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10. 소유는 상소로 부마가 되라 하는 황제의 명을 거역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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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유는 상소로 부마가 되라 하는 황제의 명을 거역하다

 

 

是日上陪太后而坐, 越王自楊尙書家來入朝, 以楊尙書曾已納聘之意奏,

皇太后不悅曰 : “楊少游爵至尙書, 宜知朝廷事軆 而何其固滯若是耶?”

上曰 : “少游雖已納聘 與成親有異, 朕面諭 則似不可不從也.”

시일상배태후이좌 월왕자양상서가래입조 이양상서증이납빙지의주

황태후불열왈 양소유작지상서 의지조정사체 이하기고체약시야

상왈 소유수이납빙 여성친유이 짐면유 즉사불가부종야

 

이날 황상이 태후를 모시고 앉아 있는데, 월왕이 양상서의 집으로부터 돌아와서 입조(入朝)하여, 양상서가 일찍이 약혼 예물을 받은 사실을 아뢰니, 황태후 즐겁지 않게 말씀하기를,

“양소유 벼슬이 상서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조정의 형편을 알 것이거늘, 그 편벽과 고집이 어찌 이 같을꼬?”

황상이 대답하시기를,

“소유가 이미 혼약을 하였다 하나, 이는 실제 혼인식을 치른 것과는 다르니, 짐이 만나 타이르면 짐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리이다.”

 

翌日命召禮部尙書楊少游, 少游承命入朝上曰 :

“朕有一妹資質超常, 非卿無可與爲配者, 朕使越王以朕意諭矣.

聞卿托以納聘云, 此卿之不思也甚矣. 前代帝王選擇駙馬也, 或出其正妻故

若王獻之終身悔之, 惟宋弘不受君命, 朕意則與古先帝王不同,

旣爲天下萬民之父母, 則豈可以非禮之事 加於人哉?

今卿雖斥鄭家之婚, 鄭女自當有可歸之處, 卿無糟糠下堂之嫌, 豈可有害於倫紀乎?”

익일명소례부상서양소유 소유승명입조상왈

짐유일매자질초상 비경무가여위배자 짐사월왕이짐의유의

문경탁이납빙운 차경지불사야심의 전대제왕선택부마야 혹출기정처고

약왕헌지종신회지 유송홍불수군명 짐의즉여고선제왕부동

기위천하만민지부모 즉기가이비례지사 가어인재

금경수척정가지혼 정녀자당유가귀지처 경무조강하당지혐 기가유해어륜기호

 

다음 날 황상이 명을 내려 예부상서 양소유를 부르시매, 소유가 명을 받들어 입조하니 이르시기를,

“짐에게 한 누이가 있는데 자질이 뛰어나게 예사롭지 않아, 경이 아니면 배필 삼을만한 자가 없겠기에, 짐이 월왕(越王)을 시켜 짐의 뜻을 알리게 하였노라. 경이 납채(納采)한 곳이 있다 하고 사양하더라는 말을 듣고 보니, 이는 경의 짐에 대한 생각 없음이 심한 것 같았도다.

전대의 제왕은 부마(駙馬)를 선택할 때에, 본처를 내쫓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왕헌지(王獻之)는 일생 부마가 된 일을 뉘우쳤고, 오직 송홍(宋弘)만은 임금의 명을 받아드리지 않았도다. 짐의 생각인즉 옛적의 선제왕과는 다르며, 이미 천하 만민의 부모가 되었거늘, 어찌 예에 어긋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가할 수 있으리오?

이제 경이 정씨 집안과 혼인을 뿌리쳐도, 정녀(鄭女)는 마땅히 스스로 갈 곳이 있으리니, 경이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혐의는 없으리로다. 어찌 윤리와 기강을 해치는 것이겠는가?”

 

尙書頓首奏曰 :

“聖上不惟不罪, 又從而諄諄面命, 若家人父子之親, 臣感祝天恩之外, 更無可奏者矣.

然臣之情勢與他人絶異, 臣遠方書生入京之日, 無處可托 厚蒙鄭家眷遇之恩,

迎之舍之禮以待之, 非但儷皮之禮 已行於入門之日, 已與司徒 定翁婿之分, 有翁婿之情.

상서돈수주왈

성상불유부죄 우종이순순면명 약가인부자지친 신감축천은지외 갱무가주자의

연신지정세여타인절리 신원방서생입경지일 무처가탁 후몽정가권우지은

영지사지례이대지 비단려피지례 이행어입문지일 이여사도 정옹서지분 유옹서지정

 

상서가 머리를 조아려 아뢰기를,

“성상께서 죄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거듭 따르도록 순순히 직접 명을 내리심을 집안의 부자지친(父子之親)과 같이 하시오니, 신이 천은에 감축하는 외에는, 다시 더 아뢰올 말씀이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신의 사정과 형세는 타인과 판이하게 다르옵니다. 신이 원방 서생의 몸으로 서울에 들어오던 날, 의탁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정씨 집안의 따뜻한 은혜를 후하게 입어, 저를 맞아 머물게 해 주고 예로서 저를 대하였사옵니다. 다만 짝을 맺는 예만 아직 행하지 않았지, 그 집에 들어오던 날, 이미 사도 어른과 장인과 사위의 사이가 되었고, 장인과 사위의 정을 나누었나이다.

 

且男女旣已相見, 恰有夫婦之恩義, 而未行親迎之禮者盖以國家多事, 不遑將母也,

今幸藩鎭歸化 天憂已紓, 旦方欲急請還鄕, 迎歸老母 卜日成札矣.

意外皇命及於無狀, 小臣驚惶震懼 不知所以自處也.

臣若畏罪將順皇命, 則鄭女以死自守 必不他適, 此豈非匹婦之失所, 王政之有歉者乎?”

차남녀기이상견 흡유부부지은의 이미행친영지례자개이국가다사 불황장모야

금행번진귀화 천우이서 단방욕급청환향 영귀로모 복일성찰의

의외황명급어무상 소신경황진구 부지소이자처야

신약외죄장순황명 즉정녀이사자수 필불타적 차기비필부지실소 왕정지유겸자호

 

또 남녀가 이미 서로 낯을 보았으니, 흡사 부부의 은의가 있사옵나이다. 친영(親迎)의 예를 행하지 못하옴은 대개 국가에 일이 많아, 급히 모친을 모셔올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이제 다행히 변방이 평정되고 황상의 근심이 이미 가라앉았은 즉, 신이 바야흐로 급히 청을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노모를 모셔온 후, 택일하여 성례를 하려고 하였나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별 재주가 없는 소신에게 황명을 내리시오니, 소신은 깜짝 놀랍고 두려워 스스로 처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신이 만일 죄를 두려워하여 황명을 받자오면, 곧 정녀는 죽기로써 스스로를 지키어 반드시 다른 곳으로 출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는 단지 필부(匹婦)를 잃는 것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요, 왕정(王政)에도 거리끼는 것이 있지 않으오리이까?”

 

上曰 : “卿之情理 雖云悶迫, 若以大義言之 則卿與鄭女, 卒無夫婦之義,

鄭女豈可不入於他人之門乎? 今朕之欲與卿結婚者, 不獨朕以柱石待卿也, 以手足視卿也.

太后慕卿威容德器 親自主張, 恐朕亦不得自由矣.

尙書猶且固讓上曰 : “婚姻大事也, 不可以一言決定, 朕姑與卿着碁 以消長日矣.”

상왈 경지정리 수운민박 약이대의언지 즉경여정녀 졸무부부지의

정녀기가불입어타인지문호 금짐지욕여경결혼자 부독짐이주석대경야 이수족시경야

태후모경위용덕기 친자주장 공짐역부득자유의

상서유차고양상왈 혼인대사야 불가이일언결정 짐고여경착기 이소장일의

 

황상께서 이르시기를,

“경의 정리가 비록 딱하고 인정이 없을 듯하나, 대의(大義)의 측면에서 말할 것 같으면 경은 정녀와 끝내 부부의 도리를 맺지 않았도다. 정녀가 어찌 다른 사람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겠는가?

이제 짐이 경과 혼인의 관계를 맺으려 함은, 짐이 경을 국가의 주석지신(柱石之臣)으로 대하려 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을 수족으로 삼으려 함이니라. 태후가 경의 위용과 어진 도량과 재능을 흠모하사 친히 몸소 혼례를 주장하시니, 짐 또한 자유로이 할 수가 없음이 두렵도다.”

상서가 오히려 또 굳이 사양하므로, 황상이 말씀하시기를,

“혼인은 대사이므로 한마디 말로써 결정함은 옳지 않은 즉, 짐은 경과 함께 바둑이나 두며 소일하겠노라.”

 

命小黃門進局, 君臣相對賭勝 日昏乃罷.

鄭司徒見楊尙書來, 悲慘之色 溢於滿面, 拭淚而言曰 :

“今日皇太后下詔, 使退楊郞之禮綵故, 老夫已出 付於春雲, 置於花園

而顧念小女之身世, 吾老夫妻心事當作何如狀也?

吾則菫能撑支 而老妻沉慮成疾, 方昏瞀不省人事矣.”

명소황문진국 군신상대도승 일혼내파

정사도견양상서래 비참지색 일어만면 식루이언왈

금일황태후하조 사퇴양랑지례채고 노부이출 부어춘운 치어화원

이고념소녀지신세 오로부처심사당작하여상야

오즉근능탱지 이로처침려성질 방혼무불성인사의

 

황문에게 바둑판을 내오라 명하시어, 군신이 서로 승부를 겨루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그만두었다. 양상서가 돌아온 것을 보고, 정사도는 슬픈 빛을 만면에 띤 채, 눈물을 닦으며 이르기를,

“오늘 황태후께서 조서(詔書)를 내려 양랑의 예채(禮綵)를 도로 물리라 하거늘, 노부(老夫)가 이미 내놓고서 춘운에게 맡겨 화원에 두었다네. 딸아이의 신세를 곰곰이 생각건대 우리 노부부의 심사가 어떠하겠는가? 나는 가까스로 부지할 수 있으나, 늙은 아내는 지나치게 근심한 탓으로 병이 들어, 바야흐로 정신이 아득하게 되어 인사불성(人事不省)이로세.”

 

尙書失色無言乃告曰 : “是事不可但已, 小婿當上表力爭, 朝廷之上亦豈無公論?”

司徒正之曰 : “楊郞之違拒上命 已至再矣, 今若上踈 則豈無批鱗之懼哉?

必有重譴不如順受而已.

且有一事 楊郞之仍處花園, 大有不安於事軆者, 倉卒相離 雖甚缺然, 移寓他所實合事宜矣.”

상서실색무언내고왈 시사불가단이 소서당상표력쟁 조정지상역기무공론

사도정지왈 양랑지위거상명 이지재의 금약상소 즉기무비린지구재

필유중견불여순수이이

차유일사 양랑지잉처화원 대유불안어사체자 창졸상리 수심결연 이우타소실합사의의

 

상서가 얼굴빛을 잃고 말을 않고 있다가 아뢰기를,

“이 일은 옳지 않은 일이옵니다. 소서(小婿)가 마땅히 표(表)를 올려 힘껏 싸우면, 조정에 또한 어찌 공론이 없겠습니까?”

사도가 이 말을 제지하며 이르기를,

“양랑이 황상의 명을 거역함이 이미 여러 번인데, 이제 만일 상소하면 어찌 비늘을 찌르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없겠는가? 반드시 중한 죄책이 있을 것이니, 순순히 따르는 것만 못할 것이로다. 또한 일이 벌어졌는데, 양랑이 거듭 화원에 있는 것은 일의 형편상 무척 불안하니, 급작스럽게 서로 헤어짐은 비록 무척 서운하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실로 합당한 일이로다.”

 

楊尙書不答 屨及花園, 春雲鳴鳴咽咽 泪痕染瀾,

乃奉納幣物曰 : “賤妾以小姐之命, 來侍相公已有年矣, 偏荷盛眷 恒功感愧,

神妬鬼猜 事乃大謬, 小姐婚事無復餘望. 賤妾亦當永訣相公 歸侍小姐, 天乎地乎 鬼乎人乎!”

仍飮泣聲如縷矣.

양상서부답 구급화원 춘운명명열열 누흔염란

내봉납폐물왈 천첩이소저지명 래시상공이유년의 편하성권 항공감괴

신투귀시 사내대류 소저혼사무복여망 천첩역당영결상공 귀시소저 천호지호 귀호인호

잉음읍성여루의

 

양상서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신을 끌면서 화원에 이르니, 춘운이 흐느껴 울어 눈물 흔적이 선명했다.

이에 폐물(幣物)을 받들어 올리면서 아뢰기를,

“천첩이 소저(小姐)의 명을 받고 와서, 상공을 모신지 이미 여러 해 되었사옵니다. 특별히 후한 은혜를 입어 항상 무척 감격하였으나, 신이 투기하고 귀신이 시기하여 일이 크게 잘못되어서, 소저의 혼사는 되돌릴 수 있는 작은 기대도 없게 되었사옵니다. 천첩도 또한 마땅히 상공과 영원히 이별하고, 돌아가서 소저를 모시겠나이다.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귀신이시여, 사람이시여.”

하며, 가늘게 계속 흐느껴 울었다.

 

尙書曰 : “吾方欲上踈力辭 皇上庶或回聽, 設未能得聽, 女子許身於人 則從夫禮也,

春娘夫豈背我之人哉?”

春娘曰 : “賤妾雖不明 亦嘗聞古人緖論矣, 豈不知女子三從之義乎?

春雲情事有異於人, 妾曾自吹葱之日 與小姐遊戱, 及至毁齒之歲, 與小姐居處

忘貴賤之分, 結死生之盟, 吉凶榮辱 不可異同, 春雲之從小姐如影之隨形,

身固旣去 則影豈獨留乎?”

상서왈 오방욕상소력사 황상서혹회청 설미능득청 여자허신어인즉종부례야

춘랑부기배아지인재

춘랑왈 천첩수불명 역상문고인서론의 기부지녀자삼종지의호

춘운정사유리어인 첩증자취총지일 여소저유희 급지훼치지세 여소저거처

망귀천지분 결사생지맹 길흉영욕 불가리동 춘운지종소저여영지수형

신고기거 즉영기독류호

 

상서가 이르기를,

“내 바야흐로 상소를 올리어 힘껏 사양하면, 황상께서 혹시 마음을 돌리고 들으실지도 모를 일이로다. 설령 들으시지 않는다 해도 여자가 남에게 몸을 허락하였으면, 지아비를 따르는 것이 예이거늘, 춘랑은 어찌 나를 등지는 사람이 되려 하는가?”

춘랑이 답하기를,

“천첩이 비록 불명하오나, 또한 일찍이 고인의 서론(緖論)을 들었으니, 어찌 여자가 가야 할 삼종(三從)의 도리를 알지 못하겠사옵니까? 춘운의 정사(情事)는 다른 사람의 경우와 다르옵니다.

첩은 일찍이 어릴 적부터 소저와 함께 노닐고, 또 나이가 들어서는 소저와 함께 거처하여 귀천의 신분을 잊고 사생의 맹세를 맺었으니, 소저와 길흉과 영욕을 달리함은 아니 되옵니다. 춘운이 소저를 좇음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사온데, 몸이 이미 떠났다면 그림자가 어찌 홀로 머무를 수가 있겠나이까?”

 

尙書曰 : “春娘爲主之誠可謂至矣.

但春娘之身與小姐異, 小姐東西南北唯意擇路, 春娘從小姐事它人, 得無有妨於女子之節乎?”

春雲曰 : “相公之言到此, 不可謂知吾小姐也.

小姐已有定計, 長在吾老爺及夫人膝下, 待過百年之後潔身斷髮, 去托空門發願於佛前,

世世生生 誓不爲女子之身, 春雲蹤跡 亦將如斯而已.

상서왈 춘랑위주지성가위지의

단춘랑지신여소저리 소저동서남북유의택로 춘랑종소저사타인 득무유방어녀자지절호

춘운왈 상공지언도차 불가위지오소저야

소저이유정계 장재오노야급부인슬하 대과백년지후결신단발 거탁공문발원어불전

세세생생 서불위녀자지신 춘운종적 역장여사이이

 

상서가 이르기를,

“춘랑의 주인을 위한 정성은 지극하다 할 만하도다. 다만 춘랑의 몸은 소저와는 다르리로다. 소저는 동서남북에서 오직 뜻대로 길을 택할 수 있으려니와, 춘랑이 소저를 좇아 다른 사람을 섬긴다 하여, 여자의 절행(節行)에 어찌 거리끼는 바가 없겠느냐?”

춘운이 답하기를,

“상공의 말씀이 이에 이르니, 저와 소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사옵니다. 소저께서 이미 정한 계책이 있는데, 우리 노야와 부인의 슬하에서 오래 계시다가, 백 년이 지난 뒤를 기다리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머리를 깎아, 불문(佛門)에 가서 의탁하고 부처 앞에서 발원하려 하시옵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맹세코 여자의 몸이 되지 않으려 하시니, 춘운의 종적 역시 이와 같을 뿐이옵니다.

 

相公如欲復見春雲, 相公禮幣復入於小姐房中然後, 當議之矣, 不然則今日卽生離死別之日也.

妾任相公使令者專矣, 荷相公恩愛者久矣.

報效之道惟在於拂枕席奉巾櫛, 而事與心違到此地頭.

只願後世爲相公犬馬, 以效報主之忱矣 惟相公保攝保攝.”

상공여욕부견춘운 상공례폐부입어소저방중연후 당의지의 불연즉금일즉생리사별지일야

첩임상공사령자전의 하상공은애자구의

보효지도유재어불침석봉건즐 이사여심위도차지두

지원후세위상공견마 이효보주지침의 유상공보섭보섭

 

상공께서 만일 춘운을 다시 보려고 하시면, 상공의 예폐(禮幣)가 소저의 방속으로 다시 들어간 연후에야 마땅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이 바로 살아서는 멀리 떨어지고, 죽어서는 아주 이별하는 날이 될 것이옵니다.

첩은 상공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영을 듣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상공의 은애를 입은 지가 오래되었나이다. 오직 침구를 정갈히 하고 남자 시중드는 데에는 첩이 있었으며, 일과 마음으로 섬겨 여기에 이르렀사옵니다. 후세에 상공의 개와 말이 되어 주인을 위하는 정성을 힘껏 바치려 하오니, 오직 상공께서는 몸을 보전하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向隅呼咷者半日, 乃翻身下階再拜而入.

尙書五情憒亂 萬慮膠擾, 仰屋長吁撫掌 頻唏而已.

乃上一䟽言甚激切 其疏曰 :

향우호도자반일 내번신하계재배이입

상서오정궤란 만려교요 앙옥장우무장 빈희이이

내상일소언심격절 기소왈

 

모퉁이를 향하여 돌아앉아서 반나절이나 흐느껴 울다가,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가 재배하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양상서는 오정(五情)이 심란하고, 무슨 일에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푸른 하늘을 우러러 깊은 한숨을 쉬고 손을 어루만지며 자주 탄식할 뿐이었다.

바로 상소문을 올렸는데, 언사가 매우 격절하였다.

그 상소문에 쓰기를,

 

“禮部尙書臣楊少游, 謹頓首百拜 上言于皇帝陛下,

伏以倫紀者王政之本也, 婚姻者人倫之始也. 一失其本 則風化大壞 而其國亂,

不謹其始 則家道不成而其家亡, 有關於家國之興衰者, 不其較著乎?

是以聖王哲辟, 未嘗不留意於是, 欲治其國 必以植倫紀爲重, 欲齊其家 必以定婚姻爲先者,

예부상서신양소유 근돈수백배 상언우황제폐하

복이륜기자왕정지본야 혼인자인륜지시야 일실기본 즉풍화대괴 이기국란

불근기시 즉가도불성이기가망 유관어가국지흥쇠자 불기교저호

시이성왕철벽 미상불류의어시 욕치기국 필이식륜기위중 욕제기가 필이정혼인위선자

 

“예부상서 신 양소유는 삼가 돈수(頓首) 백배하옵고, 말씀을 황상 폐하께 올리나이다.

엎드려 아뢰건대, 윤리와 기강은 왕정의 근본이요, 혼인은 인륜의 시작이옵니다. 그 근본을 한번 잃은 즉 풍화(風化)가 크게 무너져서 나라가 어지럽고, 그 처음을 삼가지 아니한즉 가도(家道)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그 집이 망하게 되오니,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련됨이 어찌 분명하지 않으리이까?

그러므로 품성이 어질고 이치에 밝은 성왕께옵서는, 미상불(未嘗不) 이에 유의하시어 나라를 다스리고자 함에 반드시 윤리와 기강을 붙드는 것으로써 그 중함을 삼으셨사옵니다. 또 집을 가지런히 하고자 함에, 반드시 혼인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으뜸을 삼으셨사옵니다.

 

臣旣已納幣於鄭女, 且已托跡於鄭家, 則臣固有妻也固有室也.

不意今者 歸妹之盛禮, 遽及於無似之賤臣, 臣始疑終惑震駭悚惕,

實不知聖上之擧措朝家處分, 果能盡其禮 而得其當也.

신기이납폐어정녀 차이탁적어정가 즉신고유처야고유실야

불의금자귀매지성례 거급어무사지천신 신시의종혹진해송척

실부지성상지거조조가처분 과능진기례 이득기당야

 

신이 이미 예물과 폐물을 정녀에게 보내었고, 또한 자취를 이미 정가에 의탁하였사온 즉, 신은 이미 처가 있고 가정이 있는 것이옵니다. 뜻밖에도 이제 황상께서 누이를 시집 보낸다 하고, 성례(盛禮)를 갑자기 못난 천신(賤臣)에게 말씀하시니, 신은 처음과 끝이 어리둥절하여 깜짝 놀랍고 두렵사옵니다. 황상께서 취하신 조처와 조정의 처분이, 과연 그 예를 다하고, 또한 그 예에 타당한 것이었는지 실로 알지 못하겠나이다.

 

設令臣未行儷皮之幣, 不作甥舘之客 涘賤而地微, 才湔而學蔑 則寔不合於錦臠之抄揀,

而况與鄭女 已有伉儷之義, 與婦翁 已定舅甥之分, 不可謂六禮之未行也.

豈可以貴价之尊, 下嫁於匹夫之微 而不問禮之可否, 不分事之輕重,

冒苟且之譏 而行非禮之禮乎?

至於密下內旨, 使之廢已行之禮儀, 退已捧之聘幣 尤非臣攸聞也.

설령신미행려피지폐 부작생관지객 사천이지미 재전이학멸 즉식불합어금련지초간

이황여정녀 이유항려지의 여부옹 이정구생지분 불가위육례지미행야

기가이귀개지존 하가어필부지미 이불문례지가부 불분사지경중

모구차지기 이행비례지례호

지어밀하내지 사지폐이행지례의 퇴이봉지빙폐 우비신유문야

 

설령 신이 약혼을 행하지 아니하여, 정사도의 사위가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방이 별로 볼일이 없고, 재주가 얕으며 학식이 짧은즉, 부마로 간택됨이 실로 합당치 못하옵니다. 하물며 정녀와 짝이 되고자 도리를 맺고, 부옹(婦翁)과 더불어 사위와 장인이 되기로 정하였으니, 육례(六禮)를 행하지 아니하였다고 이르지 못할 것이옵니다.

어찌 귀한 몸이신 공주를, 필부의 미미한 자에게 시집을 보내시려, 예법의 가부를 묻지 않으려 하시옵니까? 사안의 경중을 분간치 않으시고, 구차한 기록을 무릅쓰고, 예가 아닌 예를 행하려 하시옵니까? 이에 밀지를 내려 이미 행한 예의를 폐기케 하고, 이미 봉행한 폐백을 물리치게 하시오니, 더욱이 신은 고금에 들은 바가 없사옵니다.

 

臣恐陛下 未能效光武待宋弘之寬也, 賤臣危迫之忱, 已關於聖明之聽,

臣固不敢更溷於紸纊之下, 而臣之所恐者 王政由臣而亂, 人倫因臣而廢,

以至於上累聖治 下壞家道, 終不救亂亡之禍也.

伏乞聖上重禮義之本, 正風化之始 亟收詔命, 以安賤分 不勝幸甚.”

신공폐하 미능효광무대송홍지관야 천신위박지침 이관어성명지청

신고불감갱혼어주광지하 이신지소공자 왕정유신이란 인륜인신이폐

이지어상루성치 하괴가도 종불구란망지화야

복걸성상중례의지본 정풍화지시 극수조명 이안천분 불승행심

 

신은 폐하께옵서, 광무제께서 송홍(宋弘)을 관대히 대하신 것을 본받지 못하실까 두렵사옵니다. 천신의 간절한 정성은 이미 황상께옵서 명철히 들으심에 달려 있으니, 신은 굳이 죽어가는 데에서까지 감히 다시 욕을 보이고 싶지 않사옵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바는 왕정이 신으로 말미암아 어지럽고, 인륜이 신으로 말미암아 무너짐이옵니다. 이로써 위로는 성상의 성치(聖治)에 누를 끼치옵고, 아래로는 가도(家道)를 무너뜨려, 마침내는 어지럽고 망하게 되는 화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하는 것이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성상께옵서는 예의의 근본을 중히 여기시고 풍화의 비롯함을 바르게 하사, 빨리 명을 거두시어 천한 신분을 편안케 해 주시오면, 이만 다행한 일이 없을까 하옵니다.”

 

上覽疏 轉奏於太后, 太后大怒 下楊少游於獄, 朝廷大臣一時齊諫 上曰 :

“朕知其罪罰之太過 而太后娘娘方震怒 朕欲救.”

太后欲困楊少游, 不下公事者至數日, 鄭司徒尤惶恐 杜門謝客.

상람소 전주어태후 태후대로 하양소유어옥 조정대신일시제간상왈

짐지기죄벌지태과 이태후낭낭방진로 짐욕구

태후욕곤양소유 불하공사자지수일 정사도우황공 두문사객

 

황상이 그 상소를 보시고 태후에게 다시 아뢰시니, 태후가 크게 노하여 양소유를 옥에 가두라 하고, 조정의 대신들도 일시에 함께 간하였다.

황상이 이르시기를,

“짐이 그의 죄와 벌이 심히 과한 줄 알고, 태후 낭낭께서 그토록 진노하시지만 구해 보도록 하겠소.”

태후는 양소유를 괴롭히려고 조정의 일을 내리지 않기를 여러 날 하였고, 정사도도 한층 더 두렵고 무서워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손님도 맞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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