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신채효성두본 춘향가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 만남과 사랑 (2/4)

New-Mountain(새뫼) 2020. 7. 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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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춘향이를 불러오라, 천번 만번 청하여도 나는 아니 갈 터이다.

 

그저 여기저기 거닐면서 돌아보노라니, 난데없는 둥글고 밝은 달이 푸른 구름 사이에 오락가락, 정신을 겨우 수습하고, 유심히 다시 보니 밝은 달은 미인이요, 푸른 구름은 푸른 나무 그늘이라. 나타났다 사라지는구나. 오락가락 그네 뛰는 거동이라.

마음속에 의심하고 부정하며 보고 보고, 또 보와도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로다. 봉황을 타고 올라가니 진나라 누각의 농옥인가. 구름 타고 내려 오니 양대의 무산신녀인가.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얼른 보면 곧 가까워 들어갔다 오는 양, 꾀꼬리는 금빛 북이 되어 날아다니며 버들 실을 짜고 있고, 제비가 꽃을 차니 그 꽃이 춤추는 자리에 떨어지는구나.

도령님 혼을 잃은 듯 맥 놓고 서서 보다 방자에게 물어보아,

“저 건너 꽃숲 속에 추천하는 저 여자가 처녀이냐, 새색시냐?”

방자가 여쭈오되,

“본부 퇴기의 딸 춘향이라 하나이다.”

도령님 좋아하여,

“퇴기의 딸이면은 한 번 구경 못할쏘냐. 네가 가서 불러오라.”

방자가 여쭈오되,

“도령님 분부 거행 물불이라고 피하지 못할 터이로되, 이 분부 거행하기 대단히 어려운 사정 있소.

월매라 하는 계집, 인물 좋고 노래와 춤 뛰어난 기생이기로, 한양과 시골에 유명하여, 본읍의 여러 사또들이 계실 때나, 인근 읍 수령님들 수청도 많이 들고, 맛있는 아전이며, 돈 있는 부자 서방, 풍치가 있고 젊은 남자, 호방한 사내들을 많이 함께 살았으되 자식이 없삽기로, 사십이 넘은 후에 성천총과 짝이 되어 자식을 보려 하고, 지리산 각 사찰의 백일 산신제, 시주 불공, 초하룻날과 보름날이면 목욕재계, 관왕묘에 분향하고 축원하며 지성이 감천하니 공교롭게도 잉태를 하게 되니, 양반에게 들은 행실 태교를 하려 하고,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고,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열 달 차서 딸 낳으니, 매우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 기를 적에, 이 아이 생긴 것이 얼굴이 일색이요, 재조가 하늘로부터 타고 났음이라.

글짓기와 노래와 악기 연주, 바느질과 음식 가지가지 다 잘하니, 문장은 조대가요, 글씨는 위부인, 채문희의 정통 음률, 직녀의 바느질을 모두 갖추었으며며, 열녀전과 내칙편을 밤낮으로 공부하여 때로는 움직이더라도 때로는 조용한 행실은 사대부가 부녀자에 못지않지요. 노비를 대신 넣어 종의 신분에서 놓여나고, 바깥사람들과 통하지 아니하니, 사또가 부르셔도 올지 말지 하옵는데, 도령님이 부르셔서 우르르 오오리까?”

도령님이 크게 기뻐하셔,

“여인의 생김이 그러하고 행실이 그렇다니, 희한한 말이로다. 그럴수록 더 볼 테니 어서 가 불러오라.”

방자가 할 수 없어 춘향 부르러 건너갈 제, 이놈이 덤벙여 버들가지 질끈 꺾어 빈 채찍질도 하여 보고, 조약돌 덤뻑 쥐어 꾀꼬리도 날려 보며 꽃 숲에 당도하니, 이때에 춘향이는 추천을 오래하고 꽃 숲에 내려앉아 구름 같은 두 귀밑에 구슬 같은 땀이 흘러 목마름을 못 금하니, 상단이 유리 종지에 귤병차 부어 들고,

“목마른데 잡수시오.”

방자 썩 들어서며,

“얘, 춘향아. 너 본 지 오래구나. 노모 시하에서 잘 있느냐?”

춘향이 돌아보니, 전에 보던 방자거든,

“너 어찌 나왔느냐?”

“사또 자제 도령님이 광한루 구경 왔다 그네 뛰는 네 거동을 바라보고 크게 반하여 불러오라 하셨으니 나를 따라 어서 가자.”

춘향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색하며 방자를 꾸짖는다.

“서울 계신 도령님이 내 이름을 어찌 알며, 설령 알고 부르라 한들, 네가 나를 누구로 알고 부르면은 썩 갈 줄로 알고 당돌히 건너왔느냐? 천부당 만부당이라. 안될 일이니 잔말 말고 건너가라.”

방자가 어이없어 한참 섰다 하는 말이,

“도령님은 사대부요, 너는 일개 천인이라. 네 아무리 막으려 한들 아니 가고 견딜쏘냐?”

춘향이 화를 내며 얼굴색이 바뀌어서,

“명분도 중하거니와 예법도 중하니라. 내가 비록 천인이나, 기생 명부에 이름을 올린 일 없고 여염의 처녀로 명색에 대낮 큰길에서 많은 사람들 중에 무슨 면목 취어 들고 너와 함께 가자 하느냐?”

방자가 하는 말이,

“네 속이 저러하니 가자는 말은 아니 하나, 좋은 흥정 놓치겠다. 내 뫼신 도령님이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고, 반악의 고운 풍채에, 이백과 두보의 뛰어난 문장, 소리와 음악을 알고, 손수 있어 뛰어남을 모두 갖추신 중에, 집안은 양반이 연안 이씨 천하의 지체 높은 성씨요, 삼한의 훌륭한 집안이라.

장안에 이름난 재상과 높은 벼슬아치 많고, 친가 외가 친척들이 나라에 공로가 많아 가세가 이러하고 인기가 두드러지니, 머지않아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 규장각과 이조참의 대사성에 오를 것이요, 외직으로 말한다면 성천부사 의주부윤 전라감사 평안감사 차례를 밟지 않고 벼슬에 오를 것이니, 팔자 좋은 이 세상 제일의 미인이 풍류 명사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여인이 되어, 입는 것이 비단옷에 먹는 것이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 마마님 아씨님 되어 도처에 독가마로 행차하니 그 아니 좋을 손가.

오늘날 이 기회가 좋은 때이니, 한 번 지난 두 번 다시 아니 오는데, 네 아니 가려 하고 마다마다 저리하니 그 속을 모르겠다. 연소하신 도령님이 한 번 불러 두 번 불러 끝내 거역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를 내어 너의 노모 잡아다가 무수히 혹독한 형벌을 내리게 되면, 아들 없는 집안의 외딸인 네 소견에 마음이 어떻겠나.

내가 이리 권하기는 초나라를 위함이지 조나라를 위함이 아니라. 너 위하여 하는 말을 아무리 해도 안 들으니, 가기는 간다마는 정녕이 또 올 테니 염려는 놓지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도령님 좋고 기발한 말로 무슨 짓 못 하겠나. 탈 나고 안 나기는 네 말솜씨에 매였다. 천 번 오고 만 번 와도 나는 아니 갈 터이니 너 알아서 네가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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