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I. 광한루 풍경 (2/4)

New-Mountain(새뫼) 2020. 6. 21. 21:58
728x90

나. 방자야, 어디메로 봄나들이 나서 볼까

 

 

이 세상에 매우 이상하고 신통하고 거룩하고 기특하고, 도리에 어그러지고 맹랑하고 희한한 일이 있것다.

전라도 남원부사 이등 사또 도임했을 제, 자제 이도령이 나이 십육 세라. 얼굴은 진유자요, 풍채는 두목지라. 문장은 이태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사또 사랑이 너무 지나쳐 도임 초에 책방에 기생을 뒷바라지하라 드리자 하니 색에 상할까 염려하고, 통인 수청 넣자 하니 남색에 빠질까 염려하여 관속에게 분부하되,

“책방에 만일 기생 수청을 들이거나 반반한 통인 수청을 들이는 폐단이 있으면 너희를 잡아들여 유월도 뼈를 뚫고 온 후추를 박으면 웃고 죽으리라.”

이렇듯 분부를 지엄하고 극악하게 하니 어떤 역적의 아들놈이 살진 암캉아지 하나나 책방 근처에 보내리오.

책방 수청을 들이되, 귀신이 다 된 아이놈을 들이것다. 얼굴을 역력히 뜯어보니 대가리는 북통 같고, 얼굴은 밀매판 같고, 코는 얼어 죽은 초배 줄기만 하고, 입은 귀까지 돌아가고, 눈구멍은 총구멍 같으니, 깊든지 말든지 이달에 울 일이 있으면 다음 달 초순에 눈물이 맺혔다가 스무날 정도 되어야 떨어지고, 얽든지 말든지 얽은 구멍에 탁주 두 푼어치 부어도 잘 차지 아니하고, 몸집은 동대문 안 인정만 하고, 두 다리는 휘경원 정자각 기둥만 하고, 키는 팔척장신이요, 발은 겨우 개발만 한데, 종아리는 비상 먹은 쥐 다리 같으니, 바람 부는 날이면 간드렁간드렁 하다가 된통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끔 낙상하는 아이놈을 명색으로 수청을 들이니, 이도령이 책방에 홀로 앉아 탄식하는 말이,

“세상사를 곰곰 헤아리니 넓고 푸른 바다에 한 알의 좁쌀처럼 보잘것없음이라. 나무라도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 서고, 물이라도 음양수는 격을 찾아 돌아들고, 새라도 원앙새는 수컷이 날면 암컷이 뒤를 따라 날아들고, 풀이라도 금강초롱은 네 계절이 모두 봄인 듯 마주나고, 돌이라도 망주석은 둘이 서서 마주 보고, 원앙은 연못에서 짝을 지어 날고, 봉황은 누각 아래에서 쌍쌍이 날아가는구나.

날짐승도 쌍이 있고, 길 버러지도 짝이 있고, 헌 고리도 짝이 있고, 헌 짚신도 짝이 있네. 나는 어인 팔자이기에 어젯밤도 새우잠 자고, 오늘 밤도 새우잠 자고, 매양 늘 새우잠만 자나. 어떤 부모는 며느리 얻어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장가보내고 시집 보낸 후에, 아들의 손자, 딸의 손자 안고 자고, 재롱 보고, 어떤 부모는 주변이 없고 마련이 없고, 된 데가 없어, 다만 자식 나 하나 두고 청춘 이십 당하도록 독수공방시키는고? 차마 설워 못 살겠다.”

이렇듯이 탄식하며 시절을 돌아보니 때마침 한창 봄날이라. 풀과 나무와 온갖 생물들이 스스로 즐기는 도다.

떡갈나무 속잎 나고, 노고지리 높이 떴다. 건넛산에 아지랑이 끼고, 잔디잔디 속잎 나고, 달바자 쨍쨍 울고, 삼 년 묵은 말가죽은 외용죄용 소리하고, 선동아 군복 입고 전쟁에 참여하러 가고, 청개구리 신상투 짜고 동네 어른 찾아보고, 고양이 연지 곤지 찍고 시집가고, 암캐 서답 차고 달거리하고, 너구리 넛손자 보고, 두꺼비 외손자 보고, 다람쥐 용두질하고, 과부 기지개 켤 제, 이도령의 마음이 흥글항글하여 방탕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는구나.

산천경개 보려 하고 방자 불러 분부하되,

“이 고을 구경할 만한 데가 어디어디 유명한가?”

 

방자 여쭈오되,

“무슨 경치를 보려 하오.

줄줄이 점점이 가지런하게 비껴 날다

찬 하늘에서 내려와 따뜻한 백사장에 자려더니,

언덕으로 훨훨 날아가는 걸 이상히 여겼더니,

뱃사람들 갈대꽃 우거진 속에 숙덕이누나.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들의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배를 타는 장사꾼들이 아이들처럼,

향불을 피우면서 순풍을 빌었더니

호수의 신이 정성에 응하여서,

여러 배들 돛 달고서 동서로 가는구나.

포구로 돌아가는 돛단배들의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단풍 들고 갈대꽃 핀 물나라의 가을인데,

강물 위 조각배에 비바람 뿌리네.

초나라에 온 손님이 삼경의 꿈 깨우고서,

상비의 오랜 시름 함께 나누었네.

소상강 밤비가 내리는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삼경에 달이 밝고 은하수 맑았는데,

만경창파에 가을빛 일렁이네.

호숫가 뉘 집에서 태평소를 불고 있고.

푸른 하늘 끝없는데 기러기 떼 높이 나네.

동정호에서 가을 달이 빛나는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지는 해 바라보니 먼 산으로 넘어가는데,

밀물이 소리치며 찬 갯벌에 올라오네.

어부들 흰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니,

몇 줄기 밥 짓는 연기 파랗게 올라오네.

갯마을에 석양이 내리는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버들개지 공중에서 서서히 내리는 듯,

매화가 땅에 떨어지니 자태가 많구나.

강가 누각에서 한 통의 술을 다 마시면서,

도롱이 쓴 노인 낚시 거둘 때까지 보았노라.

눈 오는 저녁 강가의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아득한 숲속에는 아지랑이 차가운데,

숲속의 은은한 누대 비단으로 가렸어라.

어이하면 바람이 땅을 휩쓸어,

나에게 왕가의 채색한 산을 돌려줄까.

아지랑이 쌓이는 산마을의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한 폭의 단청을 넓게 펼쳐 놓았는 듯,

두어 줄 수묵이 흐렸다 진해지네.

붓으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 있다면은,

남쪽 절의 종소리와 북쪽 절의 종소리라네.

저녁 종소리 들려 오는 안개 낀 절의 풍경이니

이를 구경하려 하오?

 

수소문하여 가짜와 진짜를 찾기 어려움이라. 동정호 가려 하오?”

“동정호 칠백 리에 배가 없어 못 가리라.”

“그러면 악양루 가려 하오?”

“두자미의 글에 하였으되, 친한 벗에게서는 편지 한 장 오지 않고,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이라 하였으니, 악양루도 못 가리라.”

“그러면 봉황대 가려 하오?”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었더니, 봉황 가고 대가 비었는데 강은 절로 흐르노라 하였으니, 봉황대도 못 가리라.”

“그러면 다 던지고 관동팔경 보려 하오?”

“아서라. 그도 싫다.”

방자 놈 여쭈오되,

“예로부터 이른 말이 경궁요대 좋다 하되, 다 없어져 볼 길 없고, 위무제의 동작대와 수양제의 십육원도 자고새만 대 위로 날아다닐 뿐이로다. 황학루, 등왕각, 고소성 한산사, 난간 밖 긴 강물 속으로 속절없이 흘러가는구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