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 만남과 사랑 (4/4)

New-Mountain(새뫼) 2020. 7. 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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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사랑 사랑 사랑이야, 이성지합 우리 연분 백년해로 함께 하자

 

춘향이가 들어와서 어미 옆에 고이 앉아 손가락을 입이 넣고 고운 눈썹을 나직하니 도령님 좋아라고 저의 어미와 수작하여,

“자네 딸이 몇 살인가?”

“임자 사월 초파일에 이 자식을 낳았지요.”

“어허, 신통하네. 나하고 꼭 나이가 같구나. 오늘 내가 심심하여 광한루의 나왔더니 추천하는 자네 딸이 하릴없는 선녀이기로 광한루에 데려다가 백년가약 맺을 터이나, 노모 있는 여염집 여자 마음대로 불러오라 할 수 없어 자네 허락 듣자 하고 자네 찾아 나왔으니, 자네 의사 어떠한가?”

춘향 어미 대답하되,

“무남독녀 저 자식을 제 아비가 일찍 죽고 어미 혼자 길러내어 저와 같은 배필 얻어 이 몸이 살았을 때 죽고 난 후 의탁하자 하옵는데, 도령님은 지체 높은 이라. 한때의 풍정을 못 이기어 한 번 보고 버리시면, 청춘 백발 두 목숨이 그 아니 불쌍하오?”

도령님 깜짝 놀라,

“자네 그게 웬 소린가? 새것을 좋아하는 게 남정네라 다른 마음 품는다는 게 옛글에는 있거니와, 행실이 가벼운 이들에게 한 말이지, 사대부의 행실이 그러할까? 자네 만일 의심하여 내 말 곧이 안 들으면 혼서지는 못할 터이나 불망기를 하여 줌세.”

당필연을 선뜻 열고 용린연에 먹을 갈아 호황초필에 반쯤 풀어, 오색 붙인 주지축에 한문 언문 한데 섞어 글씨를 단숨에 써 갈 적에,

‘남원 제일 미인하고 서쪽 사랑채에서 백년해로키로 저의 모녀 데리고서 단단히 약속하여 증서로 만드노니, 만일에 약속을 어기고 이랬다저랬다 하거드면 귀신이 벌을 주고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니, 이것으로써 상세히 살필 것이라.’

정묘 사월 보름밤에 표주 직접 글로 써 이몽룡이 이름을 써 두어 자 내뜨리니, 춘향 어미 그 글을 받아 춘향 주며 하는 말이,

“우리 모녀 평생 큰일이 한 장에 매였으니 깊이 간수해 잘 두어라.”

문을 열고 나가더니, 상단이를 데리고서 잡술 상을 차리는데 정결하고 맛이 있다.

나주 옻칠한 여덟모 소반에 행주질 깨끗이 하고, 금물 들인 왜물 젓가락 상하 알아 씻어 놓고, 계란 다섯 알을 수란하여 푸른 그릇에 받쳐 놓고, 갖은 양념 많이 넣어 초장을 곁들이고, 무늬 좋은 금물 먹인 꽃 그릇에 봉산 문배주, 임실 곶감, 호도, 백자 곁들이고, 문어, 전복, 약포 조각, 백김치를 접시 담아 놓고, 상단을 급히 시켜 서 돈어치 약주 받아 춘향 어미 상 들이며,

“밤이라 소홀하오.”

“천만의외 말이로세.”

술 한잔 가득 부어 도령님께 드리면서,

“옜소, 약주 잡수시오.”

도령님 나이 어리나 술 경계가 환하여,

“주인은 술을 마시고 객은 밥을 먹는다 하니 자네가 먼저 먹소.”

춘향 어미 먹은 후에 다시 부어 또 드리니, 도령님이 반만 먹고 춘향 어미 도로 주며,

“이것이 합환주니 자네 딸이 먹게 하소.”

춘향 어미 잔을 받아 춘향 주며 하는 말이,

“백년해로하게.”

하고,

“한 잔을 둘로 나누었으니 사양 말고 다 먹어라.”

춘향이 부끄러워 입만 대고 내어 놓으니, 춘향 어미 다시 부어 도령님께 권할 적에 한잔 한잔 또 한잔에 술잔 순서가 어지럽게 되었구나.

술상을 물린 후에 춘향 어미 하직하여,

“봄밤이 지극히 어려우니 평안히 주무시오.”

이부자리 펴 놓고 문을 닫고 나가거늘, 도령님이 심히 추키어,

“장모 세세한 속을 갸륵히 안다.”

취흥이 넘쳐나서 춘향 안아 앞에 놓고 사랑가로 농탕친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연분이라 하는 것은 삼생에서 정함이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칠정에서 중함이라. 월로가 정한 배필 붉은 끈으로 맺었으며, 요지의 좋은 중매 청조가 날았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백곡의 진주 사 왔으니 부자의 흥정이, 오천금으로 좋은 말을 바꾸면 글쓰는 이의 취흥이라. 무산신녀 행실 없어 양대로 사랑 찾아가고, 탁문군은 과부로서 개가하는 모습이 부끄럽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만고의 미인을 다 세어도 우리 연분 같겠는가. 타도 타향 타성바지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느티나무 연리목 되듯이 어찌 그리 신통하며, 바늘이 겨자씨에 박히듯이 그리 교묘하고 기이한고.

사랑 사랑, 사랑이야, 아버님이 고을 원이 되니 용성관에 따라와서 점심 무렵에 봄옷으로 광한루에 바람 쐴 제, 그네 뛰는 저 먼발치로 선녀인지 알았더니, 바르고 옳은 그 답장이 의리가 밝았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하늘이 땅보다 먼저 찾아 오니 신방에 촛불이 좋을시고. 옥 같은 머리 고운 얼굴 고운 모습 보고 보니 절색이라.

사랑 사랑, 사랑이야, 매미 이마에 나방의 눈썹, 예쁜 눈은 눈매가 또렷하다는 걸 옛글로만 보았더니, 손은 부드러운 띠의 싹 같고, 허리는 비단 한 필을 묶어 놓은 듯하니 뉘가 너와 쌍이 될꼬. 붉은 입술과 흰 이의로 말을 하면 말을 알아듣는 꽃이 네 아니며, 향기를 흩으면서 버선발로 걸어가면 활짝 핀 연꽃이 되겠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이리 보고 저리 보되 세상 인물 아니로다. 백옥루 선녀로서 황정경 그릇 읽고 옥황께 죄를 짓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너는 처녀 나는 총각, 상투 틀고 쪽을 찌니 부부 그 아니며, 불망기와 합환주가 납채 행례 그 아니냐. 다른 성이 합해진 우리 연분 백년해로 하여 보자.

사랑 사랑 사랑이야.”

무수히 어른 후에 벗기기로 드는구나. 춘향이 부끄러워 옷고름을 꽉 잡으니, 도령님이 잘 타이르며,

“이애, 이게 웬일이냐? 신랑 신부 첫날밤에 옷고름이 떨어지면 좋지 않다 한다더라. 벗자 벗자, 어서 벗자. 옷 가운데서 야단났다.”

상하 의복 훨썩 벗겨 이불 속에 안아 뉘고 촛대 에 불 끈 후에 도령님이 훨훨 벗고 꼭 끼고 들어 누워 속옷을 벗기려니, 춘향이가 두 손으로 속옷 끈을 꽉 잡고서,

“양반 행세 안 되었소. 염치없이 첫날밤에 속옷조차 벗기려네.”

“이애야, 이 판 되어 양반이 왜 있으며 염치가 왜 있으리.”

두 손을 한데 쥐고 속옷 끈을 끌어내어 두 발로 미적미적 속옷 벗겨 밀친 후에 알몸으로 둘이 누워 온갖 작난 다 한 후에 웬 좋은 그 노릇이 몇 번이나 되었던지 날이 채 밝지 않았을 제 일어나서, 책방으로 들어와서, 낮이면 글을 읽고 밤이면 찾아다녀 온갖 희롱 온갖 교태 정이 점점 깊어간다.

어쩌다가 사또가 동헌을 비우면 밤낮없이 출입하니 어찌 소문 안 나겠나. 사또가 짐작하고 하지 못하게 타이르니 수가 없고, 지나치게 색을 하면 병이 날까 밤낮으로 염려 지내더니, 

남원 부사 백성을 잘 다스려 성상이 아시고 내직으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경방자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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