러 신하와는 매우 다르고, 은혜로 상을 내리심이 격식에서 벗어났사옵니다. 채소를 채우던 위장이 궁궐의 다진 고기 맛으로 배부르고, 쑥대밭에 놀던 종적이 물을 댄 정원에서 노닐었사옵니다. 위로는 폐하와 조정에 욕됨을 끼치고, 아래로는 미천한 신분에 어긋나게 되었으니, 신이 어찌 먹고 쉰다고 하여 스스로 평안하겠사옵니까?

일찍이 신이 자취를 거두고 영화를 피하며, 문을 닫고 은혜를 사양하며, 분수를 모르는 몰염치한 죄를 천지신명께 스스로 사죄코자 하였사옵니다. 하지만 융성한 성은이 무거워 작은 보답도 갚지 못하였고, 또한 신의 근력이 아직 말을 타고 채찍질하는 노고는 감당할 만하였사옵니다. 이에 부득불 앉은 자리를 더럽히며 도로 주저앉아, 만분의 일이라도 은혜를 갚는 정성을 보이고, 곧 물러나 고향 선영(先塋)을 지키며 여생을 마치고자 하였사옵니다.

 

今殊遇未答, 而年齡焂高 微悃莫展, 而齒髮先衰.

形如病木 不秋而自枯, 心如眢井 不汲而自渴.

雖欲復效犬馬之力, 少報丘山之德, 其勢末由矣.

今天下賴陛下神聖, 四夷率服, 兵革不用, 萬民又安 桴鼓不警.

天休滋室 年穀頻登, 庶幾致三代大同熙皡之治矣.

금수우미답 이연령숙고 미곤막전 이치발선쇠

형여병목 불추이자고 심여원정 불급이자갈

수욕부효견마지력 소보구산지덕 기세말유의

금천하뢰폐하신성 사이솔복 병혁불용, 만민우안 부고불경

천휴자실 연곡빈등 서기치삼대대동희호지치의

 

이제 각별한 은덕을 갚지 못하고, 나이가 벌써 높아 작은 정성도 펴지 못하고, 치아와 모발이 먼저 쇠해 버렸사옵니다. 모습이 병든 나무같이 가을이 아닌데도 스스로 시들고, 마음은 마른 우물 같이 물을 긷지 않아도 저절로 말랐사옵니다. 비록 다시 개와 말의 작은 힘이라도 본받아, 조금이라도 태산 같은 은덕을 갚고자 하오나, 기세(氣勢)를 펼 데가 없사옵니다.

이제 천하는 폐하의 큰 덕에 힘입어, 사방의 오랑캐들이 복종하여 병기를 쓸 데가 없고, 만백성이 또한 평안하여 북채와 북도 놀라지 않사옵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도리는 더욱 불어나고, 해마다 곡식은 빈번하게 결실하니, 거의 삼대(三代)와 크게 같아, 태평성대의 다스림에 이르렀사옵니다.

 

雖令臣久留輦轂之下, 冒居廟堂之上, 不過奉朝請 而費廩粟.

坐聽康衢擊壤之歌而已, 尙何有經理猷爲之事乎?

噫! 君臣猶父子也. 父母之心 雖不肖不才之子, 在於膝下則喜之 出於門外則思之.

臣伏想陛,下 必以臣爲簪履舊物經幄, 老臣不忍其一朝退去.

而鳴呼人子之思父母 何異於父母之愛其子也?

수령신구류련곡지하 모거묘당지상 불과봉조청 이비름속

좌청강구격양지가이이 상하유경리유위지사호

희 군신유부자야 부모지심 수불초부재지자 재어슬하칙희지 출어문외칙사지

신복상폐하 필이신위잠리구물경악 노신불인기일조퇴거

이명호인자지사부모 하이어부모지애기자야

 

비록 신으로 하여금 조정에 머물러 종묘에 거처하게 할지라도, 조정의 청을 받들어 창고 곡식만 허비하는 데 불과할 뿐이옵니다. 앉아 격양가(擊壤歌)를 들을 뿐이요, 아직도 어찌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 꾀를 내는 일이 있겠습니까?

아, 군신 관계는 부자와 같사옵니다. 부모의 마음은 비록 못난 재주 없는 자식일지라도, 슬하에 있으면 기쁘고 문밖에 외출하면 염려되옵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신을 비녀와 신발, 옛 물건, 낡은 휘장처럼 여기시어, 노신을 차마 하루아침에 내치지 못하시옵니다. 아, 자식의 도리로 부모를 생각하오니, 어찌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겠사옵니까?

 

臣荷陛下眷注之寵旣至矣, 沐陛下生成之澤亦深矣. 一毫一毛 莫非造化陶鑄之功,

則臣亦豈欲遠辭天陛, 退伏丘壑, 便訣堯舜之聖哉?

第已盈之器 不可使濫, 已泛之駕 不可復乘. 伏乞陛下, 諒臣不堪任事, 察臣不願居尊.

特許卷歸松楸 以保殘齡, 俾免亢龍之悔. 臣謹當歌詠聖德 感激洪私, 以圖結草之報矣.”

신하폐하권주지총기지의 목폐하생성지택역심의 일호일모 막비조화도주지공

칙신역기욕원사천폐 퇴복구학 편결요순지성재

제이영지기 불가사람 이범지가 불가부승 복걸폐하 량신불감임사 찰신불원거존

특허권귀송추 이보잔령 비면항룡지회 신근당가영성덕 감격홍사 이도결초지보의

 

신이 폐하께서 돌봐주시는 은혜가 이미 지극하고, 폐하께서 내리신 은택을 입음이 이미 깊사옵니다. 한 터럭만큼이라도, 인재를 길러내는 공로가 없으시지 않다면, 신 또한 어찌 폐하를 멀리 떠나 물러나 산속에 엎드려, 문득 요순 같은 성상을 영결할 수 있사오리까?

다만 이미 가득 찬 그릇은 넘치게 할 수 없으며, 이미 젖어버린 가마는 다시 탈 수 없사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이 맡은 일을 감당하지 못함을 헤아리시고, 신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을 원치 않고 있음을 살피시옵소서. 특히 고향에 돌아가 남은 생을 보존케 하심을 허락하시고, 지극히 높은 지위에 오르는 후회를 면하게 하옵소서. 신이 삼가 마땅히 성덕을 노래하고 사사로운 은혜와 덕택에 감격하고, 결초보은(結草報恩)을 도모하게 하여 주옵소서.”

 

上覽其疏, 乃以手書 賜批曰 :

“卿勳業 溢於鍾鼎, 德澤被於生靈, 學術足以贊治, 威望足以鎭國 卿卽國家之柱石.

寡躬之股肱也. 昔太公召公齒幾百歲, 而尙輔周室 能致至理.

今卿旣非禮經所謂 致仕之年, 則卿雖謝事徑退, 朕不可許矣.

상람기소 내이수서 사비왈

경훈업 일어종정 덕택피어생령 학술족이찬치 위망족이진국 경즉국가지주석

과궁지고굉야 석태공소공치기백세 이상보주실 능치지리

금경기비례경소위 치사지년 칙경수사사경퇴 짐불가허의

 

황상이 그 상소를 보시고 손수 써서 비답을 내리시기를,

“경의 큰 공과 업적은 저울의 눈금을 넘치고, 덕택은 백성들에게 입혔으며, 학술은 나라의 다스림을 돕고, 위엄과 덕망은 나라를 기울게 하였으니, 경은 곧 국가의 기둥과 주춧돌이요, 짐의 팔다리로다.

옛날 강태공(姜太公)과 소공(召公)은 나이 거의 백 세였으나, 오히려 주왕실을 도와 지극한 다스림에 이를 수 있었노라. 이제 경은 이미 예경(禮經)에 이른바 치사(致仕)는 아니니, 경이 비록 일을 떠나 빨리 물러나고자 할지라도 짐은 허락할 수 없도다.

 

況張璧彊 本有仙骨, 李鄴侯老猶不衰. 松栢傲霜雪而猶勁, 蒲柳値秋風而先零,

此其性質之堅脆不同也. 聊自有松栢之操, 何憂蒲柳之衰乎?

朕觀卿風采猶新, 不減於玉堂草詔之日. 精力尙旺, 不讓於渭橋討賊之時.

卿雖稱老 朕固不信. 須回箕山之高節, 以贊唐虞之郅治 是朕之望也.

황장벽강 본유선골 이업후노유불쇠 송백오상설이유경 포류치추풍이선영

차기성질지견취부동야. 료자유송백지조 하우포류지쇠호

짐관경풍채유신 불감어옥당초조지일 정력상왕 불양어위교토적지시

경수칭노 짐고불신 수회기산지고절 이찬당우지질치 시짐지망야.

 

하물며 장벽강(張辟彊)은 본디 선골을 지녔고, 이업후(李鄴侯)는 늙어서도 오히려 쇠잔하지 않았도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눈과 서리에도 꼿꼿하여 오히려 강경하며, 부들과 버들은 가을을 만나면 먼저 차가워지니, 이는 그 성질의 견고함과 약함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 어찌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갖고서, 어찌 부들과 버들의 쇠잔함을 걱정하는가?

짐은 경의 풍채가 새로워져, 옥당에서 조서를 초하던 날과 손색이 없음을 볼 수 있도다. 또 정력이 오히려 왕성해져 위교(渭橋)에서 적을 토벌하던 시절에 못지않음도 볼 수 있도다. 경이 비록 늙었다고 칭하고 있으나, 짐은 진실로 믿지 않노라. 모름지기 기산(箕山)의 높은 절개를 돌이켜, 당우(唐虞) 시절의 선정을 이루도록 도움이, 이것이 짐의 바람이라.”

 

丞相前世佛門高弟, 且受藍田山道人秘訣 多有修鍊之功, 故春秋雖高 容顔不衰,

時人皆以仙人疑之, 是以詔書中及之.

此後丞相又上疏, 求退甚懇 上引見曰 :

“卿辭一至於此 朕豈不能勉副. 以成卿五湖高節乎!

但卿若就所封之國, 非徒國家大事, 無可與相議者.

승상전세불문고제 차수남전산도인비결 다유수련지공 고춘추수고 용안불쇠

시인개이선인의지 시이조서중급지

차후승상우상소 구퇴심간 상인견왈

경사일지어차 짐기불능면부 이성경오호고절호

단경약취소봉지국 비도국가대사 무가여상의자

 

승상은 전생의 불가의 높은 제자로, 또 남전사도인(藍田山道人)의 비결을 받아 수련의 공이 많았으므로, 나이가 많았지만 얼굴이 노쇠하지 않아, 당시 사람들이 신선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러므로 조서 중에 이를 언급했던 것이다.

이후 승상이 또 상소하여 은퇴를 구함이 매우 간절하니, 성상이 불러 보시고 이르기를,

“경의 사양함이 한결같아 이에 이르렀으니, 짐이 어찌 힘써 모른 척할 수 없도다. 경은 오호(五湖)의 고절(高節)이 되라. 그러하나 경이 봉한 나라에 나아가면, 국가의 대사뿐만 아니라 더불어 상의할 자가 없도다.

 

況今皇太后 騩馭上賓, 長秋已空. 朕何忍與英陽及蘭陽相離也?

城南四十里有離宮, 卽翠微宮也. 昔玄宗避暑之處也.

此宮窈而深 僻而曠, 可合暮年優遊, 故特賜卿, 使之居處矣.”

卽下詔加封丞相衛國公, 爵太師又加賞封五千戶 姑收丞相印綬.

황금황태후 귀어상빈 장추이공 짐하인여영양급난양상리야?

성남사십리유이궁 즉취미궁야 석현종피서지처야

차궁요이심 벽이광 가합모년우유 고특사경 사지거처의

즉하조가봉승상위국공작태사 우가상봉오천호 고수승상인수

 

하물며 지금은 황태후가 귀어(騩馭)의 손님으로 가 계시니, 긴 가을이 이미 공허하도다. 짐이 어찌 차마 영양 난양공주와 떨어져 있겠는가? 성 남쪽 사십 리에 이궁(離宮)이 있으니, 곧 취미궁(翠微宮)이라. 옛날 형조께서 더위를 피하시던 곳이라. 이 궁은 조용하고 깊고 외진데다 광활하여, 늘그막에 놀기에 적합하므로, 특별히 경에게 하사하노니 그곳에 거처케 하라.”

곧 조서를 내려, 승상위국공(丞相衛國公)에 봉하시고, 태사(太師) 작위를 더하시고 상급으로 오천호를 더하시며, 승상의 인수를 올리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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