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3. 소유는 변방의 반란을 진압하려 가춘운을 두고 떠난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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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유는 변방의 반란을 진압하려 가춘운을 두고 떠난다

 

楊翰林得第之後 卽入翰苑, 自縻職事 尙未歸覲,

方欲請暇 歸鄕省拜母親, 仍陪來京第 卽過婚禮, 而時國家多事.

吐蕃數侵掠邊境, 河北三節度或自稱燕王, 或自稱趙王 或自稱魏王, 連結强隣 稱兵交亂,

天子憂之 博謀於群臣 廣詢於廟堂 將欲出師致討, 大小臣僚言議矛盾, 皆懷姑息苟且之計.

양한림득제지후 즉입한원 자미직사 상미귀근

방욕청가 귀향성배모친 잉배래경제 즉과혼례 이시국가다사

토번삭침략변경 하북삼절도혹자칭연왕 혹자칭조왕 혹자칭위왕 연결강린 칭병교란

천자우지 박모어군신 광순어묘당 장욕출사치토 대소신료언의모순 개회고식구차지계

 

양한림이 과거에 급제한 후 곧 한원(翰苑)에 들어가, 벼슬에 매인 몸이 되어 아직 근친(覲親)을 못 하였다. 바야흐로 휴가를 청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모친을 찾아뵙고는, 바로 모시고 서울 집에 올라와서, 곧 성례(成禮)하려 하는데 때마침 나라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토번(吐蕃)은 자주 변경을 침노하고, 하북(河北)의 세 절도사(節度使)는 혹은 연왕(燕王)이니, 혹은 조왕(趙王)이니, 혹은 위왕(魏王)이니 자칭하고, 강한 이웃과 연결하여 군사를 일으켜 어지럽게 하였다. 천자가 근심하여 묘당(廟堂)에서 여러 신하에게 깊은 꾀를 널리 묻고, 장차 군사를 내어 치고자 하려는데, 대소 신하들의 의논이 분분하여 한결같지 아니하고, 모두가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구차한 계획만을 말할 뿐이었다.

 

翰林學士楊少遊出班奏曰 :

“宜如漢武帝招諭南越王故事, 函下詔書誥以禍福, 終不歸命用武取勝, 爲萬全之策也.”

上從之使少遊卽草詔於上前, 少遊俯伏受命 走筆製進, 上大悅曰 :

“此文典重嚴截恩威並施, 大得誥諭之軆, 狂寇必自戢矣.”

한림학사양소유출반주왈

의여한무제초유남월왕고사 함하조서고이화복 종불귀명용무취승 위만전지책야

상종지사소유즉초조어상전 소유부복수명 주필제진 상대열왈

차문전중엄절은위병시 대득고유지체 광구필자즙의

 

이때 한림학사 양소유가 홀로 나아가 천자께 아뢰기를,

“한무제(漢武帝)가 남 월왕(越王)을 불러 타일렀던 옛일과 같이, 마땅히 조서(詔書)를 내리시어 화(禍)와 복(福)으로써 깨닫도록 일러주옵소서. 마침내 명을 좇지 아니하거든 힘을 사용하여 승리를 취함이 만전의 계책인 줄 아뢰옵니다.”

황상이 그 말을 좇아 소유로 하여금 황상 앞에서 곧 조서를 초(草)하도록 하니, 소유가 엎드려 명을 받들어 붓을 날려 지어 올렸는데, 천자가 무척 기뻐하며 이르기를,

“이 글월은 법도에 맞고 장중하며, 엄하여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함을 함께 갖추어 깨우치도록 일러 주는 예법을 크게 얻었으니, 미친 도적들이 반드시 스스로 군사를 거둘 것이라.”

 

卽下於三鎭, 趙魏兩國卽去王號, 服朝命上表請罪,

遣使進貢馬一萬匹絹一千匹, 惟燕王恃其地遠兵强 不能歸順.

즉하어삼진 조위양국즉거왕호 복조명상표청죄

견사진공마일만필견일천필 유연왕시기지원병강 불능귀순

 

곧 세 진에 조서를 내리니, 조와 위 양국은 곧 왕의 칭호를 거두고 조정의 명에 굴복하여 표(表)를 올리고 죄를 청하면서, 사신을 보내어 말 일만 필과 비단 일천 필을 조공하였다. 오직 연왕만은 땅이 멀고 군사가 강함을 믿고, 귀순하지 아니하였다.

 

上以兩鎭之服皆少遊之功, 降旨褒崇曰 : “河北三鎭專據一隅, 屈强造亂殆百年矣.

德宗皇帝起十萬衆 命將征伐, 終末能挫其强 而服其心矣,

今楊少遊以盈尺之書, 服兩鎭之賊 不勞一師, 不戮一人而皇威遠暢於萬里之外,

朕實嘉之賜以絹三千匹 馬五天匹 表予優獎之意.”

상이양진지복개소유지공 강지포숭왈 하북삼진전거일우 굴강조란태백년의

덕종황제기십만중 명장정벌 종말능좌기강 이복기심의

금양소유이영척지서 복양진지적 불로일사 불륙일인이황위원창어만리지외

짐실가지사이견삼천필 마오천필 표여우장지의

 

황상은 두 진(鎭)이 항복함은 모두가 소유의 공이라는 교지(敎旨)를 내려, 공을 널리 기리면서 이르기를

“하북의 세 진이 오직 한 모퉁이에 웅거하고, 남에게 굴복하지 아니하며 난을 일으킨 지 거의 백 년이 되었도다. 덕종(德宗) 황제께서 십만 대군을 일으켜, 장수로 하여금 정벌토록 명하시었으나, 끝내 그 강함을 꺾고 그 마음을 항복 받을 수 없었노라. 이제 양소유가 한 자 남짓 정도의 글로써 두 진의 도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으니, 군사 한 명도 수고치 아니하고, 또한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여 황실의 위엄을 널리 만 리 밖에까지 떨쳤도다. 짐이 실로 이를 가상히 여겨, 비단 삼천 필과 말 오십 필을 주어 크게 칭찬하는 내 뜻을 표(表)하고자 하노라.”

 

仍欲進秩 少遊進前辭謝 : “代草王言卽臣職分, 兩鎭歸化莫非天威, 臣以何功叨此重賞,

况一鎭猶梗聖化敢肆跳梁, 恨不能提劒執殳, 以雪國家之耻, 陞擢之命何安於心?

人臣願忠固無間於職階之崇卑, 兵家勝敗不專在於士卒之多少,

臣願得一枝之兵倚仗大朝之威, 進與燕寇決死力戰, 以報聖恩之萬一.”

잉욕진질 소유진전사사 대초왕언즉신직분 양진귀화막비천위 신이하공도차중상

황일진유경성화감사도량 한불능제검집수 이설국가지치 승탁지명하안어심

인신원충고무간어직계지숭비 병가승패부전재어사졸지다소

신원득일지지병의장대조지위 진여연구결사력전 이보성은지만일

 

또한 품계를 높이고자 하니, 소유가 앞으로 나아가 사양하며 아뢰기를,

“폐하의 말씀을 대신 초한 것은 곧 신하 된 자의 직분이옵고, 두 진이 귀화함은 곧 폐하의 위엄이오니, 신이 무슨 공으로서 이 중한 상을 탐하겠나이까? 하물며 한 진은 오히려 폐하의 덕화를 막고 감히 함부로 날뛰오니, 신은 칼을 들고 창을 잡아 나라의 수치를 씻을 수 없는 것을 한탄할 뿐이옵니다. 벼슬을 높이시라는 명을 어찌 마음에 두겠나이까?

신하 된 자로서 충성을 바치는 데는 진실로 계급의 높고 낮음에 차이가 없고, 싸움에 이기고 패하는 것은 오로지 병사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옵니다. 원하옵건대 신은 한 무리의 병사를 얻어 조정의 큰 위엄에 의지하여, 나아가 연나라의 도적들에게 죽기를 결단하고 힘써 싸워 성은의 만분지일이라도 갚고자 하옵니다.”

 

上壯其意 問於大臣皆曰 : “三鎭互爲脣齒之形, 而兩鎭旣已屈服, 小燕狂賊 特鼎魚穴蟻也.

以兵臨之 則必若摧枯拉朽, 而王者之兵先謀後伐, 請遣少遊喩以利害, 不服則卽加兵可也.”

上然之 使楊少遊持節往喩, 翰林奉詔旨受鈇鉞, 將發行拜辭於司徒

상장기의 문어대신개왈 삼진호위순치지형 이양진기이굴복 소연광적 특정어혈의야

이병임지 즉필약최고랍후 이왕자지병선모후벌 청견소유유이리해 불복즉즉가병가야

상연지 사양소유지절왕유 한림봉조지수부월 장발행배사어사도

 

황상이 그 뜻을 장하게 여겨, 대신들에게 물으니 모두 아뢰기를,

“세 진이 서로 이와 입술의 형세였는데, 이제 두 진이 이미 굴복하였으므로, 조그만 연나라의 미친 도적은 유난히 가마솥에 든 물고기나 구멍에 든 개미와 같사옵니다. 군사를 일으키면 곧 말라 썩는 나무를 꺾는 것과 같으리오다. 또 왕이 된 자의 군사는 먼저 꾀를 쓰고 뒤에 치는 것이옵니다. 청하건대 소유를 보내어 이해로써 효유하다가, 끝내 항복하지 아니하거든 곧 군사를 보탬이 좋을까 하나이다.”

황상이 그 말을 옳게 여기어 양소유로 하여금, 절월(節鉞)을 지니고 가 효유하라 명을 내리니, 한림이 황상의 명을 받들어 절부(節符)와 부월(斧鉞)을 받고, 장차 떠나려 하고 사도에게 하직 인사를 드렸다.

 

司徒曰 : “邊鎭驁逆 不用朝命 非一日也, 楊郞以一介書生入不測之危地,

如有不虞之變, 發於無備之處, 豈但爲老夫之不幸乎?

吾老且病雖不與朝廷末議, 而欲上一書而爭之.”

사도왈 변진오역 불용조명 비일일야 양랑이일개서생입불측지위지

여유불우지변 발어무비지처 기단위로부지불행호

오로차병수불여조정말의 이욕상일서이쟁지

 

사도가 이르기를,

“변방의 진이 폐하께 몹시 거역하여,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은 지가 다만 하루 이틀이 아니었도다. 양랑이 한낱 서생(書生)의 몸으로 위태로운 땅에 들어가려 하니, 만일 생각하지도 아니한 변고가 준비도 없는 곳에서 생기면, 어찌 다만 노부의 불행이겠는가? 내 늙고 병이 들어 비록 조정 의논에는 참여치 아니하였으나, 한 장의 상소를 올려 이를 고치도록 하리로다.”

 

翰林正之曰 : “岳丈毋用過慮. 藩鎭不過乘朝庭之不靖, 詿誤於一時也.

今天子神武朝政淸明, 趙魏兩國且已束手, 單弱之小鎭 偏小之一燕, 何能爲哉?”

司徒曰 : “王命旣下君意已定, 老夫更無他言, 惟願加飱而已.”

한림정지왈 악장무용과려 번진불과승조정지부정 괘오어일시야

금천자신무조정청명 조위양국차이속수 단약지소진 편소지일연 하능위재

사도왈 왕명기하군의이정 노부갱무타언 유원가손이이

 

한림이 정히 만류하여 아뢰기를,

“악장께서는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옵소서. 변방에서 조정의 편안치 못함을 틈타서, 한때 소란을 피우는 것에 불과하옵니다. 지금 천자의 무덕(武德)이 뛰어나시고 조정이 청명하여, 조(趙) 위(魏) 두 나라가 또한 이미 저항하지 못하고 귀순하였으니, 외롭고 약한 조그만 진으로 한쪽에 치우친 조그만 한낱 연나라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사도가 이르기를,

“왕명이 이미 내려졌고 그대의 뜻 또한 이미 정해졌으니, 노부가 다시 할 말이 없거니와 오직 몸조심하기만 바랄 뿐이로다.”

 

夫人垂涕而別曰 : “自得賢郞頗慰老懷, 郞今遠行我懷如何? 王程有限 只祝來歸疾也.”

翰林退至花園 治行卽發, 春雲執衣而泣曰 :

“相公之朝直於玉堂也, 妾必早起 整包寢具 奉着朝袍,

相公必流眄顧妾, 常有眷眷不忍離之意, 今當萬里之別 何無一言相贈?”

부인수체이별왈 자득현랑파위로회 낭금원행아회여하 왕정유한 지축래귀질야

한림퇴지화원치행즉발 춘운집의이읍왈

상공지조직어옥당야 첩필조기 정포침구 봉착조포

상공필류면고첩 상유권권불인리지의 금당만리지별 하무일언상증

 

부인이 눈물을 흘리고 작별하면서 이르기를,

“어진 사위를 얻고부터 자못 늙은 마음을 위로했는데, 양랑이 이제 먼 길을 떠나니 내 가슴 속이 어떠하겠는가? 관리의 여정에는 유한하니, 오직 빨리 돌아오기만을 축원하겠노라.”

한림이 물러나 화원에 이르러 행장을 갖추고 곧 떠나려 할 새, 춘운이 옷을 잡고 울며 이르기를,

“상공께서 옥당(玉堂)에 잠자리를 드시러 가실 때, 첩이 반드시 일찍 일어나 침구를 가지런히 싸고 관복을 받들어 입혀드리면, 상공께서는 반드시 곁눈을 흘기시며 첩을 돌아보시고, 안타까이 여기사 차마 떠나기를 싫어하신 적이 많았사옵니다. 이제 만 리 길의 이별을 당하여, 어찌 무어라 한마디 말씀이 없나이까?”

 

翰林大笑曰 : “大丈夫當國事受重任, 死生此不可顧, 區區私情 安足論乎?

春娘無作浪悲 以傷花色, 謹奉小姐穩度時日, 待吾竣事成功 腰懸如斗大金印, 得意歸來也.”

卽出門乘車而行.

한림대소왈 대장부당국사수중임 사생차불가고 구구사정 안족론호

춘랑무작랑비 이상화색 근봉소저온도시일 대오준사성공 요현여두대금인 득의귀래야

즉출문승거이행

 

한림이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대장부가 나랏일을 당하여 중임을 맡았으니, 생사를 또한 돌아보지 못하겠거늘, 구구하고 사사로운 정을 어찌 마음대로 의논하겠는가? 춘랑은 부질없이 슬퍼하여 꽃 같은 얼굴을 상하지 말고, 삼가 소저를 받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얼마 동안 나를 기다리라. 사업을 마쳐 성공한 후에, 한 말 짜리 큰 황금 인장을 허리에 차고 득의양양하게 돌아오리라.”

하고, 곧, 문을 나서 수레를 타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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