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첫 만남
가. 울긋불긋 그네 뛰는 저 선녀는 누구더냐
이런 경치 다 본 후의 광한루에 다다라서,
“방자야, 도원이 어디메니? 무릉이 여기로다.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견우별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별 뉘가 되리? 악양루, 등왕각이 아무리 좋다 한들 이에 더 좋으랴?”
방자 놈 여쭈오되,
“이곳 경치 이렇기로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는 따뜻하여 고운 빛깔로 아롱진 고운 구름이 잦아질 제 신선이 내려와 노나이다.”
이도령 말이,
“아마도 그러하면 네 말이 확실하다. 구름은 무심하게 봉우리에서 솟아나니, 권태로운 새 날기를 멈추고 돌아오는구나. 별유천지비인간을 예를 두고 이름이라.”
술병과 술잔으로 자작하여 서너 잔 기울이고 그저 여기저기 거닐면서 돌아보며 산천도 살펴보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대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놀며 옛 글귀도 생각하니, 경치 풍월이 본시 무정이라 정히 무료 심심하더니, 눈을 들어 한 곳을 우연히 바라보니, 별유천지 그림 속의 어떠한 한 미인이 봄 흥취를 못 이기어 백옥 같은 고운 얼굴 엷은 화장으로 다스리고,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고운 얼굴이니, 한 나무에 세 색깔의 희한한 복숭아꽃이 채 피지 못한 듯이 하룻밤 찬 이슬에 반만 핀 모습이요, 청산 같은 두 눈썹은 팔자 봄 산 다스리고 검은 구름 같은 흩은 머리 반달 같은 화룡소로 아주 솰솰 흘려 빗겨 전반같이 넓게 땋아 옥룡잠, 금봉차로 새앙머리 쪽졌는데, 석웅황 진주 투심 산호 가지 휘어 얽은 도투락 댕기 맵시 있게 달았으니, 천태산 벽오동 가지의 봉황 꼬리로다.
당모시 깨끼적삼, 초록 갑사 곁마기에 백문항라 고쟁이 바지, 분홍 갑사 넓은 바지, 가는 버들 같은 가는 허리, 촉라요대 눌러 띠고, 용무늬 갑사 다홍치마 잔살 잡아 떨쳐입고, 몽고삼승 겹버선에 초록 우단 수운혜를 맵시 있게 돋워 신고, 삼천주, 산호수, 밀화불수, 옥나비며, 진주 월패, 청강석, 자개향, 비취향, 오색 당사 끈을 달아 양국대장 병부 차듯, 남북의 병마절도사가 동개 차듯, 각 읍 통인 서랍 차듯, 휘늘어지게 넌짓 차고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닐러 찾아갈 제, 갖은 아양을 보이는구나.
섬섬옥수 흩날려서 모란꽃도 분질러서 머리에도 꽂아보고, 철쭉꽃도 분질러서 입에도 담뿍 물어보고 녹음 수양버들잎도 주루룩 훑어다가 맑고 맑은 구불구불한 물에 풍덩실 들이쳐도 보며, 복숭아꽃이 흘러간 곳이 묘연한데, 점점이 지는 꽃잎이 푸른 시냇가에 내려앉는 곳에 조약돌도 쥐어다가 수양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도 ‘위여’ 풀풀 날려보고, 푸른 산 그림자 속의 초록빛 그늘에 그리 저리 들어가서 길고 긴 비단 그넷줄을 벽도화 늘어진 가지에 휘휘칭칭 매었는데, 저 아이 거동 보소. 맹랑히도 어여쁘다.
섬섬옥수 들어다가 그넷줄을 갈라 쥐고 솟구쳐서 뛰어올라 한 번 굴러 앞에 높고, 두 번 굴러 뒤가 높아, 백릉 버선 두 발길로 솟아 굴러 높이 차니, 뒤에 꽂은 금봉차와 앞에 찌른 민죽절은 너른 바위 위에 내려져서 앵그렁 댕그렁 하는 소리, 이도 또한 경치로다.
날아오고 날아가는 거동 진 왕녀가 난새 타고 옥경으로 향하는 듯, 무산선녀가 구름 타고 양대 위에 내리는 듯.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이도령이 바라보고 얼굴 달아오르고 마음이 취하여, 정신이 산란, 눈동자가 몽롱, 먹은 마음이 호탕, 심신이 황홀하다.
“방자야, 저기 저 건너 구름 안개 중에 울긋불긋하고 들락날락하는 것이 사람이냐 신선이냐?”
방자 놈 여쭈오되,
“어디에 무엇이 뵈나이까? 소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 뵈나이다.”
이도령 말이,
“아니 뵌단 말이 어인 말이니 멀리 보지를 못하느냐? 청홍을 모르느냐? 나 보는 대로 자세히 보아라. 선녀가 하강하였나 보다.”
“무산 십이 봉이 아니거든 선녀가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숙낭자이냐?”
“이화정이 아니거든 숙낭자가 웬 말이오.”
“그러면 서시로다.”
“오왕 궁중 아니거든 서시라 하오리까?”
“그러면 옥진이로다.”
“장생전이 아니거든 양귀비가 왜 있사오리까?”
“그러면 옥이냐 금이냐?”
“영창 여수 아니거든 금이 어이 있으며, 형산 곤강 아니거든 옥이 어이 이곳에 있으리까?”
“그러면 도화로다.”
“무릉도원 아니거든 도화가 웬 말이오?”
“그러면 해당화냐?”
“명사십리 아니거든 해당화라 하오리까?”
“그러면 귀신이냐?”
“흐린 하늘에 비가 내려 습하지 않은데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혼백이냐?”
“북망산천 아니거든 혼백이 웬일이오?”
“그러면 일월이냐?”
“부상대택 아니거든 일월이 어이 있으리까?”
이도령이 역정 내어 하는 말이,
“그러면 네 어미냐? 네 할미냐? 모두 휘몰아 아니라 하니 눈망울이 솟았느냐? 동자가 거꾸로 섰느냐? 온통 뵈는 것이 없다 하니, 허로증을 들었느냐? 나 보기에는 아마도 사람은 아니로다. 천년 묵은 불여우가 날 홀리려고 왔나 보다.”
방자 놈 여쭈오되,
“도련님, 여러 말씀 그만하오. 저기 저 그네 뛰는 저 처녀를 물으시나 보온데, 지금은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져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라. 사대부집 규수가 그네 뛰러 왔나 보외다.”
“이 아이야, 그렇지 아니하다. 그 처녀를 보아 하니 푸른 하늘에 뜬 송골매도 같고, 석양에 나는 물 찬 제비도 같고, 푸른 물결의 비오리도 같고, 말 잘하는 앵무새도 같고, 부드럽게 하늘하늘하며 별 진 잘 숙 하니, 여염집 처녀가 그렇기는 만무하니, 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놀고, 나이를 먹었으니 모리장단 나던 집을 역력히 알 듯하니 사람 죽겠다. 바로 일러라.”
방자 놈 여쭈우되,
“진정 그리 알고자 하시면 바른대로 고하리니, 공짜로 주시는 것이 있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북극천문에 하소연하고, 옥황상제 금부처에 명하셔도 바로 고하지 못하겠소.”
이도령 마음이 급급하여 되는대로 하는 말이,
“그래서 차근차근하지 않고 데면데면히 할까 보냐? 내 서울 가거든 세간 밑천 하려 하고 돈 오백 냥을 창고에 넣고 굳게 봉해 두었으니 너를 줄 것이요, 장가 들거든 예물 주려고 어르신네 평양 서윤 가 계실 제 팔찌와 머리꽂이 장만한 것 두었으니 너를 줄 것이요, 과거 하거든 쓰려 하고 창방제구 차려둔 거 있으니 너를 줄 것이요, 모두 넉넉하든 부족하든 몰아 휩쓸어다가 모조리 너를 다 줄 것이니, 제발 덕분 바로 일러라.”
방자가 웃고 그제야 하는 말이,
“저 아이는 귀신도 아니요, 짐승도 아니라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오. 나이는 이팔 열여섯이요, 인물은 제일가는 미인이요, 행실은 백옥이요, 재질은 소약란이요, 풍월은 설도요, 노래는 섬월이라. 아직 서방 정하지 아니하고 있으나, 성품이 매몰차고 독살스러우며 교만하고 말이나 하는 짓이 도도하기가 영소보전 북극천문에 턱 건 줄로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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