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14. 적경홍이 소유와 가춘운이 맺어지도록 계책을 꾸미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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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적경홍이 소유와 가춘운이 맺어지도록 계책을 꾸미다

 

一日小姐偶過春雲寢房, 春雲方刺繡於錦鞋, 爲春陽所惱獨枕繡機而眠,

小姐因入房中細見繡線之妙, 歎其才品之妙矣.

機下有小紙寫數行書, 展見則卽咏鞋之詩也. 其詩曰 :

일일소저우과춘운침방 춘운방자수어금혜 위춘양소뇌독침수기이면

소저인입방중세견수선지묘 탄기재품지묘의

기하유소지사수행서 전견즉즉영혜지시야 기시왈

 

하루는 정소저가 우연히 춘운의 침방을 지나다가, 춘운이 바야흐로 비단신에 수를 놓다가, 봄볕에 몸이 노곤하여 수틀을 베고서 졸거늘, 소저가 방 안으로 들어가 수 놓는 솜씨를 자세히 보고는 그 재주의 신묘함에 탄식하였다.

수틀 아래에 여러 행의 글이 쓰여진 조그만 종이가 있기에 펼쳐 본즉, 곧 신을 읊은 글이었다. 시를 읽어 보니,

 

憐渠最得玉人親 연거최득옥인친

步步相隨不暫捨 보보상수부잠사

燭滅羅帷解帶時 촉멸라유해대시

使爾抛却象床下 사이포각상상하

 

옥 같은 사람과 친함을 안타까워하니

걸음마다 서로 좇아 잠시도 버리지 못하도다.

촛불 끄고 휘장 아래 띠를 풀 때에는

마침내는 상아 침상 아래 버려질 것이라.

 

小姐見罷自語曰 : “春娘詩才尤將進矣! 以繡鞋比之於身, 以玉人擬之於吾言,

‘常時與我不曾相離, 彼將從人 必與我相踈也', 春娘誠愛我也!”

又微吟而笑曰 : “春雲欲上於吾所寢象床之上, 欲與我同事一人, 此兒之心 已動矣.”

소저견파자어왈 춘랑시재우장진의 이수혜비지어신 이옥인의지어오언

상시여아부증상리 피장종인 필여아상소야 춘랑성애아야

우미음이소왈춘운 욕상어오소침상상지상 욕여아동사일인 차아지심 이동의

 

소저가 보고 나서 스스로 이르기를,

“춘랑의 시 짓는 재주가 더욱 늘었도다. 수놓은 신으로써 제 몸에 비교하고, 옥인(玉人)으로써 나를 견주었도다. 항상 나와 더불어 일찍이 서로 떠나지 못하였더니, 내가 장차 시집을 가면, 반드시 나와 더불어 서로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니, 춘랑이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도다.”

또 조용히 읊조리고 웃으면서 이르기를,

“춘운이 내가 자는 침상 위에 오르고 싶어 하니, 이는 한 사람을 나와 더불어 함께 섬기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이 아이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라.”

 

恐驚春娘 回身潛出, 轉入內堂 見於夫人, 夫人方率侍婢備翰林夕餐矣.

小姐曰 : “自楊翰林來住吾家, 老親以其衣服飮食爲憂, 指揮婢僕損傷精神,

小女當自當其苦, 而非但於人事有嫌在 禮亦無所據.

春娘年旣長成 能當百事, 小女之意 送春雲於花園, 俾奉楊翰林內事,

則老親之憂 可除其一分矣.”

공경춘랑 회신잠출 전입내당 견어부인 부인방솔시비비한림석찬의

소저왈 자양한림래주오가 노친이기의복음식위우 지휘비복손상정신

소녀당자당기고 이비단어인사유혐재 예역무소거

춘랑년기장성 능당백사 소녀지의 송춘운어화원 비봉양한림내사

즉로친지우 가제기일분의

 

춘랑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 몸을 돌이켜 가만히 나와서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을 뵈온즉, 부인이 마침 시비들을 거느리고서 양한림의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소저가 아뢰기를,

“양한림이 우리 집에 와서 머문 후부터, 어머님께서 그의 의복과 음식을 걱정하시어 비복들을 지휘하시고 정신을 허비하시옵니다. 소녀가 마땅히 스스로 수고를 당한 것이로되, 다만 그 사람의 일에 거리낌이 있으며, 예법에도 또한 의거한 바가 없나이다.

춘랑의 나이 이미 장성하여 능히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으니, 소녀의 생각으로는 춘운을 화원(花園)으로 보내어 양한림의 수발을 보살펴 받들게 하옵소서. 곧 늙으신 어머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듯하옵니다.”

 

夫人曰 : “春雲妙才奇質 何事不可當乎? 但春雲之父曾已有功於吾家,

且其人物出於等夷, 相公每欲爲春雲求良匹, 終事女兒 恐非春雲之願也.”

小姐曰 : “小女觀春雲之意, 不欲與小女分離矣.”

夫人曰 : “從嫁婢妾 於古亦有, 然春雲之才貌 非等閑侍兒之比, 與汝同歸 恐非遠念.”

부인왈 춘운묘재기질 하사불가당호 단춘운지부증이유공어오가

차기인물출어등이 상공매욕위춘운구량필 종사녀아 공비춘운지원야

소저왈 소녀관춘운지의 불욕여소녀분리의

부인왈 종가비첩 어고역유 연춘운지재모 비등한시아지비 여여동귀 공비원념

 

부인이 이르기를,

“춘운의 기묘한 재주와 기이한 재질로 무슨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하겠느냐? 다만 춘운의 아비가 일찍이 우리 집안에 공로가 있고, 또한 그 인물이 남보다 빼어나서 상공(相公)이 매양 춘운을 위하여 어진 배필을 구하려 하시도다. 그러하니 끝까지 여아를 돌봐주는 것은 춘운의 바람이 아닐까 여기노라.”

소저가 아뢰기를,

“소녀가 본 춘운의 생각은, 소녀와 더불어 떠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나이다.”

부인이 이르기를,

“신행길에 비첩(婢妾)을 데려감은 예부터 또한 있는 일이고, 춘운의 재주와 용모는 예사로운 시녀에 비할 바 아니지만, 너와 함께 시집간다는 것은 깊은 생각이 아닌가 하노라.”

 

小姐曰 : “楊翰林以遠地十六歲書生, 媒三尺之琴 調戱宰相家深閨處子,

其氣像豈獨守一女子 而終老乎? 他日據丞相之府 享萬鍾之祿, 則堂中將有幾春雲?”

適其時司徒入來, 夫人以小姐之言言於司徒曰 :

“女兒欲使春雲往侍楊郞, 而吾意則不然 行禮之前, 先送媵妾 決知其不可也.”

소저왈 양한림이원지십육세서생 매삼척지금 조희재상가심규처자

기기상기독수일녀자 이조로호 타일거승상지부 향만종지록 즉당중장유기춘운

적기시사도입래 부인이소저지언언어사도왈

여아욕사춘운왕시양랑 이오의즉불연 행례지전 선송잉첩 결지기불가야

 

소저가 이뢰기를,

“양한림이 먼 곳으로부터 온 십육 세 서생으로, 세 척의 거문고를 이끌고 재상가의 깊은 규중에 있는 처녀를 희롱하여 놀리니, 그 기상이 어찌 한 여자만 홀로 지키며 끝내 늙겠나이까? 다른 날 승상부에 거처하여 만종(萬鍾)의 녹(祿)을 누리면, 곧 당 안에 장차 몇 사람의 춘운을 거느리게 될 줄 알리이까?”

마침 사도가 들어오니, 부인이 소저가 한 말을 사도에게 전하니,

“여아는 춘운을 양랑에게 보내어 시중을 들게 하고자 하나, 내 뜻은 그렇지 아니하고, 예를 치르기 전에 비첩을 먼저 보내는 것은 결코 가당치 않은 줄 아나이다.”

 

司徒曰 : “春雲與女兒才相似 而貌相若也, 情愛之篤亦相同也. 可使相從 不可相離也,

畢竟同歸 先送何妨? 少年男子雖無風情, 亦不可獨栖孤房, 與一柄殘燈爲伴 况楊翰林乎?

急送春娘以慰寂寞之懷, 恐無不可 而但不備禮 則太涉草草,

欲具禮 則亦有所不便者, 何以則可以得中也?”

사도왈 춘운여녀아재상사이모상약야 정애지독역상동야 가사상종 불가상리야

필경동귀 선송하방 소년남자수무풍정 역불가독서고방 여일병잔등위반 황양한림호

급송춘랑이위적막지회 공무불가 이단불비례 즉태섭초초

욕구례 즉역유소불편자 하이즉가이득중야

 

사도가 이르기를,

“춘운이 여아와 재주가 서로 비슷하고 용모가 서로 닮았으니, 정과 사랑의 돈독함이 또한 서로 같지 않소? 서로 따르게 함이 마땅하고, 서로 헤어지게 함은 마땅치 않으니, 마침내 함께 시집보내는데, 먼저 가도록 하게 한들 어찌 해가 되리오.

나이 어린 남자가 비록 풍정(風情)이 없다고 해서, 외로운 방에서 홀로 지내며 한 자루의 깜빡이는 촛불과 짝을 삼는 것 또한 옳지 않은데, 하물며 양한림에 있어서랴. 바삐 춘랑을 보내어 적막한 회포를 위로함이 옳지 않은 건 아니리다. 다만 예를 다 갖추지 아니하면 혼인이 너무 조촐한 듯하고, 예를 차리려 하면 곧 또한 불편한 것이 있을 듯하오. 어찌하면 치우치지 않게 할 수 있겠소이까?”

 

小姐曰 : “小女有一計, 欲借春雲之身以雪小女之恥.”

司徒曰 : “汝有何計試言之.”

小姐曰 : “使十三兄如此如此, 則小女見陵之恥可以除矣.”

司徒大笑曰 : “此計甚妙矣.”

소저왈 소녀유일계 욕차춘운지신이설소녀지치

사도왈 여유하계시언지

소저왈 사십삼형여차여차 즉소녀견릉지치가이제의

사도대소왈 차계심묘의

 

소저가 아뢰기를,

“소녀에게 한 가지 계교가 있으니, 춘운의 몸을 빌어 소녀의 수치심을 씻고자 하나이다.”

사도가 묻기를,

“네게 어떤 계교가 있는지 말해 보거라.”

소저가 답하기를,

“십삼(十三) 형으로 하여금 이렇게 이렇게 한다면, 소녀가 보기에는 업신여김을 받은 수치심을 없앨 수가 있겠나이다.”

사도가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그 계교가 심히 기묘하구나.”

 

盖司徒諸姪子中有十三郞者, 賢而機警志氣浩蕩,

平生喜作諧謔之事, 且與楊翰林氣味相合 眞莫逆交也.

小姐歸其寢所謂春雲曰 : “春娘! 吾與汝頭髮覆額 心肝已通, 共爭花枝終日啼呼,

今我已受人聘禮, 可知春娘之年亦不穉矣. 百年身事 汝必自量, 未知欲托於何樣人也.”

개사도제질자중유십삼랑자 현이기경지기호탕

평생희작해학지사 차여양한림기미상합 진막역교야

소저귀기침소위춘운왈 춘랑 오여여두발복액 심간이통 공쟁화지종일제호

금아이수인빙례 가지춘랑지년역불치의 백년신사 여필자량 미지욕탁어하양인야

 

대개 사도의 여러 조카 중에 십삼랑(十三郞)이라는 자가 있는데, 어질고 기민하며 의기 또한 호탕하여 평생 해학하기를 즐겨하였다. 양한림과는 심기와 취미가 서로 맞아 진실로 막역한 친교를 맺고 있었다.

소저가 그의 침소로 돌아와 춘운에게 이르기를,

“춘랑아, 내 너와 더불어 머리털이 이마를 덮었을 때부터, 마음 속 깊이 이미 통하여 꽃가지를 놓고 함께 다투다가 종일토록 울기도 하였더라. 이제 내가 약혼 예물을 받았으니, 춘랑의 나이 또한 어리지 않음을 알만하게 되었구나. 종신대사(終身大事)를 너는 반드시 스스로 헤아리고 있을 것인데, 어떤 사람에게 의탁코자 하려는지 아직 모르겠도다.”

 

春雲對曰 : “賤妾徧荷娘子撫愛之恩, 涓埃之報 末由自效, 惟願長奉巾匜於娘子以終此身也.”

小姐曰 : “我素知春娘之情與我同也. 我與春娘欲議一事爾, 楊郞以枯桐一聲弄此閨裡之處女,

貽辱深矣 受侮多矣, 非吾春娘誰能爲我雪恥乎?

춘운대왈 천첩편하낭자무애지은 연애지보 말유자효 유원장봉건이어낭자이종차신야

소저왈 아소지춘랑지정여아동야 아여춘랑욕의일사이 양랑이고동일성롱차규리지처녀

이욕심의 수모다의 비오춘랑수능위아설치호

 

춘운이 답하기를,

“천한 첩이 편벽되게 낭자로부터 애정의 은혜를 입어, 털끝만큼이라도 은혜를 갚기 위해 저의 정성을 다해 왔사옵니다. 이제 오직 이 몸이 다하도록 낭자께 건이(巾匜)를 길이 받들어 모시기를 원할 뿐이옵니다.”

소저가 이르기를,

“내가 원래 춘랑의 정이 나와 더불어 같은 것임을 알고 있기에, 춘랑과 더불어 한가지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양랑이 거문고 한 소리로 이 규중 속의 처녀를 희롱하여, 심한 욕을 보이고 업신여김을 많이 주었도다. 춘랑이 아니라면 누가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 줄 수 있겠는가?

 

吾家山庄卽終南山最僻處也, 距京城僅牛鳴地 而景致蕭洒非人境也,

賃此別區設春娘之花燭, 且令鄭兄導楊郞之迷心, 行如此如此之計

則橫琴之詐謀, 彼不得更售矣, 聽曲之深羞可以快湔矣, 惟望春娘毋憚一時之勞.

오가산장즉종남산최벽처야 거경성근우명지 이경치소쇄비인경야

임차별구설춘랑지화촉 차령정형도양랑지미심 행여차여차지계

즉횡금지사모 피부득갱수의 청곡지심수가이쾌전의 유망춘랑무탄일시지로

 

우리 집 산장은 곧 종남산(終南山) 가장 외진 곳에 있는데, 서울이 겨우 소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땅이며, 경치가 맑고 깨끗하여 사람들이 사는 속세가 아니라. 이 기이한 곳을 빌려 춘랑의 신방(新房)을 꾸미고, 또 정형(鄭兄)으로 하여금 양랑의 마음을 미혹되게 하여 이러이러한 계교를 행하게 하라. 그러면 거문고를 켜던 거짓 계교를 저가 다시는 팔 수 없을 것이요, 그 노래를 들은 수치심을 유쾌하게 깨끗이 씻을 수 있을 것이라. 춘랑은 한때의 노고를 꺼리지 말기를 바랄 뿐이로다.”

 

春雲曰 : “小姐之命賤妾何敢違乎? 但異日何以擧面於楊翰林之前乎?”

小姐曰 : “欺人之羞 不猶愈於見欺者之羞乎?”

春雲微微笑曰 : “死且不避 當惟命焉.”

춘운왈 소저지명천첩하감위호 단이일하이거면어양한림지전호

소저왈 기인지수 불유유어견기자지수호

춘운미미소왈 사차불피 당유명언

 

춘운이 답하기를,

“소저의 명을 천첩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사옵니까? 다만 다른 날 한림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겠나이까?”

소저가 이르기를,

“사람을 속이는 부끄러움이, 속임을 당하는 부끄러움보다는 더 낫지 않겠느냐?”

춘운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이르기를,

“죽어도 피하지 않을 것이며, 마땅히 명대로 하겠나이다.”

 

翰林職事瀑直之外, 無奔忙之苦矣, 持被之餘閑日尙多,

或尋朋友 或醉酒樓, 有時跨驢出郊 訪柳尋花.

一日鄭十三謂翰林曰 : “城南不遠之地, 有一淨界 山川絶勝, 吾欲與一遊 瀉此幽情.”

翰林曰 : “正吾意也.”

한림직사폭직지외 무분망지고의 지피지여한일상다

혹심붕우 혹취주루 유시과려출교 방유심화

일일정십삼위한림왈 성남불원지지 유일정계 산천절승 오욕여일유 사차유정

한림왈 정오의야

 

한림(翰林)이 맡은 일을 한 번에 바삐 처리하고 나면, 바쁨의 괴로움이 없이, 한가한 날이 오히려 많아 간혹 친구를 찾기도 하고, 혹은 주루(酒樓)에 가 취하기도 하며, 시간이 나면 나귀에 걸터앉아 교외로 나가서 나무나 꽃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정십삼이 한림에게 이르기를,

“성 남쪽 멀지 않은 곳에 고요한 땅이 하나 있는데 산천이 절승이라. 나와 함께 한 번쯤 노닐며 그곳에서 그윽한 정을 나누고 싶노라.”

한림이 답하기를,

“그것이 바로 내 뜻이로다.”

 

遂挈壺榼屛騶隸行十餘里, 芳草被堤 靑林繞溪, 剩有山樊之興. 翰林與鄭生臨水而坐,

把酒而吟 此時正春夏之交也. 百卉猶存萬樹相映, 忽有落葉泛溪而來.

翰林咏春來遍是桃花水之句曰 : “此間必有武陵桃源也.”

수설호합병추예행십여리 방초피제 청림요계 잉유산번지흥 한림여정생임수이좌

파주이음 차시정춘하지교야 백훼유존만수상영 홀유낙엽범계이래

한림영춘래편시도화수지구왈 차간필유무릉도원야

 

드디어 호합(壺榼)을 들고 시종을 물리치고 십여 리를 나아가니, 아름다운 풀들이 언덕에 널리어 있고, 푸른 숲이 시내를 휘어 감고 있어 산 밑의 흥취가 더함이 있었다. 한림이 정생과 함께 물에 가까이 앉아 술을 들며 흥얼거리니, 이때가 봄과 여름이 바뀌는 시기였다. 온갖 꽃이 아직도 피어 있고, 모든 나무가 서로 비치는데, 문득 떨어진 한 떨기 꽃이 시내에 떠오고 있었다.

한림이 춘래편시도화수(春來遍是桃花水)라는 글귀를 읊조리며 이르기를,

“이 사이에 반드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으렷다.”

 

鄭生曰 : “此水自紫閣峯發源而來也. 曾聞花開月明之時 則往往有仙樂之聲,

出於雲烟縹緲之間 而人或有聞之者, 今日當與大兄, 躡靈境 尋仙蹤 拍江崖之肩,

弟則仙分甚淺 尙未得入其洞天矣. 窺玉女之窓矣.”

정생왈 차수자자각봉발원이래야 증문화개월명지시 즉왕왕유선락지성

출어운연표묘지간 이인혹유문지자 금일당여대형 섭령경 심선종 박강애지견

제즉선분심천 상미득입기동천의 규옥녀지창의

 

정생이 이르기를,

“이 물은 자각봉(紫閣峯)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것이라. 일찍이 듣건대 꽃 피고 달이 밝은 밤이면, 이따금 신선의 풍악 소리가 아득히 먼 구름 사이에서 울려 퍼져 간혹 들은 자가 있다고 하네. 소제(小弟)는 신선과의 연분이 매우 얕아 아직껏 동천(洞天)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였도다. 오늘 큰 형과 함께 신령스럽고 기묘한 땅을 밟고 신선의 자취를 찾아 홍애(洪厓)의 어깨를 두드리고 옥녀의 창을 엿보려 하도다.”

 

翰林性本好奇 聞之欣喜曰 : “天下無神仙則已, 若有之 則只在此山中矣.”

方振衣欲賞, 忽見鄭生家家僮流汗而來, 喘促而言曰 : “娘子患候猝㼨 走請郞君矣.”

鄭生忙起曰 : “本欲與兄壯遊於神仙洞府矣, 家憂此迫 仙賞已違, 向所謂仙分甚淺者 尤可驗矣.”

促鞭而歸 翰林雖甚無聊, 而賞興猶不盡矣.

한림성본호기 문지흔희왈 천하무신선즉이 약유지 즉지재차산중의

방진의욕상 홀견정생가가동류한이래 천촉이언왈 낭자환후졸함 주청랑군의

정생망기왈 본욕여형장유어신선동부의 가우차박 선상이위 향소위선분심천자 우가험의

촉편이귀 한림수심무료 이상흥유부진의

 

양한림은 성정이 본래 기이한 것을 좋아하여, 그 말을 듣자 즐거워하며 이르기를,

“천하에 신선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있다면 다만 이 산 중에 있을 것이니라.”

바야흐로 옷을 떨쳐 버리고 구경하려 할 때, 문득 보니 정생집의 가동(家僮)이 땀을 흘리면서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급히 아뢰기를,

“낭자의 환후가 갑자기 위급하여 급히 낭군을 부르시나이다.”

정생이 급히 일어나 이르기를,

“본래 형과 더불어 신선의 경치에서 마음껏 놀려고 하였는데, 집안의 근심이 이렇게 닥치매 선계를 구경하기는 이미 멀어졌으니, 이른바 신선과의 인연이 매우 얕다는 것을 더욱 알겠노라.”

나귀의 채찍을 재촉하며 총총히 돌아가니, 한림은 비록 무척 무료하나, 구경할 흥취가 아직 다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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