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16. 소유는 가춘운이 귀신일지라도 정분을 이어가려 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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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소유는 가춘운이 귀신일지라도 정분을 이어가려 하다

 

至數日 鄭生來謂翰林曰 : “向日因室人有疾, 不得與兄同遊 尙有恨矣.

卽今桃李雖盡, 城外長郊柳陰正好, 與兄常偸得半日之閑, 更辦一場之遊, 玩蝶舞 而聽鶯歌矣.”

翰林曰 : “綠陰芳草 亦勝花時矣.”

兩人共轡同行催出城門, 涉遠野擇茂林, 藉草而坐對酌數籌.

지수일 정생래위한림왈 향일인실인유질 부득여형동유 상유한의

즉금도리수진 성외장교류음정호 여형상투득반일지한 갱판일장지유 완접무 이청앵가의

한림왈 녹음방초 역승화시의

양인공비동행최출성문 섭원야택무림 자초이좌대작수주

 

여러 날이 지나자 정생이 와서 한림에게 이르기를,

“지난날에는 안사람의 신병으로, 부득이 형과 더불어 함께 놀지 못하여 지금까지 남은 한이 있도다. 곧 이제 복숭아꽃, 자두꽃이 비록 다하였으나, 성 밖 긴 들의 버드나무 그늘이 정말 좋으니, 마땅히 형과 더불어 반나절의 틈을 가벼이 내어, 한바탕 놀이를 다시 벌이고, 나비가 춤추는 것을 구경하며 앵무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도다.”

한림이 이르기를,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 더 나을지라.”

두 사람이 나란히 고삐를 잡고 동행하여 바삐 성문을 나서서, 먼 들판을 건너가 무성한 숲속에 들어가 풀을 자리 삼아 깔고 앉고는, 꽃가지로 수놓으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傍有一抔荒墳, 寄在於斷岸之上 而蓬高四沒, 莎草盡剝 惟有雜卉成叢,

綠影相交 數点幽花, 隱映於荒阡亂樹之間也.

翰林因醉興 指点而歎曰 :

“賢愚貴賤 百年之後, 盡歸於一丘土, 此孟嘗君所以泣下於雍門琹者也. 吾何以不醉於生前乎?”

방유일배황분 기재어단안지상 이봉고사몰 사초진박 유유잡훼성총

녹영상교 수점유화 은영어황천란수지간야

한림인취흥 지점이탄왈

현우귀천 백년지후 진귀어일구토 차맹상군소이읍하어옹문금자야 오하이불취어생전호

 

옆으로 황폐한 무덤이 하나 있는데, 가파른 절벽 위에 붙어 있었다. 다북쑥이 두루 다하고 잔디가 다 벗겨져 오직 잡풀만이 떨기를 이루었다. 푸른 그림자가 서로 어리비치고, 두어 떨기 말라빠진 꽃이 황폐한 무덤과 어지러이 선 나무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였다.

한림이 취흥으로 인해 무덤을 가리키며 탄식하기를,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백 년 후에는 모두가 언덕의 흙으로 돌아가도다. 이것이 맹상군(孟嘗君)이 옹문(雍門)의 거문고 곡조에 눈물을 흘린 까닭이렷다.

내 어찌 생전에 취하지 아니하겠는가?”

 

鄭生曰 : “兄必不知彼墳也. 此卽張女娘之墳也, 女娘以美色, 鳴一世人以張麗華稱之,

二十而夭 瘞於此 後人哀之, 以花柳雜植於墓前以誌其處矣,

吾輩以一杯酒澆其墳, 以慰女娘芳魂如何?”

翰林自是多情者 乃曰 : “兄言可也.”

정생왈 형필부지피분야 차즉장녀낭지분야 여랑이미색 명일세인이장려화칭지

이십이요 예어차 후인애지 이화류잡식어묘전이지기처의

오배이일배주요기분 이위녀낭방혼여하

한림자시다정자 내왈 형언가야

 

정생이 이르기를,

“형은 틀림없이 저 무덤을 알지 못할 것이로다. 이것은 장여랑(張女娘)의 무덤으로, 여랑의 아름다운 자색이 일세에 떨침으로 장여화(張麗華)라 불렀는데, 이십 세에 요절하였으니, 이곳에 묻어 주고 후인들이 슬퍼하여 꽃과 버들을 무덤 앞에 어지러이 심어 그곳에 기록하였도다. 우리들도 술 한 잔을 그 무덤에 부어, 여랑의 꽃다운 넋을 위로함이 어떻겠는가?”

한림은 본래 다정한 사람이라 이에 답하기를,

“형의 말이 옳도다.”

 

遂與鄭生至其墳前 擧酒澆之, 各製四韻一首, 以弔孤 魂翰林之詩,

수여정생지기분전 거주요지 각제사운일수 이조고 혼한림지시

 

美色曾傾國 미색증경국

芳魂已上天 방혼이상천

管絃山鳥學 관현산조학

羅綺野花傳 나기야화전

古墓空春草 고묘공춘초

虛樓自暮烟 허루자모연

秦川舊聲價 진천구성가

今日屬誰邊 금일속수변

 

마침내 정생과 더불어 그 무덤 앞에 이르러 술을 들어 붓고, 각기 사운(四韻)으로 된 한 수의 글을 지어 외로운 넋을 조상하니, 한림이 시에 읊기를,

 

미색은 일찍이 나라를 기울이더니

꽃다운 혼이 이미 하늘에 올라갔구나.

거문고 줄 뜯기는 산새가 배우고

비단옷의 고움은 들꽃에 남았도다.

옛 무덤에는 부질없이 봄풀이 우거지고

빈 누각에는 연기만 절로 저물 뿐이로다.

진천에서 글 쓰던 여인의 마음을

오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鄭生之詩,

정생지시

 

問昔繁華地 문석번화지

誰家窈窕娘 수가요조낭

荒凉蘇小宅 황량소소택

寂寞薛濤庄 적막설도장

草帶羅裙色 초대라군색

花留寶靨香 화류보염향

芳魂招不得 방혼초부득

惟有暮鴉翔 유유모아상

 

정생은 시에 읊기를,

묻노라, 옛적에 번화한 곳에 살던

뉘 집의 얌전하고 정숙한 낭자였는가.

소소의 옛집은 이미 황량하고

설도의 별장도 적막하기만 하도다.

무덤 풀은 비단 치마 빛깔을 띠고 있고

꽃에는 보조개의 향기가 남았구나.

꽃다운 넋을 불러도 얻지를 못하거니

오직 저녁 까마귀만 날아가고 있구나.

 

兩人傳看浪吟 更進一盃, 鄭生繞墓徊徨 至崩頹之處,

得白羅所書絶句一首 而詠之曰 : “何處多事之人, 作此詩 納於女娘之墓乎?”

翰林索見之 則卽自家裂衫製詩, 以贈仙娘子者也.

양인전간랑음 갱진일배 정생요묘회황 지붕퇴지처

득백라소서절구일수 이영지왈 하처다사지인 작차시 납어여낭지묘호

한림색견지 즉즉자가열삼제시 이증선낭자자야

 

두 사람이 전하여 보고 소리를 내 읊조리고는, 다시 한 잔을 올렸다. 정생이 무덤 둘레를 머뭇거리며 돌다가, 무너져 움 패인 곳에 이르러, 절구(絶句) 한 수가 적힌 흰 비단을 주워 그것을 읊조리기를,

“어느 곳에 사는 부질없는 사람이, 이 시를 지어 여랑의 무덤에 넣었는가?”

한림이 그것을 받아 살펴보니, 곧 자기가 한삼(汗衫)을 찢고 시를 지어서, 선랑에게 준 것이었다.

 

乃大驚於心曰 : “向日所逢美人, 果是張女娘之靈也.”

駭汗自出 頭髮上竦, 心不能自定已 而自解曰 :

“其色之美如此 其情之厚如此, 仙亦天緣也 鬼亦天然也, 仙與鬼不必卞之矣.”

내대경어심왈 향일소봉미인 과시장여낭지령야

해한자출 두발상송 심불능자정이 이자해왈

기색지미여차 기정지후여차 선역천연야 귀역천연야 선여귀불필변지의

 

이에 마음으로 크게 놀라 이르기를,

“지난날에 만났던 미인이 장여랑(張女娘)의 신령이었도다.”

놀라 식은땀이 저절로 흐르고 머리털이 으쓱하게 솟구치며, 마음을 진정치 못하였지만 스스로 깨닫기를,

“그 자색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고, 그렇게 정의 많음이 이와 같으니, 선녀라도 역시 하늘의 연분이고, 귀신이라도 또한 하늘의 연분이라. 신선과 귀신을 굳이 분변할 필요는 없으리라.”

 

乘鄭生起旋之時更酌一盃, 潛澆於墳上黙禱曰 :

“幽明雖殊 情義不隔, 惟祈芳魂鑑此至誠, 更趂今夜 重續舊緣,”

禱畢拉鄭生還歸, 是夜獨在花園倚枕欹坐, 想其美人思甚渴涸, 耿耿不成眠矣.

時月光窺簾 樹影滿面, 群動已息人語正闐, 似有跫音自暗中而至,

翰林開戶視之 則乃紫閣峯仙女也.

승정생기선지시갱작일배 잠요어분상묵도왈

유명수수 정의불격 유기방혼감차지성 갱진금야 중속구연

도필랍정생환귀 시야독재화원의침의좌 상기미인사심갈학 경경불성면의

시월광규렴 수영만면 군동이식인어정전 사유공음자암중이지

한림개호시지 즉내자각봉선녀야

 

정생이 마침 일어나 돌아선 틈을 타서 다시 한 잔 술을 따라 무덤 위에 뿌리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빌며 이르기를,

“비록 유명(幽明)은 달라도 정의(情誼)에는 간격이 없으니, 꽃다운 영혼은 나의 지극한 정성을 굽어살피소서. 다시 오늘 밤에 좇아 옛 인연을 거듭 잇게 하여 주기를 바랄 뿐이외다.”

빌기를 마치자 정생을 데리고 돌아와, 그날 밤에는 홀로 화원에서 베개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았다. 하지만 그 미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몹시 간절하여, 마음에 잊히지 않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때 달빛은 주렴에 가만히 비치고 나무 그림자 창에 가득하며, 군중의 움직임이 이미 그쳐 사람 소리가 정말 고요한데, 발걸음 소리 비슷한 것이 어둠 속으로부터 들려왔다. 이에 한림이 문을 열고 보니 지난번 자각봉의 선녀였다.

 

翰林滿心驚喜 趍出門限, 携來玉手 欲入房中 美人辭曰 :

“妾之根本 郞已知之, 得無嫌猜之心乎?

妾之初遇郞君, 非不欲直吐 而或恐驚動, 假托神仙 叨侍一夜之枕席,

榮已極矣 情已密矣, 庶幾斷魂再續 朽骨更肉.

而今日郞君 又訪賤妾之幽宅, 澆之以酒 弔之以詩,

慰此無主之孤魂, 妾於此不勝感激, 懷恩戀德 欲謝厚眷, 面布微悃而來.

敢欲以幽陰之質, 復近君子之身乎?”

한림만심경희 추출문한 휴래옥수 욕입방중 미인사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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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욕이유음지질 부근군자지신호

 

한림이 마음에 놀라움과 기꺼움이 가득하여 문지방을 박차고 나아가, 가냘프고도 예쁜 여인의 손을 이끌고 방에 들어감을 청하였으나, 미인이 사양하며 이르기를,

“첩의 근본을 낭군이 이미 알고 계시니, 어찌 거리끼는 마음이 없겠나이까? 첩이 처음으로 낭군을 만나, 바른대로 아뢰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낭군이 놀라실까 두려워 신선을 의탁하여, 외람되이 하룻밤 잠자리를 모시었나이다. 영광은 이미 극에 달했고 정이 이미 깊어져, 끊어진 혼이 다시 이어지고, 썩은 뼈에 다시 살이 붙은 듯하였나이다.

오늘 낭군이 또 천첩의 유택(幽宅)을 찾아, 술을 뿌리고 시로써 조상(弔喪)하여, 이 주인 없고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셨나이다. 첩이 이로 인해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은혜를 간직하고 덕을 사모하여, 후히 돌봐 주심을 사례하려 하옵니다. 얼굴을 대하고 미미한 정성이나마 표하고자 하나이다. 어찌 감히 귀신이 된 썩은 몸으로, 다시 군자의 몸을 가까이하겠사옵니까?”

 

翰林更挽其袖而言曰 : "世之惡鬼神者, 愚迷怯懦之人也.

人死而爲鬼 鬼幻而爲人. 以人而畏鬼 人之騃者, 以鬼而避人 鬼之癡者.

其本則一也 其理則同也, 何人鬼之卞而幽明之分乎?

我見若斯 我情若斯,娘何以背我耶?"

한림갱만기수이언왈 세지오귀신자 우미겁나지인야

인사이위귀 귀환이위인 이인이외귀 인지애자 이귀이피인 귀지치자

기본즉일야 기리즉동야 하인귀지변이유명지분호

아견약사 아정약사 낭하이배아야

 

한림이 다시 옷소매를 당기며 이르기를,

“세상에 귀신을 미워하는 자는, 우매하고 겁 많은 사람이라.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하면 사람이 되는 것이도다. 사람으로서는 귀신을 두려워함은,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고, 귀신으로서 사람을 피하는 것은, 귀신이 어리석은 것이라. 그 근본인즉 하나요, 그 이치가 똑같으니, 어찌 사람과 귀신을 가리어 유명을 분간하리오. 내 견해가 이와 같고, 내 정이 또한 이와 같은데, 낭자가 어찌 나를 배반하겠는가?”

 

美人曰 : “妾何敢背郞君之恩 而忽郞君之情哉? 郞君見妾眉如蛾翠,

臉如猩紅而 有眷戀之情, 此皆假也非眞也. 不過作謀巧飾, 欲如生人相接也.

郞君欲知妾眞面目也, 卽白骨數片綠苔相縈而已, 何可以如此之陋質, 欲近於貴體乎?”

翰林曰 : “佛語有之人之身體, 以水漚風花假成者也, 孰知其眞也 孰知其假也?”

미인왈 첩하감배랑군지은 이홀랑군지정재 낭군견첩미여아취

검여성홍이 유권련지정 차개가야비진야 불과작모교식 욕여생인상접야

랑군욕지첩진면목야 즉백골수편록태상영이이 하가이여차지루질 욕근어귀체호

한림왈 불어유지인지신체 이수구풍화가성자야 숙지기진야 숙지기가야

 

미인이 이르기를,

“첩이 어찌 감히 낭군의 은혜와, 낭군의 정을 홀연히 저버리겠나이까? 첩의 눈썹이 나비 눈썹과 같이 푸르고, 뺨이 성성이와 같이 붉은 것을 낭군이 보시고, 간절히 사모하는 정을 품으셨지만, 이는 다 거짓이요, 참된 모습이 아니옵니다. 요사한 꾀로 교묘하게 꾸며서, 산 사람으로 하여금 상접(相接)하게 함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일 낭군이 첩의 참모습을 보시고자 한다면, 곧 백골 두어 조각에 푸른 이끼가 서로 끼었을 뿐이니, 낭군은 어찌 더러운 물건을 귀하신 몸에 가까이하려 하시나이까?”

한림이 이르기를,

“부처 말씀에 사람의 몸은, 물거품과 바람과 꽃을 잠시 빌려 이루어진 것이라 했는데, 누가 그것이 참인 줄을 알며, 누가 또 거짓인 줄을 알겠느냐?”

 

携抱入寐 穩度其夜, 情之縝密一倍於前矣.

翰林謂美人曰 : “自今夜夜相會 無或自沮.”

美人曰 : “惟人與鬼其道雖離, 至情所格自相感應, 郞君之眷妾誠出於至情,

則妾之欲托於郞君 夫豈淺哉?”

俄聞晨鍾之聲, 起向百花深處而去, 翰林憑欄送之以夜爲期, 美人不答 倏然而逝矣.

휴포입매 온도기야 정지진밀일배어전의

한림위미인왈 자금야야상회 무혹자저

미인왈 유인여귀기도수리 지정소격자상감응 낭군지권첩성출어지정

즉첩지욕탁어랑군 부기천재

아문신종지성 기향백화심처이거 한림빙란송지이야위기 미인부답 숙연이서의

 

미인을 안고 침실로 들어가 그 밤을 편히 지내니, 오가는 정의 섬세함과 치밀함은 그전보다 갑절이나 되었다.

한림이 미인에게 이르기를,

“이제부터는 밤마다 서로 만나서 어색함이 없게 하오.”

미인이 답하기를,

“오직 사람과 귀신이 길은 비록 다르나, 깊은 정에 이르는 바에는 자연히 서로 감응되는 것이옵니다. 낭군의 첩을 돌보심이 실로 지극한 정에서 우러난 것이온데, 첩이 낭군께 의탁하고자 함이 어찌 간절치 아니하겠나이까?”

이윽고 새벽 종소리를 듣자, 미인은 일어나 온갖 꽃나무가 무성한 곳을 향해 떠나갔다. 한림이 난간에 기대어 미인을 보내면서 밤에 다시 만남을 기약하였지만, 미인은 대답을 않은 채 총총히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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