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구운몽 한문본

권지삼 - 17. 소유가 불가에 귀의하려는데, 한 승려가 나타나다

New-Mountain(새뫼) 2020. 12. 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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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소유가 불가에 귀의하려는데, 한 승려가 나타나다

 

 

丞相尤感聖恩 叩頭祗謝, 率家卽移接於翠微宮. 此宮在終南山中, 樓臺之壯麗 景致之奇絶

卽蓬萊仙境 王維學士 詩曰 : ‘仙居未必能勝此 何事吹嘯向碧空.’

以此一句, 可占其絶勝矣.

승상우감성은 고두지사 솔가즉이접어취미궁 차궁재종남산중 누대지장려 경치지기절

즉봉래선경 왕유학사 시왈 선거미필능승차 하사취소향벽공

이차일구 가점기절승의

 

승상은 더욱 성은에 감격하여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고, 가솔을 거느리고 곧 취미궁으로 옮겼다. 이 궁은 종남산 가운데에 있어 누대가 장려하고, 경치가 기이하게 빼어나니 곧 봉래(蓬萊)의 선경이었다.

왕유의 시에,

‘신선의 거처도 반드시 이보다 낫지 못하리니 무슨 일로 피리를 불어 벽공을 향하는고?’

라고 한 이 한 구로 뛰어난 경치를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丞相空其正殿, 奉安詔旨及御製詩文. 其餘樓閣臺榭 兩公子諸娘子分居.

丞相日與兩夫人六娘子 臨水弄月, 入谷尋梅 過雲壁, 則賦詩而寫之.

坐松陰 則橫琴而彈之 晩年淸閑之福 令人起羨.

丞相就閑謝客 亦已累年矣.

승상공기정전 봉안조지급어제시문 기여누각대사 양공자제낭자분거

승상일여양부인육낭자 임수농월 입곡심매 과운벽 칙부시이사지

좌송음 칙횡금이탄지 만년청한지복 영인기선

승상취한사객 역이누년의

 

승상은 정전(正殿)을 비워, 조서와 어지 및 어제시문(御製詩文)을 받들어 모셨다. 그리고 그 나머지 누각과 대와 정자는 두 공자와 여러 낭자가 나누어 거처하였다.

승상은 날마다 두 부인과 여섯 낭자와 냇가에서 달을 희롱하고 계곡에 들어 매화를 찾고 구름이 지나가는 석벽을 지나치면, 시를 지어 썼다. 소나무 그늘에 앉으면 거문고를 비껴 안고 타니, 늘그막의 맑고 한가로운 복이 사람들을 부럽게 하였다.

승상이 한가함으로 나아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仲秋旣望 卽丞相晬日. 諸子女設宴獻壽, 至十餘日.

繁華景色 不可言也. 宴罷 諸子女 各歸其家.

俄而 菊秋佳節迫矣. 菊花綻萼, 茱萸垂實, 正當登高之時也.

중추기망 즉승상수일 제자녀설연헌수 지십여일

번화경색 불가언야 연파 제자녀 각귀기가

아이 국추가절박의 국화탄악 수유수실 정당등고지시야

 

팔월의 열엿새 날은 곧 승상의 생일이었다. 여러 자녀가 잔치를 베풀고 헌수(獻壽)한 지가 십여 일에 이르렀는데, 번화한 광경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잔치가 파하자, 여러 자녀는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어언 국화가 피는 아름다운 계절이 다가왔다. 국화는 붉은 봉오리가 벌어지고, 산수유는 열매를 떨구니, 정히 등고절(登高節)을 맞이했다.

 

翠微宮西畔有高臺, 登臨則八百里秦川 如掌樣見也, 丞相最愛其臺.

是日 與兩夫人六娘子, 登其上 頭揷一枝黃菊, 以賞秋景.

乃斥珍羞屛管絃, 使春雲挈果榼 使蟾月携玉壺滿酌泛菊.

與妻妾以次暢飮, 而已返照倒射於昆明, 雲影低垂於廣野, 秋色燦爛如展活畵.

취미궁서반유고대 등임칙팔백리진천 여장양견야 승상최애기대

시일 여양부인육낭자 등기상 두삽일지황국 이상추경

내척진수병관현 사춘운설과합 사섬월휴옥호만작범국

여처첩이차창음 이이반조도사어곤명 운영저수어광야 추색찬란여전활화

 

취미궁 서쪽 언덕에는 높은 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오르면 팔백 리 진천(秦川)이 손바닥같이 보여 승상은 그 대를 가장 좋아했다. 이날 두 부인 및 여섯 낭자와 그 대에 올라, 머리에 황국화 한 가지를 머리에 꽂고, 가을 경치를 구경했다.

진수성찬을 물리고 관현악을 울리며, 춘운에게 과일 그릇을 가져오게 하고, 섬월에게 술병을 가져다 잔에 가득 부어 국화를 띄우게 하였다. 처첩들과 차례로 읊조리며 술을 마시는데, 이미 저녁 햇살은 곤명(昆明)에 거꾸로 비치고, 구름 그림자는 넓은 들에 낮게 드리웠다. 가을빛이 찬란하니, 마치 생생한 그림 폭을 펼친 듯했다.

 

丞相手把玉簫 自吹數曲, 其聲鳴鳴咽咽, 如怨如思 如泣如訴.

若荊卿渡易水 與高漸離擊筑相和, 覇王在帳中 與虞美人唱歌怨別,

諸美人悲思盈襟 慘怛不樂.

兩夫人問曰 : “丞相早成功名, 久亨富貴 一世所羨, 近古所罕. 當此佳辰 風景正美

菊英泛觴, 玉人滿座, 是亦人生樂事. 而簫聲甚哀 使人堪涕, 今日之簫聲, 非昔日之吹簫也.”

승상수파옥소 자취수곡 기성명명열열 여원여사 여읍여소

약형경도역수 여고점리격축상화 패왕재장중 여우미인창가원별

제미인비사영금 참달불락

양부인문왈 승상조성공명 구형부귀 일세소선 근고소한 당차가신 풍경정미

국영범상 옥인만좌 시역인생낙사 이소성심애 사인감체 금일지소성 비석일지취소야

 

승상이 손으로 옥퉁소를 잡고 스스로 여러 곡을 부니,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고 원망하는 듯, 그리워하는 듯,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는 듯하였다. 형가(荊軻)가 역수를 건널 적에,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연주하여 서로 화답함과 같았고, 패왕(覇王)이 장막 중에서 우미인(虞美人)과 노래하며 이별을 원망하는 듯했다. 모든 미인이 쓸쓸해 하여 울적해 하였다.

두 부인이 여쭙기를,

“승상이 일찍이 공명을 이미 이루고 오랫동안 부귀를 누려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바요, 근래에 드문 바이옵니다. 좋은 시절을 당하여 풍경은 정히 아름답고, 국화 꽃잎을 술잔에 띄우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리에 가득하니, 이 또한 인생에 즐거운 일이옵니다. 그런데 퉁소 소리가 심히 슬퍼, 사람들에게 눈물을 감당케 하니, 오늘 퉁소 소리는 옛날에 듣던 퉁소가 아니옵니다.”

 

丞相乃投玉簫與八人 徒倚欄干, 擧手指明月而言曰 :

“北望則平郊四曠, 頹嶺獨立 夕照殘影. 明滅於荒草之間者, 卽秦始皇阿房宮也.

西望則悲風悄林, 暮雲幕山者, 漢武帝茂陵也.

東望則粉牆繚繞於靑山, 朱薨隱暎於碧空. 只有明月 自來自去, 玉欄干頭 更無人倚者,

卽玄宗皇帝與太眞, 同遊之華淸宮也.

승상내투옥소여팔인 도의난간 거수지명월이언왈

북망칙평교사광 퇴령독립 석조잔영 명멸어황초지간자 즉진시황아방궁야

서망칙비풍초림 모운막산자 한무제무릉야

동망칙분장료요어청산 주훙은영어벽공 지유명월 자래자거 옥란간두 갱무인의자

즉현종황제여태진 동유지화청궁야.

 

승상이 옥퉁소를 던지고, 여덟 여인과 난간을 의지하고, 손을 들어 명월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북쪽을 바라보니 평평한 들은 사방이 밝은데, 무너진 언덕이 홀로 서서 희미한 저녁 빛이 비치도다. 황량한 풀밭에 보이는 듯 마는 듯한 저곳은,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이라. 서쪽을 바라보니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산을 덮은 곳은, 한 무제의 무릉(茂陵)이라.

동쪽을 바라보니 분을 칠한 성이 청산을 둘렀고, 붉은 박공(牔栱)이 푸른 하늘에 은은히 비치도다. 명월은 오락가락하되 옥난간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현종 황제가 태진비(太眞妃)와 함께 노시던 화청궁(華淸宮)이라.

 

噫! 此三君 皆千古英雄. 以四海爲戶庭 以億兆爲臣妾,

雄豪意氣 軒輊宇宙, 直欲挽三光 而閱千歲矣. 而今安在哉?

少游以河東一布衣. 恩承聖主 位致將相, 且與諸娘子相遇, 厚意深情 至老益密,

非前生未了之緣, 必不及於是也. 男女以緣而會 緣盡而歸, 乃天理之常也.

희 차삼군 개천고영웅 이사해위호정 이억조위신첩

웅호의기 헌지우주 직욕만삼광 이열천세의 이금안재재

소유이하동일포의 은승성주 위치장상 차여제낭자상우 후의심정 지노익밀

비전생미료지연 필불급어시야 남녀이연이회 연진이귀 내천리지상야

 

아, 이 세 임금은 모두 천고의 영웅이라. 온 세상으로 집을 삼고 수많은 백성들로 신하와 첩을 삼아, 용맹스럽고 의로운 의기를 우주에 겨루었는데, 망령된 일이었도다. 곧장 세 빛을 끌어당겨 천 년을 보고자 하였더니, 그들은 이제 다 어디 있는가?

소유는 본디 하남 땅 베옷 입은 선비였도다. 덕이 높은 황상의 은혜를 입어, 벼슬이 장상에 이르고, 여러 낭자를 서로 만나 두터운 마음과 깊은 정이 늘그막에 이르러 더욱 깊어졌노라. 만일 전생에 못다한 인연이 아니라면 반드시 여기에 미치지는 못했으리라. 남녀는 인연으로 만나 인연이 다하면, 각각 돌아감은 하늘의 도리로 떳떳한 일일 것이라.

 

吾輩一歸之後, 高臺自頹, 曲池且堙. 今日歌殿舞榭 使作衰草寒烟

必有草竪牧童 悲歌暗歎, 往來而相謂曰

‘此乃楊丞相與諸娘子所遊之處. 大丞相富貴風流 諸娘子玉容花態 已寂寞矣.’

人生到此 則豈不如一瞬之頃乎?

오배일귀지후 고대자퇴 곡지차인 금일가전무사 사작쇠초한연

필유초수목동 비가암탄 왕래이상위왈

차내양승상여제낭자소유지처 대승상부귀풍류 제낭자옥용화태 이적막의

인생도차 즉기불여일순지경호

 

우리가 한 번 돌아간 후에는, 높은 대가 저절로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워질 것이라. 오늘 가무하던 전각과 정자가, 거친 초목과 차가운 안개에 묻힐 것이니, 반드시 나무꾼과 목동이 슬피 노래하고 몰래 탄식하여, 오르내리며 다음처럼 이를 것이다.

‘여기는 양 승상이 여러 낭자와 놀던 곳이었지만, 승상의 부귀 풍류와 여러 낭자의 옥 같은 얼굴과 꽃 같은 모습은 이미 적막히 사라졌도다.’

인생이 여기에 이르는 것이 어찌 일순간이 아니리오.

 

天下有三道, 曰儒道 曰仙道 曰佛道. 三道之中 ,惟佛最高 儒道成全.

明倫紀 貴事業 留名於身後而已. 仙道近誕, 自古求之者甚多 而終末能得之.

秦皇, 漢武, 及玄宗皇帝 可鑑也.

吾自致仕來此之後, 每夜着睡 則夢中必參禪於蒲團之上 此必與佛家有緣也.

천하유삼도 왈유도 왈선도 왈불도 삼도지중 유불최고 유도성전

명윤기 귀사업 류명어신후이이 선도근탄 자고구지자심다 이종말능득지

진황, 한무, 급현종황제 가감야

오자치사래차지후 매야착수 칙몽중필참선어포단지상 차필여불가유연야

 

천하에는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와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라. 세 도 중에 불도가 가장 높고, 유도는 온전함을 이루노라. 유도는 윤리와 기강을 밝히고, 살아서의 일을 귀히 여기고, 죽은 후에 이름을 남길 뿐이라. 선도는 미덥지 않은 거짓에 가까우니, 예부터 이를 구하는 자들은 심히 많으나 끝내 이를 얻을 수는 없었노라. 진 시황, 한 무제, 현종 황제를 보면 알리로다.

내 벼슬에서 물러난 후로부터, 매일 밤에 잠이 들면 꿈속에 반드시 포단(蒲團) 위에서 참선하니, 이 필연 불가와 인연이 있음이라.

 

我將效張子房 從赤松子, 棄家求道 越南海 尋觀音, 上義臺 禮文殊,

得不生不滅之道 欲超塵世之苦海. 但與君輩 半生相從 而未幾將作遠別,

故悲愴之心 必自發於簫聲之中也.”

아장효장자방 종적송자 기가구도 월남해 심관음 상의대 예문수

득불생불멸지도 욕초진세지고해 단여군배 반생상종 이미기장작원별

고비창지심 필자발어소성지중야

 

내가 장차 장자방(張子房)이 적송자(赤松子) 좇음을 본받으려 하고, 집을 버리고 도를 구하여 남해를 건너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의상대에 올라 문수보살께 예를 드려, 불생불멸(不生不滅)할 도를 얻어 속세의 괴로움의 바다에서 초탈하려 하도다. 다만, 여러 낭자와 반평생을 서로 좇다가, 얼마 후에 영원히 이별하려 하니, 슬픈 마음이 자연 퉁소 소리 중에 나타남이로다.”

 

諸娘子前身 皆南岳仙女, 且塵緣將盡於此時也.

及聞相公之言 自有感動之心, 齊言曰 :

“相公繁華之中 乃有是心, 豈非天之所啓乎? 妾等娣妹八人, 當共處深閨

朝夕禮佛 以待相公之還. 而相公今行, 必値明師而遇良朋 得聞大道矣.

伏望得道之後, 必先敎妾等.”

제낭자전신 개남악선녀 차진연장진어차시야.

급문상공지언 자유감동지심 제언왈

상공번화지중 내유시심 기비천지소계호 첩등제매팔인 당공처심규

조석예불 이대상공지환 이상공금행 필치명사이우양붕 득문대도의

복망득도지후 필선교첩등

 

여러 낭자는 전생이 모두 남악의 선녀들이었는데, 또한 세속의 인연이 이때에 다하려 했다. 상공의 말을 듣고 절로 감동하는 마음이 있어, 일제히 이르기를,

“상공이 부귀하고 번화 중에 이렇듯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시니, 어찌 하늘이 계시한 바가 아니오리까? 첩 등 자매 팔 인이 마땅히 깊은 규방 안에서 함께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며 상공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사옵니다. 상공이 이제 가시면 반드시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나 큰 도를 얻으리다. 엎드려 비옵나니 도를 얻으신 후에 부디 첩 등을 먼저 가르치소서.”

 

丞相大喜曰 : “吾九人之心 旣相合矣. 尙何事之可慮乎? 我當以明日作行矣.”

諸娘子曰 : “妾等當各奉一盃, 以餞丞相矣.”

方命待兒 洗盞更酌矣 投筑之聲 忽出於欄外石逕.

諸人皆曰 : “何許人敢來於是處乎?”

승상대희왈 오구인지심 기상합의 상하사지가려호 아당이명일작행의

제낭자왈 첩등당각봉일배 이전승상의

방명대아 세잔갱작의 투축지성 홀출어난외석경

제인개왈 하허인감래어시처호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은 이미 서로 부합하도다. 오히려 무슨 일을 걱정하겠는가? 내 마땅히 내일 떠나가리라.”

여러 낭자가 아뢰기를,

“첩들은 마땅히 각각 한 잔씩을 받들어, 승상을 전송하리이다.”

방금 시녀를 명하여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게 하니, 축(筑)을 던지는 소리가 홀연히 난간 밖 돌길에서 들렸다.

여러 사람이 모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이곳으로 올라오나이다.”

 

已而 有一衲胡僧至前, 厖眉尺長 碧眼波明 形貌動靜甚異矣.

儼上高臺 與丞相對坐曰 : “山野之人 謁於大丞相矣.”

丞相已知非俗僧 忙起答禮曰 : “師傅來從何處乎?”

胡僧笑曰 : “丞相不解平生故人乎? 曾聞貴人善忘 果是矣!”

이이 유일납호승지전 방미척장 벽안파명 형모동정심이의

엄상고대 여승상대좌왈 산야지인 알어대승상의

승상이지비속승 망기답례왈 사부래종하처호

호승소왈 승상불해평생고인호 증문귀인선망 과시의

 

이미 한 승복을 입은 호승(胡僧)이 앞에 이르렀는데, 긴 눈썹이 한 자 길이는 되고 파란 눈이 물결처럼 맑았고, 외모와 몸동작이 심히 괴이했다. 뚜렷하게 높은 대에 올라 승상과 마주 앉아 이르기를,

“산야(山野) 사람이 대승상께 뵈옵나이다.”

승상이 이미 세속의 승려가 아닌 줄을 알고, 황망하게 일어나 답례하기를,

“사부께서는 어디서 오시나이까?”

호승이 웃으며 이르기를,

“평생 함께 지낸 이를 몰라보시나이까? 일찍이 귀인(貴人)은 잘 잊는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과연 옳소이다.”

 

丞相熟視之 似是舊面, 而猶不分明矣. 忽大悟 顧諸夫人而言曰 :

“少游曾伐吐藩時, 夢參於洞庭龍宮之宴, 歸路暫上於南岳,

見老和尙跏趺於法座 與衆弟子等講佛經矣. 師傅無乃夢中所見之和尙乎?”

胡僧拍掌大笑曰 : “是矣 是矣 然只記夢中之一見, 而不記十年之同處 誰謂楊丞相聰明乎?”

승상숙시지 사시구면 이유불분명의 홀대오 고제부인이언왈

소유증벌토번시 몽참어동정용궁지연 귀로잠상어남악

견노화상가부어법좌 여중제자등강불경의 사부무내몽중소견지화상호

호승박장대소왈 시의 시의 연지기몽중지일견 이불기십년지동처 수위양승상총명호

 

승상이 자세히 보니 과연 낯이 익은 듯했으나, 오히려 분명치는 않았다.

홀연 크게 깨달아 여러 부인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소유가 일찍이 토번을 정벌할 때, 꿈에 동정 용궁의 잔치에 가 참석하고 돌아올 길에 잠시 남악에 올랐소이다. 그때 늙은 화상(和尙)을 만났는데, 법좌(法座)에 가부좌하고 앉아서 여러 제자와 불경을 강론(講論)하였소. 사부는 곧 꿈속에 만났던 화상이 아니오이까?”

호승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옳소이다, 옳소이다. 그러나 꿈속에 잠깐 만나 본 일은 기억하면서, 십 년을 함께 지내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나이다. 뉘라서 양승상이 총명하다 말하나이까?”

 

丞相憫然曰 : “少游十六歲以前 不離父母之眼前, 十六歲登第 連有職名, 不出京城.

南使燕鎭 西擊吐藩之外, 足跡無所及處, 何時與師傅 十年相從乎?”

胡僧笑曰 : “丞相尙未醒昏夢矣.”

少游曰 : “師傅可能使少游大覺乎?”

승상민연왈 소유십육세이전 불리부모지안전 십육세등제 연유직명 불출경성

남사연진 서격토번지외 족적무소급처 하시여사부 십년상종호

호승소왈 승상상미성혼몽의

소유왈 사부가능사소유대각호

 

승상이 민망하여 이르기를,

“소유가 십육 세 이전에는 부모의 안전을 떠나지 않았고, 십육 세에 급제하여 연하여 벼슬이 있었으니, 경성 밖을 나가지 않았소이다. 남으로 연국(燕國)에 진을 개척하고, 서쪽으로 토번을 정벌한 외에는, 발자국이 미친 곳이 없었는데, 언제 사부와 십 년을 상종하였으리오?”

호승이 웃으며 이르기를,

“상공이 오히려 춘몽(春夢)을 깨지 못하였도다.”

소유가 이르기를,

“사부는 소유로 하여금 춘몽을 깨게 할 수 있겠나이까?”

 

胡僧曰 : “此不難矣.”

高擧手中錫仗 大叩欄干至再, 遽有白雲亂起於四面山谷之間

陣陣飛來 環擁臺上 昏昏暗暗, 尋丈不辨丞相若在醉夢中矣.

良久 乃大聲疾呼曰 : “師傅不以正道 指敎少游 乃以幻術相戱耶!”

言未盡 雲氣盡捲, 胡僧及 兩夫人六娘子 皆無蹤迹矣.

호승왈 차불난의

고거수중석장 대고난간지재 거유백운난기어사면산곡지간

진진비래 환옹대상 혼혼암암 심장불변승상약재취몽중의

양구 내대성질호왈 사부불이정도 지교소유 내이환술상희야

언미진 운기진권 호승급 양부인육낭자 개무종적의

 

호승이 답하기를,

“이는 어렵지 않나이다.”

손에 든 지팡이를 높이 들어 난간을 크게 두 번 두드렸다. 홀연 사방의 산골짜기에서 흰 구름이 어지럽게 일어나, 모인 자리에 날아와 대상을 에워싸 어두컴컴해져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니, 승상이 정신이 아득하여 마치 꿈속에서 술에 취한 듯했다.

소유는 한참 만에 큰소리를 내지르기를,

“사부는 올바른 길로 소유를 인도치 아니하고, 환술(幻術)로 서로 희롱하나이까?”

말을 다 하지 못하여서 구름이 다 걷히니, 호승과 두 부인과 육 낭자는 모두 종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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