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II. 춘향그리기 (1/3)

New-Mountain(새뫼) 2020. 6. 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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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춘향 그리기

 

가. 이 사랑 저 사랑 사랑사랑 내 사랑아

 

쓰기를 마치매 똘똘 말아 춘향에게 전하니, 춘향이 받아 보고 마음속에 크게 기뻐 이리 접첨 저리 접첨, 접첨접첨 접어다가 가슴 속에 품은 후에,

“여보 도련님, 내 말 듣소. 발 없는 말이 멀리 날아서 천리를 간다 하니, 싸고 싼 사향내도 난다 하니, 이런 말이 누설하여 사또께서 아시고 엄하게 야단하고 호되게 매질하옵시면 자기가 저지른 일로 말미암아 생긴 재앙으로 받은 죄라 어디에 가 변명할까?”

이도령 이른 말이,

“오냐. 그는 염려 마라. 내 어렸을 때 큰사랑에 가면 내의녀 기생들과 은근짜, 숫보기, 각각의 집 통지기들이 오락가락 하더구나. 만일 탄로가 나거들랑 그 말 하고 입을 막자꾸나.”

이렇듯이 수작하며 천금이나 얻은 듯이 즐겁기도 그지없고 기쁘기도 측량 없다.

“서거라 보자. 앉거라 보자. 아장아장 거닐어라 보자.”

이렇듯이 사랑하며 어르는 거동은 홍문연에 범증이가 옥결을 자주 들어 항장 불러 패공을 죽이려고 큰 칼 빼어 들고 검무 추어 어르는 듯, 구룡소 늙은 용이 여의주를 어르는 듯, 검각산 백액호가 솔바람 부는데 댕댕이 넝쿨 사이로 보이는 달빛을 어르는 듯, 머리도 쓰다듬고 고운 손도 쥐어보며 등도 두드리며,

“어우화, 내 사랑이야.

밤비 오는 동쪽 창문에 모란같이 펑퍼진 사랑,

포도 다래 넌출같이 휘휘친친 감긴 사랑,

방장 봉래산 산처럼 봉봉이 솟은 사랑,

동해 서해 바다같이 굽이굽이 깊은 사랑,

이 사랑, 저 사랑, 사랑 사랑 사랑 겨워.”

사랑가 하며 이렇듯이 노닐더니, 이때 해가 서쪽 언덕으로 넘어가고 달이 동쪽 골짜기에서 떠오르더라.

춘향이 일어서며 하직하는 말이,

“어느 날 뵈오리까?”

이도령이 섭섭함 이기지 못하여 고운 손을 잡고 묻는 말이,

“네 집이 어디메니?”

춘향이 고운 손을 번듯 들어 한 곳을 가리키되,

“저 건너 돌다리 위에 한 골목 두 골목 지나 홍전문 들이달아 조방청 앞에서부터 대로 천변 올라가서 향교를 바라보고, 맨끝길 돌아들어 모룽이집 다음 집, 옆댕이집 구석집, 건너편 군청골 서천골 남쪽 둘째 집, 배추밭 앞으로부터 갈려 간 김이방 집 앞에서부터 정좌수 집 지나, 박호장 집 바라보고, 최급창의 누이 집, 사이골 들어 사거리 지나서 북쪽 골의 막다른 집이올시다.”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이 하 뒤숭뒤숭하니 나는 새로 일러도 찾아가기 어렵고 집 잃기 겠다.”

춘향이 답하되,

“그리 아니하여도 왕래에 가끔 물어 다니는 것이올시다.”

“그리 말고 어디에만치 자세히 가르치라.”

춘향이 웃고 다시 이르되,

“저 건너 키 낮은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 깊은 곳에 문 앞에 버드나무 심어 대여섯 그루 벌어 있고 대문 안에 오동 심어 잎 피어 나무 그늘지고, 담 뒤에 홍도화 난만히 붉어 있고, 앞뜰에 석가산 뒤뜰에 연못 파고, 전나무 그늘 속에 은은히 뵈는 저 집이오니 황혼 때 부디 오옵소서.”

하직하고 떨치고 가는 형상, 사람의 간장이 다 녹는다. 금석같이 서로 약속하고 손을 나누어 떠날 적에 한없는 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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