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5. 소유가 과거길에서 양류사를 읊다가 진채봉을 만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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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유가 과거길에서 양류사를 읊다가 진채봉을 만나다

 

一日告於母親曰 : “父親昇天之日, 以門戶之貴, 付之於少子.

而今家計貧窶老母勤勞, 兒子若甘爲, 守家之狗曳尾之龜,

而不求世上之功名, 則家聲無以繼矣, 母心無以慰矣, 甚非父親期待之意也.

聞國家方設科, 抄選天下之群才, 兒子欲暫離母親膝下, 歌鹿鳴而西遊.”

일일고어모친왈 부친승천지일 이문호지귀 부지어소자

이금가계빈구노모근로 아자약감위 수가지구예미지구

이불구세상지공명 즉가성무이계의 모심무이위의 심비부친기대지의야

문국가방설과 초선천하지군재 아자욕잠리모친슬하 가록명이서유

 

하루는 소유가 모친께 아뢰기를,

“부친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날에, 가문의 일을 소자에게 맡겨 부탁하셨사옵니다. 이제 가계가 빈한하여 노모께서 일에만 힘쓰시니, 소자가 만일 집 지키는 개가 되고 꼬리 끄는 거북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 공명을 구하지 않으면, 가문의 이름을 빛내지 못하고, 어머님의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으며, 아버님의 기대하신 뜻에 크게 어긋나게 될까 합니다.

듣자 온즉 나라에서 이제 막 과거를 설치하여 천하 인재들을 가려 뽑는다 하니, 소자는 잠깐 모친 슬하를 떠나,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겠나이다.”

 

柳氏見其志氣本不碌碌, 少年行役不能無慮, 遠路離別亦且關心而已,

知其沛然之氣不可以沮, 乃黽勉而許之, 盡賣釵釧 備給盤纏.

少游拜辭母親, 以三尺書童一匹蹇驢, 取道而行, 行之累日 至華州華陰縣, 距長安已不遠矣.

유씨견기지기본불록록 소년행역불능무려 원로이별역차관심이이

지기패연지기불가이저 내민면이허지 진매차천 비급반전

소유배사모친 이삼척서동일필건려 취도이행 행지루일 지화주화음현 거장안이불원의

 

유씨가 아들의 의지와 기개가 본래 보잘것없지 않음을 보고, 비록 소년의 여행길 고생이 걱정되고, 먼 길을 떠나 이별함이 또한 마음에 걸리지만, 그 활달한 기상을 막지 못함을 알기에 부득이 허락하고, 비녀와 팔찌를 팔아 노자를 마련해 주었다.

소유가 모친께 하직하고 석 자 키의 서동(書童)과 다리 저는 당나귀 한 필을 거느리고 길 떠나가기를 며칠 걸려, 화주(華州)의 화음현(華陰縣)에 이르렀는데, 장안(長安)과는 과히 멀지 않은 거리였다.

 

山川風物一倍明麗, 以科期尙遠 日行數十里, 或訪名山或尋古跡, 客路殊不寂寥矣.

忽見一區幽庄, 近隔芳林 嫩柳交影 綠烟如織, 中有小樓 丹碧照耀, 蕭灑遼夐幽致可想.

산천풍물일배명려 이과기상원 일행수십리 혹방명산혹심고적 객로수부적료의

홀견일구유장 근격방림 눈류교영 록연여직 중유소루 단벽조요 소쇄요형유치가상

 

산천 풍물이 한결 맑고 고우며 과거 날도 아직 멀리 남아 있어, 하루 수십 리씩 가며 혹은 명산을 찾아보고, 혹은 고적을 더듬다 보니, 객지 길이 유별나게 적막하지는 않았다.

문득 살펴보니 한 곳에 그윽한 별장이 있는데, 가까이로는 향기로운 수풀이 닿아 있고, 연약한 버들 그림자가 서로 엉켜 푸른 연기는 비단을 짠 듯하였다. 그 속에 작은 다락집이 있는데, 붉고 푸른 빛이 맑게 깨끗하여 멀리서도 그윽한 경치를 상상할 만하였다.

 

遂垂鞭徐行進以視之, 則長條細枝拂地嫋娜, 若美女新浴, 綠髮臨風自梳, 可愛亦可賞也,

少游手攀柳絲, 躕踟不能去歎賞曰 :

“吾鄕蜀中雖多珍樹, 曾未見裊裊千枝, 毶毶萬縷若此柳者也.”

수수편서행진이시지 즉장조세지불지뇨나 약미녀신욕 록발임풍자소 가애역가상야

소유수반류사 주지불능거탄상왈

오향촉중수다진수 증미견뇨뇨천지 참참만루약차류자야

 

드디어 말채찍을 드리우고 천천히 걸어 다가가 보니, 버드나무의 긴 가지 짧은 가지가 땅에 얽혀 하늘거리는 모양이, 마치 미녀가 새로 목욕하고, 검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어 저절로 빗질 되는 것 같아, 또한 가히 아름답고 구경할 만하였다.

소유가 버들가지를 휘어잡고 머뭇거리며, 능히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구경하면서 매우 탄복하여 이르기를,

“내 고향 촉(蜀) 안에도 비록 진귀한 나무가 많았으나, 천 가지가 나긋나긋하고 만 가지 실들이 너울거리는, 이런 버들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노라.”

 

乃作楊柳詞其詩曰 :

내작양류사기시왈

 

楊柳靑如織 양류청여직

長條拂畵樓 장조불화루

願君勤種意 원군근종의

此樹最風流 차수최풍류

楊柳何靑靑 양류하청청

長條拂綺楹 장조불기영

願君莫攀折 원군막반절

此樹最多情 차수최다정

 

하고, 이에 양류사(楊柳詞)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일컫기를.

버들이 푸르러서 베를 짜는 듯하니

긴 가지 그림 속의 누각에 떨쳤도다.

이 나무가 풍류가 가장 갖추었으니

원하노니 그대는 부지런히 심을지라.

버들이 자못 이리 푸르고 푸르나니

긴 가지가 빛나는 기둥 위에 떨쳤도다.

원하노니 그대는 부질없이 꺾지 마라.

이 나무가 가장 정이 많으니라.

 

詩成浪詠一遍, 其聲淸亮豪爽, 宛若扣金擊石, 一陣春風吹其餘響, 飄散於樓上.

其中適有玉人午睡方濃, 忽然警覺推枕起坐, 拓開繡戶徒倚雕欄,

流眄四顧尋聲, 忽與楊生兩盰相値.

시성랑영일편 기성청량호상 완약구금격석 일진춘풍취기여향 표산어루상

기중적유옥인오수방농 홀연경각추침기좌 척개수호도의조란

유면사고심성 홀여양생양간상치

 

시를 다 짓고 낭랑하게 한 번 두루 읊조리니, 그 소리가 맑고 깨끗하며 호탕하고 시원스러워서, 마치 쇠를 두드리고 돌을 치는 것 같았는데, 한줄기 시원한 봄바람이 그 소리의 울림을 불어 내니 누각 위에서 흩어졌다.

마침 누각 가운데 아름다운 여인이 막 낮잠에 취했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 베개를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놓은 창을 밀어젖히고는 아로새긴 난간에 의지하여, 눈을 흘기며 사방을 돌아보고 소리 나는 곳을 찾다가, 문득 양생(楊生)과 서로 두 눈이 마주쳤다.

 

鬖髿雲髮亂毛雙鬂, 玉釵欹斜眼波朦朧, 芳魂若痴弱質無力, 睡痕猶在於眉端,

鉛紅半消於臉上矣. 天然之色嫣然之態, 不可以言語形容, 丹靑猫畵也.

兩人脉脉相看未措一辭.

삼사운발란모쌍빈 옥차의사안파몽롱 방혼약치약질무력 수흔유재어미단

연홍반소어검상의 천연지색언연지태 불가이언어형용 단청묘화야

양인맥맥상간미조일사

 

치렁치렁 풀어진 구름 같은 머리털이 양쪽 귀밑에 드리었고, 옥비녀는 아름답게 비스듬히 걸렸고 눈빛은 몽롱하여, 꽃다운 정신은 짐짓 넋을 잃은 듯하고 약한 기질은 힘이 없어, 졸린 흔적이 아직도 눈썹 끝에 맺혔으며, 뺨 위의 연지는 반이나 지워져 있었다. 본래의 자색과 예쁜 몸가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단청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고,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였다.

 

楊生先送書童於村前客店使備夕炊,

至是還報曰 : “夕飯已具矣.”

美人凝情熟視閉戶而入, 惟有陳陳暗香泛風而來而已.

양생선소서동어촌전객점사비석취

지시환보왈 석반이구의

미인응정숙시폐호이입 유유진진암향범풍이래이이

 

양생은 서동을 먼저 마을 앞 주막으로 보내어 저녁밥을 준비하게 하였다.

곧 서동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저녁 식사가 이미 준비되었사옵니다.”

미인이 정다운 눈길로 그윽이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들어가니, 오직 은은히 풍기는 그윽한 향기만 바람에 날려 와 떠돌 뿐이었다.

 

楊生雖大恨書童, 一垂珠箔如隔弱水, 遂與書童回來一步一顧, 紗窓已緊閉而不開矣.

來坐客店悵然消魂.

原來此女子姓秦氏, 名彩鳳卽秦御史女子也. 早喪慈母且無兄弟, 年纔及笄未適於人.

時御史上京師, 小姐獨在家, 夢寐之外忽逢楊生, 見其貌而悅其風彩,

양생수대한서동 일수주박여격약수 수여서동회래일보일고 사창이긴폐이불개의

내좌객점창연소혼

원래차여자성진씨 명채봉즉진어사여자야 조상자모차무형제 년재급계미적어인

시어사상경사 소저독재가 몽매지외홀봉양생 견기모이열기풍채

 

양생은 비록 서동을 크게 원망하였지만, 미인이 한 번 구슬 주렴을 드리우니 약수(弱水)와 같이 거리를 둔 듯하였다. 드디어 서동과 함께 돌아오면서 내딛는 걸음마다 한 번씩 뒤돌아보았으나, 사창은 이미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주막에 돌아와 앉으니 못내 섭섭하여 넋이 빠졌다.

원래 이 여인의 성은 진씨(秦氏)이고, 이름은 채봉(彩鳳)으로 진어사(秦御史)의 딸이라.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형제가 또한 없으며, 나이는 겨우 비녀 꽂을 때에 이르렀는데, 아직 혼인을 언약한 곳이 없었다.

이때 어사는 서울에 올라가고, 소저(小姐) 홀로 집에 있었는데, 천만 뜻밖에 문득 양생(楊生)을 만나게 되어 용모를 보고 풍채에 기뻐하였다.

 

聞其詩而慕其才華, 乃思惟曰 :

“女子從人終身大事, 一生榮辱百年苦樂, 皆係於丈夫故, 卓文君以寡婦而從相如,

今我卽處子之身也, 雖有自媒之嫌 臣亦擇君古不云乎?

今若不問其姓名, 不知其居住, 他日雖禀告於父親 而欲送媒妁, 何處可尋?”

문기시이모기재화 내사유왈

여자종인종신대사 일생영욕백년고락 개계어장부고 탁문군이과부이종상여

금아즉처자지신야 수유자매지혐 신역택군고불운호

금약불문기성명 부지기거주 타일수품고어부친 이욕송매작 하처가심

 

소유의 시를 듣고 뛰어난 재능을 사모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여자가 장부를 좇음은 평생의 큰일인데, 일생의 영욕과 백 년 고락이 모두 장부에게 달렸으니, 탁문군(卓文君)이 과부라도 오히려 상여(相如)를 좇았도다. 이제 나는 처녀의 몸이어서, 비록 스스로 중매하는 거리낌이 있을지라도, 신하도 또한 임금을 가린다는 옛말이 있지 아니한가?

이제 만일 그의 성명을 묻지 않고 그가 사는 곳을 알지 못한다면, 후일에 아버님께 알리고 중매를 보내려 한다 해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리오.”

 

於是展一幅之箋, 寫數句之詩封授於乳媼曰 :

“持此封書往彼客店, 尋得俄者身騎小驢, 到此樓下詠楊柳詞之相公而傳之,

俾知我欲結芳緣, 永托一身之意也, 此吾莫重之事慎勿虛徐.

此相公其容顔如玉, 眉字如畵雖在於衆人之中, 昻昻如鳳凰之出鷄群, 媼必親見傳此情書.”

어시전일폭지전 사수구지시봉수어유온왈 도차루하영양류사지상공이전지

지차봉서왕피객점 심득아자신기소려

비지아욕결방연 영탁일신지의야 차오막중지사신물허서

차상공기용안여옥 미자여화수재어중인지중 앙앙여봉황지출계군 온필친견전차정서

 

이에 한 폭의 편지지를 펴서, 두어 줄 시구를 지어 봉하여 유모 할멈에게 주며 이르기를,

“이 봉한 편지를 지니고 저 주막에 가서, 아까 작은 나귀를 타고 와 이 누각 아래에서 양류사를 읊던 상공(相公)을 찾아 그것을 전하게나. 내가 꽃다운 인연을 맺어 영구히 한 몸을 의탁하려는 뜻을 알리려 하는데, 이는 나에게는 막중한 일이니, 삼가 허술함이 없도록 해야 하네. 이 상공은 용모가 옥 같고 눈썹은 그린 듯하여, 비록 다른 사람 중에 섞여 있다 할지라도 닭 무리 중에서 특출한 봉황과 같을 것이라. 유모 할멈은 몸소 만나보고 이 정이 어린 글월을 전하도록 하게.”

 

乳媼曰 : “謹當如敎而異時, 老爺若有問則將何以對之乎?”

小姐曰 : “此則我自當之汝勿慮焉.”

乳媼出門而去, 旋又還問曰 : “相公或已娶室或旣定婚, 則何以爲之耶?”

小姐移時沈吟乃言曰 : “不幸已娶則 我固不嫌爲副而我觀此人, 年是靑陽恐未及有室家矣.”

유온왈 근당여교이이시 노야약유문즉장하이대지호

소저왈 차즉아자당지여물려언

유온출문이거 선우환문왈 상공혹이취실혹기정혼 즉하이위지야

소저이시침음내언왈 불행이취즉 아고불혐위부이아관차인 연시청양공미급유실가의

 

유모 할멈이 아뢰기를,

“삼가 가르침대로 하겠지만 다른 날, 노야(老爺)께서 만약 물으시면 장차 어찌 대답하리까?”

소저가 이르기를,

“이는 내 스스로 그 일을 감당할 것이니, 할멈은 염려하지 말게나.”

유모가 문을 나가다가 도로 돌아와 물기를,

“상공께서 혹시 이미 장가를 들어 아내를 맞이하였거나, 혹은 이미 정혼을 하였으면 어찌하오리까?”

소저 잠시 깊이 생각하였다가 이르기를,

“불행하게도 이미 아내를 얻었으면, 내 굳이 첩이 되기를 꺼리지 아니하겠는데, 내가 이 사람을 보니, 나이가 젊게 보여 아직 아내가 없는 것 같으이.”

 

乳娘往于客店, 訪問吟詠楊柳詞之客,

此時楊生出立於店門之外, 見老婆來訪忙迎而問曰 : “楊柳詞者則小生也, 老娘之問有何意耶?”

乳娘見楊生之美不復致疑但云 : “此非討話之地.”

楊生引乳娘坐於客榻, 問其來尋之意乳娘問曰 : “郎君楊柳詞詠於何處乎?”

유낭왕우객점 방문음영양류사지객

차시양생출립어점문지외 견노파래방망영이문왈 양류사자즉소생야 노낭지문유하의야

유낭견양생지미불부치의단운 차비토화지지

양생인유낭좌어객탑 문기래심지의유낭문왈 낭군양류사영어하처호

 

유모가 주막에 가서 양류사를 읊조리던 손님을 찾아 물으니, 이때 양생이 주막 문밖에 나섰다가 노파가 와서 찾는 것을 보고 바삐 맞으며 묻기를,

“양류사를 지은 이는 소생이라. 할멈이 찾는 것은 무슨 뜻이오?”

유모는 양생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다시 의심치 않고 다만 이르기를,

“이곳은 얘기할 곳이 아니로소이다.”

양생이 유모를 인도하여 객탑(客榻)에 앉히고, 찾아온 뜻을 물으니 유모가 이르기를,

“낭군께서 양류사를 어디에서 읊으셨나이까?”

 

答曰 : “生以遠方之人初入帝圻, 愛其佳麗歷覽選勝, 今日之午適過一處, 卽路之北小樓之下,

綠楊成林春色可玩, 感興之餘賦得一詩而詠之矣, 老娘何以問之?”

媼曰 : “郎君其時與何人相面乎?”

楊生曰 : “小生幸値天仙降臨樓上之時, 艶色尙在於眼, 異香猶灑於衣矣.”

답왈 생이원방지인초입제기 애기가려여람선승 금일지오적과일처 즉로지북소루지하

녹양성림춘색가완 감흥지여부득일시이영지의 노낭하이문지

온왈 낭군기시여하인상면호

양생왈 소생행치천선강림루상지시 염색상재어안 이향유쇄어의의

 

양생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생은 먼 땅의 사람이라 처음으로 제기(帝圻)에 들어와, 그 아름답고 고움을 사랑하여 경치가 좋은 곳을 골라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면서 구경하였소. 오늘 오후에 마침 한 곳을 지나는데, 큰길 북녘의 작은 누각 아래에 버들이 푸르게 우거져 수풀을 이루고 있고, 봄빛이 구경할 만하여, 흥겨운 나머지 시 한 편을 우연히 지어 읊었소. 그런데 할멈의 물음은 어찌한 뜻이오?”

할멈이 또 묻기를,

“낭군께서는 그때 누구와 서로 대면하셨나이까?”

양생이 답하기를,

“다행히 하늘의 신선이 누각 위에 내려왔기에 소생이 만났더라오. 고운 빛이 아직도 눈에 어리고, 기이한 향내가 아직도 조금 옷에 풍기고 있소.”

 

媼曰 : “老身當以實告之, 其家盖吾主人秦御史宅也, 其女卽吾家小姐也.

小姐自幼時心明性慧, 大有知人之鑑, 一見相公, 便欲托身 而御史方在京華,

往復稟定之間, 相公必轉向他處, 大海浮萍秋風落葉, 將何以訪其蹤跡乎?

絲蘿雖切願托之心, 爐金實有自躍之恥, 而三生之緣重, 一時之嫌小也,

是以舍經從權包羞冒慚, 使老妾問郞君姓氏及鄕貫, 仍探婚娶與否矣.”

온왈 노신당이실고지 기가개오주인진어사택야 기녀즉오가소저야

소저자유시심명성혜 대유지인지감 일견상공 변욕탁신 이어사방재경화

왕복품정지간 상공필전향타처 대해부평추풍락엽 장하이방기종적호

사라수절원탁지심 로금실유자약지치 이삼생지연중 일시지혐소야

시이사경종권포수모참 사노첩문랑군성씨급향관 잉탐혼취여부의

 

할멈이 이르기를,

“늙은 이 몸이 마땅히 사실 그대로 전하리다. 그 집은 우리 주인 진 어사 댁이고, 그 여인은 곧 우리 집 소저이옵니다. 소저께서는 어려서부터 마음이 밝고 성품이 총명해서, 크게 사람을 알아보는 높은 식견이 있나이다. 성공을 한 번 보고 문득 몸을 의탁하고자 하시었으나, 어사께서 마침 서울에 계시니, 왕복하여 여쭈어 의논해 결정하는 사이에 상공께서는 반드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실 터이옵니다. 큰 바다에 뜬 부평초 같고, 가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신세와 같으리니, 장차 어찌 그 종적을 찾을 수 있겠나이까?

푸른 담쟁이가 간절히 의탁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로 화로에 불길이 스스로 일어나는 마음처럼 부끄러우나, 삼생(三生)의 연분은 중하고 한때의 내키지 않음은 적다고 여기시나이다. 이에 도리를 버리고 임시방편을 따라 수치스러움을 간직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첩(老妾)으로 하여금 낭군의 성씨와 본관을 알아보고, 또 혼인 여부까지 알아 오라 하셨사옵니다.”

 

生聞之喜色溢面謝曰 : “小生楊少游, 家本在楚 年幼未娶矣.

惟老母在堂 花燭之禮當告兩家父母而後行之, 結親之約今以一言而定之矣.

華山長靑 渭水不絶.”

乳娘亦大喜, 自袖中出一封書以贈生, 生折見卽楊柳飼一絶也.

생문지희색일면사왈 소생양소유 가본재초 년유미취의

유노모재당 화촉지례당고양가부모이후행지 결친지약금이일언이정지의

화산장청 위수부절

유낭역대희 자수중출일봉서이증생 생절견즉양류사일절야

 

양생이 이 말을 듣고 기쁜 빛을 낯에 가득히 머금은 채 사례하며 이르기를,

“소생은 양소유로 집은 본래 초(楚)나라에 있고, 나이가 어려 아직 장가들지 아니하였소. 오직 노모께서 집에 계시니, 화촉(花燭)의 예는 마땅히 양가 부모께 아뢴 후에 행해야 하겠지만, 혼인 언약은 이제 한마디 말로 정하려 하오. 화산(華山)은 길이 푸르고 위수(渭水)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리니, 소생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오.”

유모 할멈 또한 크게 기뻐하며, 소매 속에서 하나의 봉한 편지를 꺼내 양생에게 건네주는데, 양생이 떼어 열어 보니 곧 양류사 한 수였다.

 

其詩曰 :

기시왈

 

樓頭種楊柳 누두종양류

擬繫郞馬住 의계랑마주

如何折作鞭 여하절작편

催向章臺路 최향장대로

 

그 시에다 적기를,

누각 앞에 심어 놓은 버드나무 한 그루에

낭군은 말을 매어 머무는 듯하더니

어찌하여 가지 꺾어 채찍으로 만들어서

장대로 가는 길에 달려가라 재촉하는가.

 

生艶其淸新亟加歎服, 稱之曰 : “雖古之王右丞, 李學士蔑以加矣.”

遂披彩牋寫一詩以授媼, 其詩曰 :

생염기청신극가탄복 칭지왈 수고지왕우승 이학사멸이가의

수피채전사일시이수온 기시왈

 

楊柳千萬絲 양류천만사

絲絲結心曲 사사결심곡

願作月下繩 원작월하승

好結春消息 호결춘소식

 

양생이 그 시의 깨끗하고 산뜻함을 사랑하여 지극히 탄복하고, 칭찬하여 이르기를,

“비록 옛적의 왕우승(王右丞)과 이학사(李學士)라도 이에서 낫지 못할 것이오.”

하고, 곧 아름다운 종이를 펼쳐 한 수의 시를 써서 유모 할멈에게 주니, 그 시에 읊기를,

버드나무 가지가 천만의 실이러니

실마다 마음이 굽이굽이 맺혔구나.

바라건대 달 아래 노끈으로 만들어서

봄날 좋은 소식을 맺기를 바라노라.

 

乳娘受置於懷中, 出店門而去,

楊生呼而語之曰 : “小姐秦之人 生楚之人, 一散之後萬里相阻, 山川脩夐消息難通.

況今日此事旣無良媒, 小生之心無可憑信之處也.

欲乘今夜之月色, 望見小姐之容光, 未知老娘以爲如何.

小姐詩中亦有此意, 望老娘更稟于小姐.

유낭수치어회중 출점문이거

양생호이어지왈 소저진지인 생초지인 일산지후만리상조 산천수형소식난통

황금일차사기무량매 소생지심무가빙신지처야

욕승금야지월색 망견소저지용광 미지노낭이위여하

소저시중역유차의 망노낭갱품우소저

 

유모 할멈이 그것을 받아 품속에 넣고 주막 문을 나서자, 양생이 불러서 이르기를,

“소저는 진(秦)나라 사람이고, 소생은 초나라 사람이라. 한 번 헤어진 후에는 만 리 길이 서로 사이가 떨어져 있고, 산천이 무척 멀어서 소식을 통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하물며 오늘 이 일은 좋은 중매가 없어, 소생의 마음에 가히 증거 삼아 믿을 만한 곳이 없소이다.

오늘 밤 달빛을 타서 소저의 아름답고 빛나는 얼굴을 뵙고 싶은데, 할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겠소. 소저의 시 속에 또한 이러한 뜻이 있으니, 할멈은 소저께 다시 여쭈어 주기 바라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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