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삼 - 6. 소유는 앓는 척하여 영양공주가 정경패임을 밝혀내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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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유는 앓는 척하여 영양공주가 정경패임을 밝혀내다

 

 

心甚煩惱手拓紗窓, 河影流天月色滿庭, 乃曳履而出巡簷散步, 遠望英陽公主寢房,

繡戶玲瓏銀缸熀明, 丞相暗語曰 :

‘夜已深矣, 宮人何至今不寐乎? 英陽怒我而入送我於此, 或者已歸於寢室乎?’

恐出跫音擧趾輕步, 潛進窓外 則兩公主談笑之響, 博陸之聲出於外矣.

暗從櫳隙而窺之, 則秦淑人坐兩公主之前, 與一女子對博局,

祝紅呼白 其女子轉身挑燭, 正是賈春雲也.

심심번뇌수척사창 하영류천월색만정 내예이이출순첨산보 원망영양공주침방

수호령롱은항엽명 승상암어왈

야이심의 궁인하지금불매호 영양로아이입송아어차 혹자이귀어침실호

공출공음거지경보 잠진창외 즉양공주담소지향 박륙지성출어외의

암종롱극이규지 즉진숙인좌양공주지전 여일녀자대박국

축홍호백 기녀자전신도촉 정시가춘운야

 

소유가 마음이 매우 번뇌하여 손을 들어 사창을 여니, 은하수가 하늘에 흐르고 달빛이 뜰에 가득하였다. 이에 신을 끌고 나아가 이리저리 거닐다가, 멀리 영양공주의 침방 쪽을 바라보니, 수호(繡戶)가 영롱하고 은항(銀缸)이 휘황하였다.

승상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밤이 이미 깊었는데, 궁인이 어찌 지금껏 자지 않는가? 영양이 내게 노하여 나를 이리로 보내더니, 혹시 벌서 침실로 돌아갔는가?”

발소리가 날까 두려워 발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 가만히 창밖으로 나아가니, 두 공주가 담소하는 소리와 박륙(博陸)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가만히 창틈으로 엿본즉, 진숙인이 두 공주 앞에 앉아 한 여자와 더불어 주사위 판을 대하고 있었다. 홍(紅)을 빌며 백(白)을 부르더니, 그 여자가 몸을 돌려 촛불을 돋우는데, 이는 틀림없이 가춘운(賈春雲)이었다.

 

元來春雲欲觀光於公主大禮, 入來宮中已累日 而藏身掩跡, 不見丞相故, 丞相不知其來矣.

丞相驚訝曰 : ‘春雲何至於此耶? 必公主欲見而招來也.’

秦氏忽改局設馬而言曰 : “旣無睹物殊覺無味, 當與春娘爭賭矣.”

원래춘운욕관광어공주대례 입래궁중이루일 이장신엄적 불견승상고 승상부지기래의

승상경아왈 춘운하지어차야 필공주욕견이초래야

진시홀개국설마이언왈 기무도물수각무미 당여춘랑쟁도의

 

원래 춘운은 공주들의 대례(大禮)를 보기 위해 궁중에 들어온 지는 이미 여러 날이었다. 몸을 감추고 발자취를 숨기어 승상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승상은 춘운이 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

승상이 놀라 의아하게 여기며 이르기를,

“춘운이 어찌 이곳에 이르렀는가? 필연 공주가 보고자 하여 불렀음이로다.”

진씨가 홀연 주사위 판을 고쳐 말을 차리며 말하기를,

“내놓은 물건이 없으므로 별반 흥미가 없으니, 내 마땅히 춘랑과 더불어 내기를 하겠노라.”

 

春雲曰 : “春雲本貧女也, 勝則一器酒肴亦幸矣, 淑人長在貴主之側, 視彩錦如麤織,

以珍羞爲藜藿, 欲使春雲以何物爲賭乎?”

彩鳳曰 : “吾不勝 則吾一身所佩之香, 粧首之飾, 從春雲所求而與之,

娘子不勝 從我請也, 是事於娘子固無所費也.”

 

춘운왈 춘운본빈녀야 승즉일기주효역행의 숙인장재귀주지측 시채금여추직

이진수위려곽 욕사춘운이하물위도호

채봉왈 오불승 즉오일신소패지향 장수지식 종춘운소구이여지

낭자불승 종아청야 시사어낭자고무소비야

 

춘운이 이르기를,

“춘운은 본디 가난한 여자이외다. 이기면 곧 한 그릇의 술안주도 또한 다행으로 아나이다. 숙인께서는 귀주 마마의 곁에 오래 계셨기에, 추직(麤織)과 같은 채색 비단을 보고 진귀한 것들에 싫증이 나셨을 것인데, 춘운에게 무슨 물건을 내기하라 하나이까?”

채봉이 답하기를,

“내가 이기지 못하면, 곧 내 몸에 찬 노리개와 머리에 꽂은 비녀를 춘운이 구하는 대로 줄 것이요. 낭자가 이기지 못하면 내가 청하는 말을 들을지니, 이 일은 실로 낭자에게는 허비될 것이 없으리다.”

 

春雲曰 : “所欲請者何事, 所欲聞者何語?”

彩鳳曰 : “我頃聞兩位貴主私語, 春娘爲仙爲鬼, 以欺丞相云 而我未得其詳,

娘子負則以此事, 替爲古談而說與我也.”

춘운왈 소욕청자하사 소욕문자하어

채봉왈 아경문양위귀주사어 춘랑위선위귀 이기승상운 이아미득기상

낭자부즉이차사 체위고담이설여아야

 

춘운이 묻기를,

“청하고자 하시는 바는 무슨 일이며, 듣고자 하시는 바는 무슨 말이오?”

채봉이 답하기를,

“내 지난번에 두 귀주께서 사사로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나이다. 낭자가 신선도 되고 귀신도 되어, 그로써 승상을 속이었다 하는데, 내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나이다. 낭자가 지거든, 이 일을 옛이야기 삼아 내게 들려주소서.”

 

春雲乃推局向英陽公主而言曰 : “小姐小姐! 小姐平日愛春雲可謂至矣,

何以爲此可笑之說, 悉陳於公主乎 淑人亦旣聞之, 宮中有耳之人孰不知之?

春雲自此以何面目立乎?”

彩鳳曰 : “春娘子! 吾公主何以爲春娘子之小姐乎? 英陽公主卽吾大丞相夫人魏國公女君,

年齒雖少爵位已高, 豈可復爲春娘子之小姐乎?”

춘운내추국향영양공주이언왈 소저소저 소저평일애춘운가위지의

하이위차가소지설 실진어공주호 숙인역기문지 궁중유이지인숙부지지

춘운자차이하면목립호

채봉왈 춘랑자 오공주하이위춘랑자지소저호 영양공주즉오대승상부인위국공녀군

연치수소작위이고 기가부위춘랑자지소저호

 

춘운이 이에 주사위 판을 밀어 놓고, 영양공주를 향하여 여쭈기를,

“소저, 소저. 소저는 평일에 춘운을 사랑하심이 지극하시었는데, 어찌 이런 우스운 이야기를 공주께 다 말씀하시었나이까? 숙인께서도 또한 이 이야기를 들었다 하오니, 궁중에 귀 있는 사람이야 누군들 알지 못하오리까? 이제 춘운이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으리이까?”

채봉이 이르기를,

“춘낭자여, 우리 공주가 어찌 춘낭자의 소저가 되리오? 영양공주께서는 곧 우리 대승상의 부인이요, 위국공의 왕비이시옵니다. 연세는 비록 젊으시나 작위는 이미 높으시니, 어찌 다시 춘낭자의 소저가 될 수 있으리오.”

 

春雲曰 : “十年之口一朝難變, 爭花鬪草 宛如昨日, 公主夫人吾不畏也.”

仍琅琅而笑 蘭陽公主問於英陽曰 : “春雲話尾小妹亦未及聞之, 丞相其果見欺於春雲乎?”

英陽曰 : “相公之見欺於春雲者多矣, 無薪之突烟豈生乎?

但欲見其恇怯之狀矣, 冥頑太甚不知惡鬼, 古所謂好色之人,

色中餓鬼者果非誣也, 鬼之餓者 豈知鬼之可惡乎?”

춘운왈 십년지구일조난변 쟁화투초 완여작일 공주부인오불외야

잉랑랑이소 난양공주문어영양왈 춘운화미소매역미급문지 승상기과견기어춘운호

영양왈 상공지견기어춘운자다의 무신지돌연기생호

단욕견기광겁지상의 명완태심부지악귀 고소위호색지인

색중아귀자과비무야 귀지아자 기지귀지가오호

 

춘운이 이르기를,

“십 년 익은 입을 하루아침에 고치기 어렵소이다. 꽃을 다투고 가지를 갖고자 싸우던 일이 완연히 어제 같은데, 공주 부인이 두렵다는 생각이 제겐 들지 않나이다.”

이어서 소리내어 크게 웃거늘, 난양공주가 영양공주에게 묻기를,

“춘운의 이야기 끝을 소매(小妹)도 또한 듣지 못하였거늘, 승상께서 과연 춘운에게 속았나이까?”

영양이 이르기를,

“상공이 춘운에게 속임을 당한 일이 많으니, 불 아니 땐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날 수 있겠나이까? 다만 그 겁내는 형상을 보고자 하였더니, 사리에 어둡기가 너무 심하여 귀신을 미워할 줄 모르셨나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색에 빠진 귀신이라고 하는 말이 과연 거짓말이 아니매, 귀신에 주린 자가 어찌 귀신을 미워할 줄 알리이까?”

 

一座皆大笑.

丞相方知英陽公主之爲鄭小姐也, 如逢地中之人, 徒切驚倒之心,

欲直入開窓突入 而旋止曰 : “彼欲瞞我我亦瞞彼矣.”

乃潛歸於秦氏之房披衾穩宿, 天明秦氏出來問於侍女曰 : “相公已起否?”

侍女對曰 : “未也.”

일좌개대소

승상방지영양공주지위정소저야 여봉지중지인 도절경도지심

욕직입개창돌입 이선지왈 피욕만아아역만피의

내잠귀어진씨지방피금온숙 천명진씨출래문어시녀왈 상공이기부

시녀대왈 미야

 

좌중이 모두 크게 웃었다.

승상이 바로 영양공주가 정소저인 줄 알게 되었다. 죽은 사람을 만난 듯하여 놀랍고도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곧바로 창을 열고 뛰어 들어가려 하다가, 도로 멈추며 이르기를,

“저들이 나를 속이고자 하니 내 또한 저들을 속이리라.”

이에 가만히 진씨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잘 자고 일어났다. 날이 밝자 진씨가 나와 와서 시녀에게 묻기를,

“상공이 이미 일어나셨느냐?”

시녀가 답하기를,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셨나이다.”

 

秦氏久立於帳外, 朝旭滿窓早饌將進而, 丞相不起時有呻吟之聲,

秦氏問曰 : “丞相有不安節乎?”

丞相忽睜目直視, 有若不見人者, 且往往作譫言秦氏問曰 : “丞相何爲此譫語耶?”

丞相慌亂錯莫者久忽問曰 : “汝誰也?”

진씨구립어장외 조욱만창조찬장진이 승상불기시유신음지성

진씨문왈 승상유불안절호

승상홀정목직시 유약불견인자 차왕왕작섬언진씨문왈 승상하위차섬어야

승상황란착막자구홀문왈 여수야

 

진씨가 장막 밖에 오래 서 있으니, 어느덧 아침 햇살이 창문에 가득하고 조반상이 곧 들어가겠으되, 승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이따금 신음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에 진씨가 묻기를,

“승상께서 불편하신 데가 있으시옵니까?”

승상이 갑자기 눈을 똑바로 뜨기는 하였으되,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 같고 이따금 헛소리를 하니 진씨가 다시 묻기를,

“승상께서 어찌 잠꼬대를 하시옵니까?”

승상이 어지러운 듯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묻기를,

“네 누구인가?”

 

秦氏曰 : “丞相不知妾乎? 妾卽秦淑人也.”

丞相曰 : “秦淑人誰也?”

秦氏不答以手撫丞相之頂曰 : “頭部頗溫可知相公有不平之候矣, 然一夜之間疾何疾也?”

丞相曰 : “我與鄭女達夜相語於夢中, 我之氣候安得平穩乎?”

진씨왈 승상부지첩호 첩즉진숙인야

승상왈 진숙인수야

진씨부답이수무승상지정왈 두부파온가지상공유불평지후의 연일야지간질하질야

승상왈 아여정녀달야상어어몽중 아지기후안득평온호

 

진씨가 이르기를,

“승상께서 첩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첩은 진숙인(秦淑人)이나이다.”

승상이 이르기를,

“진숙인이 누구인고?”

진씨가 대답하지 못하고 손으로 승상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이마가 자못 더우니 승상께서 편치 못하신 환후가 있으심을 알 수 있으나, 하룻밤 사이에 무슨 병이 이렇듯 위중하시옵니까?”

승상이 이르기를,

“내 정녀와 밤새도록 꿈속에서 만나 서로 얘기를 나누었으니,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평온하리오.”

 

秦氏更問其詳丞相不答, 翻身轉臥秦氏切悶, 使侍女告于兩公主曰 : “丞相有疾速臨診視.”

英陽曰 : “昨日飮酒之人今豈病乎? 不過欲使吾輩出頭也而已.”

秦氏忙入告曰 : “丞相神氣怳惚見人不知, 猶向暗裡頻吐狂言, 奏於聖上 召太醫治之如何?”

太后聞之召公主責之曰 : “汝輩之瞞戱丞相, 亦已過矣而聞其疾重, 不卽出見

是何事也 是何事也! 急出問病病勢若重, 促召太醫中術業最妙者 而治之.”

진씨갱문기상승상부답 번신전와진씨절민 사시녀고우양공주왈 승상유질속임진시

영양왈 작일음주지인금기병호 불과욕사오배출두야이이

진씨망입고왈 승상신기황홀견인부지 유향암리빈토광언 주어성상 소태의치지여하

태후문지소공주책지왈 여배지만희승상 역이과의이문기질중 불즉출견

시하사야 시하사야 급출문병병세약중 촉소태의중술업최묘자 이치지

 

진씨가 다시 그 자세한 이야기를 물은즉,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몸을 옮겨 돌아누웠다. 진씨가 매우 걱정이 되므로, 시녀를 보내어 두 공주에게 아뢰기를,

“승상이 환후가 있으시니, 속히 나와 뵈옵소서.”

영양공주가 이르기를,

“어제 술 마시던 사람이 이제 무슨 병이 있으리오. 아무래도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나아가 보게 함에 불과함이라.”

진씨가 급히 들어와 아뢰기를,

“승상의 정신과 기운이 황홀하여 사람을 보아도 알지 못하시고, 오히려 어두운 데를 향하여 미친 듯한 말을 자주 하시옵니다. 황상께 아뢰옵고 태의(太醫)를 불러 치료하심이 어떠하오리까?”

태후가 그 말을 들으시고, 공주를 불러 꾸짖고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승상을 지나치게 속이고, 또한 그 병이 중함을 듣고서도 나아가 보지 않으니 이 무슨 도리인가, 이 무슨 도리인가. 급히 나아가 문병하고 만일 병세가 중하거든, 태의(太醫) 중에서 의술이 제일 신묘한 자를 빨리 불러 치료케 할지어다.”

 

英陽不得已與蘭陽, 詣丞相寢所留堂上, 先使蘭陽及秦氏入見, 丞相見蘭陽 或搖雙手,

或瞋兩瞳初若不相識者, 始作喉間之聲曰 : “吾命將盡矣, 要與英陽相訣, 英陽何往而不來乎?”

蘭陽曰 : “相公何爲此言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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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진양동초약불상식자 시작후간지성왈 오명장진의 요여영양상결 영양하왕이불래호

난양왈 상공하위차언호

 

영양이 부득이 난양과 더불어 승상의 침소로 나아가 당상에 머무르고, 먼저 난양과 진씨가 들어가 보게 하였다. 승상이 난양을 보자 혹은 두 손을 휘두르고 혹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처음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듯하더니, 비로소 목 안의 소리로 이르기를,

“내 명이 장차 다하겠기로, 영양과 더불어 서로 영원히 이별하려 하거늘, 영양은 어찌 가서 오지도 않소?”

난양이 이르기를,

“상공께서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丞相曰 : “去夜似夢非夢間, 鄭氏來我而言曰

相公何負約耶? 仍盛怒呵責, 以眞珠一掬與我, 我受而呑之, 此實凶徵也,

閉目則鄭女壓我之身, 開眸則鄭女立我之前, 此鄭女怨我之無信, 而奪我之脩期也,

我何能生乎? 命在喣刻間矣, 欲見英陽者盖以此也.”

승상왈 거야사몽비몽간 정씨래아이언왈

상공하부약야 잉성로가책 이진주일국여아 아수이탄지 차실흉징야

폐목즉정녀압아지신 개모즉정녀립아지전 차정녀원아지무신 이탈아지수기야

아하능생호 명재후각간의 욕견영양자개이차야

 

승상이 이르기를,

“간밤에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정녀가 내게 와서 말하되, ‘상공은 어찌 언약을 저버리시나이까?’ 하고, 무척 노하여 심히 꾸짖으며 내게 진주 한 움큼 내려주더이다. 내가 그것을 받아 삼켰는데, 이는 실로 흉한 징조라. 눈을 감은즉 정녀가 내 몸을 누르고, 눈을 뜬즉 정녀가 내 앞에 서 있으니, 이는 정녀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노하여 나의 원천적인 기운을 빼앗아 버린 것이리라. 어찌 내가 살 수 있으리오. 내 명이 경각 사이에 있으니 영양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때문이오.”

 

言未已又作昏困斷盡之形, 回面向壁又發胡亂之說, 蘭陽見此擧止, 不得不動而憂慮大起,

出言於英陽曰 : “丞相之病似出於憂疑, 非姐姐不可醫矣.”

仍言病狀 英陽且信且疑, 踟躕不入 蘭陽携手同入, 丞相猶作譫語, 而無非向鄭氏之說也.

언미이우작혼곤단진지형 회면향벽우발호란지설 난양견차거지 부득부동이우려대기

출언어영양왈 승상지병사출어우의 비저저불가의의

잉언병상 영양차신차의 지주불입 난양휴수동입 승상유작섬어 이무비향정씨지설야

 

말을 마치지 못하여 또한 혼곤한 시늉을 지으며, 낯을 돌려 벽을 향하더니 다시 횡설수설(橫說竪說)하였다. 난양이 그 모습을 살펴보매 움직이지도 아니하므로, 놀랍고 염려스러운 마음이 활짝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영양에게 이르기를,

“승상의 병은 아무래도 걱정과 의심에서 나온 것 같은데, 저저가 아니면 고칠 수가 없겠나이다.”

이에 승상의 병 증세를 말하였지만, 영양이 반신반의하고 주저하여 들어가지 않으니, 난양이 손을 끌고 함께 들어갔다. 승상이 아직도 헛소리를 하는데, 모두가 정씨를 향한 말이었다.

 

蘭陽高聲曰 : “相公相公 英陽姐姐來矣, 開目而見之.”

丞相乍擧頭頻揮手, 有欲起之狀, 秦氏就身扶起坐於床上, 丞相向兩公主而言曰 :

“少游偏蒙異數, 與兩位貴主結親,方欲同室而同穴矣, 有若拉我而去者, 將不得久留矣.”

英陽曰 : “相公識理之人也, 何爲浮誕之言也?

鄭氏設有殘魂餘魄, 九重嚴邃百神護衛, 渠何能入乎?”

난양고성왈 상공상공 영양저저래의 개목이견지

승상사거두빈휘수 유욕기지상 진씨취신부기좌어상상 승상향양공주이언왈

소유편몽리수 여양위귀주결친 방욕동실이동혈의 유약랍아이거자 장부득구류의

영양왈 상공식리지인야 하위부탄지언야

정씨설유잔혼여백 구중엄수백신호위 거하능입호

 

난양이 소리를 높여 아뢰기를,

“상공, 상공. 영양 저저가 왔으니 눈을 떠 보소서.”

승상이 잠깐 머리를 들고 손을 저으며 일어나고자 하는 시늉을 하기에, 진씨가 나아가서 몸을 부축하여 일으켜 평상 위에 앉히니, 승상이 두 공주를 향하여 이르기를,

“소유가 편벽되게 황은을 입어 두 공주와 함께 혼인을 맺어, 같은 방과 같은 굴에서 같이 지내고자 하였는데, 나를 잡아가려는 듯한 자가 있나이다. 이제 세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것 같소이다.”

영양이 이르기를,

“상공은 이치를 아는 분이거늘, 어찌 덧없고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나이까? 정씨의 흩어진 넋과 혼이 남아 있을지라도, 백신(百神)이 호위하는 구중의 깊은 곳에 그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으리까?”

 

丞相曰 : “鄭女方在吾傍, 何以曰不敢入乎?”

蘭陽曰 : “古人見盃中弓影 而有成疑疾者, 恐丞相之病, 亦以弓而爲蛇也.”

丞相不答 但搖手而已, 英陽見其病勢轉劇, 不敢終諱乃進坐曰 :

“丞相只念死鄭氏 而不欲見生鄭氏乎? 相公苟欲見之 妾卽鄭氏瓊貝也.”

승상왈 정녀방재오방 하이왈불감입호

난양왈 고인견배중궁영 이유성의질자 공승상지병 역이궁이위사야

승상부답 단요수이이 영양견기병세전극 불감종휘내진좌왈

승상지념사정씨 이불욕견생정씨호 상공구욕견지 첩즉정씨경패야

 

승상이 이르기를,

“정녀가 바로 내 곁에 있거늘, 어찌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이르시오?”

난양이 이르기를,

“옛사람이 ‘잔 속의 활 그림자를 보고 의심 많은 병을 얻었다.’라고 하더니, 생각건대 승상의 병 또한 활이 뱀이 된 것 같나이다.”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며 다만 손만 놀릴 따름이기에, 영양이 병세가 점차 위중한 줄 알고, 감히 끝내 어길 수가 없어서 다가앉으며 이르기를,

“승상은 다만 죽은 정씨만 생각하고, 산 정씨는 보고자 아니하시나이까? 상공이 만일 그를 보고자 하실진대, 첩이 바로 정씨 경패(瓊貝)로소이다.”

 

丞相佯若不信曰 : “是何言也? 鄭司徒只有一女而死已久矣,

死鄭女旣在吾之身邊, 則死鄭女之外 豈有生鄭女乎?

不死則生 不生則死人之常也, 一人之身 或謂之死 或謂之生,

則死者爲眞鄭氏乎? 生固眞也死則妄也, 死固眞也生則誕也, 貴主之言吾不信也.”

승상양약불신왈 시하언야 정사도지유일녀이사이구의

사정녀기재오지신변 즉사정녀지외 기유생정녀호

불사즉생 불생즉사인지상야 일인지신 혹위지사 혹위지생

즉사자위진정씨호 생고진야사즉망야 사고진야생즉탄야 귀주지언오불신야

 

승상은 거짓으로 믿지 못하는 체하며 이르기를,

“이 무슨 말이오? 정사도에게 다만 딸 하나가 있다가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소. 죽은 정녀는 이미 내 몸 곁에 있은즉, 죽은 정녀 외에 어찌 산 정녀가 있으리오?

죽지 않은즉 살고, 살지 않은즉 죽는 것이 사람에게 흔히 있는 일이오. 한 사람의 몸이 혹은 죽었다고도 이르고 혹은 살았다고도 한즉, 죽은 자가 정말 정씨이리오, 산 자가 정말 정씨이리오. 산 것이 굳이 진실이라면 죽은 것은 망령된 것이요, 죽은 것이 굳이 진실이라면 산 것이 거짓된 것이니, 귀주의 말씀을 내 믿지 못하겠나이다.”

 

蘭陽曰 : “吾太后娘娘, 以鄭氏爲養女, 封爲英陽公主, 與妾同事相公

英陽姐姐 卽當日聽琴之鄭小姐也. 不然姐姐何以與鄭氏, 無毫髮爽也?”

丞相不答微作呻吟之聲, 忽昻首作氣而言 : “我在鄭家之時, 鄭小姐婢子春雲使喚於我矣,

今有一言欲問於春雲, 春雲亦何在乎?吾欲見之耳.”

승상부답미작신음지성 홀앙수작기이언 아재정가지시 정소저비자춘운사환어아의

난양왈 오태후낭낭 이정씨위양녀 봉위영양공주 여첩동사상공

영양저저 즉당일청금지정소저야 불연저저하이여정씨 무호발상야

금유일언욕문어춘운 춘운역하재호 오욕견지이

 

이에 난양이 이르기를,

“우리 태후마마가 정씨를 양녀로 삼으시고 영양공주로 봉하셨나이다. 첩과 한가지로 상공을 섬기게 하였으니, 영양 저저가 곧 당일의 거문고를 듣던 정소저이로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저가 어찌 정씨와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을 수 있사오리까?”

승상이 대답지 아니하고 적이 신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홀연히 머리를 쳐들고 숨을 크게 쉬며 이르기를,

“내 정씨 집에 있을 적에 정소저의 비자(婢子) 춘운이 내게 와 사환 노릇을 하였도다. 이제 춘운한테 한마디 말을 물어보고자 하는데, 춘운 또한 어디에 있느냐? 내 그를 보고 싶노라.”

 

蘭陽曰 : “春雲爲謁英陽姐姐 入宮屬耳, 春雲亦憂丞相之疾來候.”

春雲自外卽入謁曰 : “相公貴軆少康乎?”

丞相曰 : “春雲獨留 餘皆出.”

兩公主及淑人退立於欄頭.

난양왈 춘운위알영양저저 입궁속이 춘운역우승상지질래후

춘운자외즉입알왈 상공귀체소강호

승상왈 춘운독류 여개출

양공주급숙인퇴립어란두

 

난양이 이르기를,

“춘운이 영양 저저를 뵈옵고자 궁중에 들어왔다가, 춘운 또한 승상의 병환을 근심하여 문밖에 와서 문후하나이다.”

춘운이 밖으로부터 바로 들어와 아뢰기를,

“상공의 귀체 어떠하시나이까?”

승상이 이르기를,

“춘운만 혼자 머무르고,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나가기를 바라오.”

두 공주와 숙인은 밖으로 나가 난간머리에 섰다.

 

丞相卽起梳洗整其衣冠, 使春雲請三人 春雲含笑而出, 謂兩公主及秦淑人曰 : “相公邀之矣.”

四人同入 丞相戴華陽巾着宮錦袍, 執白玉如意倚案席而坐,

氣像如春風之浩蕩, 精神如秋水之瀅徹, 文彩非似病起之人矣,

鄭夫人方悟見賣, 微笑低頭更不問病

승상즉기소세정기의관 사춘운청삼인 춘운함소이출 위양공주급진숙인왈 상공요지의

사인동입 승상대화양건착궁금포 집백옥여의의안석이좌

기상여춘풍지호탕 정신여추수지형철 문채비사병기지인의

정부인방오견매 미소저두갱불문병

 

승상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소세하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춘운을 시켜 세 사람을 불러오라 하였다.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나와 두 공주와 진숙인에게 말하기를,

“상공이 맞아들이라 하십니다.”

네 사람이 함께 들어가니, 승상이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궁금포(宮錦袍)를 입고 백옥여의(白玉如意)를 잡고 안석(案席)에 의지하여 앉아 있었다. 기상이 호탕한 봄바람 같고 정신은 가을 물의 맑고 투명함 같아서, 겉모습은 조금도 병들었다가 일어난 사람 같지 않았다.

정부인은 비로소 속은 줄을 알고 조용히 웃으며 머리를 숙이고 다시 문병치 아니하였다.

 

蘭陽問曰 : “相公之氣今則如何?”

丞相正色曰 : “少游見近來風俗甚怪, 婦女作黨欺瞞家夫, 少游職在大臣之列,

每求規正之術而未得其道, 憂勞成病 昔疾今愈, 不足以煩公主慮也.”

蘭陽及秦氏惟微笑而不答.

난양문왈 상공지기금즉여하

승상정색왈 소유견근래풍속심괴 부녀작당기만가부 소유직재대신지열

매구규정지술이미득기도 우로성병 석질금유 부족이번공주려야

난양급진씨유미소이부답

 

난양공주가 묻기를,

“상공의 기체 지금은 어떠하시나이까?”

승상이 정색하며 말하기를,

“소유가 근래 풍속의 심한 괴이함을 보는데, 부녀자가 작당하여 지아비를 기만하는지라. 소유의 직분이 대신 반열에 있기로 매양 바로잡는 술책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 도를 깨치지 못하고 근심과 괴로움은 병이 되었소. 지난날에는 아팠으나 이제는 나았으니 공주는 염려 마소서.”

난양과 진씨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鄭夫人曰 : “是事非妾等所知, 相公如欲醫疾 仰禀于太后娘娘.”

丞相心不勝癢 始乃發笑曰 : “吾與夫人只卜後生之相逢矣, 今日我在夢中而亦不知夢耶?”

鄭氏曰 : “此莫非太后娘娘子視之仁, 皇上陛下竝育之恩, 蘭陽公主之德,

惟鏤骨銘心而已, 豈口吻所可容謝哉?”

仍細陳顚末,

정부인왈 시사비첩등소지 상공여욕의질 앙품우태후낭낭

승상심불승양 시내발소왈 오여부인지복후생지상봉의 금일아재몽중이역부지몽야

정씨왈 차막비태후낭낭자시지인 황상폐하병육지은 난양공주지덕

유루골명심이이 기구문소가용사재

잉세진전말

 

정부인이 이르기를,

“이 일은 첩들이 알 바 아니오니, 상공의 병을 고치고자 하실진댄, 태후마마께 우러러 여쭈어보소서.”

승상이 마음의 병 앓이를 이기지 못하여, 비로소 소리 내어 웃으며 이르기를,

“나와 부인이 다만 후생(後生)에 상봉을 점쳤었는데, 오늘 내가 꿈속에 있은즉 또한 꿈임을 알지 못하느냐?”

정씨가 이르기를,

“이는 태후마마의 자식같이 보시는 인자로움과 황상 폐하가 아울러 기르신 은혜이오며, 난양공주의 덕택이옵니다. 오직 마음에 깊이 새길 뿐이오며, 어찌 입과 입술로 사례할 수 있사오리까?”

이에 거듭 그 전말을 세세히 토로하였다.

 

丞相謝於公主曰 :

“公主盛德實簡策上所未睹者也, 少游實無酬報之路, 惟期益加敬服之誠, 不替鐘鼓之樂也.”

公主稱謝曰 : “此盖姐姐徽儀柔德, 感回天心 妾何與哉?”

時太后招宮人問病狀, 乃知托病之由

大笑曰 : “我固疑之矣.”

승상사어공주왈

공주성덕실간책상소미도자야 소유실무수보지로 유기익가경복지성 불체종고지락야

공주칭사왈 차개저저휘의유덕 감회천심 첩하여재

시태후초궁인문병상 내지탁병지유

대소왈 아고의지의

 

승상이 공주에게 사례하며 이르기를,

“공주의 성덕은 실로 간책(簡策) 위에서도 보지 못할 바이오며, 소유가 실로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소이다. 오직 더더욱 공경하고 복종하는 정성을 더하고, 금슬의 즐거움을 갈마들게 아니하리이다.”

공주가 칭찬하여 사례하며 아뢰기를,

“이는 다 저저의 훌륭한 모습과 유연한 덕성이 천심을 감동케 한 것이니, 첩에게 무슨 공이 있나이까?”

이때 태후가 궁인을 불러 승상의 병을 물어, 승상이 병을 핑계한 이유를 이내 알고는, 크게 웃으시며 이르기를,

“내 진실로 그 병을 의심하였느니라.”

 

乃召見丞相兩公主亦在坐矣,

太后問曰 : “丞相與旣死之鄭女, 續已絶之佳緣, 不可無一言賀也.”

丞相俯伏對曰 : “聖恩與造化同大, 臣雖摩頂放踵, 瀝膽露肝 難報其萬一矣.”

太后曰 : “吾直戱耳 豈曰恩也?”

내소견승상양공주역재좌의

태후문왈 승상여기사지정녀 속이절지가연 불가무일언하야

승상부복대왈 성은여조화동대 신수마정방종 력담로간 난보기만일의

태후왈 오직희이 기왈은야

 

이에 승상을 불러 보시니 두 공주가 또한 모시고 앉았거늘, 태후께서 하문하기를,

“승상은 이미 죽은 정녀와 더불어 끊어진 아름다운 인연을 다시 이었는데, 한마디의 하례가 없는 것은 옳지 않도다.”

승상이 고개 숙여 엎드리고 아뢰기를,

“성은이 조화가 더불어 한결같이 크시니, 신이 분골쇄신(粉骨碎身)하고 마음을 다 쏟아도, 성은의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렵나이다.”

태후가 이르시기를,

“내가 고의로 희롱한 것뿐인데, 어찌 은덕이라 말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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