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I. 첫 만남 (2/4)

New-Mountain(새뫼) 2020. 6. 22. 13:43
728x90

나. 방자야, 춘향이를 이리로 오라 하라

 

이도령 이 말 듣고,

“얼싸 좋을시고.”

허둥지둥 허튼 말로 하는 말이,

“이 애 방자야, 우리 둘이 의형제 하자. 방자 동생아, 날 살려라. 제가 만일 창녀일진대 한번 구경 못 할쏘냐? 네가 바삐 불러오라.”

방자 놈 거동 보소. 아주 펄쩍 뛰며 하는 말이,

“이런 말씀 다시 마오. 저를 부르려 하면 밥풀 물고 새 새끼 부르듯 아주 쉽사오나, 만일 이 말씀이 사또 귓구멍으로 달음박질하여 들어갈 양이면 도련님은 관계가 없거니와, 방자 이놈은 팔자 없이 늙겠으니 그런 생각과 이런 분부는 꿈에도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죽기 살기는 시왕전에 매었다 하니 경망스레 굴지 말고, 저만 어서 불러오라. 내일부터 관청에 나는 것을 도무지 휩쓸어다가 수달피 노끈으로 질끈질끈 묶어다가 방자 형님댁으로 ‘꿩 진상 아뢰오.’ 하고 모두 다 보낼 것이니, 다른 염려는 꿈에도 말고 어서 바삐 불러오라. 제발 덕분 불러오라.

내가 만일 병 곧 들면 신농씨가 온갖 풀을 씹어 맛을 보고 약효를 알아내어 일만 병을 다 고쳐도 이내 병은 하릴없고, 요지에 천년 반도, 천태산의 별이용, 만수산 인삼과 삼신산 불사약이 거의 두 냥이라도 이내 병은 속절없이 죽겠으니 제발 덕분 비나이다. 날 살리시오.”

속담에 이른 말이 흰 막걸리가 사람의 얼굴을 붉게 하고, 황금이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고 하였더라. 방자 놈의 마음이 염초청 굴뚝이요, 호두각 대청이라.

‘주마’ 하는 말에 비위가 동하여 한 번 웃고 허락하는 말이,

“도련님 말씀이 하 저러하시니 불러는 오려니와 나중에 중병이 나면 그는 나의 알 바가 아니외다. 또 계집 말 부르는 장단이나 아옵나이까?”

이도령 대답하되,

“세상 사람이 남는 것 하나는 있느니라. 왈짜가 망하여도 발길질 하나는 남고, 부자가 망하여도 청동화로 하나는 남고, 종갓집이 망하여도 신주보 하나 향로 향합은 남고, 남산골 생원이 망하여도 걸음 걷는 걸음의 수 하나는 남고, 노는 계집이 망하여도 엉덩이 흔드는 장단 하나는 남는다 하니,

경성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설마 계집 말 부를 줄이야 모르랴. 방자 형아. 주제넘는 아들놈 소리 말고 나는 듯이 불러오라. 편전같이 불러오라.”

저 방자 놈 거동 보소. 아래 머쓱한 다리 참나무 질끈동 분질러 거꾸로 짚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뻗은 길로 거드렁충청 우두덩탕탕 바삐 갈 제, 한 모롱 두 모롱 훨훨 지나 나는 듯이 건너가서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우레같이 지르고 손을 눈 위에 번쩍 들어,

“춘향아, 춘향아, 무엇하느냐?”

춘향이 깜짝 놀라 그넷줄에 뛰어내려 아름다운 눈동자를 흘겨 뜨고 붉은 입술을 반쯤 열고 흰 이를 드러내어 묻는 말이,

“그 뉘라서 그리 급히 부르느냐?”

방자 놈 대답하되,

“큰일 났다. 책방 도령님이 광한루의 구경 와 계시다가 너를 보고 두 눈에 부처가 발등걸이하고, 온몸의 힘줄이 용대기 뒷줄이 되었으니 어서 급히 가자. 잠깐이나 지체하면 모다기판 날 것이니 얼른 바삐 가자스라.”

저 계집아이 거동 보소. 백만교태 찡그리고 독을 내어 하는 말이,

“요 방정맞고 요망스런 아이 녀석아, 사람을 그다지 놀래느냐? 내 추천을 하든지 말든지 너에게 대수이리. 말 많고 익살스레 분주하고 일 많게 뒤숭뒤숭스레 춘향이니 사향이니 침향이니, 계향이니, 강진향이니, 곽향이니, 회향이니, 정향이니, 목향이니, 네 어미니, 네 할미니, 갖추갖추 경신년 글 외듯 다 읽어 바치라더냐?”

방자 놈 하는 말이,

“요년의 아이년아, 내 말 듣거라. 무슨 일로 욕은 더럭더럭하여 가느냐? 어떤 실없쟁이 아들놈이 남의 부모님 병환에 손가락 잘라 피를 먹이는 셈으로 그런 말 하였단 말이냐?

도련님이 워낙 아는 법이 모진 바람벽 뚫고 나오는 중방 밑 귀뚜라미 자식이요, 또는 네가 잘못한 것이 그네인지 고네인지 추천인지 투천인지, 뛰려거든 네 집 뒷동산도 좋고 조용히 뛰려 하면 네 집 대청 들보도 좋고, 정 은근히 뛰려 하면 네 집 방안에 횃대목에나 매고 뛰지, 요렇듯 똑 훤리 드러난 언덕에서 부끄럼 없는 아이년이 들락날락하며 별별 발겨갈 짓이 무수하니,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아이놈이 눈꼴이 아니 상할쏘냐?

자세히 들어보라. 오늘 마침 본관 사또 자제 도련님이 산천경개 구경하려 광한루에 올랐더니, 녹음 중에 추천하는 네 거동을 보고 성화같이 불러오라, 분부가 지엄하시니, 뉘 분부라 아니 가고 뉘 영이라 거스를쏘냐? 잔말 말고 어서 가자.

바른대로 말이지 도련님이 오입쟁이러라. 곧 오매를 맛보는 것이요, 식초병의 마개요, 말에게 차인 엉덩이요, 돌에 차인 복숭아뼈요, 산개미의 밑구멍이요, 경계주머니 아들일러라.

네 만일 향기로운 말로 맵시 있게 모습을 부려, 초친 무럼을 만든 후에 항라 속곳 가랑이를 싱숭생숭 빼내어 아주 똘똘 말아다가 왼편 볼기짝의 붙였으면, 그 아니 오묘한 이치가 있겠느냐? 남원 것이 네 것이요, 운향고가 아람치라. 네 덕에 나도 관청 창고지기나 하여 거드럭거리며 호강 좀 하여 보자꾸나.”

춘향이 대답하되,

“아니 가면 누구를 어찌하나? 날로 죽이나, 생으로 찢어발기나 비 오는데 쇠꼬리처럼 부딪치지 마라. 날 궂은날 개새끼처럼 지근지근이 굴지 말고, 말하기 싫으니 어서 가거라.”

방자 놈 이른 말이,

“네가 요다지 보동되고 단단하냐? 앙세고 수세냐 아무렇거나 견디어 보아라. 세세한 속을 자세히 몰랐다. 도련님이 눈가죽이 팽팽한 것이 독살이 위에 없고, 만일 수에 틀리면 네 어미 월매까지 생급살을 먹을 것이니, 네 아니 가면 그만 있을 듯 싶으냐? 되지 못할 사양 말고 어서 가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