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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아니다. 가을이다.
그래도 줄기차게 꺼내 입는 여름 옷에서
떨어지는 잎들 뿌듯이 돋는 계절을
갈망함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푸르고 푸르고 더 높지만
게 제 얼굴을 비춰볼라던 기분 좋던
허울은 주머니 속 깊은 데서 꼼지락거리고
다만 그 아래로 묵묵히 걸을 뿐이다.
헛되게 세상을 살았다고
그리하여 가치있는 시간은 남은 게 없다고
돌부리에 감정 섞은 화풀이도 해보지만
돌부리도, 게 와 닿는 발끝의 감촉도
미묘하지 않다. 옛날과 다르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진지
묻지 않기로 한 것은 오래된 일.
가고 가고 또 가는 양족으로
이미 가을이고, 빛이 달라져 있고
어느덧 높은 하늘만이 가만하게
주의 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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