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삼 - 8. 소유가 노모와 부인들과 함께 즐기며 영화를 누리다

New-Mountain(새뫼) 2020. 12.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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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유가 노모와 부인들과 함께 즐기며 영화를 누리다

 

 

丞相與兩人經夜行到故鄕, 初十六歲書生離親遠遊, 及其來覲擁

大丞相之軒車, 嚲魏國公之印綬, 重之以駙馬之豪貴, 四年間所成就者何如耶?

入謁於母夫人, 柳氏執其手而拊其背曰 :

“汝眞吾兒楊少游耶? 吾不能信也. 當昔誦六甲賦五言之時, 豈知有今日榮華也?”

승상여양인경야행도고향 초십육세서생리친원유 급기래근옹

대승상지헌거 타위국공지인수 중지이부마지호귀 사년간소성취자하여야

입알어모부인 유씨집기수이부기배왈

여진오아양소유야 오불능신야 당석송육갑부오언지시 기지유금일영화야

 

승상이 두 사람과 함께 밤을 지내고 떠나서 고향에 이르렀다. 처음 열여섯 살의 서생(書生)으로서 그 모친을 떠나 멀리 갔다가 이제야 돌아와서 뵈온즉, 대승상의 헌거(軒車)를 타고, 위국공의 인수를 늘어뜨리고, 부마의 호기를 갖추고 귀함을 겸하였으니, 네 해 동안에 성취한 것이 과연 어떠하였겠는가?

들어가 모부인(母夫人)을 뵈온즉, 유씨가 그 손을 잡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네가 참으로 나의 아들 양소유냐? 내 믿을 수가 없구나. 마땅히 전일에 육갑(六甲)을 외우며 오언(五言)의 시를 지었을 때 어찌 오늘의 영화가 있을 줄을 알았겠느냐?”

 

喜極而淚下也, 丞相把立名成功之終始, 娶室卜妾之顚末, 悉告無餘

柳夫人曰 : “汝父親每以汝爲大吾門者, 惜不令汝父親見之也.”

丞相省祖先丘墓, 以賞賜金帛爲大夫人, 設大宴獻壽 請宗族故舊隣里, 讌飮十日 陪大夫人登程,

諸路方伯列邑守宰 輻輳護行, 光彩輝映於一方矣.

희극이루하야 승상파립명성공지종시 취실복첩지전말 실고무여

유부인왈 여부친매이여위대오문자 석불령여부친견지야

승상성조선구묘 이상사금백위대부인 설대연헌수 청종족고구린리 연음십일 배대부인등정

제로방백열읍수재 폭주호행 광채휘영어일방의

 

기쁨이 극진하여 눈물을 흘리거늘, 승상이 이름을 세우고 공을 이룬 일의 처음과 끝과 장가들고 첩을 들인 일의 전말을 남김없이 모두 고하였다.

유부인이 이르기를,

“너의 부친이 매양 너한테 우리 집을 빛나게 할 자라 일렀는데, 너의 부친으로 하여금 이를 보게 할 수 없음이 애석하구나.”

승상이 선조들의 묘에 가서 성묘하고, 황상께서 상으로 주신 금과 비단으로써 대부인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어 헌수하고, 이웃 마을에 사는 일가친척들과 옛 친구들을 청하니, 술잔치가 열흘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부인을 모시고 귀경길에 오를 때에는, 각도의 방백(方伯)들과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다투어 몰려와서 호위하며 길을 보살피니, 광채가 한 방향으로 밝게 비추었다.

 

過洛陽分付本州, 招鴻月兩妓還報曰 : “兩娘子同向京師已有日矣.”

丞相頗以交違爲悵缺, 至皇城奉大夫人於丞相府中, 詣闕肅謝 兩宮引見, 賜賚金銀綵段十車,

俾爲大夫人壽 請滿朝公卿, 設三日大酺以娛之,

과락양분부본주 초홍월양기환보왈 양낭자동향경사이유일의

승상파이교위위창결 지황성봉대부인어승상부중 예궐숙사 양궁인견 사뢰금은채단십거

비위대부인수 청만조공경 설삼일대포이오지

 

승상이 낙양을 지나면서 본 고을에 분부하여 경홍과 섬월을 부르라 하였는데, 돌아와 알리기를,

“두 낭자가 함께 서울로 향한 지 이미 여러 날 되옵니다.”

승상은 길이 서로 어긋남을 자못 매우 섭섭히 여기었다.

황성(皇城)에 이르러서는 대부인을 승상부에 모시고, 대궐로 나아가니 태후와 황상께서 불러 보시고, 금은 채단 열 수레를 내리시어 대부인을 위하여 잔을 올리게 하셨으며, 만조백관들을 청하여 사흘 동안 큰 잔치를 베풀고 즐기게 하였다.

 

丞相擇吉日陪大夫人, 移入於賜新第, 園林臺沼亭榭宮于, 下皇居一等.

鄭夫人蘭陽公主行新婦之禮, 秦淑人賈孺人亦備禮謁見,

幣物之盛禮貌之恭, 足令大夫人敷和氣聳歡心也.

승상택길일배대부인 이입어사신제 원림대소정사궁우 하황거일등

정부인난양공주행신부지례 진숙인가유인역비례알현

폐물지성례모지공 족령대부인부화기용환심야

 

승상은 길일을 가려 잡아 대부인을 모시고, 황상께서 내리신 새집으로 옮겨 드니, 동산과 정자 그리고 누각, 연못이 황상께서 거처하신 곳과 비등할 정도로 굉장하였다.

정부인과 난양공주는 신혼(新婚)의 예를 행하고, 진숙인과 가유인이 또한 예를 갖추어 뵈오니, 폐물의 융성함과 예절에 맞는 몸가짐들이 공손하였으니, 족히 대부인으로 하여금 화기가 흐뭇하게 하였고 마음속으로부터 기꺼워하게 하였다.

 

丞相旣承壽親之命, 以恩賜之物又設大宴三日, 兩宮賜梨園之樂, 移御廚之饌 賓客傾朝廷矣.

丞相具彩服與兩公主, 高擎玉盃以次獻壽, 柳夫人甚樂.

宴未罷閽人入告門外, 有兩女子納名於大夫人及丞相座下矣.

丞相曰 : “必鴻月兩姬也.”

以此意告於大夫人卽招入, 兩妓叩頭拜謁於階前,

승상기승수친지명 이은사지물우설대연삼일 양궁사리원지락 이어주지찬 빈객경조정의

승상구채복여양공주 고경옥배이차헌수 유부인심락

연미파혼인입고문외 유양녀자납명어대부인급승상좌하의

승상왈필홍월양희야

이차의고어대부인즉초입 양기고두배알어계전

 

승상은 이미 노모께 헌수하라는 황상의 명을 받았기에, 위에서 내리신 물건으로써 다시 사흘간 큰 잔치를 베풀었다. 두 궁에서는 궐내의 악사를 보내주시고, 황상께서 잡수시는 음식을 내려주시니, 빈객들이 모두 조정에 모여들었다.

승상이 채색옷을 입고, 두 공주와 더불어 옥잔을 높이 들어 차례로 대부인께 올리고, 헌수를 기리자 유부인이 무척 즐거워하였다.

잔치가 아직 파하지 아니하였는데, 문 지키는 자가 들어와서 아뢰기를,

“문밖에 두 여자가 와서 대부인과 승상의 자리 아래에 명첩(名帖)을 드리나이다.”

승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적경홍과 계섬월 두 여인일 것이니라.”

하고 대부인께 이 뜻을 사뢰어 곧 불러들이니, 두 기생은 섬돌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고 뵈었다.

 

衆賓皆曰 : “洛陽桂蟾月河北狄驚鴻, 擅名久矣果然絶艶. 非楊相國風流 何能致此也?”

丞相命兩妓各奏其藝, 鴻月一時齊起曳珠履, 登瓊筵拂藕腸之輕衫,

飄石榴之彩袖, 對舞霓裳羽衣之曲, 落花飛絮撩亂於春風, 雲影雪色明滅於錦帳,

漢宮飛燕再生於都尉宮中, 金谷綠珠却立於魏公堂上.

중빈개왈 낙양계섬월하북적경홍 천명구의과연절염 비양상국풍류 하능치차야

승상명양기각주기예 홍월일시제기예주리 등경연불우장지경삼

표석류지채수 대무예상우의지곡 낙화비서료란어춘풍 운영설색명멸어금장

한궁비연재생어도위궁중 금곡록주각립어위공당상

 

모든 손님이 한가지로 말하기를,

“낙양 땅의 계섬월(桂蟾月)과 하북 땅의 적경홍(狄驚鴻)이 명예를 드날린 지가 오래되었는데, 과연 절세의 미인이로다. 양승상의 풍류가 아니라면, 어찌 여기에 오게 할 수 있으리오.”

승상이 두 기생에게 그 가진 재주를 펼치도록 명하였다. 경홍과 섬월이 동시에 함께 일어나 구슬 신을 끌고 잔치 무대에 올라, 연꽃무늬가 아로새겨진 가벼운 적삼을 떨치고, 석류가 아름답게 새겨진 소매를 휘날리며,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떨어진 꽃과 나부끼는 가지가 봄바람에 요란스레 떠다니며 구름 그림자와 눈빛이 비단 휘장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다. 이는 한나라 궁궐의 비연(飛燕)이 다시 도위궁중(都尉宮中)에 나타나고, 금곡(金谷)의 녹주(綠珠)가 다시 위공(魏公)의 당상에 선 것과 같았다.

 

柳夫人兩公主, 以錦繡縑帛賞賜兩人.

秦淑人與蟾月舊相識也, 話舊論情一喜一悲, 鄭夫人手把一箱別勸桂娘, 以酬薦進之恩,

柳夫人謂丞相曰 : “汝輩進謝於蟾月,而忘我從妹乎? 不可謂不背本者也.”

丞相曰 : “少子今日之樂皆鍊師之德也, 况母親旣入京師, 雖微下敎固欲奉請矣.”

유부인량공주 이금수겸백상사량인

진숙인여섬월구상식야 화구론정일희일비 정부인수파일상별권계랑 이수천진지은

유부인위승상왈 여배진사어섬월 이망아종매호 불가위불배본자야

승상왈 소자금일지락개련사지덕야 황모친기입경사 수미하교고욕봉청의

 

유부인과 두 공주는 온갖 비단을 상으로 두 사람에게 주었다.

진숙인과 섬월은 옛적에 서로 안면이 있는지라, 옛일을 얘기하며 서로 쌓였던 회포를 풀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였다. 정부인은 손으로 잔 하나를 잡아 따로 계랑(桂娘)에게 권함으로써 천거하여 준 은혜에 보답하였다.

이에 유부인이 승상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섬월에게는 나아가 사례하면서, 내 종매(從妹)는 잊었느냐? 근본을 저버린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도다.”

승상이 아뢰기를,

“소자의 오늘 즐거움은 모두 연사(鍊師)의 덕이옵고, 하물며 모친께서 이미 서울에 들어와 계신즉, 비록 하교가 없으시더라도 진실로 받들어 청하고자 하였나이다.”

 

卽送人於紫淸觀, 諸女冠云 : “杜鍊師入蜀三年尙未歸矣.”

柳夫人甚恨焉. 鴻月入楊府之後, 丞相侍人日益多矣, 各定其居處.

正堂曰慶福堂大夫人居之, 慶福之前曰燕喜堂, 左夫人英陽公主處之,

慶福之西曰鳳簫宮, 右夫人蘭陽公主處之, 燕喜之前凝香閣淸和樓, 丞相處之時時設宴於此,

其前太史堂禮賢堂, 丞相接賓客聽公事之處也.

즉송인어자청관 제녀관운 두연사입촉삼년상미귀의

유부인심한언 홍월입양부지후 승상시인일익다의 각정기거처

정당왈경복당대부인거지 경복지전왈연희당 좌부인영양공주처지

경복지서왈봉소궁 우부인난양공주처지 연희지전응향각청화루 승상처지시시설연어차

기전태사당례현당 승상접빈객청공사지처야

 

곧 사람을 자청관(紫淸觀)으로 보내니, 여관(女冠)들이 이르기를,

“두연사께서는 촉(蜀) 땅으로 가신지 삼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소이다.”

유부인이 매우 섭섭해하였다.

적경홍과 계섬월이 양승상의 부중에 들어온 후, 승상을 모시는 사람들이 날로 더욱 많아졌고 그 거처가 각각 정하여졌다.

대청의 큰방은 경복당(慶福堂)이라 부르는데 대부인이 살고, 경복당 앞 건물은 연희당(燕喜堂)이라 부르는데 좌부인 영양공주가 살며, 경복당 서쪽 건물은 봉소궁(鳳簫宮)이라 부르는데 우부인 난양공주가 살았다. 연희당 앞에 있는 응향각(凝香閣)과 청화루(淸和樓)는 승상이 거처하며 때때로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앞의 태사당(太史堂)과 예현당(禮賢堂)은 승상이 손님을 접대하며 공사(公事)를 살폈다.

 

鳳簫宮以南尋興院, 卽淑人秦彩鳳之室也, 燕喜堂以東迎春閣, 卽孺人賈春雲之房也.

淸和樓東西皆有小樓, 綠窓朱欄蔽虧掩映, 周回作行閣, 以接淸和樓凝香閣,

東曰賞花樓西曰望月樓, 桂狄兩姬各占其一樓.

봉소궁이남심흥원 즉숙인진채봉지실야 연희당이동영춘각 즉유인가춘운지방야

청화루동서개유소루 록창주란폐휴엄영 주회작행각 이접청화루응향각

동왈상화루서왈망월루 계적양희각점기일루

 

봉소궁 남쪽의 심흥원(尋興院)은 숙인 진채봉의 거실이고, 연희당 동쪽의 영춘각(迎春閣)은 곧 유인 가춘운의 방이었다.

청화루 동서에 각각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푸른 창과 붉은 난간이 이지러져 가리어 그늘지게 하고, 행각(行閣)으로 주위를 돌아 청화루와 응향각에 접하였다. 동쪽은 일러 상화루(賞花樓)라 하고, 서쪽은 일러 망월루(望月樓)라 하여 계섬월과 적경홍이 각각 한 누씩 차지하였다.

 

宮中樂妓八百人, 皆天下有色有才者也, 分作東西部, 左部四百人桂蟾月主之,

右部四百人狄驚鴻掌之, 敎以歌舞課以管絃, 每月會淸和閣較兩部之材,

丞相陪大夫人率兩公主, 親自等第以賞罰, 勝者以三盃酒賞之, 頭揷彩花一枝以爲光榮,

負者以一杯冷水罰之, 以筆墨畵一點於額上以愧其心.

以此衆妓之才日漸精熟, 魏府越宮女樂爲天下最, 雖梨園弟子不及於兩部矣.

궁중락기팔백인 개천하유색유재자야 분작동서부 좌부사백인계섬월주지

우부사백인적경홍장지 교이가무과이관현 매월회청화각교량부지재

승상배대부인솔량공주 친자등제이상벌 승자이삼배주상지 두삽채화일지이위광영

부자이일배냉수벌지 이필묵화일점어액상이괴기심

이차중기지재일점정숙 위부월궁여락위천하최 수리원제자불급어량부의

 

궁중의 악기(樂妓) 팔백 인이 다 천하에 자색이 드러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동서부로 나누어 왼편의 사백 인은 계섬월이 거느리고, 오른편의 사백 인은 적경홍이 맡아 가무를 가르치며 관현(管弦)을 시험하고, 매달 청화루(淸和樓)에 모이게 하여 동서 양부의 재주를 비교하였다.

승상은 대부인을 모시고 두 공주를 거느리며 누각에서 친히 등급을 매기어 상벌을 내리니, 이기는 자에게는 석 잔 술로써 상을 주고, 머리에다 꽃 한 가지를 꽂아서 영광을 빛내게 하고, 지는 자에게는 한 잔 냉수를 벌로 주고, 먹붓으로 이마에다 점 하나를 찍어서, 그 마음에 부끄러움이 들게 하였다.

이리하니 모든 기생의 재주가 날로 점점 정통하고 능숙하여, 위부(魏府)와 월궁(越宮)의 여악사들이 천하에 최고가 되었는데, 비록 이원(梨園)의 제자라 할지라도 이 양쪽 기녀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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