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덴동어미화전가

덴동어미화전가(소백산대관록) - 제2부 _ 2.아전 이승발

New-Mountain(새뫼) 2020. 10. 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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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2. 아전 이승발

 

이상찰의 며느리 되어

이승발의 후처로 들어가니

가세도 웅장하고

시부모님도 자애롭고 후덕하고

낭군도 출중하고 인심도 거룩한데

매양 앉아 하는 말이

이포가 많다 하고 걱정하더니

함께 산 지 삼 년이 못 다가서

성 쌓던 조 사또 도임하고

엄한 형벌 내려 수금하네.

 

수만 냥 밀린 빚을 들추어내니

남쪽의 밭 북쪽의 논 좋은 땅이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떠나가네.

안팎으로 행랑채 줄지은 큰 기와집도

하루아침에 남의 집 되고

앞닫이에 맞은편 뒤주며

큰 황소 절따말 서산나귀

대양푼 소양푼 세숫대야

큰 솥 작은 솥 조그만 가마솥

놋주걱 술국자 놋쟁반에

옥식기 놋주발 실굽달이

개다리소반 옷걸이며

대병풍 소병풍 산수병풍

자개함롱 반닫이에

무쇠독 다리쇠 받침

쌍용 그린 빗접고비

걸쇠 등잔걸이 놋등잔 걸이에

백통 재판 청동화로

요강 타구 재떨이 걷어가네.

용두머리 장목비 아울러

아주 훨쩍 다 팔아도

수천 냥 돈이 모자라서

일가친척에 도와 달라 하였으니

삼백 냥 이백 냥 일백 냥에

그중에도 가장 적은 것이 쉰 냥이라.

어느 친척이 좋다 하며

어느 일가가 좋다 하리.

 

사오만 냥 재산을 모두 다 쏟아내어

나랏빚을 모두 다 갚고 나니

시아버님은 곤장 맞고 덧이 나서

일곱 달 만에 초상나고

시어머님이 애가 타서 화병 나서

초상 마친 뒤에 또 초상나니

근 이십 명의 남녀 노비

시실새실 다 떠나가고

시동생 형제들은 집밖으로 나가고

다만 우리 내외만 남았구나.

 

남의 건넌방에 빌붙어서

곁방에서 살림살이 하자 하니,

콩이나 팥이나 양식 있나.

노구솥 바가지 그릇 있나.

누가 나를 보고 돈을 줄까.

이리저리 할 방도가 다시 없네.

하루 이틀 굶고 보니

생목숨 죽기가 어려워라.

 

이 집에 가 밥을 빌고, 저 집에 가 장을 빌어

일정한 거처 없이 그리 저리 지내가니

일가친척은 나을까 하고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니

두 번째는 눈치가 다르고

세 번째는 말을 하네.

우리 덕에 살던 사람 그 친구를 찾아가니

그리 여러 번 안 왔는데

얼굴 앞에서 푸대접을 바로 하네.

무슨 신세 많이 져서 그제 오고 또 오는가.

 

우리 서방님 울적하여

이런 울화를 못 이겨서

그 방안에 뒹굴면서 가슴 치며 통곡하네.

서방님아, 서방님아,

울지 말고 우리 둘이 가 보세.

이게 다 없는 탓이로다,

어디로 가든지 벌어보세.

 

정처 없이 이리저리 빌어먹고 가노라니.

경주 읍내 당도하여 주인 불러 찾아드니

손군뢰의 집이로다.

둘러보니 큰 여각에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부엌으로 들이 달아

설거지 하는 데서 걸씬하니

모은 밥을 많이 준다.

 

우리 내외 마주 앉아 실컷 먹고

아궁이에나 자려 하니

주인 마누라 후하기로

아궁이에 어찌 자려는가

방안에 들어와 자고 가게.

중노미 물러 당부하되

아까 그 사람들 불러들여

봉놋방에 재우라고 당부하네.

 

두세 번 절하고 인사하니

주인 마누라 가엽고 불쌍히 여겨

곁에 앉히고 하는 말이

그대 내외들을 아무리 봐도

빌어먹을 사람들은 아니로세.

본디 어느 곳에 살았으며

어찌하여 저리되었나.

우리가 본디 살기는

상주 읍내 살았으나

타고난 팔자가 괴이하고

집안에 당한 재앙 너무나 참혹하여

다만 두 몸이 살아나서

이렇게 빌어먹고 다니나이다.

 

사람을 보아도 온순하고 정직하니

내외가 머슴살이 있어 주면

바깥사람은 백오십 냥 주고

자네 새경을 백 냥 줌세.

내외 새경을 합하고 보면

이백쉰 냥이 아니 되나.

몸은 비록 고되나마

입고 먹는 것이야 걱정인가.

내 맘대로 어찌 하오리까.

가장과 의논하겠나이다.

 

이내 봉놋방 나가 서방님을 불러내어

서방님 소매 부여잡고

정답게 이르면서 하는 말이

주인 마누라 하는 말이

우리 내외 머슴살이 한다 하면

이백오십 냥 준다 하니 허락하고 있사이다.

나는 부엌어멈 되고 서방님은 중노미 되어

다섯 해 작정만 하고 보면

한 만 금을 못 벌겠나이까.

만 냥 돈만 벌었으면 그런대로 고향 가서

이전만큼은 못 살아도

남에게 천대는 안 받으리.

서방님은 허락하고 지성으로 버사이다.

 

서방님이 내 말 듣고 둘의 낯을 한데 대고

눈물 뿌려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내 말 듣게.

임상찰의 따님이요, 이상찰의 아들로서

돈도 돈도 좋지마는 내사 내사 못하겠네.

그런대로 다니면서 빌어먹다 죽고 말지.

아무리 신세가 곤궁하나

군뢰놈의 머슴 되어

한 번만 까딱 잘못하면

무지한 이 욕을 어찌 볼꼬.

내 심사도 할 말 없고 자네 심사 어떠할꼬.

나도 울며 하는 말이

어찌 생전에 빌어먹소.

사나운 개가 무서워라,

누가 밥을 좋아서 준다 하오.

밥은 빌어 먹으나마

옷은 누구에게 빌어 입소.

서방님아 그 말 말고 이전 일도 생각하오.

 

팔십 년 가난하던 강태공도

삼천 일 허구한 날 낚시질 하였으나

주 문왕을 만난 후에

팔십 년을 호화롭게 살았었고

빨래하는 여인에게 얻어먹던 한신이도

도중에 소년에게 욕보다가

한고조를 만난 후에 한중대장 되었으니,

우리도 이리해서 벌어가지고 고향 가면

이방을 못하며 호장을 못하리오.

부러울 게 무엇이오.

 

우리 서방님 하신 말씀

난 하자면 하지마는 자네는 여인이라

나만큼 할 지 모르겠네.

나는 조금도 염려 말고

그리 작정하십시다.

 

주인 불러 하는 말이

우리 사환 할 것이니

이백 냥은 우선 주고 쉰 냥은 갈 때 주오.

주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심부름만 잘한다면 칠월벌이 잘 된 후에

쉰 냥 돈을 더 주겠네.

 

행주치마 털어 입고 부엌으로 들이 달아

사발 대접 종지 접시 몇 죽 몇 개 헤아려서

날마다 정리 정돈 솜씨 나게 잘도 한다.

우리 서방님 거동 보소.

돈 이백 냥 받아 놓고

일수 월수 돈 꿔주고 이자 받아 체계놀이

내 손으로 이름을 써 놓으며

주머니 안에다 간수한다.

석 자 수건 머리에 두르고서

말죽 쑤기 소죽 쑤기 마당 쓸기 봉당 쓸기

상 들이기 상 내가기 오며 가며 걷어치운다.

평생에도 안 하던 일 눈치 보아 잘도 하네.

삼 년을 나고 보니 만여 금돈 되었구나.

우리 내외 마음 좋아 다섯 해 갈 것 없이

돈 받기를 알뜰히 하여

내년에는 돌아가세.

 

병술년 괴질이 닥쳤구나.

안팎 식솔 삼십여 명이 함빡 모두 병이 들어

사흘 만에 깨어나 보니

삼십 명 식솔들이 다 죽고서

남은 이는 주인 하나 나 하나뿐이라.

수천 호가 다 죽고서 살아난 이 몇 없다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서방님 시신을 틀어잡고

기절하여 엎드러져서

아주 죽을 줄 알았더니

겨우 인사를 차리었네.

애고 애고, 어이할까, 가엽고 불쌍하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아주 벌떡 일어나게.

천 리 넘는 타향객지

다만 내외 와서 있다 가서

나만 하나 이곳 두고 죽는단 말 웬 말인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세.

 

이내 말만 명심하여 따르다가

삼사 년 공들인 일 헛일일세.

귀한 몸이 천하게 되어 만여 금돈 벌었더니

일수 월수 받은 돈에 이잣돈에

돈 쓴 사람 다 죽었네.

죽은 낭군 돈 달라나, 죽은 사람 돈을 주나.

돈 낼 놈도 없거니와 돈 받은들 무엇할꼬.

돈은 같이 벌었으나

서방님이 없어지니 쓸데없네.

애고 애고, 서방님아. 살뜰히도 불쌍하다.

이럴 줄을 짐작하면 천한 일을 아니했지.

오 년 작정 하올 적에 잘살자고 한 일이지.

울면서도 마다할 적에

무슨 큰일이라 말 세웠던고.

군뢰놈의 무지한 욕설들을

꿀과 같이 달게 듣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안 어기었네.

한번 정해 먹은 마음 한번 살자 했더니만

조물주가 시기하고 귀신도 야속하다.

전생의 무슨 죄로 팔자가 이러한가.

금도 돈도 내사 싫네, 서방님만 일어나게.

아무리 하늘 불러 애타게 통곡한들

죽은 이는 다시 살기 어려우네.

아무래도 할 수 없어 그럭저럭 장사하고

죽으려고 애를 써도 산목숨은 못 죽네.

억지로 못 죽고서 또다시 빌어먹네.

이 집 가고 저 집 가나 임자 없는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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