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 광한루 풍경 (4/4)

New-Mountain(새뫼) 2020. 6. 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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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남원의 산천 경치 아름답고 성하구나

 

산천 경치를 역력히 살펴보니 산은 첩첩한 봉우리들이요, 물은 잔잔한 계곡물이로다. 기이한 바위 층층한 절벽에서 폭포의 푸른 물줄기가 떨어지고, 큰 소나무 우거지고, 벽도화 난만한데, 꽃 속의 잠든 나비 자취 소리에 훌훌 날고, 연잎에서 노는 갈매기는 빗소리 사이에서 한가하다.

쳐다보니 첩첩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와 많은 산봉우리 굽어보니 층층한 바위의 절벽이라. 먼 산은 가지가지, 가까운 산은 첩첩, 태산은 주춤, 낙화는 동동, 골짜기 물은 잔잔. 이 골짜기 물, 저 골짜기 물 한데 모여 굽이굽이 출렁출렁 흘러갈 제, 꽃은 피었다가 저절로 지고, 잎은 피었다가 추운 계절을 당하면 광풍에 다 떨어져 속절없이 낙엽이 되어 아주 펄펄 흩날리니 그도 또한 놀랍고 신기함이로다.

또 한 곳을 살펴보니 버들이 벌렸으되, 당버들에 개버들, 수양버들, 능수버들 새로 났다. 홍제원 버들 춘풍이 불 제마다 너울너울 춤을 추고, 난간 앞의 복숭아꽃과 버드나무는 가지가지 봄빛이라. 꽃 속의 두견과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는 곳곳마다 봄 소리로 난만히 지저귀고, 꽃 사이에서 춤추는 나비 분분 눈처럼 날리고, 버드나무에서 나는 꾀꼬리 조각조각 금빛인데, 점점이 꽃잎들은 맑은 물가로 떨어지며 굽이굽이 떠나가고, 또 한 곳 바라보니 각각의 초목 무성하다.

고깃배는 물길 따라 봄 산을 즐기고 무릉도원 복숭아꽃 흐르는데, 술집이 어느 곳에 있는가 물으니, 목동은 살구꽃 핀 아득한 곳을 가리키더라. 북창에 삼월의 맑은 바람 부니, 오경의 옥빛 창가에 앵두꽃이 피었구나.

위성의 아침 비가 먼지를 적시는데, 나그네의 숙소에는 푸른 버들꽃, 난만한 꽃 중에 철쭉꽃이요, 가을 하늘이 높아지니 암자의 풀들이 모두 시들었으니 땅 가득한 가을 서리 속에 국화로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니 요임금의 명협화, 석양 동풍 해당화, 절벽 강산 진달래, 푸른 바닷가의 백목련이요, 물 위에 뜬 나무, 무궁화, 목화, 매화, 무금화, 원추리, 난초, 키 같은 파초, 모란, 작약, 월계화, 사계, 치자, 동백, 종려, 오동, 왜석류, 해석류, 영산홍, 왜척촉, 포도, 다래, 으름 넌출 얼크러지고 뒤틀어졌다.

또 한 곳 바라보니 온갖 잡목 다 있더라. 겨울 산마루에서 외롭게 빼어나 색이 변하지 않는 군자의 절개는 푸른 솔이요, 춘하추동 사시절에 정정하게 홀로 선 전나무,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에 백 길이나 되는 수궁중에 무회목, 모과를 보내 주시니,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하겠다던 뒤틀리는 모과나무, 오자서의 분묘 앞에 충성하는 가래나무요, 하늘 저 끝에 있는 임을 그리워하는 상사목, 푸른 산 그림자 속에 구름이 어렸는데 조석으로 예불하는 붉나무, 몇 군데 썩었어도 훌륭한 목공이 버리지 않는 아름드리 큰 재목, 자단, 백단, 산유자, 박달, 용목, 향목, 침향, 금팽, 율목, 잡목, 하늘의 복숭아나무, 땅의 복숭아나무, 은행나무, 잣나무, 늘어진 장송, 부러진 고목, 넓적 떡갈, 황계피, 물푸레, 단목, 푸른 솔, 보리수 드렝드렝 열렸구나.

모과, 석류 가지가지 광풍에 휘늘어졌고, 또 저편 살펴보니 각가 금수 날아들 제 제비와 참새는 날아들고 공작은 기어든다.

청자조, 흑자조, 내금정, 외금정, 쌍보라매,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보아라.

종달새 푸른 하늘을 박차고 백운을 무릅쓰고 좋은 세상에 떠 있는데, 방정맞은 할미새, 요망스런 방울새 이리로 가며 호로로 뺏쪽, 저리로 가며 뺏쪽, 호로로 팽당그르르. 마니산 갈까마귀 돌도 차돌도 못 얻어 먹고, 태백산 기슭으로 골각갈곡 갈으렝갈으렝 울고 간다.

춤 잘 추는 무당새, 큰 활 쏘는 호반새 수루루, 층암절벽 위에 비르르 장그렁 날아들고, 소상강 떼기러기 허공중에 높이 떠서 지리지리 싫도록 울어 예고, 겉으로는 비루먹고 속은 아무 것도 없이 휑뎅그레 비어 있는 고욤나무 위에 부리 뾰족, 허리 질룩, 꽁지 뭉뚝한 저 딱따구리 거동 보소. 크나큰 아름드리 굵은 나무를 한아름 들입다 허험썩 틀어잡고 오르며 뚜드락 딱딱 내리며 뚜드락 딱딱 하며, 낙락장송 늘어진 가지 홀로 앉아 우는 새, 밤의 울면 두견새, 낮에 울면 접동새, 한 마리는 내려앉고, 또 한 마리는 높이 앉아 사람 없는 빈 산에 달 밝아 적막한 데 촉국 강산 넋이 되어 귀촉도 불여귀라, 피 나게 슬피 울고,

뻐꾹새도 울음 울고, 쑥국새도 울음 울고, 풍년새는 솥 적다, 흉년새는 솥 텡텡, 약수삼천리 요지연에 소식 전하던 청조새, 사마상여 줄 소리에 사방에서 즐겁게 놀던 봉황새, 부용당 운무병에 그림 같은 공작새, 일천년 화표주에 풍경은 여전한데 사람은 이미 달라졌다는 정위학, 매성유의 글귀 속에 지혜로운 앵무새, 칠월칠석 좋은 시절에 은하수에 다리 놓던 오작새, 푸른 버드나무 사이 북이 되어 봄빛 쬐는 꾀꼬리는 한 쌍이 날아갔다 날아왔다 하는구나.

원래부터 서로 떠나가지 못한다는 원앙새, 상림원에 글 전하던 포구에서 이별하고 돌아오던 홍안새, 석양 무렵 우뚝 솟은 푸른 산 사이로 날아가며 서로 마주 보는 해오라기, 흐르는 물 가운데 지향 없이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운 쌍비오리, 곳곳에서 춤을 추고 길짐승도 기어든다.

산속의 군자는 호랑이와 표범이요, 성스러운 짐승은 기린이라. 오래 살고 죽지 않는 사슴과 고라니요, 봄산을 비껴가는 궁노루, 왕을 호위하는 코끼리는 이리저리 기어들고, 돈피, 서피, 이리, 승냥이, 해달피, 청설모, 다람쥐, 잔나비 휘파람 불고, 청개구리 북질 한다.

금두꺼비 새남하고 청메뚜기 장구 치고, 흑메뚜기 피리 불고, 돌을 진 가재 무당 북을 치고, 돼지 밭을 갈고, 수달피 고기 잡고, 암곰이 외입하니, 수토끼 복통한다. 다람쥐 그 꼴 보고 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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