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17. 태후가 정경패를 불러 양녀로 삼고 영양공주로 봉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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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태후가 정경패를 불러 양녀로 삼고 영양공주로 봉하다

 

語畢車馬之聲 喧聒於門外, 旗幟之色 掩映於道上,

鄭家侍婢驚惶 入告曰 : “一陣軍馬急圍此家, 娘子娘子 何以爲之?”

鄭小姐旣已知機, 自若而坐.

李小姐曰 : “姐姐安心 小妹非別人也, 蘭陽公主簫和 卽小妹職號身名,

邀致姐姐 乃太后娘娘之命也.”

어필거마지성 훤괄어문외 기치지색 엄영어도상

정가시비경황 입고왈 일진군마급위차가 낭자낭자 하이위지

정소저기이지기 자약이좌

이소저왈 저저안심 소매비별인야 난양공주소화 즉소매직호신명

요치저저 내태후낭낭지명야

 

말을 마치자 수레와 말소리가 문밖에서 요란하며, 깃발의 빛이 길 위에 막아 가리고 있었다.

정씨 집안의 시비들이 놀라 당황하며 들어와 아뢰기를,

“한 떼의 군마가 이 집을 에워싸니, 낭자여, 낭자여, 어찌하오리까?”

정소저는 이미 기미를 알아차리고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었다.

이소저가 이르기를,

“저저께서는 안심하소서. 소매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난양공주 소화(簫和)가 곧 소매의 직호신명(職號身名)이오며, 저저를 이리로 맞이함은 바로 태후마마의 명이나이다.”

 

鄭小姐避席對曰 :

“閭巷微末小女 雖無知識, 亦知天人骨格, 與常人自殊而, 貴主降臨 實千萬夢寐外事也.

旣失竭蹶之禮, 又多逋慢之罪, 伏願貴主生死之.”

公主未及對 侍女告曰 : “自三殿遣薛尙宮王尙宮和尙宮, 問安於貴主矣.”

정소저피석대왈

여항미말소녀 수무지식 역지천인골격 여상인자수이 귀주강림 실천만몽매외사야

기실갈궐지례 우다포만지죄 복원귀주생사지

공주미급대 시녀고왈 자삼전견설상궁왕상궁화상궁 문안어귀주의

 

정소저가 자리를 피하며 답하기를,

“여염의 미천한 소녀가 비록 지식은 없으나, 천인(天人)의 골격이 예사 사람과 다른 줄은 또한 아오나, 귀주(貴主)께서 강림하시기는 실로 천만 꿈속 밖의 일이나이다. 이미 발걸음이 비틀거려 예를 잃었사옵고, 또 태만하여 공경치 못한 죄가 많으니, 공주께 생사를 맡길 것을 엎드려 바라옵나이다.”

공주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녀가 고하는데,

“삼전궁(三殿宮)에서 설상궁(薛尙宮)과 왕상궁(王尙宮) 그리고 화상궁(和尙宮)을 보내어 귀주께 문안케 하나이다.”

 

公主謂鄭小姐曰 : “姐姐少留於此.”

乃出坐於堂上, 三人以次而入, 禮謁畢 伏奏曰 :

“玉主離大內 已累日矣, 太后娘娘思想正切, 萬歲爺爺 皇后娘娘 使婢子等問候,

且今日 卽玉主還宮之期也, 車馬儀仗 已盡來待而, 皇上命趙大監護行矣.”

공주위정소저왈 저저소류어차

내출좌어당상 삼인이차이입 예알필 복주왈

옥주리대내 이루일의 태후낭낭사상정절 만세야야 황후낭낭 사비자등문후

차금일 즉옥주환궁지기야 거마의장 이진래대이 황상명조대감호행의

 

공주가 정소저에게 이르기를,

“저저는 여기에 잠깐 머물러 계시옵소서.”

이에 나가서 당상에 앉으니, 세 상궁이 차례로 들어와, 예로써 뵙기를 마치고 엎드려 아뢰기를,

“옥주(玉主)께서 궁전을 떠나신 지 이미 여러 날이 되었사옵니다. 태후마마께서 생각이 매우 간절하신즉,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 또한 비자(婢子) 등으로 하여금 문후드리게 하였사옵니다. 또 오늘은 곧 옥주께서 환궁하시는 날이므로, 수레와 의장(儀仗)이 이미 다 와서 대령하였고, 황상께서 조태감(趙太監)에게 명하사 보호하여 따르게 하셨나이다.”

 

三尙宮又告曰 : “太后娘娘有詔曰, 玉主與鄭女子 同輦而來矣.”

公主留三人於外 入謂鄭小姐曰 : “多少說話當從容穩展而, 太后娘娘欲見姐姐,

方臨軒而待之 姐姐毋庸苦辭, 與小妹同入趁 今日朝見.”

삼상궁우고왈 태후낭낭유조왈 옥주여정녀자 동련이래의

공주류삼인어외 입위정소저왈 다소설화당종용온전이 태후낭낭욕견저저

방임헌이대지 저저무용고사 여소매동입진 금일조견

 

또 상궁들이 아뢰기를,

“태후마마께서 조칙(詔勅)으로 이르시기를, 옥주는 정낭자와 함께 연(輦)을 타고 오시라고 하셨사옵니다.”

공주가 세 상궁을 밖에 머무르게 하고, 들어와서 정소저에게 이르기를,

“자세한 이야기는 응당 조용한 때에 은밀히 하려니와, 태후마마께서 저저를 보고자 하사 바야흐로 난간에 임하시고 기다리시나이다. 저저는 아무쪼록 간절히 사양하지 말고 소매와 함께 들어가서 알현하소서.”

 

鄭小姐知不可免 對曰 :

“妾已知玉主之眷妾而, 閭家女兒 未嘗現謁於至尊, 惟恐禮貌之有愆, 以是惶㥘矣.”

公主曰 : “太后娘娘 欲見娘子之心, 何異於小妹之愛姐姐乎? 姐姐勿疑也.”

정소저지불가면 대왈

첩이지옥주지권첩이 여가여아 미상현알어지존 유공례모지유건 이시황겁의

공주왈 태후낭낭 욕견낭자지심 하리어소매지애저저호 저저물의야

 

정소저가 면할 수 없음을 알고 답하기를,

“첩은 이미 옥주가 첩을 사랑하심을 아오나, 여염집의 여식이 일찍이 지존을 찾아 뵈온 적이 없나이다. 오직 예절에 맞는 몸가짐에 허물이나 있을까 두려워, 이 때문에 황공하나이다.”

공주가 이르기를,

“태후마마가 낭자를 보고자 하시는 마음이, 어찌 소매가 저저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르시리오. 저저는 의심을 마소서.”

 

鄭小姐曰 : “惟貴主先行, 妾當歸家 以此意言於老母, 躡後而進矣.”

公主曰 : “太后娘娘 已有詔命, 使小妹與姐姐同車而, 辭意極其懇至 姐姐勿固讓也.”

小姐曰 : “賤妾臣也微也, 何敢與貴主同輦乎?”

정소저왈 유귀주선행 첩당귀가 이차의언어로모 섭후이진의

공주왈 태후낭낭 이유조명 사소매여저저동거이 사의극기간지 저저물고양야

소저왈 천첩신야미야 하감여귀주동련호

 

정소저가 아뢰기를,

“오직 귀주가 먼저 행차하시면, 첩은 마땅히 집에 돌아가 이 사연을 노모께 말씀드리고

뒤따라가려 하나이다.”

공주가 이르기를,

“태후마마께서 이미 명이 계셨고, 저저와 함께 연을 타고 오라 하셨나이다. 그 뜻이 지극히 간절하시니, 저저는 굳이 사양을 마옵소서.”

정소저가 아뢰기를,

“천첩은 신(臣)이고 미천한 자인데, 어찌 감히 귀주와 함께 같은 연을 탈 수 있겠나이까?”

 

公主曰 : “呂尙渭川漁父 文王公車, 侯嬴夷門監者 信陵執轡, 苟欲尊賢 何可挾貴?

姐姐侯伯盛門 大臣女子何嫌乎, 小妹同乘而執嫌 何太過耶?”

遂携手同輦, 小姐使侍婢一人, 歸告於夫人, 一人隨入於宮中.

公主與小姐同行入東華門, 歷重重九門至挾門外,

공주왈 여상위천어부 문왕공거 후영이문감자 신릉집비 구욕존현 하가협귀

저저후백성문 대신녀자하혐호 소매동승이집혐 하대과야

수휴수동련 소저사시비일인 귀고어부인 일인수입어궁중

공주여소저동행입동화문 역중중구문지협문외

 

공주가 이르기를,

“여상(呂尙)은 위수(渭水)에 사는 어부였지만 문왕과 수레를 함께 탔고, 후영(侯嬴)은 이문(夷門)을 감시하는 자였지만 신릉군(信陵君)이 말고삐를 잡았나이다. 진실로 어진 이를 높이고자 한다면, 어찌 귀함을 내세울 수 있었겠나이까? 저저는 귀족의 명문대가이고, 대신의 여식이온데 어찌 꺼리시옵니까? 소매와 함께 타기를 꺼리는 것은 어찌 몹시 지나치지 않겠나이까?”

드디어 손에 끌리어 연에 오르면서, 정소저는 시비 한 사람에게 부인께 고하게 하고, 시비 한 사람은 뒤따라 궁중에 들어가게 하였다.

공주가 정소저와 함께 동행하여 동화문(東華門)으로 들어가서, 겹겹이 싸인 아홉 문을 지나 협문(挾門) 밖에 이르렀다.

 

下車公主謂王尙宮曰 : “尙宮陪鄭小姐 少待於此.”

王尙宮曰 : “以太后娘娘之命, 已設鄭小姐幕次矣.”

公主喜而留之, 入謁於太后.

하거공주위왕상궁왈 상궁배정소저 소대어차

왕상궁왈 이태후낭낭지명 이설정소저막차의

공주희이류지 입알어태후

 

연에서 내려 공주가 왕상궁에게 명하기를,

“상궁은 정소저를 모시고 잠깐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라.”

왕상궁이 여쭙기를,

“태후마마의 명으로 정소저의 막차(幕次)를 이미 마련하였나이다.”

공주는 기뻐하며 소저를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는, 들어가서 태후를 뵈었다.

 

原來太后 初則本無好意於鄭氏矣, 公主以微服 寓於鄭家近處, 媒一幅之繡 結鄭氏之交,

心旣敬姐 情又綢繆, 且知楊尙書之 終不肯踈棄,

相愛相約 結爲兄弟, 將欲共一室而事一人,

數以書 苦諫於太后, 以回其意 太后於是大悟,

許以公主及鄭氏, 爲兩夫人於少游而, 必欲親見其容貌, 使公主設計而率來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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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태후는 처음에는 정씨에게 본디 호의가 없었다. 하지만 공주가 미복(微服)으로 정사도 집 근처에 거처하면서, 한 폭의 수(繡) 족자를 매개하여 정씨와 사귐을 맺자, 마음으로 이미 감복하고, 정 또한 친밀하게 되었다. 또 양상서도 끝내 정씨를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을 줄 짐작하였다.

공주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허락하여 형제가 되길 약속하고, 장차 한 집에서 함께 한 사람을 섬기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여러 차례, 태후에게 간절히 올리어, 태후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이에 태후는 크게 깨달아, 공주와 정씨가 소유의 두 부인이 되기를 허락하면서 반드시 그 용모를 보고자 하시어, 공주로 하여금 계책을 세우게 하여, 정씨를 데려오게 한 것이었다.

 

鄭小姐少憩於幕中矣, 宮女兩人自內殿, 奉衣函而出 傳太后之命曰 :

“鄭小姐以大臣之女, 受宰相之幣而猶着處子之服, 不可以平服朝於我也,

特賜一品命婦章服故, 妾等奉詔而來 惟小姐着之.”

정소저소게어막중의 궁녀양인자내전 봉의함이출 전태후지명왈

정소저이대신지녀 수재상지폐이유착처자지복 불가이평복조어아야

특사일품명부장복고 첩등봉조이래 유소저착지

 

정소저가 막차 안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궁녀 두 사람이 내전으로부터 의복을 담은 함을 받들고 나아와, 태후의 명을 전하기를,

“‘정소저가 대신의 딸로서 재상의 예물과 폐물을 받았는데, 아직도 여염 처자의 옷을 입었으니, 아무래도 평복으로는 내게 알현할 수 없노라.’ 하시고, 특별히 일품 명부(一品命婦)의 장복(章服)을 내리셨사옵니다. 첩 등이 명을 받들고 왔으니, 오직 소저는 그것을 입으소서.”

 

鄭氏再拜曰 : “臣妾以處子之身, 何敢具命婦服色乎?

臣妾所着雖簡褻, 亦當着之於父母之前者也,

太后娘娘卽萬民之父母, 請以見父母之衣服, 入朝於娘娘也.”

宮女入告 太后大嘉之卽引見, 鄭氏隨宮女入前殿, 左右宮嬪聳見嘖舌曰 :

“吾以爲嬌艶惟吾貴主而已, 豈料復有鄭小姐乎?”

정씨재배왈 신첩이처자지신 하감구명부복색호

신첩소착수간설 역당착지어부모지전자야

태후낭낭즉만민지부모 청이현부모지의복 입조어낭낭야

궁녀입고 태후대가지즉인견 정씨수궁녀입전전 좌우궁빈종견책설왈

오이위교염유오귀주이이 기료부유정소저호

 

정소저가 재배하고 답하기를,

“신첩이 아직 처녀의 몸으로써 어찌 감히 명부(命婦)의 복색을 갖출 수 있으리오. 신첩이 입은 옷은 비록 간단하고 단정치 못하오나, 또한 일찍이 부모 앞에서 입던 옷이외다. 태후마마는 곧 만민의 어버이가 되시니, 부모 앞에서 입던 의복으로써 들어가 태후마마를 알현하기를 청하나이다.”

궁녀가 들어가 그대로 고한즉, 태후가 그를 가상히 여기시고 바로 불러 보도록 하시어, 정씨가 궁녀를 따라 들어가서 삼전궁 앞에 이르니, 좌우의 궁녀들이 조용히 보고 다투어 탄식하기를,

“교태가 있고 아름다운 이로는 오직 귀주뿐인 줄 알았는데, 어찌 다시 정소저가 있을 줄 알았으리오?”

 

小姐禮畢宮人引之上殿, 太后賜坐下敎曰 :

“頃者因女兒婚事, 詔收楊家禮幣, 此所以遵國法別公私也, 非寡人刱開 而女兒諫予曰,

使人爲新婚而背舊約, 非王者所以正人倫之道也, 且願與汝齊軆共事少游,

予已與帝相議, 快從女兒之美意.

將待楊少游還朝, 使之復送禮幣 以爾爲一軆夫人,

此恩眷古亦無 今亦無, 前不見 後不見也, 特令使爾知之矣.”

소저례필궁인인지상전 태후사좌하교왈

경자인녀아혼사 조수양가례폐 차소이준국법별공사야 비과인창개 이녀아간여왈

사인위신혼이배구약 비왕자소이정인륜지도야 차원여여재체공사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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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양소유환조 사지부송례폐 이이위일체부인

차은권고역무 금역무 전불견 후불견야 특령사이지지의

 

소저가 예를 마치고 궁녀의 인도로 전상에 오른즉, 태후가 자리를 내주며 하교하기를,

“지난번에 공주의 혼사로 인해 조칙(詔勅)으로써 양가(楊家)의 예폐를 거두게 하였도다. 이는 나라 법에 따라 공과 사를 분별함이고, 과인이 처음 만든 바가 아니었노라.

하지만 공주가 내게 간하기를, ‘사람이 새 혼사를 위하여 옛 언약을 저버리게 함은, 왕자 된 자로서 인륜을 바르게 하는 도리가 아니라.’ 하고, 또 너와 더불어 몸을 삼가서 소유를 같이 섬기기를 원하였도다. 이에 내 이미 황상과 상의하여 쾌히 귀주의 아름다운 뜻을 따르기로 하였노라.

장차 양소유가 조정에 돌아오기를 기다려 다시 예폐를 보내게 하고, 너로 하여금 함께 부인이 되게 하려 하노라. 이런 나라의 은혜는 옛날에도 또한 없었고, 지금에도 또한 없으며 전에도 볼 수 없었고, 후에도 볼 수 없을 것인즉, 특별히 너로 하여금 알게 하노라.”

 

鄭氏起答曰 : “聖恩隆重 寔出望外, 非臣妾粉糜 所能上報也.

但臣妾是人臣之女, 詎敢與貴主同其列 而齊其位乎?

臣妾設欲從命, 父母以死固爭 必不奉詔也.”

太后曰 : “爾之避遜雖可嘉, 鄭門累世侯伯, 司徒先朝老臣,

朝家禮待本來自別, 人臣分義不必膠守也.”

정씨기답왈 성은융중 식출망외 비신첩분미 소능상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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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일어나서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은이 너무도 무겁사와 이는 실로 바라지도 못했던 일이옵니다. 신첩의 몸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도 윗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사옵니다. 다만 신첩은 신하의 딸이온데, 어찌 감히 귀주와 함께 같이 서고, 그 지위를 가지런히 할 수 있으리까? 신첩이 설령 명을 따르고자 할지라도, 부모께서는 죽기로 굳이 다투어, 필연 조칙을 받들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태후께서 이르시기를,

“너의 사양하고 겸손함이 비록 가상하도다. 정씨 집안은 여러 대에 걸친 후백이요, 사도(司徒)는 선제의 노신(老臣)이니, 조정에서 예로 대함이 본디 남과 다를 것이니라. 신하의 도리를 굳이 지킬 필요는 없느니라.”

 

小姐對曰 : “臣子之順受君命, 如萬物之自隨其時, 陞以爲侍女 降以爲婢僕,

又敢違忤天命而, 楊少游亦何安於心乎? 必不從也.

臣妾本無兄弟 父母亦已衰朽, 臣妾至願 惟在於竭誠供養, 以畢餘生而已.”

소저대왈 신자지순수군명 여만물지자수기시 승이위시녀 강이위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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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저가 답하기를,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순순히 받는 것은, 만물이 스스로 그때를 따르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러하니 끌어올려서 시녀를 삼으시든지, 내려서 비복을 삼으시면, 어찌 감히 천명을 마다할 수 있사오리까? 양소유 또한 어찌 마음이 평온할 수 있으오리까? 필연 따르지 아니하오리다.

신첩이 본디 형제가 없삽고 부모님 또한 이미 노쇠하셨사옵니다. 신첩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공양하면서 여생을 마치려 할 따름이옵니다.”

 

太后曰 : “惟爾孝親之性, 處子之道可謂至矣, 而何可使一物不得其所乎?

況爾百美具全一疵難求, 楊少游 豈肯甘心於棄汝乎?

且女兒與楊少游 以洞簫之一曲, 驗百年之宿緣, 天之所定人不可廢而,

楊少游一代豪傑 萬古才子, 娶兩箇夫人 何不可之有?

태후왈 유이효친지성 처자지도가위지의 이하가사일물부득기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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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가 이르기를,

“오직 너의 어버이께 효도코자 하는 정성과, 처녀의 도리는 지극하다고 이를 수 있으리라. 어찌 누구라도 그것을 얻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하물며, 너는 백 가지가 아름답고 모두가 온전하여 한 가지도 흠을 찾기가 어려우니, 양소유가 어찌 너를 버리는 데 흔쾌한 마음이겠는가?

또한 공주가 양소유와 함께 퉁소 한 곡조로써 백 년의 지난 인연을 증험하였으니, 하늘이 정하는 바를 사람이 폐할 수가 없는 것이로다. 양소유는 일대의 호걸로 만고에 다시없는 재자이니, 두 부인에게 장가를 든다 해도 어찌 불가함이 있겠는가?

 

寡人本有兩女子而, 蘭陽之兄 十歲而夭, 予每念蘭陽之孤孑矣,

予今見汝 其貌其才不讓蘭陽, 予亦如見亡女矣, 予欲以汝爲養女, 言之於帝 定汝位號,

一則所以表予愛女之情也, 二則所以成蘭陽視汝之志也,

三則使汝與蘭陽 同歸於楊少游, 則無許多難便之事也, 汝意今則如何?”

과인본유양녀자이 난양지형 십세이요 여매념난양지고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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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인에게 본디 두 딸이 있었지만, 난양의 언니가 열 살에 요절하여 내가 늘 난양의 외로움을 염려하여 왔느니라. 이제 너를 보니, 그 재주와 모습이 난양보다 못하지도 않고 죽은 딸을 본 듯하기에, 내 너를 양녀로 삼으려 하노라.

황상께 말씀드려 너의 위호(位號)를 정하려 하는바, 첫째는 내가 딸을 사랑하는 정을 표하는 것이고, 둘째는 난양이 너를 가까이하는 뜻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며, 셋째는 너로 하여금 난양과 함께 양소유에게 같이 돌아가더라도 어렵고도 불편한 일이 많지 않게 함이로다. 너의 생각은 지금 어떠한가?”

 

小姐稽首曰 : “聖敎又至於此, 臣妾恐損福而死也. 惟望卽收成命 以安臣妾.”

太后曰 : “予與帝相議 卽勘定矣, 汝無多執也.”

召公主 出見鄭小姐, 具章服備威儀, 與鄭小姐對坐.

太后笑曰 : “女兒與鄭小姐 願爲兄弟矣, 今爲眞兄弟 可謂難兄難弟矣. 汝意更無憾乎?”

소저계수왈 성교우지어차 신첩공손복이사야 유망즉수성명 이안신첩

태후왈 여여제상의 즉감정의 여무다집야

소공주 출견정소저 구장복비위의 여정소저대좌

태후소왈 여아여정소저 원위형제의 금위진형제 가위난형난제의 여의갱무감호

 

정소저가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며 아뢰기를,

“태후의 가르침이 또 여기까지 이르시니, 신첩이 복에 겨워서 죽게 될까 두렵사옵니다. 곧 내리신 명령을 거두시고, 신첩을 편안케 해 주시기만 바랄 뿐이옵니다.”

태후가 이르시기를,

“내 황상과 상의하여 곧 헤아려 정할 것이니, 너는 굳이 고집하지 마라.”

공주를 불러, 정소저를 보라 하시니, 공주가 장복(章服)을 갖추고 위의를 베풀며 정소저와 마주 보고 앉았다.

태후는 웃으며 이르시기를,

“딸아이가 정소저와 더불어 형제가 되기를 원하더니, 이제 참형제가 되었은즉, 과연 난형난제(難兄難弟)로구나. 네 마음에 다시는 한이 없느냐?”

 

仍以取鄭氏 爲養女之意諭之, 公主大悅 起謝曰 :

“娘娘處分盡矣明矣. 小女得成寤寐之願, 此心快樂 何可盡達?”

太后待鄭氏尤款, 與論古之文章 太后曰 :

“曾仍蘭陽聞汝有咏絮之才矣, 今宮中無事春日多閑, 毋惜一吟 以助予歡.

古人有七步成章者 汝可能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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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대정씨우관 여론고지문장 태후왈

증잉난양문여유영서지재의 금궁중무사춘일다한 무석일음 이조여환

고인유칠보성장자 여가능호

 

거듭 정씨를 취하여 양녀 삼을 뜻을 밝히시니, 공주가 크게 기뻐하며 일어나 사례하며 아뢰기를,

“마마의 처분이 지극하시고 현명하시나이다. 소녀가 자나 깨나 바라던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 마음의 쾌락함을 어찌 다 아뢸 수 있겠나이까?”

태후가 정씨 대접하기를 더욱 정답고 친절하게 하시고, 함께 옛적의 문장을 논의하시었다. 태후가 이르시기를,

“내 일찍이 난양으로부터 네가 음풍영월(吟風詠月)하는 재주가 있다고 들었도다. 이제 궁중에 아무런 일이 없고 봄날이 무척 한가하니, 한 번 읊조리기를 아끼지 말고 나의 즐거움을 도우라. 옛사람 중에 일곱 걸음만에 문장을 이룬 자가 있다 하니, 네 또한 할 수 있겠느냐?”

 

小姐對曰 : “旣聞命矣 敢不畵鴉, 以傳一笑乎?”

太后擇宮中捷步者 立於前殿, 欲出題而試之 公主奏曰 :

“不可使鄭氏獨賦, 小女亦欲與鄭氏 共試之.”

太后尤喜曰 : “女兒之意亦妙矣. 但必得淸新之題然後 詩思自出矣.”

소저대왈 기문명의 감불화아 이전일소호

태후택궁중첩보자 입어전전 욕출제이시지 공주주왈

불가사정씨독부 소녀역욕여정씨 공시지

태후우희왈 여아지의역묘의 단필득청신지제연후 시사자출의

 

소저가 아뢰기를,

“이미 명을 들었으니, 감히 까마귀를 그려서 한바탕 웃음을 전하리까?”

태후가 궁중의 걸음이 빠른 사람을 골라 전각 앞에 세우시고, 글제를 내어서 시험코자 하시니, 공주가 아뢰기를,

“정씨 혼자서 글을 짓게 하심은 옳지 않으니, 소녀 또한 정씨와 함께 그 재주를 시험코자 하나이다.”

태후가 더욱 기꺼워하며 이르시기를,

“딸아이의 뜻이 또한 묘하도다. 그러나 다만, 반드시 맑고 깨끗하고 참신한 글제를 얻은 연후에야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리라.”

 

涉獵古詩矣 時當暮春, 碧桃花盛發於欄外, 忽有喜鵲來鳴枝上, 太后指彩鵲而言曰 :

“予方定汝輩之婚而, 彼鵲報喜於枝頭 此吉兆也.

以碧桃花上聞喜鵲爲題, 各賦七言絶句一首而, 詩中必揷入定婚之意.”

使宮女各排文房四友.

兩人執筆 宮女已移步而, 意恐或未及成詩, 睨視兩人揮筆 而擧趾稍緩矣.“

섭렵고시의 시당모춘 벽도화성발어란외 홀유희작래명지상 태후지채작이언왈

여방정여배지혼이 피작보희어지두 차길조야

이벽도화상문희작위제 각부칠언절구일수이 시중필삽입정혼지의

사궁녀각배문방사우

양인집필 궁녀이이보이 의공혹미급성시 예시양인휘필 이거지초완의

 

옛 시를 생각하시는데, 이때가 늦은 봄이라 벽도화(碧桃花)가 난간 밖에 한창 피었거늘, 홀연히 까치가 와서 울며 가지 위에 앉으니, 태후가 까치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야흐로 너희들의 혼인을 정하였는데 저 까치가 가지 위에서 기쁨을 알리니, 이는 길조로다. 벽도화 위의 까치 소리를 들은 것으로써 글제를 삼고, 각기 칠언절구 한 수씩을 짓되, 글 속에 반드시 정혼하는 뜻을 넣도록 하라.”

궁녀를 시켜서, 각각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벌려 놓았다.

두 사람이 붓을 잡으매, 궁녀들이 벌써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음에 일곱 걸음 내에 혹시 미처 글을 짓지 못할까 두려워, 두 사람이 붓 놀리는 것을 흘겨보고, 발 들기를 자못 더디게 하였다.

 

兩人筆勢 風飄雨驟 一時寫進, 宮女才轉五步矣.

太后先覽鄭氏 詩曰 :

양인필세 풍표우취 일시사진 궁녀재전오보의

태후선람정씨 시왈

 

두 사람의 붓놀림이, 바람에 휘날리고 비가 몰아치는 것 같아 일시에 글을 써 바치니, 궁녀가 겨우 다섯 걸음을 걸었을 뿐이었다.

태후께서 먼저 정소저의 글을 보시니, 그 시에 읊기를,

 

紫禁春光醉碧桃 자금춘광취벽도

何來好鳥語咬咬 하래호조어교교

樓頭御妓傳新曲 루두어기전신곡

南國夭華與鵲巢 남국요화여작소

 

궁궐의 봄빛이 벽도화에 취했는데

어디에서 좋은 새가 날아와 재잘거리는가.

다락에서 기생들은 새 곡조를 전하고

남국의 고운 꽃은 까치와 깃드는구나.

 

公主 詩曰 :

공주 시왈

 

春深宮掖百花繁 춘심궁액백화번

靈鵲飛來報喜言 령작비래보희언

銀漢作橋須努力 은한작교수노력

一時齊渡兩天孫 일시제도양천손

 

공주가 읊은 시에는,

봄이 깊어 궁궐에 백화가 번창한데

신령한 까치 날아와 기쁜 소식 알려주네.

은하수에 다리 놓도록 모름지기 애를 써서

두 천손이 일시에 가지런히 함께 건너세.

 

太后咏歎曰 : “予之兩女兒 卽女中之靑蓮子建也. 朝廷若取女進士, 當分占壯元探花矣.”

以兩詩送示於公主及小姐, 兩人各自敬服矣.

公主告於太后曰 : “小女雖幸成篇, 其詩意 孰不能思之? 姐姐之詩 曲盡精妙, 非小女所及也.”

太后曰 : “然女兒之詩穎銳 殊可愛也.”

태후영탄왈 여지양녀아 즉녀중지청련자건야 조정약취녀진사 당분점장원탐화의

이양시송시어공주급소저 양인각자경복의

공주고어태후왈 소녀수행성편 기시의 숙불능사지 저저지시 곡진정묘 비소녀소급야

태후왈 연녀아지시영예 수가애야

 

태후가 읊고는 감탄하기를,

“내 두 딸아이는 바로 여자 가운데 청련(靑蓮)과 자건(子建)이로다. 조정에서 만일에 여자 진사를 취한다면, 마땅히 장원과 탐화(探花)를 나누어 차지하리로다.”

두 시를 공주와 소저에게 내어 보이니, 두 사람이 각자 공경하고 탄복하였다. 공주가 태후에게 아뢰기를,

“소녀가 비록 다행히 한 수를 완성하였으나, 그 시의 뜻을 누가 생각할 수 없겠나이까? 저저의 시가 곡진하고 정묘하여 소녀가 미칠 바가 못 되나이다.”

태후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여아의 시도 빼어나고 날카로워 매우 사랑스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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