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9. 궁녀가 된 진채봉은 소유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쓰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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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궁녀가 된 진채봉은 소유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쓰다

 

王卽辭歸 尙書入見司徒, 以越王之言告之,

春雲已告於閤下矣, 擧家遑遑莫知所爲, 司徒慘沮不能出一言,

尙書曰 : “岳丈勿慮 天子聖明, 守法度重禮儀, 必不壞了臣子之倫紀,

小婿雖不肖, 誓不作宋弘之罪人矣.”

왕즉사귀 상서입견사도 이월왕지언고지

춘운이고어합하의 거가황황막지소위 사도참저불능출일언

상서왈 악장물려 천자성명 수법도중례의 필불괴료신자지륜기

소서수불초 서부작송홍지죄인의

 

월왕이 곧 작별하고 돌아가자, 상서가 들어가 정사도를 뵙고, 월왕의 말한 바를 아뢰고, 춘운은 이미 부인에게 그 사실을 고하였다. 이에 온 집안이 황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사도는 비참하고 마음이 상하여 한마디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상서가 아뢰기를,

“악장은 염려치 마옵소서. 천자께서 덕망이 높고 밝으시고, 법도를 지키고 예의를 중히 여기시옵니다. 반드시 신하의 윤리와 기강을 어지럽게 아니하실 것이오매, 소서가 비록 불초하오나 맹세코 송홍(宋弘)의 죄인은 되지 아니하오리다.”

 

先時 太后出臨蓬萊殿, 窺見楊少游 心甚喜悅,

謂皇上曰 : “此眞蘭陽之匹也, 吾旣親見 更何議乎?”

卽使越王先諭於楊少游.

天子方欲命召 而面諭矣, 上在別殿, 忽思昨日少游詩才筆法,

俱極精妙 更欲親覽, 使太監盡收女中書等所受詩牋.

선시 태후출림봉래전 규견양소유 심심희열

위황상왈 차진난양지필야 오기친견 갱하의호

즉사월왕선유어양소유

천자방욕명소 이면유의 상재별전 홀사작일소유시재필법

구극정묘 갱욕친람 사태감진수녀중서등소수시전

 

지난번에 태후께서 봉래전에 나오셔서 양소유를 몰래 보고, 마음에 몹시 흡족히 여겨 황상께 이르시기를,

“이 자는 진실로 난양의 배필이 될 자로, 내가 이미 몸소 보았는데 어찌 다시 의논할 게 있겠는가?”

바로 월왕을 시켜 먼저 양소유에게 알려 주었다.

황상은 장차 양소유를 부르도록 명을 내려서 직접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셨다. 그 전에 황상은 별전에 머물던 중, 문득 어제 양소유가 지은 시재와 필법 모두가 극히 정묘한 것이 생각나 다시 친히 보시고 싶어서, 태감(太監)을 시켜 여중서(女中書) 등이 받아 가진 시가 쓰인 종이를 모두 걷어 들이도록 하였다.

 

諸宮人皆深藏於篋笥 而惟一宮人, 持題詩畵扇 獨歸寢所,

置之懷中 終夕悲啼, 忘寢廢食 此宮女非他人也, 姓秦名彩鳳 華州秦御史女子.

御史死於非命 沒入於宮掖, 宮人皆稱秦女之美,

上召見之 欲封婕妤, 時皇后有寵 嫌秦女之太美,

白於上曰 : “秦家女可合昵侍至尊, 而陛下殺其父而近其女, 恐非古先哲王 立刑遠色之道也.”

제궁인개심장어협사 이유일궁인 지제시화선 독귀침소

치지회중 종석비제 망침폐식 차궁녀비타인야 성진명채봉 화주진어사녀자

어사사어비명 몰입어궁액 궁인개칭진녀지미

상소견지 욕봉첩여 시황후유총 혐진녀지태미

백어상왈 진가녀가합닐시지존 이폐하살기부이근기녀 공비고선철왕 립형원색지도야

 

모든 궁녀가 다 상자에 시를 깊이 넣어 두었는데, 오직 한 궁녀만이 시를 쓴 그림 부채를 가지고 홀로 침소에 돌아가 품속에 간직하고 밤새도록 슬피 울며 침식을 전폐하였다. 이 궁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채봉(彩鳳)인, 화주 땅 진어사(秦御史)의 딸이었는데, 어사가 비명에 죽자 대궐 안 계집종으로 들어왔다.

궁인들이 모두 진녀(秦女)의 아름다움을 일컬으니, 황상께서 불러 보시고 궁녀로 봉하고자 하였다. 황후께서는 진녀를 아끼지만, 심히 아름다움을 꺼리시어, 황상께 간하였기를,

“진가의 딸은 폐하를 가까이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폐하께서 그 아비를 죽이고 그 딸을 가까이하려 하심은, 옛날에 밝은 임금이 형벌을 세우고 색을 멀리하던 도리에 어긋날까 염려되나이다.”

 

上從之 問於秦氏曰 : “汝知文字乎?”

秦女曰 : “菫卞魚魯矣.”

上命爲女中書 使掌宮中文書, 仍令進往皇太后宮中, 陪蘭陽公主 讀書習字,

公主大愛秦氏妙色奇才, 視如宗戚 跬步相隨, 不忍一時分離.

상종지 문어진씨왈 여지문자호

진녀왈 근변어로의

상명위녀중서 사장궁중문서 잉령진왕황태후궁중 배난양공주 독서습자

공주대애진씨묘색기재 시여종척 규보상수 불인일시분리

 

황상께서는 그 말을 따르시고, 진녀를 불러 물으셨기를,

“네가 글을 아느냐?”

진녀가 답했기를,

“가까스로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별할 정도입니다.”

황상이 명하여 여중서를 삼아 궁중 문서를 맡게 하시고, 거듭 황태후 궁으로 나아가 난양공주를 모시고 글도 읽고 글씨도 익히게 하였다. 공주도 진녀의 아름다움과 재주를 지극히 사랑하여, 종친과 왕실의 외척같이 여기고, 약간 움직일 때도 항상 같이 다니며 차마 잠시도 서로 나뉘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秦氏是日侍太后往蓬萊殿, 仍承上命與女中書等, 乞詩於楊尙書,

尙書之七竅百骸 曾已銘鏤於秦氏之心肝矣, 豈有不知之理哉?

秦女生存 尙書旣不能知之, 况天威咫尺 亦不敢擧目.

진씨시일시태후왕봉래전 잉승상명여녀중서등 걸시어양상서

상서지칠규백해 증이명루어진씨지심간의 기유부지지리재

진녀생존 상서기불능지지 황천위지척 역불감거목

 

진녀가 이날 태후를 모시고 봉래전에 나아가, 이에 황상의 명을 받들어 여중서들과 더불어 양상서의 시를 받을 때, 상서의 몸의 모든 부분이 일찍이 이미 진씨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상서는 어찌 알아보지 못하였는가.

진녀가 생존해 있으리라곤 상서는 일찍이 알 수도 없었거니와, 하물며 황상이 지척에 있으니 또한 감히 눈을 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秦女一見 尙書心如火熾, 莊悲匿哀 恐被人知, 痛情義之不通,

悲鸞緣之難續, 手把團扇 口詠淸詩, 一展一吟 不忍暫釋

其詩曰 :

진녀일견 상서심여화치 장비익애 공피인지 통정의지불통

비란연지난속 수파단선 구영청시 일전일음 불인잠석

기시왈

 

진녀는 상서를 한 번 보고는, 마음이 불타는 듯 슬픔이 솟구치나, 쓰라림을 숨기고, 다른 사람이 수상히 여길까 두려워하였다. 인정과 의리가 통하지 못함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옛 인연을 잇기가 어렵게 되었음을 못내 탄식하였다. 손에 둥근 부채를 들고 맑은 시를 읊조리며, 한 번 펼 적마다 그 시를 읊조리고 차마 잠시도 놓지 못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紈扇團團似明月 환선단단사명월

佳人玉手爭皎潔 가인옥수쟁교결

五絃琴裏薰風多 오현금리훈풍다

出入懷裏無時歇 출입회리무시헐

 

紈扇團團月一團 환선단단월일단

佳人玉手正相隨 가인옥수정상수

無路遮却如花面 무로차각여화면

春色人間摠不知 춘색인간총부지

 

깁부채가 둥글둥글 밝은 달 같았는데

가인의 고운 손에서 희고 맑음을 겨루더라.

오현금에 따뜻한 바람이 많았으니

마음속으로 드나들어 쉴 때가 없었노라.

 

깁부채가 둥글둥글 달 한 바퀴 돌아

가인의 고운 손이 정히 서로 따르누나.

꽃 같은 얼굴을 가릴 길이 없었으니

봄빛을 사람들은 내내 알지 못하더라.

 

秦氏詠前一首而歎曰 : “楊郞不知我心矣. 我雖在宮中, 豈有承恩之念哉?”

又詠後一首而歎曰 : “我之容貌 他人雖不得見之,

楊郞必不忘於心 而詩意若斯, 咫尺誠如千里矣.”

진시영전일수이탄왈 양랑부지아심의 아수재궁중 기유승은지념재

우영후일수이탄왈 아지용모 타인수부득견지

양랑필불망어심 이시의약사 지척성여천리의

 

진씨가 앞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양랑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내 비록 궁중에 있으나, 어찌 황제의 은혜를 받을 생각을 하였겠는가?”

또 뒤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내 얼굴을 자기가 비록 볼 수는 없구나. 양랑은 필연 마음으로는 잊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글 뜻이 이와 같으니 지척이 실로 천 리 같구나.”

 

仍憶在家之時與楊郞, 唱和楊柳詞之事, 悲不自抑 和淚濡筆, 續題一詩於扇頭 方吟哢矣,

忽聞太監以上命來索畵扇, 秦氏骨驚膽落 肥肉自顫,

叫苦之聲 自出於口曰 : “我其死矣 我其死矣.”

잉억재가지시여양랑 창화양류사지사 비불자억 화루유필 속제일시어선두 방음롱의

홀문태감이상명래색화선 진씨골경담락 비육자전

규고지성 자출어구왈 아기사의 아기사의

 

거듭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양랑과 양류사(楊柳詞)를 화답하여 부르던 일을 생각하니,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눈물이 돌아 붓을 적셨다. 부채 머리에 시 한 수를 이어 쓰고 바야흐로 읊으며 자조하고 있는데, 홀연 태감이 황상의 명령으로 그림 부채를 와서 찾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씨는 뼈가 으스러지며 간이 떨어지는 듯하고, 살이 찢어지는 듯하여 저절로 사지를 떨며, 입에서는 괴로운 탄성이 저절로 나와 부르짖기를,

“나는 죽었구나. 나는 죽었구나.”

 

太監謂秦氏曰 : “皇上欲復見楊尙書詩故, 小宦承命來收矣.”

秦氏泣謂曰 : “薄命之人死期已迫, 偶和其詩題於其尾, 自犯必死之罪.

皇上若見之 則必不免誅戮之禍, 與其伏法而死, 毋寧自決之爲快也,

方將以此殘命, 付於三尺之下 而身死後, 揜土一事 專恃於太監,

伏乞太監哀之憐之 收瘞殘骸, 無令爲烏鳶之食 幸甚幸甚.

태감위진씨왈 황상욕부견양상서시고 소환승명래수의

진씨읍위왈 박명지인사기이박 우화기시제어기미 자범필사지죄

황상약견지 즉필불면주륙지화 여기복법이사 무령자결지위쾌야

방장이차잔명 부어삼척지하 이신사후 암토일사 전시어태감

복걸태감애지련지 수예잔해 무령위오연지식 행심행심

 

태감이 진씨에게 명하기를,

“황상이 부채에 쓴 양상서의 시를 다시 보고 싶어 하시니, 소환(小宦)이 명을 받들어 가지러 왔소이다.”

진씨가 울면서 아뢰기를,

“박명한 사람이 죽을 때가 이미 다 되어, 우연히 그 시의 끝부분에 그 시제(詩題)에 화답하는 글을 써서 스스로 꼭 죽을죄를 범하였나이다. 황상이 만일 그것을 보시면 필시 죄를 물어 죽일 것인즉, 법에 걸려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더 마음이 쾌한 것이외다.

바야흐로 이 쇠잔한 목숨이 장차 삼 척의 칼 아래에서 끝나면, 이 몸이 죽은 후에 흙이나 겨우 덮어 장사를 치르는 일은 오직 태감만을 믿겠사옵니다. 바라건대 태감은 나를 불쌍하고도 가련히 여기시어, 나의 잔해를 거두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지 않게 해 주면, 이만 다행한 일이 없을 듯하나이다.”

 

太監曰 : “女中書何爲此言也? 聖上仁慈寬厚逈出百王,

或者終不可罪, 設有震疊之威, 我當出力救之, 中書隨我而來.”

秦氏且哭且行 隨太監而去, 太監使秦氏立於殿門之外, 入以諸詩 進於上.

태감왈 여중서하위차언야 성상인자관후형출백왕

혹자종불가죄 설유진첩지위 아당출력구지 중서수아이래

진씨차곡차행 수태감이거 태감사진씨립어전문지외 입이제시 진어상

 

태감이 답하기를,

“여중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는고? 성상께서는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이 여러 왕 가운데서도 유독 뛰어나시니, 혹 끝내는 죄를 아니 주시리라. 설령 진노하는 위엄을 보이신다 해도, 내 마땅히 나서서 힘껏 구할 것이니, 중서는 나를 쫓아오시오.”

진씨가 울며 나서서 태감을 좇아가니, 태감이 진씨를 어전 문밖에 세워 두고 모든 시를 가지고 들어가 황상께 올렸다.

 

上留眼披閱 至秦氏之扇, 尙書所題之下 又有它詩, 訝之問於太監 太監告曰 :

“秦氏謂臣云 不知皇爺有裒取之命, 猥以荒蕪之語續題於其下, 此死罪必不貸也,

仍欲自死 臣開諭而止, 領率而來矣.

상류안피열 지진씨지선 상서소제지하 우유타시 아지문어태감 태감고왈

진씨위신운 부지황야유부취지명 외이황무지어속제어기하 차사죄필불대야

잉욕자사 신개유이지 영솔이래의

 

황상이 찬찬히 펼쳐보시다가 진씨의 부채에 이르러서는, 상서의 글 아래에 또 다른 사람의 시가 있는지라. 황상께서 그것을 의아히 여겨 태감에게 물으시니, 태감이 아뢰기를,

“진씨가 신에게 이르되, 황상께서 그것을 거두어들이라는 명을 내리실 줄도 모르고, 외람되이 어지러운 말들을 그 아래에 계속해서 써 놓았다 하옵니다. 이 죽을죄는 필연 용서받기가 어렵도다 하고, 이에 스스로 죽으려 하거늘, 신이 알아듣도록 잘 타일러 행동을 멈추게 하고, 진씨를 거느리고 왔사옵니다.”

 

上又詠其詩詩曰 :

상우영기시시왈

 

紈扇團如秋月團 환선단여추월단

憶曾樓上對羞顔 억증루상대수안

初知咫尺不相識 초지지척부상식

却悔敎君仔細看 각회교군자세간

 

황상이 그 시를 읊조리니, 시에 이르기를,

 

깁부채 둥근 것이 가을 달처럼 둥근데

지난 날 누각에서 수줍게 마주한 것 기억하노라.

처음에 지척에서 서로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오히려 후회하노라, 그대 자세히 보라 할 것을.

 

上見畢曰 : “秦氏必有私情也. 不知何處與何人相見, 而其詩意如此耶?

然其才足惜 而亦可獎也.”

使太監召之 秦氏伏於階下, 叩頭請死

上下交曰 : “直告則當赦死罪. 汝與何人 有私情乎?”

상견필왈 진씨필유사정야 부지하처여하인상견 이기시의여차야

연기재족석 이역가장야

사태감소지 진씨복어계하 고두청사

상하교왈 직고즉당사사죄 여여하인 유사정호

 

황상이 다 보시고 말씀하기를,

“진씨가 사사로운 정이 있음이 틀림없도다. 어느 곳에서 누구를 서로 보았기에 그 시의 뜻이 이와 같은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지만 그 재주는 훌륭하고 또한 권장할 만하도다.”

태감으로 하여금 진씨를 부르게 하니, 진씨가 계단 아래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죽음을 청하매, 황상께서 하교하기를,

“곧바로 고하면 마땅히 죽을죄를 용서해 주리라. 네 어떤 사람과 사사로운 정이 있느냐?”

 

秦氏又叩頭曰 : “臣妾何敢抵諱於嚴問之下乎? 臣妾家敗亡之前, 楊尙書赴擧之路,

適過妾家樓前, 臣妾偶與相見和其楊柳詞 送人通意與結婚媾之約矣.

頃當蓬萊引見之日, 妾能解舊面 而楊尙書獨不知故, 妾戀舊興感撫躬自悼, 偶題胡亂之說,

終至於上累聖鑒, 臣妾之罪萬死猶輕.”

진씨우고두왈 첩신하감저휘어엄문지하호 신첩가패망지전 양상서부거지로

적과첩가루전 신첩우여상견화기양류사 송인통의여결혼구지약의

경당봉래인견지일 첩능해구면 이양상서독부지고 첩연구흥감무궁자도 우제호란지설

종지어상루성감 신첩지죄만사유경

 

진씨가 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쭙기를,

“신첩이 어찌 감히 엄하게 문책하시는 일을 숨기겠나이까? 신첩의 집안이 패망하기 전에, 양상서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때마침 첩의 집 누각 앞을 지나다가, 신첩과 우연히 서로 보고서 그 양류사(楊柳詞)를 화답하고, 사람을 보내어 뜻을 통하여 함께 혼인 약속을 맺었나이다.

지난번 황상께서 그를 봉래전으로 불러 보시는 날 첩은 옛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으나, 양상서만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때문에 첩이 옛 생각과 느낌이 절실하여 몸소 옛일을 회상하고 슬퍼하다가, 우연히 난삽한 글을 지었사옵니다. 끝내 황상께 폐를 드리게 되었으니, 신첩의 죄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겠나이다.”

 

上悲憐其意乃曰 : “汝云以楊柳詞結婚媾之約, 汝能記得否?”

秦氏卽繕寫 以上上曰 : “汝罪雖重汝才可惜, 且御妹愛汝殊甚故,

朕特用寬典赦汝重罪, 汝其感篆國恩 殫渴心誠, 以事御妹宜矣.”

卽下其紈扇, 秦氏拜受 惶恐頓謝而退.

상비련기의내왈 여운이양류사결혼구지약 여능기득부

진씨즉선사 이상상왈 여죄수중여재가석 차어매애여수심고

짐특용관전사여중죄 여기감전국은 탄갈심성 이사어매의의

즉하기환선 진씨배수 황공돈사이퇴

 

황상은 그 뜻을 불쌍히 여기어 이르시기를,

“네가 양류사로서 혼인 언약을 맺었다고 말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진씨가 바로 그것을 베껴 써서 황상께 드리니, 황상이 말씀하기를,

“네 죄가 비록 중하나 재주가 아깝기도 하고, 또한 어매(御妹)가 너를 유독 심히 사랑하는 까닭에, 짐이 특별히 관용을 베풀어 너의 중한 죄를 용서하노라. 너는 나라의 은혜에 감읍하고, 또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어매를 섬기라.”

곧 깁부채를 내려 주시니 진씨가 절하여 받고,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드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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