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 이별과 회유 (1/3)

New-Mountain(새뫼) 2020. 7. 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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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이별과 회유

 

가. 부디 나를 잊지 마오, 내 너를 잊겠느냐 찾을 날을 기다리라.

 

도령님을 불러 세우고 사또 분부하시기를,

“내가 원을 갈렸기로 장부를 정리하고 갈 터이니 너는 내행 다 뫼시고 내일 먼저 길을 떠나라.”

도령님이 천만의외 이 분부를 들어 놓으니 가슴이 깜짝 놀라 쥐덫이 내려진 듯 두 눈이 캄캄하여 흑백 분별할 수 없다.

일 되어가는 형세가 위급하니 되던지 못 되던지 사정이나 하여 볼까 잔기침 버썩 하며 어리광 뽄새로 말을 내어,

“소자가 캑, 남원 와서 캑, 춘정을 캑, 못 이기어 캑.”

말을 채 못하나 자식을 아는 이는 아비밖에 없음이라. 사또 벌써 아시고 말 못 하게 호령한다.

“관장질로 먼 시골에 오면 자식을 버린단 말 이야기로 들었더니 너를 두고 한 말이라. 아비 고을 따라와서 글공부는 아니하고 밤낮으로 몹쓸 장난. 이 소문이 서울 가면 급제하기 고사하고 혼삿길부터 막힐 터니, 가라 하면 갈 것이지 너 할 말이 웬 말인고. 예라 이놈, 보기 싫다.”

통인을 돌아보며,

“네 할 일로 도령님을 골방에다 앉혀 두라.”

도령님이 하릴없어 골방으로 들어가서 골방에서 밥을 먹고 골방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해 뜰 무렵 군령 받아 쌍교 뫼시고 가는구나.

춘향 어미 방자 편에 이 소식을 자세히 듣고 춘향에게 하는 말이,

“집안에 앉았다가 우리 사위 가는 길에 하직하기 고사하고 얼굴 다시 못 보겠다. 오리정 전송 가자.”

찬 소주 병에 넣고 기름종이에 싼 마른안주 상단 들려 앞세우고, 저의 노모 뒤에 세우고 춘향을 데리고서 오리정 먼저 가서 긴 숲속에 몸을 숨기고, 상단은 길에 서서 도령님을 기다리더니, 쌍교 먼저 지난 후에 도령님이 상단 보고 나귀 등에 선뜻 내려,

“너의 아씨 예 왔느냐?”

“벌써 와서 기다리오.”

상단의 뒤를 따라 긴 숲속에 들어가니 춘향이 반겨라고 도령님의 손을 잡고 도령님의 낯을 대며,

“이것이 웬일이오. 장부 하는 일이 그러하오? 한 장 표서 만들 적에 백년해로 하자 했더니 만난 지가 언제기에 백 년이 그리 쉽소? 표서가 예 있으니 먹이 아직 안 말랐네. 사또 임금의 부름을 받았으니 우리의 큰 경사요, 부부이별할 터이니 우리의 큰일이라. 서로 웃고 치하하고 서로 잡고 안을 텐데, 해가 지고 날이 새도 자취 소리 고사하고 이렇단 말 없었으니 이것이 사내의 행실이요, 계집의 대접이요?

사또께 꾸중 듣고 골방에 갇혔기로 나오지 못하였다 핑계는 하려니와, 나를 만일 아니 잊고 손톱만큼 생각하면 나이 어린 통인에게 기별도 못 할런가. 다니던 방자에게 편지도 못할런가. 좋은 핑계 얻은 김에 저녁 진지 잘 잡숩고, 조용용한 골방에서 해 뜨도록 주무시고, 서산나귀 갖은 안장 호기 있게 나오시니, 도령님 마음속에 춘향 생각 어디 있소.

나도 만일 임 같아서 여기를 안 왔다면 이 손 다시 잡아 보며 이 낯 다시 대어 볼까. 한 일을 보았으면 열 일을 알 터이니, 새 정이 미흡하고 지척에 있을 적에 마음이 그러하고, 처사를 이러할 제 십리 가고 백 리 가고 일 년 되고 이년 되면 그 마음이 어찌되고 그 처사가 어떠할까. 가련하다, 이내 신세 이 소식 곧 들으며 오장에 붙는 불은 아방궁도 불사를 터요, 두 눈에서 나는 눈물 상림비가 당할쏜가.

어제저녁 잠 안 자고 오늘 아침밥 못 먹어 백 번이나 생각하고 천 가지로 헤아렸네. 용천보검 들게 갈아 낭군 앞에 자결하자 하니, 노모 봉양 뉘가 하며 나귀 밀치 거머잡고 서울 따라가자 하니, 사또 위세 어떻겠나. 이리저리 생각하니 오늘날 이 이별은 당연히 할 터이니 조금도 서럽지 않되, 굽이굽이 서린 간장 깊은 걱정 잊을 망 자뿐이로세.

한바탕 이별하고 가신 후에 팔자 좋은 도령님은 혼례 치르고 정실부인 얻고, 서울에서 높은 벼슬 급제하여 조정에서 높고도 좋은 벼슬로 부귀 행락 하실 적에 보는 것이 미색이요, 듣는 것이 풍악이라. 천리 남원 천첩 춘향 손톱만큼 생각할까. 금일 송군 이별 후에 의복 단장 전폐하고 독수공방 지낼 적에 일 년 사철 오는 대로 보는 것이 수심이라.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이 밤에 피어나니 처량한 저 두견이 빈산 달빛 어디 두고 적막한 비단 창문 앞에 두견새 슬픈 소리 날 새도록 부르짖어 굽이굽이 간장 다 녹이며,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여름 되어 창문 앞의 앵도 붉어가니 그리워하는 우리 낭군 꿈속에나 만나볼까. 원앙베개에 혼자 비껴 간신히 잠들었다가 꾀꼬리 소리에 놀라 깨면 천 리 한양 갈 수 있소.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질 때에 기러기 우는 소리 행여 발에 비단 편지 매어 있나.

급히 누각에 올라 바라보면 임의 소식 아니 오고, 옥 같던 머리칼에 서리 재촉하며, 갈수록 동지날 긴 밤에 이 고생을 어찌할꼬. 산이란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엔 사람 자취 모두 끊겼을 제, 각 베개과 비단으로 된 이불이 찬란한데 뉘와 함께 자자는가. 적적한 빈방 안의 외로운 등불을 대하고 혼자 앉아 임 생각 하올 적에 사립문에 짖는 개는 몇 번이나 날 놀랠꼬. 올해에나 편지 올까, 내년에나 임 오실까. 기다리고 바라다가 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줄을 모르고 지냈고, 어린 새가 집을 짓게 자랐어도 임은 오지 않아 아주 소식 없사오면, 고통스럽게 자진하는 이 원혼이 그 아니 불쌍하오. 오늘 이별 설워 말고 부디 후일 잊지 마소.”

도령님 한삼으로 춘향 눈물 씻기면서,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네 설움이 그러할 제 내 마음이 어떻겠나. 우리 정다운 처지 의논하면 상투 틀고 쪽 찐 부부로서 잊을 길이 잊겠느냐. 네 의심 그러하면 후일 생각하라 신물 주마.”

비단 주머니 선뜻 풀러 명경을 내어주며,

“대장부 평생 마음 명경 빛과 같은지라. 몇 해가 지나도록 변치 아니할 것이니, 깊이 깊이 갈마 두고 내 생각이 날 제마다 날 본 듯이 열어 보라.”

춘향이가 명경 받고 저 꼈던 옥반지을 한 짝 벗어 드리면서,

“여자의 정절 행실 흰 옥에 티가 없은 것과 같사오니, 천첩의 일편단심 이것으로 신표 삼으시오.”

춘향 어미 앉아 울다 술병 들어 춘향 주며,

“이 술은 네가 부어 이별잔으로 권하여라.”

춘향이 쳐 드리니 도령님 울며 먹고,

“쌍교 멀리 갔을 터니 급하게 작별한다. 애통을 과히 하면 고운 얼굴 상하나니, 부디부디 좋이 있어 찾을 날을 기다리라. 장모도 잘 지내고 상단도 잘 있으라.”

나귀 등에 급히 올라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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