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5. 소유는 남장한 적경홍을 만나고 계섬월과 재회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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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유는 남장한 적경홍을 만나고 계섬월과 재회하다

 

行十餘日至邯鄲之地, 有美少年 乘匹馬在前路矣, 仍前導僻易下立於路傍,

翰林望見曰 : “彼書生所騎者 必駿馬也!”

漸近則其少年美如衛玠, 嬌如潘岳 翰林曰 :

“吾嘗周行兩京之間, 而男子之美者, 未見如彼少年者也, 其貌如此 其才可知.”

행십여일지한단지지 유미소년 승필마재전로의 잉전도벽이하립어로방

한림망견왈 피서생소기자 필준마야

점근즉기소년미여위개 교여반악 한림왈

오상주행양경지간 이남자지미자 미견여피소년자야 기모여차 기재가지

 

길을 떠난 지 십여 일만에 한단(邯鄲) 땅에 이르니, 미소년이 한 필의 말을 탄 채 앞길에 있다가 뒤이어 앞에서 이끄는 벽제(辟除) 소리를 듣고 말에서 내려 길가에 비켜섰다.

한림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르기를,

“저 서생이 탄 말이 필연 준마(駿馬)로다.”

좀 더 가까이서 보니 그 소년의 아름다움은 위개(衛玠)와 같고, 교태로움은 반악(潘岳)과 닮았다. 한림이 이르기를,

“내 일찍이 두 서울 사이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남자의 미모가 저 소년과 같이 잘생긴 이는 보질 못하였도다. 얼굴이 이와 같을진대 그 재주도 알 수 있을 것이로다.”

 

謂從者 : “汝請其少年隨後而來.”

翰林午憩驛舘 少年已至矣.

翰林使人邀之 少年入謁, 翰林愛而謂曰 :

“學生於路上, 偶見潘衛之風彩, 便生愛慕之心, 乃敢使人奉邀 而惟恐不我顧矣.

今蒙不遺 幸叨合席, 此所謂傾盖若舊者也. 願聞賢兄姓名.”

위종자 여청기소년수후이래

한림오게역관 소년이지의

한림사인요지 소년입알 한림애이위왈

학생어로상 우견반위지풍채 변생애모지심 내감사인봉요 이유공불아고의

금몽불유 행도합석 차소위경개약구자야 원문현형성명

 

종자(從者)에게 말하기를,

“너는 저 소년에게 청하여 뒤따라오게 하라.”

한림이 낮에 역관(驛舘)에서 쉬려고 하는데, 소년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한림은 사람을 시켜서 그를 불러오고 소년이 들어와 알현하니, 한림은 사랑스럽게 이르기를,

“길상에서 그대에게 반악과 위개의 풍채가 있음을 우연히 보고서, 문득 사랑스럽고 그리운 마음이 일었네. 감히 사람을 시켜서 받들어 맞아들이게 하였는데, 혹시 나를 돌아보지 않을까 걱정하였노라. 이제 날 버리지 않고 다행히도 합석을 하게 되니, 이는 예부터 사귄 친구처럼 친해지는 듯하네. 현형(賢兄)의 성명을 듣기 원하노라.”

 

少年答曰 : “小生北方之人也, 姓狄名白鸞. 生長窮鄕, 未遇碩師良友,

學術粗識 書釖無成, 尙有一片之心, 欲爲知己者死.

今相公使過河北 威德幷行, 雷厲風飛 陸慴水慄, 人慕榮名其有旣乎?

小生不揆鄙拙 欲托門下, 一效鷄鳴狗盜之賤技矣. 相公俯察至願 有此辱速, 豈直爲小生之榮.

實有光於大人先生, 屈身待士之盛德也.”

소년답왈 소생북방지인야 성적명백란 생장궁향 미우석사량우

학술조지 서도무성 상유일편지심 욕위지기자사

금상공사과하북 위덕병행 뇌려풍비 륙습수률 인모영명기유기호

소생불규비졸 욕탁문하 일효계명구도지천기의 상공부찰지원 유차욕속 기직위소생지영

실유광어대인선생 굴신대사지성덕야

 

소년이 답하기를,

“소생은 북방 사람으로 성은 적(狄)이고, 이름은 백란(白鸞)이옵니다. 궁벽한 시골에서 자라나 아직껏 훌륭한 스승과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하여, 학술이 조잡하고 얕으며 글이나 무술을 다 이루지는 못하였사옵니다. 하지만 일편지심(一片之心)은 남아 있기에, 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고자 하나이다.

이제 상공이 사신으로서 하북을 지나시는데 위엄과 덕이 병행하시어, 우레가 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하여 땅이 떨고 물이 두려워하니, 그 영예로운 이름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이까?

소생은 비천하고 졸렬함도 헤아리지 아니하고, 상공의 문하에 의탁하여 닭을 울리고 개를 도적질하는 천한 재주를 한번 일깨워 보고자 하였나이다. 상공이 이 지극한 바람을 굽어살피시어 이렇듯 고맙게도 빨리 불러주시니, 어찌 곧바로 소생의 영광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실로 대인 선생에게 영광이 있으리니, 몸을 굽혀 선비를 기다리시는 훌륭한 덕을 갖추셨사옵니다.”

 

翰林尤喜曰 : “語云同聲相應 同氣相求, 兩情相投 甚是快事! 此後與狄生幷鑣而行,

對床而食 過勝地則共談山水, 値良宵 則同賞風月, 不知鞍馬之勞 行役之苦矣.”

한림우희왈 어운동성상응 동기상구 양정상투 심시쾌사 차후여적생병표이행

대상이식 과승지즉공담산수 치량소 즉동상풍월 부지안마지로 행역지고의

 

한림이 더욱 기뻐하며 이르기를,

“바로 옛말에서 ‘동성상응(同聲相應)과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했는데, 두 사람의 정이 서로 투합하였으므로 이는 매우 즐거운 일이로다. 이후로는 적생(狄生)과 함께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길을 가고, 밥상을 같이하여 먹고, 경치 좋은 곳을 지나면 함께 산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밝은 밤을 만나면 함께 풍월을 읊조리면서 먼 길을 달려가는 피로와 여행의 괴로움을 잊으리라.”

 

還到洛陽過天津橋, 乃有感舊之意曰 :

“桂娘之自稱女冠, 浮遊山間者 相欲守初盟, 以待吾行 而吾已杖節歸來,

桂娘獨不在焉, 人事乖張 佳期婉晩, 烏得無惻愴之心乎?

桂娘若知吾頃日之虛過, 則必來待於此 而想其蹤迹, 不在於道觀 則必在於尼院,

道路消息 何以得聞?

噫! 今行又不得相見, 則未知費了幾許日月, 有團會之期乎.”

환도락양과천진교 내유감구지의왈

계랑지자칭녀관 부유산간자 상욕수초맹 이대오행 이오이장절귀래

계랑독부재언 인사괴장 가기완만 오득무측창지심호

계랑약지오경일지허과 즉필래대어차 이상기종적 부재어도관 즉필재어니원

도로소식 하이득문

희 금행우부득상견 즉미지비료기허일월 유단회지기호

 

다시 낙양에 이르러 천진교를 지나게 되었는데, 옛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니, 한림은 이르기를,

“계랑이 스스로 여관(女冠)이라 칭하고, 산수 사이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에 한 굳은 약속을 지키고자 하여 내가 오길 기다림인데, 나는 벼슬을 얻어 돌아왔도다. 그런데 계랑이 홀로 남아 있지 않으니, 사람의 일이 서로 어긋나고, 좋은 시절이 뒤바뀌어 버린 것인즉, 어찌 가엾고 슬픈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계랑이 만일 내가 지난번에 헛되이 지나간 줄 알면, 반드시 여기에 와서 기다릴 것인데, 그 종적을 생각해 보건대 도관(道觀)에 있지 아니하면 반드시 이원(尼院)에 있을 것이라. 도로에서 어찌 그 소식을 듣겠느냐? 슬프도다. 이번 길에 또 서로 보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허비해야 하며, 또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도다.”

 

忽送遐矚 則一佳人, 獨立樓上高捲緗簾, 斜倚綵檻 注目於車塵馬蹄之間, 卽桂蟾月也.

翰林思想之餘 忽見舊面, 傾鬯之色可掬矣.

隼轡如風 瞥過樓前, 兩人相視凝情而已. 俄至客舘 蟾月先從捷徑, 而來候於舘中.

홀송하촉 즉일가인 독립루상고권상렴 사의채함 주목어거진마제지간 즉계섬월야

한림사상지여 홀견구면 경창지색가국의

준비여풍 별과루전 양인상시응정이이 아지객관 섬월선종첩경 이래후어관중

 

홀연히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 누각 위에 홀로 서서 누런빛의 주렴을 높이 걸고, 색색의 비단으로 장식된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마차가 티끌을 일으키며 오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바로 계섬월(桂蟾月)이 아니던가.

한림이 골똘히 생각하던 차에 문득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니, 그 아리따운 모습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레를 바람같이 몰아 눈 깜짝할 사이에 누각 앞을 지날 때, 두 사람이 서로 보고 엉기는 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윽고 한림이 객관에 이르니, 섬월이 먼저 지름길로 달려와 이미 객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見翰林下車進拜於前, 倍入帲幪接裾而坐, 悲喜交切淚下言前. 乃傴身而賀曰 :

“驅馳原隰貴軆萬福, 足慰戀慕之賤悰也. 仍歷陳別後事曰,

自別相公 公子王孫之會, 太守縣令之宴, 左右招邀 東西侵逼, 遭逆境者 非一二而,

自剪頭髮 稱有惡疾, 菫免脅迫之辱, 盡謝華粧 換着山衣, 避城中之囂塵 棲谷裡之靜室,

每逢遊山之客, 訪道之人 或自城府而至, 或從京師而來者, 輒問相公消息矣.

견한림하거진배어전 배입병몽접거이좌 비희교절루하언전 내구신이하왈

구치원습귀체만복 족위련모지천종야 잉력진별후사왈

자별상공 공자왕손지회 태수현령지연 좌우초요 동서침핍 조역경자 비일이이

자전두발 칭유악질 근면협박지욕 진사화장 환착산의 피성중지효진 서곡리지정실

매봉유산지객 방도지인 혹자성부이지 혹종경사이래자 첩문상공소식의

 

한림이 수레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리고, 장막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옷깃을 여미고 마주 앉았다. 슬픔과 기쁨이 함께 서려 올라 말보다 눈물이 앞서 흐르는지라, 이에 몸을 굽혀 하례하기를,

“언덕과 습한 땅을 지나 말을 빨리 달려오셨는데 귀체가 만복하시니, 연모하는 천한 이 마음에도 족히 위로가 되겠나이다. 인하여 이별한 후의 일을 세세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상공께서 떠나시고부터 공자왕손(公子王孫)의 모임과 태수 현령(太守縣令)의 잔치에, 좌우에서 부르고 동서에서 매우 핍박하여, 역경을 만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사옵니다. 그래서 스스로 머리털을 자르고, 나쁜 병이 생겼다고 소문을 내서, 가까스로 협박을 받는 욕을 면하였나이다. 곱게 치장하는 것을 거의 마다하고서 산 사람의 옷으로 바꿔 입고, 성안의 시끄럽고도 번잡한 곳은 피하여, 골짜기 사이의 고요한 곳을 찾아 들었사옵니다.

매양 산에 놀러 온 사람들이나, 도를 구하여 나선 사람들이나, 혹은 시장에서 다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서울로부터 온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나 상공의 소식을 여쭤보았사옵니다.

 

今年孟春忽聞相公, 口含天綸 路經此地, 車徒行色遠矣.

遙望燕雲 惟洒血淚, 縣令爲相公 至道觀, 以相公舘壁所題一首詩, 示賤妾曰

‘向者楊翰林之奉命過此, 金橘滿車而以不見蟾娘爲恨, 終日看花 不折一枝, 惟題此詩而歸,

娘何獨栖山林 不念故人, 使我接待之禮 太埋沒乎?’

금년맹춘홀문상공 구함천륜 노경차지 거도행색원의

요망연운 유쇄혈루 현령위상공 지도관 이상공관벽소제일수시 시천첩왈

향자양한림지봉명과차 금귤만거이이불견섬랑위한 종일간화 부절일지 유제차시이귀

낭하독서산림 불념고인 사아접대지례 태매몰호

 

금년 초봄에 상공께서 천륜(天綸)을 받들고, 이 땅을 지나셨다는 이야기를 홀연 듣고 수레를 달려 가보니 행색은 멀리 계셨나이다. 멀리 연나라 땅의 구름만 바라보며 오직 피눈물만을 흘리고 있을 뿐인데, 현령이 상공을 위하여 도관(道觀)에 이르러 상공이 객관의 벽에 써 놓으신 한 수의 시를 가지고 천첩에게 보이시면서 이르기를,

‘지난번에 양한림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이곳을 지나셨도다. 좋은 귤을 수레에 가득 실었으나 섬랑을 보지 못하신 것이 한이 되어, 종일토록 꽃을 보되 한 가지도 꺾지 않으시고, 이 시만을 짓고 돌아가셨구나. 낭자는 어찌 홀로 산림에 머무르며 옛사람을 생각지 않고, 나로 하여금 접대의 예를 갖추게 하라 하니, 매우 매몰찬 일이 아니겠나.’

 

仍以過致敬禮, 自謝前日之事, 懇請還歸舊居 以待相公之廻, 賤妾始知女子之身亦尊重也.

當賤妾獨立於天津樓上, 望相公之行也, 滿城羣妓 攔街行人, 孰不羨小妾之貴命,

欽小妾之榮光也哉?

相公之已占壯元, 方爲翰林之報 妾已聞之矣, 第未知已得主饋之夫人乎.”

잉이과치경례 자사전일지사 간청환귀구거 이대상공지회 천첩시지녀자지신역존중야

당천첩독립어천진루상 망상공지행야 만성군기 난가행인 숙불선소첩지귀명

흠소첩지영광야재

상공지이점장원 방위한림지보 첩이문지의 제미지이득주궤지부인호

 

하고, 분수에 넘치는 칭찬과 경의를 표하며, 스스로 전날의 일을 사과하며, 돌아가서 옛집에 머무르며 상공께서 돌아오시는 걸 기다리도록 간청을 하였나이다. 이에 천첩이 처음으로 여자의 몸이 또한 중한 줄을 알았나이다. 첩이 천진루 위에 홀로 서서 상공의 행차를 기다렸나이다. 성안의 모든 기녀과 길을 가로막은 행인들은 그 누구도, 소첩이 귀명(貴命)을 받음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소첩의 광영을 흠모하지 않았겠사옵니까?

상공께서 이미 장원 급제를 하셔, 한림학사의 직책을 받으신 줄은 첩도 이미 들었거니와, 다만 주궤(主饋)할 부인을 얻으셨는지는 모르겠나이다.”

 

翰林曰 : “曾已定婚於鄭司徒女子, 花燭之禮雖未及行之, 賢淑之行 已聞之熟矣,

桂卿之言小無逕庭, 良媒厚恩太山亦輕矣.”

更展舊情 未忍卽離, 仍留一兩日, 而以桂娘在寢 久不訪狄生矣.

한림왈 증이정혼어정사도녀자 화촉지례수미급행지 현숙지행 이문지숙의

계경지언소무경정 냥매후은태산역경의

갱전구정 미인즉리 잉류일양일 이이계랑재침 구불방적생의

 

한림이 이르기를,

“이미 정사도 집의 여자와 정혼하여, 화촉의 예는 비록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규수의 현숙한 품행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였노라. 계경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아니하니, 좋은 중매의 후한 은혜가 태산보다 더하도다.”

다시 옛정을 이으매, 차마 즉시 떠나지 못하고 잇따라 이틀을 머물러, 계랑의 침실에 있으니, 오랫동안 적생(狄生)을 찾지 못하였다.

 

書童忽來密告曰 : “小僕見狄生秀才非善人也.

與蟾娘子相戱於衆稠之中, 蟾娘子旣從相公 則與前日大異矣, 何敢若是其無禮乎?”

翰林曰 : “狄生必無是理, 蟾娘尤無可疑 汝必誤見也.”

書童怏怏而退 俄而復進曰 :

“相公以小僕爲誕妄矣, 兩人方相與歡戱, 相公若親見之 則可知小僕之虛實矣.”

서동홀래밀고왈 소복견적생수재비선인야

여섬랑자상희어중조지중 섬랑자기종상공 즉여전일대이의 하감약시기무례호

한림왈 적생필무시리 섬랑우무가의 여필오견야

서동앙앙이퇴 아이부진왈

상공이소복위탄망의 양인방상여환희 상공약친견지 즉가지소복지허실의

 

서동이 바삐 와서 조용히 아뢰기를,

“소복(小僕)은 적생 수재(秀才)가 좋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옵니다. 섬낭자와 함께 많은 사람 속에서도 서로 희롱을 하는데, 섬낭자께서는 이미 상공을 따르고 있어 전일과 무척 다르거늘, 제 어이 이처럼 무례할 수 있나이까?”

한림이 이르기를,

“적생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며, 섬랑은 더더욱 의심할 바 없으니, 네가 필연 잘못 본 것이리라.”

서동이 만족하지 못한 마음으로 물러가더니, 이윽고 다시 와서 아뢰기를,

“상공은 소복의 말이 그릇되고 망령되다 하시나, 두 사람이 바야흐로 서로 노닥거리고 있사오니, 상공께서 만일 친히 그 광경을 보시면 소복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아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翰林乍出西廊而望見, 則兩人隔小墻而立, 或笑或語 携手而戱,

欲聽其密語稍稍近往, 狄生聞曳履聲驚而走, 蟾月顧見翰林 頗有羞澁之態.

한림사출서랑이망견 즉양인격소장이립 혹소혹어 휴수이희

욕청기밀어초초근왕 적생문예이성경이주 섬월고견한림 파유수삽지태

 

한림이 문득 서편 행랑으로 나서서 그 광경을 바라본즉, 두 사람이 조그만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서서 혹은 웃기도 하고 혹은 얘기도 나누며 손을 잡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림은 그들이 나직이 속삭이는 말을 듣고자 하여 점차 가까이 가니, 적생은 신 끄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아나고, 섬월은 한림을 되돌아보며, 자못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翰林問曰 : “桂娘曾與狄生相親乎?”

蟾月曰 : “妾與狄生雖無宿昔之雅 而與其妹子 有舊誼故 問其安否矣.

妾本娼樓賤女, 自然濡染於耳目, 不知遠嫌於男子, 執手娛戱 附耳密語,

以招相公之疑, 賤妾之罪 實合萬殞.”

한림문왈 계랑증여적생상친호

섬월왈 첩여적생수무숙석지아 이여기매자 유구의고 문기안부의

첩본창루천녀 자연유염어이목 부지원혐어남자 집수오희 부이밀어

이초상공지의 천접지죄 실합만운

 

한림이 묻기를,

“계랑이 일찍이 적생과 서로 친하였는가?”

섬월이 이에 답하기를,

“첩과 적생은 비록 옛적에 별로 친한 적은 없으나, 그의 누이와 오랜 정분이 있는 까닭에 그 안부를 물었나이다. 첩은 본래 창루(娼樓)의 천한 여자로, 자연 이목에 익숙해져서, 남녀를 서로 멀리하여 꺼릴 줄도 모르고, 손을 잡고 희롱도 하며 귀를 대고 밀어(密語)도 속삭였나이다. 상공의 의심을 불러일으켰으니, 천첩의 죄는 실로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翰林曰 : “吾無疑汝之心, 汝湏舞介於中也.”

仍商量曰 : “狄生少年也, 必以見我爲嫌, 我當召而慰之.”

使書童請之 已去矣.

한림왈 오무의여지심 여수무개어중야

잉상량왈 적생소년야 필이견아위혐 아당소이위지

사서동청지 이거의

 

한림이 이르기를,

“나는 그대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으니, 그대는 조금도 꺼려하지 마라.”

거듭 헤아려 잘 생각하기를,

“적생은 소년이라 필연 나를 보고 꺼려할 것이니, 내가 마땅히 그를 불러 위로하리라.”

서동을 시켜 불러오라 했으나, 이미 그는 가고 없었다.

 

翰林大悔曰 :

“昔楚莊王絶纓 以安其群臣矣, 我則欲察晻昧之事, 仍失才美之士, 今雖自責何可及也?”

卽使從者遍訪於城之內外.

是夜與蟾月 話舊論心, 對酒取樂至夜半, 滅燭而寢矣.

한림대회왈

석초장왕절영 이안기군신의 아즉욕찰엄매지사 잉실재미지사 금수자책하가급야

즉사종자편방어성지내외

시야여섬월 화구론심 대주취락지야반 멸촉이침의

 

한림은 크게 후회하여 이르기를,

“옛적에 초장왕(楚莊王)은 갓끈을 끊어, 그 모든 신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나는 곧 모호한 일을 살피고자 하다가, 이로 인해 재주 있고 아름다운 선비를 잃었으니, 이제 비록 스스로 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곧 종자들을 시켜서 성 안팎을 두루 찾아보게 하였다.

이날 밤에 한림이 섬월을 데리고 옛일을 말하며 마음을 밝히고, 한밤중이 되도록 술자리를 벌여 즐겁게 놀다가,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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