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덴동어미화전가

덴동어미화전가(소백산대관록) - 제2부 _ 4.엿장수 조서방

New-Mountain(새뫼) 2020. 10. 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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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4. 엿장수 조서방

 

훌쩍이며 하는 말이

내 팔자를 세 번 고쳐 이런 액운이 또 닥쳐서

시신도 한번 못 만지고

동해수에 죽어 영원히 이별하였으니

애고애고 어찌어찌 살아볼꼬.

 

주인댁이 하는 말이

팔자 한번 또 고치게.

세 번 고쳐 곤한 팔자 네 번 고쳐 잘 살는지

세상일은 모르나니 그런대로 살아보게.

다른 말도 할 것 없이 저 꽃나무 두고 보지

이삼 월에 봄바람 불면 꽃봉오리 고운 빛을

벌은 앵앵 노래하며 나비 펄펄 춤을 추고

놀이객은 왕왕 놀다 가고

산새는 영영 흥이 나서 즐거워라.

오뉴월 더운 날에 꽃은 지고 잎만 나면

녹음이 온 땅에 가득하면

좋은 경치가 별로 없다.

팔구월에 가을바람 불어오니

잎사귀조차 떨어진다.

동지섣달 눈보라 찬바람에

찬 기운을 못 견디다가

다시 봄바람이 들이 불면

다시 봄꽃 피어나고 비온 뒤에 붉어지니

자네 신세 생각하면

눈보라 찬바람을 만남이라.

즐거운 일 다하여서 슬픈 일이 온 뒤에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올 것이니

팔자 한번 다시 고쳐

좋은 바람을 기다리게.

꽃나무 같이 봄바람 만나

가지가지 만발할 때 향기 나고 빛이 난다.

꽃 떨어지자 열매 열려 그 열매가 종자 되어

천만 년을 전하나니

귀동자 하나 낳았으면

장수하고 부귀하며 자식 많이 낳으리라.

 

여보시오 그 말 마오, 이십 삼십에 못 둔 자식

사십 오십에 아들 낳아

자식 덕을 본단 말을 못 들었네.

아들 덕을 볼 터이면

이십 삼십에 아들 낳아

사십 오십에 자식 덕을 보겠지만

내 팔자는 그뿐이오.

 

이 사람아 ,그 말 말고 이내 말을 자세히 듣게.

눈보라 찬바람에도 꽃 피던가,

봄바람이 불어야 꽃이 피지.

때가 아니 되었는데 꽃 피던가.

때를 만나야 꽃이 피지.

꽃이 필 때라야 꽃이 피지

꽃 아니 필 때 꽃이 피던가.

봄바람만 들이 불면

누가 시켜서 꽃이 피던가.

제가 저절로 꽃이 필 때

누가 막아서 못 피던가.

고운 꽃이 피고 보면 귀한 열매 또 여나니

 

이 뒷집의 조서방이 다만 내외 있다가

먼저 달에 아내 잃고 지금 혼자 살림하니

저 먹기는 태평이나 그도 또한 가련하니

팔자 또 고쳐 내 말대로 살아보게.

지나간 일 생각하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

마지못해 허락하니 그 집으로 인도하네.

그 집으로 들이 달아

우선 영감을 자세히 보니

나이는 비록 많으나마

생김새가 든든하고 순하고도 후덕하다.

 

영감은 무엇으로 먹고 사오.

내 하는 일 엿장사라.

마누라는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나.

내 팔자가 무상하여

오랜 세월 수많은 고생을 다 겪었소.

 

그날부터 내외 되어 영감 할미 살림한다.

나는 집에서 살림하고

영감은 다니며 엿장사라.

호두약엿 잣박산에 참깨박산 콩박산에

산사과 빈사과를

고루고루 갖추어 두면

상자 고리에 담아 지고

장마다 다니면서 매매한다.

의성장 안동장 풍산장과

노루골 내성장 풍기장에

한 달 육장 장날마다 다녀보니

엿장사 조첨지 특별한 이름 되네.

 

한 달 두 달 이태 삼 년 사노라니

어찌하다가 태기 있어

열 달 배불러 해산하니

참말로 일개 옥동자라.

영감도 오십에 첫아들 보고

나도 오십에 첫 아이라.

영감 할미 마음 좋아

어리장 고리장 사랑한다.

젊어 어찌 아니 나고 늙어 어찌 생겼는고.

즐거운 일 다한 뒤에 슬픈 일을 겪은 나도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오려는가.

희한하고 이상하다 둥개둥둥 일이로다.

 

둥개둥개 둥개야, 아가 둥개 둥둥개야.

금자동아 옥자동아,

섬마 둥개 둥둥귀 섬마개야.

부자동아, 귀자동아.

놀아라, 둥개 둥둥개야.

앉아라, 둥개 둥둥개야.

섰거라, 둥개둥 둥개야.

궁둥이를 툭툭 쳐도 보고

입도 쪽쪽 맞춰보고 그 자식이 잘도 났네.

이제야 한번 살아보지.

 

한창 이리 놀리다가 어떤 친구 오더니만

수동별신굿 큰 별신굿을

아무 날부터 시작하니

밑천이 적거들랑 뒷돈은 내 대 줌세.

호두약엿 많이 고고, 갖은 박산 많이 하게.

이번에는 좋은 수가 날 것이라.

영감님이 옳게 듣고

찹쌀 사고 기름 사고 호두 사고 치자 사고

참깨 사고 밤도 사고 칠팔십 냥 밑천이라.

 

닷동이들이 큰 솥에다 삼사 일을 고노라니

한밤중에 바람 일자 굴뚝으로 불이 났네.

온 집안에 불붙어서

불빛이 하늘에 가득하니

의식 잃고 정신없어 그 엿물을 다 퍼 얹고

안방으로 들이 달아 아들 안고 나오다가

불더미에 엎어져서 구불면서 나와보니

영감은 간 곳 없고 불만 자꾸 타는구나.

이웃 사람 하는 말이 애 살리러 들어가더니

아직까지 안 나오니 벌써 죽었구나.

한 마룻대 떨어지니 기둥조차 다 탔구나.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여기저기 헤치면서 찾아보니

포수 놈이 불고기 하듯 아주 함박 구웠구나.

이런 망할 일이 또 있는가.

나도 같이 죽으려고 불덩이로 달려드니

동네 사람들이 붙들어서

아무리 몸부림하나

아주 죽지도 못하고서

온 몸이 콩과줄 되었구나.

 

이런 년의 팔자 있나, 깜짝 사이 영감 죽어

모든 혼백들이 불꽃 되어

불티와 같이 동행하여 아주 펄펄 날아가고

귀한 아들도 불에 데어 죽는다고 소리치니

엉아엉아 우는 소리 이내 창자 끊어진다,

세상사가 귀찮아서 이웃집에 가 누웠더니

덴동이를 안고 와서

가슴을 헤치고 젖 물리며

지성으로 하는 말이

어린 아이 젖 먹이게,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어린 아기 젖 먹이게. 우는 거동 못 보겠네.

일어나서 젖 먹이게.

 

나도 아주 죽으려네, 그 어린 것이 살겠는가.

그 거동을 어찌 보나 아주 죽어 모르려네.

데인다고 다 죽는가, 불에 덴 이 허다하지,

그 어미라야 살려내지. 다른 이는 못 살리네.

자네 한번 죽어지면

살 것이라도 아니 죽겠는가.

자네 죽고 애 죽으면 조첨지는 아주 죽네.

살아날 것 죽고 보면 그도 또한 할 일인가.

조첨지를 생각거든 일어나서 애 살리게.

어린 것만 살고 보면

조첨지는 사뭇 안 죽었네.

 

그 댁네 말은 옳게 듣고

마지못해 일어나 앉아

약치레하며 젖먹이니

서너 달 만에 나았으나 살았다고 할 것 없네.

갖은 병신이 되었구나.

한쪽 손은 오그라져 조막손이 되어 있고

한쪽 다리 뻐드러져 밭장다리 되었으니

성한 이도 어렵거늘 갖은 병신 어찌 살꼬.

손발 없는 아들 하나 병신을 볼 수 있나.

 

덴 자식을 젖 물리고

달래듯 안고 생각하니

지난 일도 기막히고 이 앞 일도 가련하다.

건널수록 물도 깊고 넘을수록 산도 높다.

어떤 년의 고생팔자 일평생이 고생인고.

이내 나이 육십이라 늙어지니 더욱 슬퍼

자식이나 성했으면 제나 믿고 살지마는

나이 점점 많아가니 몸은 점점 늙어가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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