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삼 - 1. 태후가 두 공주와 진채봉을 소유의 처와 첩으로 허락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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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삼

 

1. 태후가 두 공주와 진채봉을 소유의 처와 첩으로 허락하다

 

此時天子進候於太后, 太后使蘭陽與鄭氏, 避于挾室 迎帝謂曰 :

“予爲蘭陽婚事 使收楊家之幣而, 終有傷於風化, 與鄭氏幷爲夫人, 則鄭家不敢當矣,

使鄭氏爲妾 則亦近於强賚矣, 今日予召見鄭女, 鄭女美且才 足與蘭陽爲兄弟也.

以此予旣以鄭女爲養女, 欲與同歸於楊家, 此事果如何也?”

차시천자진후어태후 태후사난양여정씨 피우협실 영제위왈

여위난양혼사 사수양가지폐이 종유상어풍화 여정씨병위부인즉정가불감당의

사정씨위첩 즉역근어강뢰의 금일여소견정녀 정녀미차재 족여난양위형제야

이차여기이정녀위양녀 욕여동귀어양가 차사과여하야

 

이때 천자가 태후께 나아가 문안을 드리시니, 태후가 난양과 정씨로 하여금 별실로 피하게 하고, 황상을 맞아 말씀하시기를,

“내가 난양의 혼사를 위하여 양가(楊家)의 예폐를 거두게 하는 것은, 마침내 풍습을 교화시키는 데 해로울 것이오. 또 정녀를 난양과 더불어 양소유의 부인으로 삼으려 한다면 정사도 집에서 감히 따르지 못하겠다 할 것이며, 정씨로 하여금 첩을 삼음은 또한 억지로 위협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외다. 이에 오늘 내가 정녀를 불러 보았더니, 정녀의 미모와 재주가 난양과 족히 형제가 될 만하나이다. 이리하여 내 이미 정녀를 양녀로 삼아, 난양과 더불어 양가에게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데, 이 일이 과연 어떠하오?”

 

上大悅賀曰 : “此盛德事也, 可謂與天地同大矣, 自古深仁厚澤, 未有及娘娘者也.”

太后卽召鄭氏 進謁於帝, 帝命之上殿 告於太后曰 : “鄭氏女子已爲御妹, 尙着平服何也?”

太后曰 : “以詔命未下 固辭章服矣.”

上謂女中書曰 : “取鸞鳳紋紅錦紙一軸而來.”

상대열하왈 차성덕사야 가위여천지동대의 자고심인후택 미유급낭낭자야

태후즉소정씨 진알어제 제명지상전 고어태후왈 정씨녀자이위어매 상착평복하야

태후왈 이조명미하 고사장복의

상위녀중서왈 취란봉문홍금지일축이래

 

황상이 매우 기뻐하며 하례하시기를,

“이는 성덕의 일이 천지와 한가지로 크다고 말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깊고 두터운 은덕은 마마에 미칠 이 없나이다.”

태후가 곧 정씨를 불러서 황상을 알현케 하시니, 황상이 명하사 정씨를 전상에 오르게 하고, 태후께 아뢰기를,

“정씨 댁 여자가 이미 내 누이가 되었으되, 아직도 평복을 입음은 무슨 일이오니까?”

태후가 이르시기를,

“명이 내리지 않아서 장복(章服)을 굳이 사양하였나이다.”

황상이 여중서(女中書)에게 이르시기를,

“난봉문(鸞鳳紋)의 홍금지(紅錦紙) 한 축(軸)을 가져오라.”

 

秦彩鳳擎而進, 上擧筆欲書 稟於太后曰 : “鄭氏旣封公主 當賜國姓矣.”

太后曰 : “吾亦有此意 而但聞鄭司徒夫妻, 年旣衰老無它子女,

予不忍老臣無得姓之人, 仍其本姓 亦曲軫之意也.”

上以御筆大書曰 : “奉太后聖旨 以養女鄭氏, 奉爲英陽公主.”

진채봉경이진 상거필욕서 품어태후왈 정씨기봉공주 당사국성의

태후왈 오역유차의 이단문정사도부처 연기쇠로무타자녀

여불인로신무득성지인 잉기본성 역곡진지의야

상이어필대서왈 봉태후성지 이양녀정씨 봉위영양공주

 

진채봉(秦彩鳳)이 받들어 드리거늘, 황상이 붓을 들어 쓰려고 하면서, 태후께 여쭙기를,

“정씨를 이미 공주로 봉하였으니, 마땅히 나라의 성을 내릴까 하나이다.”

태후가 말씀하시기를,

“나도 또한 이 뜻이 있으나, 다만 들으니 정사도 내외의 나이가 이미 노쇠하고 다른 자녀가 없다 하오. 내 차마 노신의 성(姓)을 얻은 사람을 없애기 어려우니, 이에 그 본래 성을 그대로 둠이 또한 간곡한 뜻이 있겠나이다.”

황상이 어필(御筆)로 크게 써 이르시기를,

“짐이 태후마마의 뜻을 받자와, 양녀 정씨를 영양공주(英陽公主)로 봉하노라.”

 

踏兩宮之寶 以賜鄭氏, 使宮女擎公主冠服 着鄭氏, 鄭氏下殿謝恩,

上使與蘭陽公主定其座處, 鄭氏於公主長一歲而,

不敢坐其上 太后曰 :

“英陽今則卽我女, 兄在上 弟在下禮也, 兄弟之間 何可飾讓?”

답양궁지보 이사정씨 사궁녀경공주관복 착정씨 정씨하전사은

상사여난양공주정기좌처 정씨어공주장일세이

불감좌기상 태후왈

영양금즉즉아녀 형재상 제재하례야 형제지간 하가식양

 

양궁(兩宮)의 보물을 갖다가 정씨에게 주고, 궁녀를 시켜서 공주의 관복을 받들어 정씨에게 입히게 하니, 정씨는 전상에서 내려와 사은하였다.

황상이 난양공주로 하여금 좌석의 차례를 정하게 하였다. 정씨가 공주보다 한 해 위가 되지만 감히 위에 앉지 못하기에, 태후가 이르시기를,

“영양이 이제는 곧 나의 딸이라, 형이 위에 있고 아우가 아래에 있음이 예(禮)이거늘, 형제지간에 어찌 그리 겸양하리오?”

 

小姐稽顙曰 : “今日坐次 卽他日行列, 何可不謹於其始乎?”

蘭陽曰 :

“春秋時趙襄之妻, 卽晋文公之女也, 讓位於先娶之正室, 况姐姐小妹之兄也 又何疑乎?”

鄭氏讓之頗久太后命之, 以年齒定坐 此後宮中, 皆以英陽公主稱之.

소저계상왈 금일좌차 즉타일행렬 하가불근어기시호

난양왈

춘추시조양지처 즉진문공지녀야 양위어선취지정실 황저저소매지형야 우하의호

정씨양지파구태후명지 이년치정좌 차후궁중 개이영양공주칭지

 

소저가 이마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오늘의 좌석 차례는 곧 다른 날의 항렬이 되오니, 어찌 감히 애초에 삼가지 아니하리이까?”

난양공주가 이르기를,

“춘추시대에 조양(趙襄)의 아내가 곧 진문공(晋文公)의 딸이로되, 먼저 얻은 정실에게 자리를 사양하였사옵니다. 하물며 저저는 소매의 형이온데, 다시 무슨 의심이 있으리이까?”

정씨는 자못 오래 사양하였지만, 태후가 명하여 나이에 따라 자리를 정하시니, 이후로 궁중에서 모두 영양공주라 불렀다.

 

太后以兩人之詩示之於上, 上亦嗟賞曰 :

“兩詩皆妙 而英陽之詩 引周詩之意, 歸德於后妃 大得軆也.”

太后曰 : “帝言是也.”

上又曰 : “娘娘愛英陽至此, 實國朝所未有也, 臣亦有仰請者矣.”

태후이양인지시시지어상 상역차상왈

양시개묘 이영양지시 인주시지의 귀덕어후비 대득체야

태후왈 제언시야

상우왈 낭낭애영양지차 실국조소미유야 신역유앙청자의

 

태후가 두 공주의 시를 황상께 보이시니, 황상이 또한 칭찬하시기를,

“두 글이 모두 절묘하거니와 영양의 시는, 주시(周詩)의 뜻을 끌어내어 왕후의 덕으로 마쳤으니 크게 체면을 세웠나이다.”

태후 이르시기를,

“임금의 말씀이 옳도소이다.”

황상이 또 이르시기를,

“마마의 영양을 사랑하심이 이에 이르렀으니, 실로 지금껏 우리나라에 없는 바이오라 신이 또한 우러러 청할 일이 있사옵나이다.”

 

乃以秦中書前後之事敷奏曰 : “彼之情勢殊甚惻隱, 其父雖以罪死, 其祖先皆本朝臣子,

欲曲收其情, 以爲御妹從嫁之媵, 娘娘幸肯而頷之.”

太后顧兩公主蘭陽曰 : “秦氏曾以此事 言於小女矣.

小女與秦女 情分旣切, 不欲相離 雖微聖敎, 小女亦有是心矣.”

太后召秦彩鳳下敎曰 : “兒女與汝有死生相隨之意故, 特使汝爲楊尙書媵侍, 汝之至願畢矣,

此後湏更竭誠悃, 以報公主之恩.”

내이진중서전후지사부주왈 피지정세수심측은 기부수이죄사 기조선개본조신자

욕곡수기정 이위어매종가지잉 낭낭행긍이암지

태후고양공주난양왈 진씨증이차사 언어소녀의

소녀여진녀 정분기절 불욕상리 수미성교 소녀역유시심의

태후소진채봉하교왈 아녀여여유사생상수지의고 특사여위양상서잉시 여지지원필의

차후수경갈성곤 이보공주지은

 

이에 진중서(秦中書)의 전후 일을 설명하고 아뢰기를,

“저 아이의 정세가 유달리 매우 측은하고, 그의 아비가 비록 죄로 인해 죽었사오나 그 조상이 모두 우리 조정의 신하이었나이다. 이제 그 정상을 굽어살피시어 누이가 출가하는데 모시고 따르는 잉첩(媵妾)을 삼고자 하는데, 마마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태후가 두 공주를 돌아보시자, 난양공주가 아뢰기를,

“진녀(秦女)가 일찍이 이 일을 소녀에게 말했사옵니다. 소녀와 진녀가 이미 정이 친밀하고 서로 떨어지고자 아니하오니, 비록 폐하의 가르침이 없을지라도 소녀 또한 이 마음이 있었사옵니다.”

태후께서 진채봉을 불러 하교하시되,

“딸아이가 너와 더불어 생사를 서로 같이할 뜻이 있으므로, 특별히 너로 하여금 양상서의 잉첩을 삼으려고 하도다. 너의 지극한 바람을 이루었으니, 이후로 반드시 더욱 정성을 다하여 공주의 은혜를 갚도록 하여라.”

 

秦氏感泣淚漱漱下矣, 謝恩後 太后又下敎曰 :

“兩女婚事 予旣快定而, 忽有喜鵲來 報吉兆, 予令兩女已作喜鵲之詩矣,

汝得依歸之所, 可與同其慶 作其詩也.”

承命卽製進其詩曰 :

진씨감읍루수수하의 사은후 태후우하교왈

양녀혼사 여기쾌정이 홀유희작래 보길조 여령양녀이작희작지시의

여득의귀지소 가여동기경 작기시야

승명즉제진기시왈

 

진씨가 감읍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은을 하니, 태후께서 또 하교하시기를,

“두 딸의 혼사를 내가 이미 쾌히 정하는데, 홀연 희작(喜鵲)이 와서 길조를 알리기에, 내가 이미 두 딸로 하여금 희작에 관한 시를 짓게 하였도다. 너 또한 의지하고 돌아갈 곳을 얻어서 함께 그 경사로움을 맛보게 되었으니, 너도 한 수의 시를 짓도록 하여라.”

진씨가 명을 받들고 곧 지어 드리니, 그 시에 쓰였기를,

 

喜鵲査査繞紫宮 희작사사요자궁

鳳仙花上起春風 봉선화상기춘풍

安巢不待南飛去 안소부대남비거

三五星稀正在東 삼오성희정재동

 

반가운 까치 소리 자미궁(紫微宮)에 감돌으니

봉선화 봉오리에 봄바람이 이는구나.

보금자리 편안하니 남으로 날아가지 않고

보름날 별들이 동녘에 희미하게 있도다.

 

太后與帝同看 喜曰 : “雖咏雪之蔡女 瞠乎下矣. 詩中亦引周詩, 能守嫡妾之分, 此所以尤美也.”

蘭陽公主曰 : “喜鵲詩 詩料本來不多, 且小兩人旣已先作, 後求者無可下手處也.

曹孟德所謂 繞三匝 無枝可栖者, 本非吉語 取用甚難也.

此詩雖雜引孟德子美之詩及, 周詩之句 合成一句 而天然渾然, 不見斧鑿之痕 三家文字,

有若爲秦氏今日事而作也.”

태후여제동간 희왈 수영설지채녀 당호하의 시중역인주시 능수적첩지분 차소이우미야

난양공주왈 희작시 시료본래부다 차소양인기이선작 후구자무가하수처야

조맹덕소위 요삼잡 무지가서자 본비길어 취용심난야

차시수잡인맹덕자미지시급 주시지구 합성일구 이천연혼연 불견부착지흔 삼가문자

유약위진씨금일사이작야

 

태후가 황상과 함께 보시고 기꺼워하며 이르시기를,

“비록 설경을 읊던 채녀(蔡女)라도 이를 따르지 못하리로다. 이 글 속에 또한 주시(周詩를) 이끌어 적실(嫡室)과 첩의 도리를 잘 지킬 수 있었으니, 이것이 더욱 아름답도다.”

난양공주가 이르기를,

“희작시(喜鵲詩)는 시 재료가 본디 많지 않고, 또한 소녀 두 사람이 이미 글을 지었사오니, 뒤에 짓는 자는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나이다. 조맹덕(曹孟德)의 이른바 ‘가지로 세 겹을 둘렀으되, 깃들일 만한 가지가 없다.’라는 것은 본디 길한 말이 아니므로, 그 말을 끌어 쓰기가 어렵사옵니다.

이 글이 비록 조맹덕과 두자미(杜子美)의 시에 주시(周詩)의 구절을 섞고 끌어들여서 한 구절을 이루었으나, 천연스럽고 모나지도 않아 고치거나 다시 손질한 흔적이나 세 사람의 문자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진씨가 오늘 일을 위하여 지은 것과 다름이 없나이다.”

 

太后曰 :

“古來女子中能詩者, 惟班姬蔡女卓文君謝通溫四人而已, 今才女三人同會一席 可謂盛矣.”

蘭陽曰 : “英陽姐姐侍婢, 賈春雲詩才 亦奇矣.”

時日將暮上歸外殿, 兩公主同退宿於寢房.

태후왈

고래녀자중능시자 유반희채녀탁문군사통온사인이이 금재녀삼인동회일석 가위성의

난양왈 영양저저시비 가춘운시재 역기의

시일장모상귀외전 양공주동퇴숙어침방

 

태후가 이르시기를,

“예로부터 여자로서 시 짓기에 능한 자는 오직 반첩여(班婕妤), 탁문군(卓文君), 채문희(蔡文姬), 사통온(謝通溫)의 네 사람뿐인데, 이제 세 사람이 한자리에 함께 모였으니, 왕성하다 일컬을 수 있겠노라.”

난양이 아뢰기를,

“영양 저저의 시비 가춘운(賈春雲)의 시재가 또한 기이하더이다.”

이때 날이 저물어 가니 황상이 외전(外殿)으로 돌아가시고, 두 공주는 함께 물러가서 한 침방에서 잠을 잤다.

 

翌曉鷄鳴初 鄭氏入朝於太后 請歸曰 : “小女入宮時 父母必驚惧矣.

今日欲歸見父母, 以娘娘恩澤 小女榮寵, 跨詡於門欄家族, 伏願娘娘許之.”

太后曰 : “女兒何可輕離大內? 予與司徒夫人 亦有相議事矣.”

卽下敎於鄭府 使崔夫人入朝.

익효계명초 정씨입조어태후 청귀왈 소녀입궁시 부모필경구의

금일욕귀견부모 이낭낭은택 소녀영총 과후어문란가족 복원낭낭허지

태후왈 여아하가경리대내 여여사도부인 역유상의사의

즉하교어정부 사최부인입조

 

다음 날 새벽닭이 처음 울 적에, 정씨가 들어가서 태후를 알현하고 돌아가기를 청하면서 아뢰기를,

“소녀가 궁중으로 들어올 때에, 부모께서 반드시 놀라시고 두려워하셨을 것이옵니다. 오늘 돌아가서 부모님을 뵙고, 마마의 은택과 소녀의 은총 받음을 일가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사옵니다. 마마께서는 허락하여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나이다.”

태후가 이르시기를,

“딸아이가 어찌 가벼이 대궐 내를 떠날 수가 있으리오? 내 사도 부인과 또한 상의할 일이 있도다.”

바로 정부(鄭府)에 명을 내리시어 최부인으로 하여금 입궐하게 했다.

 

鄭司徒夫妻 因小姐使婢子密通, 驚慮初弛 感意方深矣, 忽承詔旨忙入內殿,

太后引接曰 : “予率來令愛 不但欲見其貌, 盖爲蘭陽婚事矣.

一接丰容 心乎愛矣, 遂爲養女兄於蘭陽, 意者寡人前生之女子, 今世誕生於夫人家矣.

英陽旣爲公主, 則當加之以國姓, 而予念夫人無子不改其姓, 惟夫人領我至情.”

정사도부처 인소저사비자밀통 경려초이 감의방심의 홀승조지망입내전

태후인접왈 여솔래령애 부단욕견기모 개위난양혼사의

일접봉용 심호애의 수위양녀형어난양 의자과인전생지녀자 금세탄생어부인가의

영양기위공주 즉당가지이국성 이여념부인무자불개기성 유부인령아지정

 

정사도 부부는 소저가 시비를 통하여 전후 사실을 몰래 알게 했기 때문에 깜짝 놀랍고 근심스러운 마음은 처음부터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감격하는 마음이 바야흐로 깊어 가고 있는 가운데 홀연히 태후의 명을 내리니, 받들어 바삐 내전으로 들어왔다.

태후가 가까이 맞으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영애(令愛)를 데려옴은 다만 그 얼굴만을 보고자 함만이 아니라, 난양의 혼사를 위함이오. 한 번 영애의 아리따운 모습을 접하매,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드디어 양녀를 삼아 난양의 형이 되었소. 생각건대 과인의 전생의 딸이 이 세상에서 다시금 부인 집에 탄생한 듯하오.

영양이 이미 공주가 되었은즉, 마땅히 나라의 성(姓)을 줄 것이로되, 내가 부인에게 자식이 없음을 생각하여 성을 고치지 아니하였소. 부인께서는 오직 나의 지극한 정을 받들어 주시오.”

 

崔夫人受恩感激 叩頭曰 : “臣妾晩得一女 愛之如玉, 及其婚事一誤禮幣還送,

老臣魂骨俱碎 惟願速死, 不見其可憐之形矣.

貴主累枉於蓬蓽之下, 屈其尊體下交賤息, 仍與携入宮禁, 使被曠世之恩章,

此葉於朽木 水於涸魚, 惟當竭髓殫力, 以效報答之悃而, 臣妾夫年老病深 心長髮短,

旣不能奔走職事以貢微勞, 妾亦彫謝癃虺與鬼爲隣, 亦末由追逐宮娥,

自服掖庭掃洒之役, 丘山之恩 將何以佇報乎? 惟有千行感淚, 河傾雨瀉而已.”

최부인수은감격 고두왈 신첩만득일녀 애지여옥 급기혼사일오례폐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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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엽어후목수어학어 유당갈수탄력 이효보답지곤이 신첩부년로병심 심장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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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인이 은혜를 받고 감격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신첩이 늦게서야 여식 하나를 얻어서 옥과 같이 사랑하였사옵니다. 하지만 급기야는 혼사가 한 번 그릇되어 예폐를 돌려보내고, 노신(老臣)의 혼과 뼈가 모두 깨지는 듯하여, 빨리 죽어서 딸의 가련한 모습을 보지 않고 싶었사옵니다.

그런데 귀주가 누차 누추한 제 집안까지 왕림하시어, 존귀하신 몸을 굽히시고 천한 여식과 사귀시며, 더욱이 궁궐에까지 데리고 들어가셔서 세상에 다시없는 은혜를 입게 하셨사옵니다. 이는 썩은 나무에 붙은 잎사귀요, 물을 찾는 고기에게 물과 같사옵니다. 이에 오직 마땅히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정성을 보이고 싶사옵니다.

하지만 신첩의 지아비는 나이가 많고 병이 깊어, 이미 힘을 다하여 일을 할 수가 없으며, 신첩 또한 감사한 마음을 갚고 싶사오나 늙고 병들어 죽을 때가 가깝사옵니다. 그럼에 끝내는 궁녀를 뒤따라 궁중을 닦고 씻는 역할을 감당해 낼 수가 없으니, 언덕과 산과 같은 은덕을 앞으로 어찌 우러러 보답하오리까? 오직 감격하온 눈물만이 내를 이루고 비가 되어 쏟아질 뿐이옵니다.”

 

乃起而拜伏而泣, 雙袖已龍鐘矣,

太后爲之嗟嘆 又曰 : “英陽已爲吾女, 夫人更不可挈去矣.”

崔氏俯伏奏曰 : “臣妾何敢率歸於家中乎? 但母女不得團聚, 稱誦如天之德 是可欠也.”

내기이배복이읍 쌍수이룡종의

태후위지차탄 우왈 영양이위오녀 부인갱불가설거의

최씨부복주왈 신첩하감솔귀어가중호 단모녀부득단취 칭송여천지덕 시가흠야

 

이에 부인이 일어나 절하고 엎드려 우니 양 소매가 벌써 촉촉이 젖는지라. 태후가 측은히 여기시어 또 말씀하시기를,

“영양은 이미 내 딸이 되었으니, 부인께서는 다시 데려가시지는 못할 것이오.”

최씨가 엎드린 채 아뢰기를,

“신첩이 어찌 감히 집으로 데리고 가겠사옵니까? 다만 모녀가 단란하게 모여서, 하늘 같은 은덕을 칭송치 못하오니, 이것이 한이 될 뿐이옵니다.”

 

太后笑曰 : “不越乎行禮之前也, 惟夫人勿憂也.

成婚之後 蘭陽亦托於夫人矣, 夫人視蘭陽 亦如寡人之視英陽也.”

仍召蘭陽與夫人相見, 夫人重謝前日之褻慢

태후소왈 불월호행례지전야 유부인물우야

성혼지후 난양역탁어부인의 부인시난양 역여과인지시영양야

잉소난양여부인상견 부인중사전일지설만

 

태후가 웃으시며 이르시기를,

“성례를 거행하기 전을 넘기지 않을 터이니, 오직 부인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오. 성혼한 후에는 난양공주 또한 부인에게 부탁할 터인즉, 부인께서도 난양 보시기를 과인이 영양 공주를 보듯이 해 주오.”

이어서 난양공주를 불러 부인과 서로 보게 하시니, 부인이 전일의 무례한 허물을 거듭 사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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