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 만남과 사랑 (3/4)

New-Mountain(새뫼) 2020. 7. 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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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글이 가고 글이 오니, 마음을 알리로다, 밤에나 찾아보자.

 

방자를 보낸 후에 상단을 돌아보며,

“못난 내 까닭으로 마누라님 탈 있으면 이 일을 어찌할꼬. 사세를 생각하면 가 봄 직도 하다마는 갔다가 꽉 붙들려 부부 되자 하게 되면 여자의 한평생 큰일을 경솔히 하겠느냐? 한나라 탁문군은 사마상여 문장 풍채 본 연후에 좇아가고, 당 시절 홍불기는 이위공의 영웅스러운 기상 본 연후에 찾아가니 도령님 생긴 모습과 태도 방자 말만 믿겠느냐? 네 눈으로 보았으면 대강 짐작할 터이니, 광한루 건너가서 지나가는 아이같이 도령님을 보고 오라.”

상단이 대답하고 광한루에 급히 가서 기둥 옆에 몸을 감추고 도령님을 바라보니, 있는 그대로 아이 신선이라. 말하고 웃는 거동 볼수록 어여쁘다. 바쁘게 돌아와서 기쁘게 하는 말이,

“예쁩디다, 예쁩디다. 처음 보던 인물이오. 어찌 그리 생김새가 탐스럽고, 어찌 그리 시원한지, 남원 오신 원님이며 책방 오신 아자제를 여러분을 보았으되 그런 인물 처음 보았소. 그림으로 의논하면 용과 같고 봉도 같아 형용할 수 없습디다."

이때에 방자는 춘향을 못 부르고 저 혼자 돌아와서 춘향과 하던 말을 낱낱이 다 고하니 도령님이 좋아하여,

“그 아이 하는 행실 듣던 말과 다름없다. 불러서 아니 오기 제 도리는 당연하나, 청하다가 못 보면은 내 체면이 어찌 되리.”

종이 두루마리 풀어 놓고, 두어 줄 설설 써서 겉 봉하여 방자 주니, 방자가 받아 들고 번개같이 건너가서 편지 내어 춘향 주니, 춘향이 피하려야 피할 길 없어 편지 받아 떼어 보니,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오언 한 귀뿐이로다.

 

녹주는 석숭의 짝이요,

홍불기는 이정을 따르는구나.

 

춘향이 안 마음에 재조 있는 사람이라. 이 일을 어찌할까 한참 동안에 생각하다가 눈처럼 흰 종이를 감싸 내어 잠깐 적어 겉을 단단히 붙여, 방자 주며 하는 말이,

“규중에 처녀 몸이 사리에 어두운 평생 도령님께 편지하기 부당하되, 묻는데 답이 없을 수 없어 부득이 답장하니, 갔다가 드린 후에 다시는 오지 마라.”

방자가 다행하여 세 걸음의 뛰어와서 도령님께 올리오니, 자기 편지 본떴으니

 

“문왕이 여상을 찾고,

유황숙이 공명을 방문한 것이라.”

 

하였으니, 도령님이 무릎 치며,

“재주 있구나, 아름답구나. 잠깐 동안에 쓴 답장이 이렇게 조리가 밝으냐?”

방자 불러 분부하되,

“구경도 다 하였고, 햇빛이 이미 저물었으니 책방으로 들어가자.”

나귀를 채를 쳐 몰아 책방으로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은 후에 문을 닫고 퇴령 나서 사또 계신 방에 촛불이 꺼진 연후에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 집을 찾아갈 제, 고을에서 가장 번화한 곳도 고요하고, 수많은 백성의 집들도 닫았구나. 완월문 밖 썩 나서니 구름 사이로 달빛이 마치 흰 빛이니, 거리가 잇달아서 오늘 밤이 좋을시고. 한 모퉁이 두 모퉁이 이 골목 저 골목 조용히 천천히 걸어 차차 걸어 나가니, 물 찾는 기러기요 꽃 찾는 나비로다.

춘향 문 앞에 당도하니 성안이 멀지 않은데, 산림의 경치 좋을시고. 집 뒤에 푸른 산이요, 문 앞에 푸른 물이로다. 시냇가에 두른 버들 진채봉의 동네런가. 담장을 덮은 앵두 계섬월이 살던 데인가. 문안에 들어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처마 앞에 늙은 낮은 솔에 늙은 용이 서려는 듯, 뜰 가에 서 있는 푸른 오동나무, 학 두루미 잠들었다. 반 이랑 네모진 연못의 맑은 물에 연꽃 심고, 물고기를 기르며, 여러 층의 흙섬돌에 갖가지 화초, 괴석으로 산 만들고, 포도 가지 시렁 되고, 매화가 병풍 되며, 푸른 대는 울이 되고 흰 띠로 지붕 이었다.

이때에 춘향이는 방 안에 혼자 앉아 예기를 읽어 갈 제,

“남자가 아내를 친히 맞아서,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하는 것은 굳센 것과 부드러움의 도리이로다. 하늘이 땅보다 먼저 하며, 임금이 신하보다 먼저 하는 것과 그 도리가 같은 것이리라.”

청아한 목소리가 사람 귀를 놀래거늘, 도령님 반겨하고 가까이 들어가니 잠귀 밝은 춘향 어미, 사람의 자취인 줄 짐작하고, 닫은 방문 탁 차 열고 급하게 나오다가 방자 보고 꾸짖는다.

“여봐라, 이 자식아 네 키가 저만하니 대강 인사 알 터인데, 큰 사내 없는 남의 집에 기침도 아니 하고 네 집같이 들어오니, 그런 행실 어디 있겠느냐?”

저 방자 대답하되,

“엄씨 말씀 옳소마는, 양반 앞에 선 하인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소?”

“너 모신 어떤 양반 너와 함께 와 계시냐?”

방자가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령님이 춘향의 소문을 많이 듣고 불러보기 미안하다고 나와 함께 나오셨소.”

춘향 어미 깜짝 놀라 우르르 급히 와서 도령님 고운 손을 잡고 반기며 하는 말이,

“누추한 이내 집에 도령님 나오시기 이런 큰 영광이 있겠는가. 이리 오오, 이리 오오.”

방 안으로 모시거늘, 방 안을 둘러보니 방치레 정결하다. 중국 종이로 도배하고, 넓고 두꺼운 장판을 깔고, 천장에는 하늘이 열리는 그림이요, 족자는 땅의 모습을 그린 책이라. 최상품의 화류문갑 위에 필통, 옆에 서책 놓고 중국 붓 벼루에 문방사우 경대 위에 몸거울 괴고, 타구(唾具) 재떨이와 담배 서랍 담뱃대를 방 가운데 놓았으며, 네 벽에 붙인 것은 열녀 그림뿐이로다.

동벽에 붙인 그림 소상강에 밤비 개고 동정호의 달 오르니 아롱아롱 죽림 속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스물다섯 거문고를 타는 거동. 남벽의 붙인 그림 구리산 가을 달에 사면에 먹들이 매복하였는데 천하장사 초패왕이 장막 안에서 일어나 마실 적에, 남장을 한 미인이 옥수로 장검 쥐고 목 찌르는 거동이며, 서벽을 바라보니 장신궁에 꽃이 지고 거친 풀이 뜰어 가득한데 지나가는 까마귀가 소양의 미인을 띠어 오니 미인이 비단 부채 쥐고 바라보는 거동이요, 북벽을 바라보니 금곡에서 즐겁게 지내며 십리에 비단을 펼쳤더니, 하루아침에 험한 바람이 웬일인고. 누각 앞에 어지러이 날리는 눈처럼 일의 형세가 위급하니 옥 같은 귀밑머리 고운 얼굴이 삼월 봄바람에 낙화같이 누각에서 떨어지는 거동이라.

도령님이 다 본 후에 춘향 어미 돌아보며,

“자네 딸은 어디 갔나?”

춘향 어미 어쭈오되,

“나이 아직 사리에 어두워 손님 접대 못 하기로 도령님 오시는데 부끄러움 못 이기어 내 방에 가 숨었나 보오.”

“내가 오늘 여기 오기는 저를 보자 온 길이니 이리 잠깐 오라 하소.”

춘향 어미 문을 열고,

“이애, 아기 게 있느냐? 사또 자제 도령님이 너를 보자 오셨으니 어서 이리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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