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 이별과 회유 (3/3)

New-Mountain(새뫼) 2020. 7. 5. 09:53
728x90

다. 이수재는 너를 이미 잊었으니, 의복 단장 고이 하고 수청 들라.

 

사또는 서울 양반 본집은 북촌이요, 춘추는 마흔다섯, 전직은 삼읍이요, 인물은 일색이라. 풍류를 좋아하고 여색을 사랑하여 남원 춘향 예쁘다는 말 경향에 대단하니, 남원 부사 하신 후에 길 중간에 점고 만나 볼까 속에 잔뜩 재촉하였더니, 점고를 다 하여도 춘향 이름 부르지 아니한다.

호장에게 하문하여,

“너의 고을 기생 중에 춘향이가 있다더니, 점고 불참 웬일이냐?”

호장이가 여쭈오되,

“춘향이라 하는 것이 기생인 게 아니오라 퇴기 월매 딸이온데, 생김새와 재주가 기묘하기로 구관댁 도령님이 머리를 얹었네다.”

사또가 또 물으셔,

“서울 데려갔다느냐?”

“그저 제집 있삽내다.”

“기생의 딸이면은 무슨 허물 있겠느냐? 구경하게 불러오라.”

호장이,

“예.”

급창이,

“예. 춘향 불러들이라.”

“예.”

사령들이,

“예, 춘향 불러들이라.”

“예.”

패두네 행세하는 것들이 거들먹거리기로만 끌리는데, 하물며 사또 처음 부임한 때라 오죽이 떠벌이겠나. 붉은 관디, 푸른 철릭에 흰 깃 꽂은 사령들이 가득히 늘어서서, 그중에 앞선 사령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이때에 춘향이는 아무것도 모르고서 낭군 생각 우는구나.

“애고, 애고. 설운지고. 어여쁜 도령님을 어느 때의 다시 볼꼬. 하늘 위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으되, 일 년에 한 번은 보건마는 도령님 계신 곳에 무슨 물이 막혔기에 이렇게 못 보는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혼자 탄식하며 신세 우는구나. 사령이 급히 불러,

“이애, 춘향 게 있느냐?”

춘향이 깜짝 놀라, 닫은 방문 탁 차 열고 버선발로 썩 나서니, 사령이 하는 말이,

“신관 사또 삼일 길 가운데 너 부르라 하셨으니 어서 급히 들어가자.”

춘향이 하는 말이,

“신관 사또 도임 초에 내 이름을 어찌 알아 불러오라 하셨는지 암만해도 의심이니, ‘병들어 누었는데 명이 끊어져 거의 죽게 되었더라.’ 잘 아뢰어 무사하면 패두네 그 은혜를 아니 잊고 갚아 줌세.”

“네 사정은 그러하나 도임 삼일 첫 공사에 우리가 살겠느냐? 잔말 말고 어서 가자.”

춘향이 하릴없어 입고 있던 그 의복에 사령 뒤를 따라가니 늘어선 재촉 소리,

“사령 오느냐?”

“예, 들어가오.”

하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급히 몰아 동헌 뜰에 세우고서 사령이 아뢰기를,

“춘향 불러 들어 왔소.”

사또가 보시더니 매우 추키어,

“일색이다. 이름 듣고 얼굴 보니 이름을 헛되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로다. 수수한 그 옷차림이 구름 사이 달빛처럼 더 좋거든. 상방 오르래라.”

춘향이가 올라가서 눈썹을 잠깐 숙여 멀찍이 앉았구나. 사또가 침을 삼켜 훨씬 추키어 하는 말이,

“어여쁘다, 어여쁘다. 보던 중에 처음이다. 계집이 어여쁘면 부끄러워 물고기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기러기는 땅으로 떨어진다 하던 말을 과히 추키는가 하였더니, 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숨는다던 태도 오늘 너를 보았구나. 설도 문군 보려 하고, 익주자사 소원하여 출세할 꿈을 꾼다더니, 네 소문 하 장하여 경향에 대단하기로 밀양 서흥 마다하고 간신히 서둘러서 남원부사 하였더니 오히려 늦게 덤벙여 너 같은 저 일색을 웃봉오리를 떼었으나 녹색 잎이 그늘 되고 열매 가지에 가득하지 않았으니, 호주에서 보았던 미인을 탄식하던 두목지에 비하면은 내 오히려 다행이다. 구관 책방 도령님이 네 머리를 얹었다니, 그 도령님 가신 후에 젊은 나이에 홀로 빈방을 지킬 수있나. 응당 정든 사내 있을 터니 관속이냐 한량이냐? 어렵게 알지 말고 바른대로 말하여라.”

춘향이 정색하고 공순히 여쭈오되,

“기생의 자식으로 몸은 비록 천하오나 성인의 글을 보와 행실을 아옵나니, 기생 명부에 이름 올린 일 없고, 여염집에 나고 자랐옵더니, 구관댁 도령님이 연소하신 풍정으로 소인 집을 찾아오셔 삼생의 아름다운 언약을 간청하니, 노모가 허락하고 불망기 받은 후에 이씨댁에 몸을 허락하여 백년 간 수건과 빗을 받들기로 단단한 마음 먹었더니, 좋은 일에 방해 되는 일이 많아 도령님을 이별 후에 독수공방 밤낮으로 그리움에 찾을 날만 기다리니, 관속 한량 정든 사내 말씀 소인에게 당치 않소.”

사또가 잇달아 추키어,

“얼굴 보고 말 들으니 안팎으로 미인이로다. 예부터 미인에게는 허물이 많다는 말이 구양공의 글 짝이라. 인물 고운 여인들이 열행이 적다더니 꽃 같은 저 얼굴의 옥 같은 그 마음이 어여쁘고 아름답다. 네 마음은 그러하나 이수재는 어린아이 결혼 전에 외지에서 첩을 얻기 부형이 엄히 금하고, 장가들고 급제하여 혜민서나 상의원의 내의녀 침선비며, 동 서부 남북촌의 기생집의 몸파는 여자들과 봄에는 봄 놀이에 밤에는 잠자리에서 여인들의 화장 속에 빠지면은 천리타향 잠깐 장난 네 생각을 할 수 있나.

가련한 네 신세 꽃가지에 이슬이요, 약한 풀에 티끌이라. 저물녘에 만나자던 약속은 간데없고, 백발의 노래를 읊으면은 그 아니 불쌍하냐? 네가 유식하다 하니, 충신 열녀 다르지 않음이라. 옛날 예양의 장한 충성, 두 번 혼인한 아낙의 수절이라. 너도 나와 다시 혼인하여 날 위하여 수절하면 예양 충성과 같을 터니, 의복 단장 고이 하고 오늘부터 방에 수청을 들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