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기쁘거나 슬프거나

용문사 은행나무옆 피뢰침탑

New-Mountain(새뫼) 2013. 2. 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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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려는 것인가. 위압하려는 것인가

 

겨울임에도 비가 꽤나 많이 쏟아졌다

내리는 빗물에 겨우내 쌓여 있던 눈까지 녹아들어

계곡물이 제법 거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홍수처럼 흙탕물이었다 용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절의 어긋남도 겨울 용문을 찾은이에게는

충분한 감동의 이유가 충분히 된다

얼마나 언 하늘에서 아래로 힘있게 듣고 싶었을까

얼어붙은 대지 가득 머금은 물기를 아래로 흘려보내고 싶었으까

그런 물길을 옆으로 두고 우리는 거슬로 올라갔다

 

우리가 용문사에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천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이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안고 금강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짚었던 지팡이를 꽂은게 자라났다는 전설은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그만이다

우리의 경외심은 천년이라는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동행했던 이의 일갈

이십년 전에 본 은행나무와 다를 게 없다는....

천년의 시간 속에서 이십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 찰라인가

그럼에도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이는 삽십대에서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이 쭈글해진 중늙은이가 되어 있다

그것도 곧 오십이 머지않은 이에게도 감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은행나무옆 아주 높은 피뢰침탑....

그걸 보며 모든 감동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의태자 천년 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수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며

은행나무보다도 더 높게 저 탑을 세웠으리라

벼락으로부터 천년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래도

저 탑은 지킴이 아니라 억압의 목적으로 저기 서 있는 것 같다

천년의 시간동안 세상을 아래두고 세월을 지켜왔던 나무는

어느날 문득 몇 일간의 공사 끝에 세워진 철재건축물에

굴복을 강요받게된 것이 아닐까

 

우리들처럼....

 

겨울이어도 당당히 흘러내려가는 저 물길같지

아니하는 우리들처럼....

 

- 이십년전이 아니라 이년전 가을에 찍은사진이 있다

그 때도 주인공은 나무가 아니라 쇳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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